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무술감독 정두홍

[다다]

 

정두홍

그는 남자다. 평범하게 걷는 것 같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힘이 응축되어 있다. 그의 눈은 매섭다. 웃고 있어도 그 뒤에 숨어 있는 쿠술인 특유의 날카로움은 감추지 못한다. 고난이도의 액션 씬이 들어가는 한국 영화에는 빠짐없이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정두홍. 그는 스턴트맨으로 시작해서 한국 영화 크래딧에 무술 감독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든 사람이다. [매트릭스][와호장룡]의 원화평이나 [영웅]의 정소동 같은, 세계적으로 진가를 인정받은 홍콩 출신 무술감독 못지않은 보물을 우리 영화계는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라는 수식어가 너무 남발되어서 흔해졌지만 그는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우리의 국가대표 무술감독이다.

그런 그가 언제부터인가 스크린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석했다. 뒤에서 배우들의 무술을 지도하거나 대역의 옷을 입고 발차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배우가 되어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대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그를 조연급으로 격상시킨 영화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 류승완과 이번에는 공동 주연을 했다. 영화 [짝패]는 그러니까 배우 같지 않은 두 명의 영화인, 감독 류승완과 무술감독 정두홍이 주연을 맡은 버디 무비다. 연기를 하면서도 각자 감독과 무술감독의 역할도 차질 없이 수행해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들은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순제작비 25억원이 들어간 [짝패]는 최근 한국 영화 평균제작비로 치자면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 가장 절감되었을 것이 배우들의 출연료다. 제작자 겸 감독(정두홍은 무술감독), 주연을 했으니 출연료가 책정이야 되었지만 가져갈 형편은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액션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 이후에도 절친한 감독들, 가령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나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등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주간동아]에 실린 이 인터뷰 지면에서도 [앞으로 연기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 류승완 감독이 주연을 맡고, 정두홍 감독까지 꼬드겨서 제작까지 참여시켜 만들었다면 거의 배수진을 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만큼 흥행을 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영화에는 가득하다. 그런데도 예상을 깨는 미덕이 있다면, 대개 감독이 제작자를 겸할 경우, 예산 초과를 우려해서 눈에 띄지 않게 타협해가며 스케일을 줄인다. 그런데 [짝패]의 경우는 반대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만큼 적어도 액션에서 만큼은 한국 최강이 되게 만들려고 했다는 자부심이 화면에 넘쳐 난다.

[짝패]의 공식 제작사는 [외유내강]이다. 알려진 대로 바깥양반 류승완과 그의 부인 강모씨의 성씨를 딴 이 회사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그동안 몇 번 기획으로는 참여했지만 제작 타이틀을 내 건 것은 처음이다. 정두홍 감독도 이 영화에 상당 부분 투자를 했기 때문에 공동제작자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정두홍은 인천체육전문대학 무도과를 나왔다. 1966년생이다. 이제 불혹이 넘었는데도 그의 몸은 여전히 이팔청춘처럼 허공을 날아다닌다. 현장에서는 당연히 노친네 소리를 들을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벽을 차고 그 탄력으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360도 아니 450도 회전하며 발차기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속이 후련해진다. 카타르시스가 바로 이거다.

[짝패]의 액션 씬은 한국 최고다. 이 영화를 뛰어 넘는 액션 씬을 당분간 보기 힘들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청주와 양수리 오픈 셋트에서 촬영된 영화 대부분은 액션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류승완 정두홍 두 사람의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두 사람은 대역 없이 촬영했다. 거의 노우 와이어 노우 컴퓨터 그래픽 수준이다. 맨 몸을 던지는 이른바 생짜 액션의 땀 냄새가 화면 밖으로 펄펄 쏟아진다.

정두홍 감독이야 원래 스턴트맨으로 잔뼈가 굵었고 무술전문 감독이라 그렇지만 류승완 감독까지도 직접 자신이 액션 연기를 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원래 류승완 감독은 성룡의 [취권]을 보고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액션 키드다. 발차기는 당연히 상대의 머리 높이로 올라간다. 

정두홍의 공식 무술 경력은 태권도 4단, 합기도 5단이며 그 외에도 격투기, 유도, 권투 등을 섭렵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장동휘, 박노식 등의 액션 영화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중절모자를 쓴 중년의 신사들이 멋있게 발차기하면서 위기에 빠진 여성을 구하는 모습을 보며 액션 영화에 흠뻑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쪽 일을 시작해 보니까 그 당시에는 스턴트맨은 제작현장에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독하게 마음먹었다. 대접을 안 해주면 대접 받을만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노력해서 한국 액션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1999년 설립한 서울 액션스쿨에서 수많은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 액션스쿨은 현재 파주 헤이리 아트벨리로 거처를 옮겼다. 연건평 350평에 3층으로 된 건물인 이곳에서 한국 액션의 세계진출이 모색되고 있다. [짝패]에도 그의 제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스턴트맨들이 마땅히 훈련할 장소도 없어서 한국체육진흥회장님 앞에서 무릎 꿇고 애원해서 보라매공원 체육관을 빌린 게 불과 8년 전이다. 이번에 파주에 새로 건립된 마샬 아트센터는 샤워시설은 물론 체계적인 교육도 할 수 있고 와이어 액션 촬영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2003년 보라매공원 체육관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퇴거지시가 떨어졌다. 갈 곳 없는 그는 자신만 쳐다보던 후배들과 제자들을 위해 술을 마시고 강우석 감독에게 찾아갔다. 너무나 쉽게 강우석 감독은 승낙을 했고, 시네마 서비스가 땅과 건축비 전액을 조달한 뒤 서울액션스쿨에게 운영권을 양도했다.

80명 정도의 지원자 중에서 60명을 추려 6개월 동안 교육하면 15명 정도 남는다. 물론 교육비는 전혀 없다. 무료 교육이다. 충남 부여 시골에서 월사금도 못낼 정도로 가난한 지안에서 자라난 그를, 태권도 도장의 관장님이 무료로 받아주지 않았으면 오늘날의 정두홍은 없었다. 그래서 돈 없어도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었다.

[외국의 DVD 샵의 액션 코너에 한국 영화가 꽂혀 있기를 바랐다. 이번 영화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직접 영화에 투자해서 저예산으로 만들면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짝패]는 그가 류승완 감독과 의기투합해서 진짜 순도 100%의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나 산악자전거까지 등장하는 힙합 버전의 액션 씬도 등장한다. 정두홍 감독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였는데, 이소룡 이연걸 성룡의 뒤를 잇는 아시아의 무술 스타 토니 자의 [옹박]에 비슷한 장면이 등장해서 너무나 속상했다고 한다.

[십자인대가 끊어지면 보통 사람은 걷기도 힘들다. 류승완 감독은 촬영 도중 무릎의 십자인대가 끊어졌는데도 촬영이 다 끝난 뒤에야 복원수술을 받았다. 내가 류 감독의 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지만 액션 배우로는 100점이다.]

정두홍 감독은 후배이자 절친한 액션 영화의 동료인 류승완 감독의 액션 연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제 정두홍 이름 앞에 붙는 무술감독이라는 수식어 중에서 무술이라는 글자를 뺄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는 빠르면 올해 말, 감독에 데뷔한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임스 리를 주인공으로 해서 미국의 B급 시장을 겨냥하고 찍는 영화다. [바운서](가제)는 정두홍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한국 액션 영화의 세계 진출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짝패]의 싱싱하게 살아있는 액션 씬을 보면 그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