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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2) | 목회칼럼 |
오세준 | 조회 4 | 2012-08-17 14:5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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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 중에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 슬픔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 기쁨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슬퍼하라고 할 때가 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다. 그냥 슬퍼하라가 아니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씀하는 “애통”이란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 극한 슬픔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슬픔을 의미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무엇에 대해 이같이 애통해야 하는가? 자기 죄로 인한 애통이다. 요엘서 2장 12절에 보면 범죄한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했다. 야고보서 4장 8절~9절에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했다.
다윗도 범죄 한 후 애통을 했다. 시편 6편 6절에 보면 침상을 눈물로 띄울 정도로 눈물로 회개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에 보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때문에 죄로 인해 애통하는 자가 되려면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결코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죄가 없어서인가? 자기 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보지 못하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 애통을 하겠는가?
지금 우리는 한국교회를 위해 애통해야 한다. 작금의 한국교회 상황은 기독교 복음이 들어온 이래 최악이다. 한국교회가 맘몬신앙, 교권주의, 인본주의, 혼합주의, 신비주의, 기복주의 등으로 무너지고 있다. 복음의 본질에서 너무 멀리 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며 너무나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런 신자들에게 교회를 위해 애통하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깨어 있는 신자들부터 한국교회의 바른 신앙회복을 위해 애통해야 한다. 회개운동을 통해 고칠 것을 고쳐야 한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인가? 죄에 대해 애통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고 깨끗하게 하신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 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했다. 애통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애통하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마5:4). 죄를 애통하며 회개하는 사람이 받을 은혜요 복이다. 위로의 은혜를 받는다.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불러다 놓고 격려한다는 의미가 있다.
죄를 애통하며 슬퍼할 때 성령을 통해서 이런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위로의 체험이다. 당신은 가슴을 치며 눈물로 회개한 경험이 있는가? 이런 경험이 없으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억울해서 우는 것이 아니다. 실패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배신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울어야 한다. 나라의 죄, 교회 공동체의 죄 때문에 울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참다운 신자이다. 그리고 진정한 위로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새누리교회 오세준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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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주님을 만나려면 회개가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나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범죄만이 죄로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범죄만이 아니라 원죄를 말씀하심을 모릅니다.
우리들의 본성에 나면서 있는 죄의 유전자를 아는이들이 별로 없음입니다.
평생을 선하게 사는 이들은 주님이 필요 없을 까요?
그런데 그렇게 선하게 사는 이들이 더 교만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저는 그저 주님이 오실때가 가까워 왔음을 깨닫습니다....
아, 맞습니다...
늘 자신의 죄성을 자각하고 엎드려야 하는데, 바리새인들같은 모습의 종교인들을 종종 만나지요.
내 모습은 그러한 것이 아닌가 돌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