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9 주일설교
본문: 벧후 1:4-11
제목: 부르심, 택하심
1.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1:4)
그의 신기한 능력은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이다.
우리가 그 능력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결과는 경건을 통해서 입증이 된다.
경건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을 지킴으로서 이루어진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다.(약1:27)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했고,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딤전4:7-8)
말씀의 실천에 따른 선한 행실이 없으면 그 경건은 헛된 경건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경건을 선한 행실과 관계 없이 종교적 열심과 모양으로 생각해 왔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선한 행실이 없다면 그 경건은 회칠한 무덤일 뿐이다.
그의 신적인 능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심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되게 하기 위함이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사 ---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였느니라”(벧후1:4)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고,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
우리의 구원과 영광의 모든 것에 대한 약속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거듭나는 것은 이 신성한 성품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려면 더욱 힘써야 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7)
다 선한 행실들이요, 먹으로 돌판에 쓴 것들이 아니다.
믿음은, 첫 번째로 받는 은혜이고 선물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헛것이다.
믿음에 더욱 힘써 덕을 더해야 한다. 덕은 선한 행실들의 총체이다,
이 덕에 더 구체적인 열매들을 더해가야 한다..
‘덕에 지식을’, 지식은 영적 분별력이다. 교리 지식도 아니고, 율법 조문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에 대한 앎이다. 그 앎은 선한 열매로 나타난다.
‘지식에 절제를’, 육체의 정욕과 과도한 욕망을 억제하며 통제하는 열매이다.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한다. 고통과 해악을 견디는 인내이다.
‘인내에 경건을’,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을 다 준행해야 한다.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해야 한다. 믿음의 권속들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헛된 경건이다.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선한 행실들과 열매들을 순서에 따라 힘써 더해 가는 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흡족한즉. 이런 선한 행실이 풍성하거나 계속 자라간다면,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영적인 맹인들이다.
인생을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은 자이다.
옛 죄가 깨끗하게 되었음을 믿는다면,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오직 선한 행실과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만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이다.
2.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1:10a)
부르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지만, 그 전에 택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고
때가 되니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다’.
두분 하나님이 아니다. 관사가 하나만 붙어 있다. 하나로 결합하여 이해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이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내 마음 중심에, 영혼 중심에 영접하여 섬기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만이 이 믿음을 은혜로 선물로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그 믿음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
표면적 유대인이라고 유대인이 아니다. 이면적 유대인이이어야 한다.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고 영에 있지 율법 조문에 있지 않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 아니다.
성령으로 회개한 적이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자녀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분명하다.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려고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자녀 삼으신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는 것의 목적은 오직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 선한 행실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b)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이 모든 선한 행실들과 열매들을 맺은즉이다.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선한 행실들이다.
그러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을 것이다.
선한 행실들은 너희가 사람 앞에 비추는 빛이요, 보는 사람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결과를 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고, 원인 없이는 그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이 선한 행실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건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고, 모든 명령을 준행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빛이고,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고, 천국을 보장한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께 행한 것이다.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고 옥에 갇힌 자를 돌보고 병든 자를 돌보는 것이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는 것이다.
이를 행했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아니 행했으면 영원한 불에 들어간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주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다. 공의와 정의는 바로 이 선한 행실들이다.
이 공의가 네 앞에 행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뒤에서 호위한다.
이 선한 행실들을 통해서 오래 황페된 곳들이 다시 세워지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가 쌓아진다.
그러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게 된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와 능력과 위로를 넉넉히 풍부하게 더하실 것이다.
우리가 실족하고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드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다른 것을 굳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들어도 가시 밭에 떨어지면 그 가시떨기로 인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생의 염려, 재물, 향락을 굳게 잡고, 이것들이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면,
언제나 실족하게 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야 한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1)
‘이같이 하면’, 즉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면,
이렇게 행함으로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실 것이다. .
우리 인생은 길어야 80세 100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나라에 비하면, ‘있다가 쉬 걷히는 안개’요,
‘지나가는 나그네’요, ‘그림자’요. ‘거류민 인생’일 뿐이다.
하나님은 잠깐 고난 당한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의 영광에 대한 약속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붙드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거로 붙드는 것이다.
환난 중에도 극심한 고난 중에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면 즐거워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그 연단이 영광의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늘의 영광에 대하여 우리는 많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셔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셨다.
선한 행실에 선한 행실을 더하며,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자.
옛 사람은 버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는 자가 되자.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빛의 열매인 것을 알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자.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