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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2년 08월 26일 청년법회<정산법어 응기편 49장>.hwp
원기 102년 08월 26일 청년법회
<정산법어 응기편 49장>
설법 : 김제원 교무님
타이핑 : 초벌)임도운, 완성)박준성
오늘 항타원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산교당 건물을 항타원님이 세우셨습니다. 대구교당 창립도 항타원님께서 하셨습니다. 종로교당도 항타원님이 세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성교당에 9년 정도 계시면서 교도들을 훈련시키고 해방이 되면서 그 교도들이 마련한 교당이 종로교당입니다. 종로교당을 통해서 서울 교화를 했습니다. 우리 안암교당은 원남교당에서 냈고 원남교당은 창경원에 사는 종로교당 교도들을 나눠서 만든 교당입니다. 항타원님이 끼친 영향력은 아주 대단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가장 보살로서 새 부처님이라고 하실 정도의 역할을 하시고 존경을 받았고 교화역량을 발휘하신 분입니다. 부산 교당이 엄청 큰데 그 분 덕택에 부산교당이 생긴 것입니다. 대구교당 교화가 잘 되었는데 항타원님의 지도를 받은 교도들은 신심이 많은 주인들이 되셨습니다. 항타원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정산종사께서 스승을 찾아 전라도로 넘어와 대원사에 계시다가 경타원 김해운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정산종사님을 정읍 화애리에 있는 자기 집으로 모시죠. 대종사님께서는 별자리를 보시고 장성에 가면 이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데려오라 하시다가 팔산을 대동하시고 직접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아는 집을 찾아 가듯이 논두렁을 가로 질러 가셨습니다. 대종사님이 가시니까 정산종사님이 “누구냐!” 그러더랍니다. 그때에 정산종사님이 17살이셨습니다. 이미 정산종사는 김해운 할머니가 부처님같이 집에 모셔놓고 만국의 일을 모르는 것이 없는 도인이라는 만국양반이라고 칭하며 어린 정산종사를 모셨습니다. 대종사님은 어떻게 아시고 찾아가셔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시고 정산종사님이랑 형제 의를 맺습니다. 그 이후에 정산종사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형제가 아니라 사제 관계로 다시 연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중앙자리를 맡게 됩니다. 경북 성주에서 정산종사가 전라도로 오니까 가족도 따라 오게 됩니다. 고종사촌이 이춘풍 선진님입니다. 이춘풍 선진님이 어떻게 넘어오시게 되었냐하면, 성주의 유가에 명망 있는 집안인데 정산종사님이 전라도로 넘어가신 후에 돌아오지 않으셔서 데리고 돌아오기 위해서 직접 가십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대종사님을 만나 이춘풍님도 남게 되십니다. 그래서 방언공사를 하실 때에 같이 계셨습니다. 방언공사가 끝나고 대종사님께서 정산종사님을 월명암으로 보내시고 대종사님은 변산으로 가십니다. 종곡리라는 곳을 거쳐서 가시게 되는데, 대종사님이 변산으로 오시는 길목에 집을 마련해서 유숙하시게 하겠다고 신심을 내십니다. 그래서 변산 들어가는 입구인 전라도 부안 종곡리에 집을 마련해서 이사를 합니다. 항타원님은 대종사님이 대각하기 1년 전인 1915년에 태어나셨습니다. 대종사님이 원기 4년부터 변산에 계시다 원기 9년에 익산으로 가시는데 그 이후에 비어있는 봉래정사를 이춘풍 선진님이 지켰습니다. 항타원 이경순님이 10살 때 아버지 이춘풍 선진님과 했던 대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천하에 제일 큰 것은 무엇이냐 물으니, 이경순님이 ‘사람의 마음인 줄 압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어찌 하여 마음이 가장 크냐고 되물으니, ‘마음이 있어야 참선도 하고 부처님의 법도 압니다. 마음이 없으면 세상에 아무런 분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이야기하니 아버지께서 ‘천하에서 제일 큰 것은 허공인 것 같다.’ 그러자 이경순님이 답하기를 ‘마음이 곧 허공인 줄 압니다. 마음은 아무런 형상이 없고 허공도 또한 아무런 형상이 없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13세에 스스로 견성을 하신 심경을 말씀하신 것도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앞산에 비가 내린 후 새 잎이 파릇파릇 돋아나는데 마당에 서서 앞산을 바라보니 누가 알려주는 것처럼 생사의 이치가 알아졌다. 봄에 새잎이 돋아나는 것이 꼭 어린 아이가 자라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춘하추동 사시순환이 생로병사와 같이 생각되었다.’ 이것이 견성 소식입니다. 그래서 15살에 출가하시고 익산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6년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제사 공장에 다니시고 돈을 모아서 20살에 유일학림에 들어갑니다. 첫 발령이 서울교당 그리고 1년 후에 개성교당으로 가시게 됩니다. 20대 초중반에 교무가 되신 겁니다. 그래서 개성교당에서 9년 동안 계시면서 개성교당을 완전히 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 바로 전에 부산 초량교당에 가셨다가 서면교당에 가고 대구교당으로 가셔서 15년 계시면서 대구 교당을 크게 살립니다. 그리고 부산교당 교구장으로 가서 8년간을 지내십니다. 그리고 서울 총회 때 발언을 하고 쓰러지십니다. 혈압에 문제가 있었는데 일 때문에 치료를 늦췄거든요. 64세 때 돌아가십니다. 마지막 하신 말씀이 원기 63년 11월 4일 교정위원회에서 항타원님이 당부를 합니다. ‘발전하는 교세에 대비해서 우리 교역자들의 훈련을 철저히 해야겠습니다. 훈련제일주의의 정신으로 대종사께 크게 보은해야겠고 교단의 장래를 튼튼한 반석위에 올려놓아야하겠습니다.’ 이게 마지막 말씀이셨습니다. 이 분은 출가위셨습니다. 영상을 보셨듯이 항타원을 모신 분들은 하나같이 항타원님을 새 하느님 같은 존재, 새로 오신 관세음보살, 여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개성교당 교도들이 종로에 교당이 없다는 항타원님 말씀을 듣고 종로에 교당을 세웠습니다. 그 종로교당이 원남교당을 세웠지요. 서울 인근에 있는 교당을 보면 반 이상을 이 두 교당이 지었습니다. 항타원님 공덕입니다. 항타원님의 영향입니다. 서울에 대구 교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이 항타원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분은 대산 종사님이 천년에 한번 나올 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순 공심에 자비 관세음보살이라고 하셨습니다. 항타원님은 대종사님에 대한 신심, 오롯한 공심이 있으셨고, 출가하실 때부터 대종사님께서 항타원님에게 사가 떨어진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사가 떨어지면 위력은 자동입니다. 사가 떨어지면 천지가 자기 마음대로 됩니다. 범부들은 취하려고 합니다. 사가 떨어지면 천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항타원님 이야기만 들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산종사법어 제8 응기편 49장
해방 후 개성이 몇 개월 막혔을 때에 이 경순(李敬順)에게 글을 써 주시며 외우고 심고하라 하시니 [法身元淸淨(법신원청정) 禪味又淸淨(선미우청정) 開城本無碍(개성본무애) 通達便無碍(통달편무애) 公道自坦坦(공도자탄탄) 奉公亦坦坦(봉공역탄탄)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齊齊從此行(제제종차행)]이라, 번역하면 [법신 원래 청정이라 선미 또한 청정하다. 개성 본래 걸림 없어 통달하면 무애로다. 공도 절로 탄탄하고 봉공 또한 탄탄하다. 삼세 모든 부처님들 다 이대로 행하니라] 하심이요, 이어 송 달준(宋達俊)에게 말씀하시기를 [대하는 곳마다 척을 짓지 말고 저 고양이에게 까지도 덕을 끼치며, 있어도 없는 듯, 알고도 모르는 듯 살라. 이것이 피란의 요결이니라.]
49장에 나오는 송달준은 법호가 척타원입니다. 이 분은 항타원님보다 2살 더 많은 분입니다. 이 법문을 할 때는 재가 교도였습니다. 개성교당 교도였다고 합니다. 외동딸이 있었는데 출가 시켰습니다. 천타원 백지명 교무님이신데 이화여대 약대를 다니고 대학원을 다니다가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원광대학교 약학대학에서 교수로도 근무하시고 원불교에서 많은 활동들을 하셨습니다. 척타원님은 그 때 당시 재가였는데 정산종사님께서 척타원님에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송달준님은 나중에 1970년에 출가를 하셨습니다.
항타원님에게 해방 후에 써주신 법문입니다.
법신원청정, 선미우청정.
이 두 가지는 수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법신은 본래 청정합니다. 그래서 법신청정법무애라고 하죠. 그 청정한 자리에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미라고 하죠. 선을 할 때 느껴지는 맛. 그게 바로 청정한 맛이라는 것입니다. 선을 통해서 법신과 합일해간다. 이것이 수양 자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성본무애.
개성은 본래 걸림이 없다. 이것은 지금 개성이 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지만 잠깐 막혀있는 것이지 결국엔 뚫린다. 진리적으로 보면 막혀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통달편무애라,
여기서 통달은 사리연구를 의미합니다. 이치에 통달하면 본래 걸림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라는 말입니다. 길이 막힌 것이 이치에 통달하면 본래는 막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는 사리연구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도자탄탄이다
공도. 공변된 길을 가는 것. 공도의 진리는 본래 탄탄하다는 것입니다.
봉공역탄탄
공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 이것 또한 탄탄하다. 공도 자체는 본래 탄탄한 것입니다. 본래 우주 자체가 공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에 함께 하는 것은 가장 탄탄한 길인 것입니다. 이것은 취사와 보은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삼세일체불
삼세의 일체 부처님들은
제제종차행이라.
이대로 다 행하신 분들이다. 선미를 맛보고 통달하시고 공도를 걷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삼학의 길을 걷는 분들이 삼세의 부처님들이시고, 그 길이 사은보은의 길이더라 라는 것이 이 법문의 요체입니다.
척타원님에게는
대하는 곳 마다 척을 짓지 말며,
척이라는 것은 짝이 없는 외짝을 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하는 곳 마다 항상 척을 짓지 말라. 거리감을 두지 말라. 원수를 맺지 말라. 싫어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고양이에게까지 덕을 끼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삼동윤리의 동기연계를 아주 쉽게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고양이는 우리 육도사생과 하나이고 우주기운이 하나이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척을 짓는 사람은 나에게도 인연이 얽히는 것입니다. 고양이에게까지 덕을 끼쳐라. 나와 한 기운 한 이치에 한 동포이기 때문입니다.
있어도 없는 듯, 알고도 모르는 듯 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시국이 혼란했기 때문이죠. 중생들은 항상 나라는 상이 들어갑니다. 근데 그 나를 비워버릴 때 있는 듯 없는 듯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여여자연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잘 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다. 변하지 않는 가운데 변하는 것이다. 당시 중도를 지키며 살라 하는 것이죠. 위의 내용들이 피란의 요결이라고 말씀하셨죠.
당시에 원불교는 삼일 운동을 안했습니다.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하자고 하시고, 법인 기도를 하셨죠. 그리고 법을 짜셨습니다. 흔히 이렇게 비유합니다. 창을 던져서 한 마리 잡을 것이냐 그물을 짤 것이냐는 것입니다. 5대양 6대주의 중생을 모두 건지기 위해서 대종사님은 삼일운동도 안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큰 건물은 기초공사가 오래 걸립니다. 독일에 철길 방음벽을 만드는 데 2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둑을 쌓고 철판을 깔고 나무를 심어 공을 들입니다. 우리나라는 근무시간은 많은데 생산시간이 없죠.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유럽에 비해 근무시간은 2배 많은데 생산성이 3배 적습니다. 이것은 연구력의 차이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시비이해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은 한국이 경제로 세계 1위가 되긴 힘들다. 하지만 도덕으로 세계 1위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원주의, 공도주의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고 함께 잘 사는 낙원세계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행복한,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원불교는 그것을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항타원님은 일생을 사심 없이 사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진짜 참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나만 찾다가 쑥스러운 나, 창피한 나, 부족한 것이 많은 나가 됩니다. 진짜 나는 작은 나, 육신의 나, 업력의 나가 아닌 영원한 나, 큰 나, 없으면서 분명히 있는 나 이것이 바로 참나 입니다. 이 길을 걷는 것이 공도의 길이고 항타원님이 이 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Q. 2단 이경주 교우님
살다보면 척을 짓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척을 지게 되었을 때 원만히 풀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김제원 교무님
강증산 선생님은 그것을 해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척을 왜 지었을까 원인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해관계, 자존심, 감정 등이 있겠죠. 그것에 대해서 내가 먼저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참을 하고 사참을 통해서 내가 잘못했다고 먼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상대방도 잘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죠. 원인에 대한 사리연구뿐만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떤 것이 진정한 나인가? 진짜 자존은 무엇인가? 상대심의 자존이 자존인가를 성리자리로 생각해보면 언제든지 고개 숙일 수도 있고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산 법사님 인과의 세계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옆집에서 계속 쓰레기를 넘겨줍니다. 그래서 계속 과일을 넘겨주고 먹을 것을 넘겨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똑같이 먹을 것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내가 손해 봐야지, 상대가 이익을 봐야지 마음이 열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에 가서 항의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조폭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그 순간 억울하니까 항의를 하고 고맙단 말도 없이 사라진답니다. 하지만 조폭은 경찰에게 밥 사주고, 정보를 줄때도 있죠. 경찰이 실제로는 조폭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보다 나 밥 사준 조폭과 가깝습니다. 안 좋은 이야기로 들리시나요? 제가 이 예화를 들려준 이유는 사람은 은혜를 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척지는 것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도움 준다고 하는데 누가 안 좋아합니까? 내가 하심 하는 것도 도움이고 애경사를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고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고 정신적, 육신적인 것에 합력 해줄 때 문제가 풀려나가는 것이죠. 대종사님은 항상 병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안팎으로 자타로 이참, 사참으로 병진하라고 하셨습니다. 한번 해보세요. 열한 번 찍어서 안 넘어가면 열두 번 찍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다보면 상대를 원망하는, 탓하는 마음 그리고 상대의 문제점을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을 안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종사님 교법에 맞지 않아요. 고양이에게도 덕을 끼치라는데 사람을 안보면 되겠어요? 아주 작은 생각인 것입니다. 제 심계가 이 세상에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입니다. 좋은 사람한테 다 잘 할 수 있어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내 맘에 드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잘 해줄 수 있어요. 문제는 나에게 피해를 주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나를 열 받게 하는 이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죠. 어떻게 미워하는 마음을 안 가질 것이냐는 것이죠. 돌려 말하면 우주만유의 한 기운이니, 우주만유 전체를 받들고 살 것이라는 심계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면 화를 내도 덜 낼 것이고 내더라도 곧바로 미안하다고 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워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중생입니다. 마음속에 용서할 사람이 몇 명인가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이 많을수록 중생입니다. 마음속에 용서할 사람이 많을수록 업이 생길 것이고, 앞으로 일이 꼬일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합력자가 많을 것이고 자기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자동으로 성불할 것입니다. 그것이 시방일가입니다. 온 세계를 한집안 삼는 것이죠.
첫댓글 멋지네요. 준성교우님. 타이핑 정말 감사합니다!
준성 ~ 짜응 감사합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