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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동아시아 해방이후_ 당시_민심_여론.jpg
Wehrmacht 추천 0 조회 859 09.10.15 00:41 댓글 2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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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0.15 00:44

    첫댓글 교통부장 : 용달차

  • 09.10.15 00:50

    쩝. 이승만.... 여러모로 아쉬운 인물이죠..ㅠ.ㅠ

  • 09.10.15 02:27

    군무부장 김일성의 압박

  • 09.10.15 08:01

    김일성을 뺀다면 수긍할 수 있는 내각진이군요...

  • 09.10.15 10:41

    전 김일성보다 박헌영이 더.. 김일성은 사상과 크게 연관없는 인물인데 반해 박헌영은 골수 공산주의 원리주의자이죠. 공산주의에 반하는 그 어떠한 것에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했던 인물이죠.

  • 09.10.15 11:45

    하긴 그렇군요. -_- 해방 직후의 '바람직한' 이념적 스펙트럼은 김구/김규식 - 송진우 - 여운형 정도인듯.

  • 09.10.16 00:41

    그렇지만 민심이 박헌영을 꼽은 건, 실제로 일제치하 당시 국내에서 활동한 정치지도자로서의 입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민중들이 우매하다고 보는 시각들이 꽤 있는걸로 아는데, 실제로 민중들은 그렇게 우매하지 않았죠. 간단하게 말해서 알건 다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 09.10.16 17:49

    꼽혔다는게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저 리스트대로 내각이 구성되어졌을 때, 김일성은 민주국가든 공산국가든 상관없이 대세에 타협하면서 권력 투쟁에 몰두하겠지만,(이승만과의 암투 ㄱㄱ) 박헌영의 경우는 그 국가가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각가 아니라면, 그 어떠한 짓도 했을겁니다. 물론 그 이상으로 일제 치하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인물이죠.(체포되어 오랬기간동안의 지독한 고문에도 굽히지 않죠. 결국 일제가 병보석으로 풀러줄 정도의 지독한 고문이었습니다. 일명 나가 죽어라.. but 몸을 조금 추수린 후 만삭인 부인과 같이 소련으로 탈출.ㅎㄷㄷ) 절대 타협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 09.10.16 18:00

    당시 '눈물젖은 두만강'이 박헌영 탈출 직후 박헌영을 그리며 만들어 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노래의 '그리운 님'이 박헌영이라는 것이죠. 물론 공식적으로는 일본군의 총에 죽은 이름 모를 독립투사의 아내를 보고 만들어 졌다는 것이죠. 아무튼 탈출 5년뒤에 박헌영은 붕괴된 조선 공산당 조직 재건과 독립운동을 위해 잡입을 하다 체포되죠. 다시 고문&징역을 살다 나와서 지독한 일제 감시하에서 조직 재건과 독립운동을 시작하죠. 일제가 조직 체포를 하고, 다시 재건하고, 다시 체포 재건을 반복하다 광복을 맞이합니다. 이 사람을 정의하는 2단어는 '고지식' '지독함'이라 생각되는 사람이죠.

  • 09.10.18 13:54

    문제는 민심이 왜 박헌영을 지지했냐인데 제가 보기에 김일성은 깡촌출신으로 자본주의의 폐단운운따위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권력투쟁으로 한껀 잡은 스딸린 같은 이라면 박헌영은 학벌도 좋고 지주출신으로 진짜 말같은 자본주의의 폐단운운+현실적대안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딸린보다는 레닌에 가까운 분이였나 싶음. 문제는 이분이 직접 몸으로 느껴서 아니다 생각한 자본주의에는 아주 치를 떨어서 자본주의=불의정도로 생각하셨단건데 결국 너무 적이 많아서 역사가 선택해주기 힘든 분이셨죠. 한반도의 미소분할없이 일본만 철군했더라면 이분에게 한번쯤 기회가 왔을수도. 그러나 그것도 생각하기 힘든 이야기죠.

  • 09.10.15 11:36

    군무부장 김일성장군!

  • 09.10.15 11:37

    그래도 여운형 평가보면 꽤 대통령될만한 인물인데...쫌 아까운 느낌도 들기는 하네요

  • 09.10.15 12:36

    여운형이 정치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났죠.....리승만은 그저 외교....

  • 09.10.15 16:16

    역사학자 백남운이 경제부장

  • 09.10.15 18:04

    사회경제사를 연구한 학자라 그런듯...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09.10.15 20:02

    라기보다는 저 중에서 가장 늙어서...

  • 09.10.15 20:26

    이승만은 여운형보다 10살이나 많고, 김구, 김규식 보다도 훨신 연장자죠. 이승만은 일본 침탈 이전 조선시절에 이미 사회 활동을 하다 귀향가는 등 사회 지식인으로 유명했죠. 대한제국 시절 미국에서 박사를 받았죠.(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합방 크리..) 조선 최초이자 유일의 박사로 유명해서 해방후에도 이승만 '대통령'보다 '박사'로 더 많이 불렸죠.

  • 09.10.15 23:51

    이승만은 김구랑 1살 차이 밖에 안납니다. 김규식하고도 6살 차이고요. 훨씬 연장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승만이 지식인이던 간에 '권력의 화신' 그 자체라..-_-; 권력 차지하려고 친일파와 손잡으신 분인데요 뭘.

  • 09.10.17 17:50

    박사학위는 합병이후에 받은거 아닌가요? 당시 대학총재가 우드로 월슨이라 나중에 대통령 된후에 적잖히 도움을 받은것으로 알고있고요.(그래서 친미파)

  • 09.10.15 17:12

    군무부장은 지청천이 더...(부카니스탄 태조의 보천보 전투가 엄청나게 과장 되어 남쪽 사람들도 여럿 속았다 보내요)

  • 09.10.16 00:44

    그보다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찾아봐야죠. 분명 보천보전투의 전과는 형편없지만(없다고 봐야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장독립투쟁을 하는 단체들이나 유명하뎐 독립군 장군들이 거의 다 사라진 시점에 유일하게 국내에 무장독립투쟁의 증거를 보여준 사람이 김일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의 인기가 엄청나게 좋았던 거죠. 북한에서 '장군님께서는 솔방울로 폭탄을 만드시고' 류의 신격화를 했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북한 정권이 만든게 아니라 민중들이 만들어준 신화를 그대로 차용한 것입니다.

  • 09.10.16 16:56

    저 중에서 그나마 총 잡아본 사람은 키밀성뿐이네요. 흠좀무

  • 09.10.16 19:18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김원봉, 양세봉 같은 사람들이 살아있었다면 김일성 같은 듣보잡이야 어디 무장독립투쟁했다고 떠들 수나 있었겠습니까 ㅋㅋㅋ

  • 09.10.17 18:57

    당시에 효과가 대단하긴 했죠. 중일전쟁등으로 간도의 독립군이 거의 쓸려버리고 국내의 독립운동도 완전 정지당한 상태에서 한 전과니까요. 동아일보의 선전도 큰 역학을 했구요.

  • 09.10.16 16:17

    이승만이라니ㅠ ㅠㅠ

  • 09.10.16 22:15

    38선 남쪽의 여론이겠죠?

  • 09.10.17 00:11

    해방 직후에 조사한 겁니다 ㅇㅅㅇ.

  • 09.10.18 18:45

    전에 카페에서 누가 언급하셨지만 헨더슨著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 보면 당시 상황을 외부인의 시각에서 잘 표현하고 있더군요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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