★.수필 “다곡동길”, 선주문학회 합평회 발표. - ♣15.10.07
선주문학회에서 2015년 7월 24일 전원일기 식당에서 합평회를 가졌고,
그때 나는 “다곡동길”이란 수필을 발표했다. 그날 발표했던
그 수필을 그대로 적음으로, 금주 칼럼을 대신하고자 한다.
"다 곡 동 길"
주위에 많은 사람(이성)과 길(道)들이 있어서 좋다. 한편 많은 것보다 특별한
하나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사람이 여러 가지 병이 아닌, 한 가지 병으로
죽듯이, 특별한 한 사람과 한 길은 중요하다. 허다한 여자들이 있지만, 나와
결혼해 주고 딸을 낳아준 아내는 내게 특별한 여자이다. 딸이 여중 여고에
다닐 때, 학교 교문에 같은 교복을 입은, 또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도 금방
딸을 발견할 수 있었음은, 허다한 여학생이 있어도 딸은 내게 특별한 여학생
이기 때문이었다.
구미시 도개면에 다곡리가 있다. 선산에 살면서 고향(군위군 우보면)에 갈 때
와, 의성문협 행사에 갈 때마다 경유하는 마을이다. 도개면 다곡리 길로 청화
산을 넘으면 곧 군위군 소보면이 된다. 그래서 도개면 다곡리 산(山)길이 늘
정겨웠다. 곳곳마다 고마운 길이 있다. 걷고 싶은 길, 다시 걷고 싶은 옛길이
있다. 길은 삶의 질을 높여주고 편리함을 준다. 그래서 살기 불편한 오지와
폐쇄된 지역이라도, 길이 생기면 살기 좋은 지역이 된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
도 건강하듯이, 땅에 길이 뚫려야 잦은 만남이 이뤄지고 마음의 길도 뚫어진다.
가깝지만 길이 막혀버린 남북이산 가족들은 평생 만남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곤 한다. 편리함을 따라 그 방면으로 기술이 발달되듯이 요즘은 길
을 만드는 토목기술이 많이 발달되었다. 그 토목기술로 멋지게 건설된 고속도
로, 산업도로, 관광도로, 동네 골목길, 산책로와 같은 좋은 길들이 많다. 이렇
게 허다한 길들이 있지만, 고향 가는 길이 되어준 다곡동 길은 특별히 더 좋
았다. 길은 어디를 이어주느냐에 따라 길의 중요성에 차이가 생긴다. 사랑하
는 이의 집으로 가는 길이면 아무리 좁고 험해도 자꾸 가고 싶을 것이며, 원수
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 탄탄대로라도 가기가 싫을 것이다.
군부대와 집 사이 똑같은 길이라도 휴가를 얻어 집으로 가는 길이면 훨훨 날
아갈 것이며, 휴가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면 마음이 천근만근일 것
이다. 다곡동길은 산 고갯길이라 비록 다니기에 불편하지만, 그리운 고향을
이어주니 한없이 늘 좋기만 하다.
그런데 장옥환선생님이 63년 전에 지은 다곡동길 시를 최근 발견하고, 음미
하니 다곡동 길이 더 좋아졌다. 산이 좋아 산에 갔다가 산 계곡의 맑은 물을
만나 산이 더 좋아짐과 같다. 본회 고문 장옥환선생님이 묵은 수첩에 기록해
놓았던 “다곡동길” 시(詩)를 36년 지나서, 선주문학 7집(1988년)에 실었다.
현재 이웃에 살고 계신 장옥환선생님은 1952년 당시 선산중학교에 재직하셨
고, 뒷교사 증축을 위해 전교생을 동원하여 낙동강을 나룻배로 건너 청화산
에 가서, 벌목한 서까래 한 개씩 어깨에 메고 먼 다곡동 길을 걸어서 운반해
왔다고 했다. 당시 다곡동 마을에는 버스길이 없고 논두렁길 뿐이었으며 5월
길목에는 인동덩굴 꽃이 많이 피었다고 했다. 선산(구미)지역 낙동강의 첫 다
리인 일선교는 선산출신 박정희대통령의 특별 배려에 의해 1967년에 건설되
었으니, 당시 선산에서 다곡동 길을 밟으려면 낙동강을 나룻배로 건너야 했다.
그런 다곡동길이 장옥환선생님의 시 제목이 되었으니,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
장옥환선생님의 다곡동길 시(詩)를 읽으니 어렵던 당시 모습이 그려지면서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어릴 적 친한 고향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한참이나 가시질 않았다. 어린 시절 고향 지역에 널려 있던
추억들이 현실에서 이제는 먼 기억으로만 남았지만, 예전의 그 모습은 다곡
동길 시 속에 그대로 숨어있었다. 어렵게 살던 어릴 적 시절과 고생스럽게
자식들을 키우셨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잠시나마 먼 시간여행을 하며 다곡동
길만이 알고 있을 오랜 세월 많은 사연들을 짐작해 봤다. 추억은 식물과 같아
서, 싱싱할 때 심어두지 않으면 뿌리박지 못하는 것이니, 덜 늙었을 때 기억
속에 다곡동길 추억을 심어놓고자 한다. 숲 속을 달리다가 산 중턱의 다곡리
마을을 달린다. 길 옆 묵집과 아름다운 식물들과도 정이 들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다시 걷고 싶고 추억이 담긴 그리운 길들이 있다. 특히 평생
삶의 터전이 된 선산에서 고향으로 가는 다곡리 산 고갯길은 더 많은 정이
들었고, 천년만년 늘 함께 친구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청화산 큰 고개를 넘는
다곡동 길에는 상주-영천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하면서 터널을 뚫고 있다. 구
미시 도개면 - 청화산 - 군위군 소보면으로 고속도로 터널이 완공되면 다곡동
길을 이용하는 차량과 인적은 훌쩍 적어지고, 다곡동길은 늙어질 것이다. 어릴
적에 소 먹이러 부지런히 즐겨 다니던 고향 산길이 그리워서, 수년전 그 길을
찾았다가, 그 산길들이 없어진 것을 보고서 놀랐고, 깊은 산속을 헤매며 무서
워했던 일이 생각난다. 즐겨 다니던 선명한 길이라도 오래 다니지 않으면, 그
길도 늙어지고 결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알았다.
젊었던 아내가 늙어지고, 나도 늙어지고, 고향도 늙어지고 있는데, 다곡동길
마저 늙어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나는 늙더라도, 아내나 고향이나
다곡동길 누군가는 젊어 있으면 좋으련만, 함께 늙어가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정든 다곡동 길을 가슴과 심비에 그리움으로 새겨본다. 그리고 선주문학 7집
(1988년) 156면에 있는 “다곡동길 시(詩)”를 그대로 옮겨본다.
“다곡동길” (1952년 장옥환 지음)
낙동강 용산나루 건너 또 시오리
청화산 중턱까지 올라가서
송진 묻은 서까래 받아 메고
다시 돌아오는 삼십리 다곡동길
대화도 잊은 서까래의 긴 행렬
들판 논두렁 구비 구비 돌아
강변 방천둑에 올라서면
인동덩굴 늘어진 꽃이 고단해 진다
가물 가물한 솝실고개 넘어 교동에 오면
발걸음도 서까래도 가벼워진다.
승자의 기쁨으로 우리 학교를 내려다보고
땀 묻은 서까래 꼭 메고 달린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마가복음.10:32)
◆.사진- ①.②.③.④.선주문학회 합평회에서 수필을 발표하다(2015.7.24)
⑤.⑥.선주문학회 5월 합평회를 갖다(원호초등학교, 2015.5.22)
⑦.선주문학회에서 금오산 정상을 오르다.(참고- 본칼럼 799호)
⑧.⑨.선주문학회에서 “통영”문학기행 가다.(참고- 칼럼 7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