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here vs Now & Here.
2025년 11월 17일 월요일
선경 정해균의 독서노트.
◐인격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지표이다.
인간은 순하면서 독하고 유연하면서 완고하다. 고상하면서 천박하고 우월하면서 열등하다. 강하면서 약하기에 바위처럼 단단하다 가도 계란처럼 깨지기 쉽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만물의 주인으로 산다. 흙으로 지어졌기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산다. 같은 삶은 아니어도 같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 간다.
인간은 생명체중에 가장 난해한 존재이다. 인간조차 인간을 알지 못해 이치에 어긋나는 모순을 수없이 되풀이한다. 평등을 외치면서 상전행세를 하고 존엄성을 내세우면서 인권을 짓 밟는다.
…
인격이 없는 아름다움은 가시만 남은 장미이다. 눈을 매혹하는 것은 외모이지만 마음을 현혹하는 것은 인격이다. 인격이야 말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지표이다. 그러기에 시인 하이네 말처럼 ‘재능은 없어도 인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훌륭한 인격을 지닌 자는 얼굴은 네모여도 둥근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이 한결같이 찬란하지 않아도 빛이 난다. 속은 인자하고 겉은 온화하여 타인의 불쾌조차 융해시켜 고귀함으로 발화시킨다. 도끼에 찍혀도 향을 풍기는 향나무처럼 언제라도 삶의 향기를 고즈넉이 내 뿜는다.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명성에 있지 않고 인격에 있어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책임질 줄 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되 폄훼 되지 않고, 오해의 소지는 있어도 논란의 여지는 없다. 행적을 감춰도 미담(美談)이 알려지고 초야(草野)에 묻혀 살아도 삶이 드러난다.
-조이현 지음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수업” 중에서.
◐노년의 목표.
‘내나이가 어때서’ 하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르 듯, 자신의 나이를 애써 부정하고 젊은 사람들 흉내를 내려는 노인들이 있다. 심지어는 죽을 운명까지 부정하고 싶어 한다. 아아, 자신의 죽음을 절대 생각하지 않는 삶은 자기가 언제 죽을지 상상하지 않는 짐승의 삶과 뭐가 다르 겠는가.
심지어 자신의 생체나이는 이십 년 젊은 것이니 자신의 공적인 연령을 정정해달라고 소송을 낸 서양인도 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참으로 당신의 나이가 어때서, 그렇게 나이를 부정하고 싶은가? 삶의 연장인 죽음을 부정하고 물질적인 시간연장만 희망한다면, 과연 삶의 가치를 어디서 찾고 있는 것 인가.
나이는 먹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는 사람 중에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영원히 나이 먹지 않는 아이(Eternal Child)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일에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돌보려 하지 않고, 결과야 어찌 되었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면서, 주변을 돌보지 않고, 자신이 죽은 다음을 계획하지 않는 노인은 이미 그 영혼이 죽은 좀비가 아닐까.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팽팽한 피부와 잘생긴 외모와 걸출한 신체능력이 아니라,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이력과 주변사람을 돌볼 수 있는 사랑, 약한자를 배려하고 받드는 겸손과 희생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내나이가 어때서?’ 라며 열심히 주변사람에게 봉사하고 좀더 신중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매일 새롭게 나아가려 한다면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반대로 ‘내나이가 어때서?’라고 일탈을 밥 먹듯 한다면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일생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나미 지음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중에서.
◐시의 적절한 행위.
인생을 흔히 활 쏘기에 비유한다. 인생의 목적이라는 과녁에 화살을 적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중(的中)이란 과녁에 화살을 정확히 맞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생의 과녁은 한곳에 공간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과 변화속에서 유동한다. 고정된 과녁이 아니라 유동하는 과녁이다. 유동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공간과 시간의 조건과 변화 그리고 바람의 세력과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적중이란 중도(中道)다. 시중(時中)이라고도 한다.
-심의용지음 “마흔의 단어들”중에서
독서노트 주(註). 위 문장에서 중도 또는 시중(時中)은 “때에 맞는 현실적 태도”를 의미한다. 필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영어단어 “Nowhere”를 풀어서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조합한 “Here and Now”와 심의용 선생께서 위에 언급한 시중(時中)과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선경의 독서 노트】
한국어 낱말, 헛걸음, 헛똑똑이, 헛일, 헛수고, 헛고생, 헛돈, 헛힘, 헛보다 등의 여러가지 표현에서 공통점이 있다. 접두어 ‘헛’은 수식하는 주된 일의 상황개선을 위해 노력은 했지만 의도 한 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무용(無用), 무익(無益)한 상태를 뜻 한다. 헛걸음을 깨닫았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면서도 매몰비용(埋沒費用) 때문에 방향 전환을 망설이면 망설일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인공위성발사와 마찬가지로 인생 행로에도 때때로 궤적을 점검하여 순간순간 필요한 미세조정을 해야만 목표에 이르는 진로를 유지할 수 있다.
스위스 출신 신학자 에밀 부르너(Emil Brunner, 1889-1966)는 잘못된 일에 대한 돌이킴이 없을 때 발생하는 폐단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기차를 잘못 탔다. 그러나 그는 기차를 갈아탈 생각을 하지 않고 기차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했다. 즉 기차안을 청소하고 노약자를 도와주며, 배고 픈 자에게 음식을 주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기차안의 승객들은 그의 선행을 칭찬했다. 그러나 종착역은 그가 목적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기차 안에서 선행을 베풀 것이 아니라 (지체 없이) 기차를 갈아탔 어야 만했다.”
금년 봄 필자가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기차여행을 하다 크게 당황한 일이 있다. 그날 목적지 동대구 역에서 내려야 했는데 꾸물대다 목적지를 지나친 황당한 실수를 한 것이다. 비록 그날 내가 실수는 했지만 시정 조치는 재빨랐다. SRT 하행 다음 정차 역인 경주역에서 내려 다시 동대구행 표를 사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경주에서 서울행 상행열차를 타고 다시 동대구역으로 돌아오는데 소요된 시간은 20여분에 불과했다. 뜻밖의 실수로 인하여 비록 서울로 돌아오는 귀가 시간이 조금 지연되었지만 여행 목적지인 동대구에서 계획된 그날 일은 차질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실수를 한 후 우물쭈물하지 않고 신속한 돌이킴 조치가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뜻밖에 변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의 목표는 고정 불변이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환경은 그날 일기처럼 시시각각 변화무상이다. Now & Here에 충실한 일상을 유지하며 제때에 필요한 궤도 수정을 기민하게 해나 가야 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이 할 일이다. 그런 민감성을 가지고 일상에 임한다면 잘못의 누적으로 인한 Nowhere의 절망에 빠지는 일은 결코 발생할 수 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에서 소개한 글 “눈을 매혹하는 것은 외모이지만 마음을 현혹하는 것은 인격이다”와 맥을 같이 하는 중국의 한시 한수를 여기서 소개합니다. 당나라말기 때 활동한 관료이자 시인인 두순학(杜筍鶴,846-907)의 오언절구시 감우(感遇)의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해파도천(大海波濤淺) 대해의 파도는 얕지만
소인방촌심(小人方寸深) 소인의 마음은 깊다 네
해고종견천(海枯終見底)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인사부지심(人死不知心)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네.
이 시의 제목 “감우(感遇)”는 감흥이 일어나 시에 붙여 라는 뜻입니다.
이시는 대해의 파도와 소인의 마음, 바다와 인간을 대조하여 운율을 만들었다. 시의 내용중 처음두행을 살펴보면 드넓은 바다의 큰 파도는 오히려 얕아 알기 쉬운 반면, 소인의 좁은 마음은 오히려 깊어서 알기 어렵다고 술회하고 있다. 아무리 도량이 좁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마음을 깊숙이 숨기면, 비록 성현이라고 해도 도저히 (그 사람의 )진심을 알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 두행에서 시인은 결론삼아 말한다. 아무리 넓고 깊은 바다라고 해도 마르면 그 바닥을 알 수 있는 반면, 사람의 마음은 “방촌(方寸)즉 한치 사방의 넓이” 밖에 되지 않지만 죽은 다음에도 알 수 없다 라고.
혼란과 불신이 횡행하던 당나라 말기 때 이 시가 쓰여진 시대 배경이다. 늦은 나이에 천신만고 끝에 과거에 급제하여 어렵게 관직생활을 하면서 하루아침에 세상과 사람이 뒤 바뀔 수 있는 소용돌이 환경속에서 두순학은 순탄치 않은 관료 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가 많은 것 같다. 입신양명의 뜻이 사람 때문에 좌절된 듯한 심경을 토로하는 듯하다. 이 시에 담긴 두순학의 심경토로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우리말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글의 앞 부분에서 잠시 소개한 스위스 출신 신학자 에밀 부르너(Emil Brunner)의 명언 한 줄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What oxygen is to the lungs, such is hope to the meaning of life.
“산소와 폐(사람의 장기)의 관계는 희망과 인생의 의미와의 관계처럼 밀접한 관계이다.” 인간의 삶에서 희망의 존재가치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잠시 머물다 불시에 떠나는 시운(運)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희망을 마음속에 심어 면 좀처럼 뿌리가 뽑히지 않고 오래 머문다. 희망은 건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인류의 가장 좋은
소유물이다. 그 희망은 불학실성의 시대에 어느 누구의 위로와 격려보다 더 큰 마음에 평안을 제공하는 원천이 된다. 누구에게나 희망은 삶을 견인하는 활력소이다. 희망을 품고 몸과 마음을 잘 건사하며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 내일을 도모하도록 노력한다면 누구나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상의 노력에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상청에서는 이번주부터 기온이 많이 내려가 날씨가 쌀쌀 할 것이라고 예보하고 있습니다. 환절기에 건강관리 잘하시고 좋은 한주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