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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기 안성 서운산 청룡사(瑞雲山 靑龍寺)를 찾아서 ②
- 그밖의 당우와 회향 -
1부에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산신각 등을 살폈고, 2부에서는 이제 그 밖의 당우와 이모 저모를 담아 보려고 합니다.
종무소 겸 요사(寮舍)
여기에 주련이 7개 걸려 있는데 모두 초서로 되어 있어 글자를 알기 어려운데 다행히 아는 구절이어서 옮겨 봅니다. 4구는 나옹선사 게송이고 5. 6구는 한산시(寒山詩)에서 취하였고 제7구는 출처 불명의 시라 알쏭달쏭합니다.
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재하방 아미타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올까? 着得心頭切莫忘 착득심두절막망 마음속에 새겨 두고 한순간도 잊지 마세. 念到念窮無念處 염도염궁무념처 생각하고 생각하며 무념처에 이른다면 六門常放紫金光 육문상방자금광 여섯 문은 항상 열려 찬란하게 빛나리라.
不學白雲巖下客 불학백운암하객 흰 구름도 알 수 없는 바위 밑 나그네 一條寒衲是生涯 일조한납시생애 한 벌의 누더기가 한평생 삶이로다. 幾作三途昏處月 기작삼도혼처월 얼마나 어둔 삼도 밝혀 보려 하였는가!
마지막 7구는 한산시가 아닌데 왜 이 구절이 등장했는지 알 수 없네요. 문장의 흐름도 맞지 않고... 출처도 알 수 없는 글이라 난감했습니다.
원래 주련에 나오는 한산시는 7언율시로 다음과 같습니다.
世間何事是堪嗟 세간하사시감차 세상에 어떤 일이 가장 슬픈 일인가! 盡是三道造罪楂 진시삼도조죄사 이는 모두 삼도에 갈 많은 죄를 짓는 걸세. 不學白雲巖下客 불학백운암하객 흰 구름도 알 수 없는 바위 밑 나그네 一條寒衲是生涯 일조한납시생애 한 벌의 누더기가 한평생 삶이로다. 秋到任佗林落葉 추도임타임낙엽 가을이 와 잎이 지면 지는 대로 맡겨 둬도 春來從儞樹開花 춘래종이수개화 봄이 오면 봄을 따라 가지마다 꽃핀다네. 三界橫眠閑無事 삼계횡면한무사 삼계에 드러누워 일없이 한가하니 明月淸風是我家 명월청풍시아가 밝은 달 맑은 바람 이것이 내집일세.
이 시에서 발췌하여 짜집기했는데... '기작삼도혼처월(幾作三途昏處月)'은 어째서 등 장하고 '明月淸風是我家'은 엉뚱하게도 지봉당 주련에 걸려 있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ㅠㅠ ㅎㅎㅎ
이러니 내용이 일관되지 않게 됩니다. 차라리 '기작삼도혼처월(幾作三途昏處月)'을 빼고 '삼계횡면한무사(三界橫眠閑無事)'를 넣고 명월청풍시아가(明月淸風是我家)로 이어졌다면 그나마 이해가 쉬웠으려만.... ^^
종무소에 걸린 청룡사(靑龍寺) 편액 -죽농 안순환(竹儂 安淳煥) 거사 글씨.
낙관을 보면 초서로 써서 잘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옛 불기 2955년 무진년(戊辰年)이라 했으니, 지금의 불기로 2472년이고 서기로 1928년에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농 안순환(竹儂 安淳煥. 1871∼1942) 거사는 대한제국의 궁중잔치 음식을 도맡았던 전선사(典膳司)의 책임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요릿집인 명월관(明月館)을 설립한 조선음식 전문가랍니다. 그는 서화(書畵)에 능했던 모양입니다.
「본관은 순흥으로, 안향(安珦)의 21세손이며, 호는 죽농(竹儂)이다. 1871년 2월 8일에 안순식(安舜植)과 청주 한씨(韓氏) 사이의 4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 났다. 16세에 서당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평소에는 유학 소양을 강조하는 아버지 슬하 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17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서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잘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였다. 25세에는 관립 영어학교에 입학하였고, 뒤이어 무관학교에 들어갔지만, 생활의 어려움 으로 그만두었다. 다만 이 때 마음에 새긴 '성근정직(誠勤正直)'을 삶의 좌표로 삼았다. 1942년 8월 20일에 사망하였다.
28세에 대한제국 탁지부(度支部) 전환국(典圜局) 건축 감독이 되어 궁중의 일을 처음으 로 맡았다. 그 뒤 전환국기수(技手)를 거쳐 국왕의 음식을 담당하는 궁내부(宮內府) 전 선사 장선(掌膳)과 주선과장(主膳課長)을 지냈는데, 점차 나인, 별감, 내시 등의 인원이 축소되었고, 1907년에는 궁내부마저 총감부에 의해서 폐지되었다. 때문에 정3품의 이왕직사무관(李王職事務官)에 올랐지만, 몇 달 뒤에 스스로 사퇴하였다.
사퇴할 때 궁내부에 소속된 궁중의 남자 요리사인 대령숙수(待令熟手)를 모아, 1909년 에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高宗 御極 40年 稱慶紀念碑)' 건너편에 조선 궁중 요릿 집인 명월관(明月館)을 열었다. 1920년대 초반에는 지금의 명동에 또 다른 조선 요릿 집인 식도원(食道園)을 설립하였다. 1930년에는 지금의 시흥에 안향을 모시는 녹동서 원(鹿洞書院)을 창건하였고, 지금의 구로구에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모시는 단군묘(檀 君廟)를 세웠다. 그 뒤 유교 부흥을 위해서 조선유교회(朝鮮儒敎會)를 창립하고는 능 력을 갖춘 유학자를 양성하려고 명교학원(明敎學院)을 운영하면서 전국에서 선발된 유생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대령숙수이자 최 고의 근대 주방장 뛰어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옮긴 글-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종무소 앞의 도솔님
종무소 맞은편에 있는 지봉당(智峰堂)
지봉당(智峰堂) 편액 -도광(道光) 스님 글씨-
신사년 정월(辛巳年 正月)이라 했으니, 신사년은 불기 2545년 (2001)입니다.
지봉당은 수행공간인 선방입니다. 기둥이 7개가 있어 주련이 7개 걸려 있는데 순서대 로 읽어 보면 어찌 보면 엉뚱합니다.
느닷없이 한산(寒山) 스님의 선시(禪詩) 중 한 구인 청풍명월시아가(明月淸風是我家)로 시작하여 지장보살(地藏菩薩) 찬탄게(讚歎偈)와 다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선시 2구가 함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明月淸風是我家 명월청풍시아가 밝은 달 맑은 바람 이것이 내집일세.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대성위신력 지장보살 큰 성현의 위대하신 위신력은 恒河沙劫說難盡 항하사겁설난진 항하사겁 연설해도 다 말하기 어려워라. 見聞瞻禮一念間 견문첨례일념간 잠깐 사이 보고 듣고 한순간만 연설해도 利益人天無量事 이익인천무량사 인간 천상 이익된 일 한량없이 많습니다.
尋春莫須向東去 심춘막수향동거 봄 찾으러 간다고 동쪽으로 가지 마라. 西園寒梅已破雪 서원한매이파설 서쪽 뜰에 찬매화 눈을 뚫고 이미 폈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첫 구는 종무소 겸 요사에 걸려 있어야 할 주련입니다. ^^
각기 다른 시선 ^^
정파님은 지현이를 바라보시며 미소를 지으시고... ^^
정파님, 화광님과 함께
석원님과 묘법님의 진지한 대화
이렇게 서 계시다가...
세 분 모여 보세요~!
감로수가 있는 풍경
감로수 한 바가지 마셔 볼꺼나 덕명님
감로수 앞의 각현님
범종각(梵鐘閣)
願此鐘聲遍法界 원차종성변법계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유암실개명 철위산의 어두움이 햇빛처럼 밝아지고 三途離苦破刀山 삼도이고파도산 삼악도는 고통 벗고 도산지옥 부숴지고 一切衆生成正覺 일체중생성정각 모든 중생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소서.
범종각(梵鐘閣) 편액 -월정 정주상(月汀 鄭周相) 선생 글씨-
월정 정주상(月汀 鄭周相. 1925~2012) 선생은 초서의 대가입니다. 경남 함양에서 출 생하여 특정인을 사사하지 않고 법첩만 보고 독학으로 서예를 공부해 초서의 대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시절부터 서예 교육에 종사하였는데, 1973년 최초의 서예잡지 『월간서 예』를 발간했으며, 반 세기에 걸쳐 서예서적을 집필해 2002년에 『임서교실 시리즈』 20권을 완간했다고 합니다. 선생은 공모전에 초연했으며 개성미 강한 서풍을 빛냈다 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수많은 글씨를 쓰셨지만 사찰에 관해서는 청룡사 범종각「범종각」ㆍ「범종각 주련」 ㆍ「종무소 요사 주련」ㆍ「지봉당 주련」등과 화엄사「운고각」ㆍ「금강문주련」, 삼천사 「형통무량불전」 등등 많은 사찰의 현판이나 주련을 썼습니다.
"호기심도 많으셔~ 정파님, 종치면 안 돼요~!" ^^
기둥에 "제발 종을 치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
법고(法鼓)
청룡사 장독대
이 건물은 김치광
장독대
관음전을 찾았습니다.
이 관음전은 좀 외진 느낌입니다. 대웅전 옆의 봉향각 정도에 위치해야 할 관음전이 요사채를 지나 주차장 근처에 있으니 좀 격에 맞지 않아 의아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본래 민가 같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건축형식을 보여 주는 단아한 형태였으나 지금은 한쪽면에 건물을 덧대어 지어 지붕의 모습이 균형을 잃어 우스꽝스 럽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大慈大悲 救苦救難 觀世音菩薩)
관음전 불단에는 관세음보살 단독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관음상 뒤의 후불탱화는 아미 타불 탱화입니다. 아주 간소하게 모셔진 불단입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고도 합니다. 범어 아왈로끼떼슈와라(Avalokiteśvara)를 한역한 말인데 구마라집(鳩摩羅什)은 광세음 (光世音)ㆍ관세음(觀世音)ㆍ관음(觀音)으로 한역하였고, 현장법사는 관세자재(觀世自在) ㆍ관자재(觀自在)로 번역하였습니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미타삼존(彌陀三尊)의 한 분으로 아미타불(阿彌陀 佛)의 왼쪽 보처(補處)로서 부처님을 돕고 있습니다. 관세음(觀世音)이란 세간(世間)의 음성을 관(觀)하는 이란 뜻으로 사바세계의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 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하는 보살입니다. 관자재(觀自在)는 세상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 자유롭다는 뜻으로 관자재보살은 지혜로 관조(觀照)하므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증득한 이란 뜻입니다.
또 중생에게 일체의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으로 시무외자(施無畏 者)라 하고, 대자자비(大慈大悲)를 베푼다는 뜻으로 자비성자(慈悲聖者)라 하며, 세상을 구제하시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라 하며, 일찍이 관세음여래(觀世音如來) 회상(會上)에 서 이근원통법(耳根圓通法)을 닦아 삼매(三昧)를 이루셨기에 원통대사(圓通大士)라고도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이러한 분이시기에 관음전(觀音殿)을 대비전(大悲殿), 원통전(圓通殿)이 라고도 부릅니다. 또, 관세음보살님은 파도가 넘실 대는 해안가의 보타락가산(寶陀洛伽 山)에 상주하시므로 보타전(寶陀殿)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으로 청룡사의 전각 순례는 모두 끝났습니다. 전각을 두루 다니며 모든 불보살님 을 예경하는 것은 불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우리가 108배를 하면서 독송하는 구절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가이없는 시방세계 그 가운데에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께 맑고 맑은 몸과 말과 뜻을 기울여 빠짐없이 두루두루 예경하옵되
보현보살 행와 원의 위신력으로 널리 일체 여래전에 몸을 나투고 한 몸 다시 찰진수효 몸을 나투어 찰진수불 빠짐없이 예경합니다.」
보현보살의 행원력은 이렇게 광대합니다. 전각이 몇 개나 된다고 빠질 수 있겠습니까? 사찰을 순례하시는 법우님들은 이 점을 살피시어 빠짐없이 예경하셨으면 하는 마음입 니다. ^^ _()_
순례를 모두 끝내고
"너무 좋아요." 신난 지현이
주차장 풍경입니다.
"좀더 가까이서 말해요." 묘법님과 김명국님
1시간 10분정도 청룡사에 머물면서 청룡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습니다. 짧은 시간 에 절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겉이나마 대강을 살핀 것 에 만족하며 4시 반경에 청룡사를 물어났습니다. 석원님은 바쁜 일정이 남아 있어 청 룡사에서 헤어지고 나머지 법우님들과는 적당한 식당을 찾아 마지막 회포를 풀고 각자 본래의 처소로 행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안성의 3대사찰 삼사순례가 모두 끝났습니다. 맨 처음 찾은 칠장사는 해소국사와 일곱 도적이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도둑들도 한 마음 돌이키면 현인이 되고 성인이 되어 예배를 받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 궁예이야기, 임꺽정 이야기와 인목대비에 대한 이야기 등이 서려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칠장사 나한전에서 다함 께 예불 기도했던 기억이 즐겁게 떠오릅니다.
석남사에서는 정무 큰스님의 향훈이 서려 있는 청정도량임을 살폈고 또한 주지 스님과 다담을 가졌던 시간이 소중한 추억도 담았습니다.
마지막 찾은 청룡사는 대웅전의 기둥을 바라보면서 잘나거나 못나거나 모두 그 역할을 다하면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 有佛性).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으며 쓸데 없는 분별망상으로 차별상을 내지 말고 평등상을 내야 한다는 말없는 설법을 들음없이 들었습니다.
이번 순례를 위하여 마음을 내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석원님은 인천에서 용인을 거쳐 안성으로 달려 오셨고, 도성님은 화성에서 출발하여 인천으로 가 덕명님을 태우고 안성으로 달려 오셨고, 각현님은 부천에서 화성시에 사 시는 김명국님과 수원에서 합류하여 오셨으며, 도솔님은 대전 유성에서 지현이를 데리 고 합류하셨고, 정파님, 묘법님, 화광님, 비니초님, 백우 등은 서울서 출발하여 합류해 다녀왔습니다.
마음으로 성원해 주신 염화님과 미소님, 정수님, 대각화님 등 향불교 회원 여러분의 성 원으로 무사히 잘 다녀온 것 같습니다.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순례길에 가래떡과 물을 보시해 주신 비니초님, 캔커피를 보시하신 김명국님, 점 심공양을 보시해 주신 덕명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안전하게 수레를 몰으시느라 애쓰신 석원님, 김명국님, 도성님, 도솔님, 비니초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번 삼사순례를 통하여 한 가지 느낀 점은 앞으로 순례할 때는 가급적 삼사는 피하고 하나나 아주 가까우면 둘 정도를 순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의 만 남은 송년회는 생락하고 신년회를 가져볼까 합니다. 신년회에 대한 일정은 추후 논의 를 가져 보겠습니다.
길고 긴 후기를 끝까지 보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늘 불보살님의 자비광명이 가득하시고 하시는 일 언제나 원만하며 건강과 행복, 도업이 새롭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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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우님의 순례기 시리즈는 모두 놀라운 필력과 학식에 감탄했습니다.
잘 보았고 순례기를 통하여 배운것도 많았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정성스럽게 글을 정리하고 게시한은 수고까지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다음 순례가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순례에 석원님 오셔서
거운 순례가 되었습니다. 

겁게 보시고 댓글도 빠짐없이 
아 주셔서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_()_
보잘 것 없는 글을 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 다시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멋진 순례길이었습니다. 다음에도 꼭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다음 순례 때에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혹 가시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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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외출에 지현이가 제일 신났네요 ㅎㅎ 정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_()_
저는 스스로 찾아서 불연을 맺었지만 지현이는 일찌감치 불연을 맺어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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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는 저의 일이라 고생이 아니라 낙생입니다. 감사합니다.
관음전 건물이 한쪽으로 쭉 늘려놓은것같아 눈을 의심했더니
사순례기 재미나게 잘 보았습니다.
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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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자체 그러네요. 이상해 보여요.
백우님의
하루에 3곳 너무 바빴지요. 순례기 보는 미소는
감사합니다.
신년모임이 기다려 집니다.
관음전은 원래의 건물을 덧대어
장공사를 해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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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님께서 자세히 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년모임에 대해서 의견을 받아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미쳐보지 못했던 주련들을 자세히 읽을수있어 좋군요.
삼사순례를통해 보고 깨달을수있어 안내해주신 백우님께 감사드림니다.
순례 중에 주련에 큰 관심을 가지시고 함께 새겨본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_()_
앞으로도 주련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향불교 법우님들이 함께 하신
사순례 이모저모 잘 봤습니다. 
_()_
법우님들 댁내 늘 불보살님의 가피가 함께하시길 합장합니다.
이번
사순례에 염화님과 미소님이 함께하셨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_()_
다음 기회엔 변화수가 생기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순례기를 꼼꼼히 보아 주시고 오자를 바로잡아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