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든 적응하고, 상황에 상관없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네팔인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 그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것, 그 편안하면서도 대범한 생의 태도에 감탄하였다
그러나 나는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버림을 욕망하는 무욕(無慾)은 즉 대욕(大慾)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흘간의 안나푸르나 순례를 마감하고,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로 돌아와서 다시 히말라야를 꿈꾸며 숨쉬었다

또 다시, 출발이다
우리는 먹으면 자고, 일어나면 길을 걷는 똑같은 생활을 열흘 동안 반복하였다
이제는 따뜻한 아랫목과 아내의 푸근한 가슴이 그립다...그러나 히말라야에서 이건 대욕(大慾)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6시 반에 기상하여 7시에 식사하고, 7시 30분에 출발하였다

순례객들의 일상
순례객들은 갈아입을 옷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배낭에 매달고 다니면서 말려 입는다
양말은 그래도 괜찮지만...어떤 젊은 여자애들은 팬티까지 매달고 다니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해가 지면 엄청 춥지만 한낮의 햇빛은 여름 날씨이기 때문에 이렇게 매달고 다니면 금방 말라버린다

팔찌를 착용하다
히말라야의 웅장한 자연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만나는 이들마다 후덕하다
가진 것은 얼마 안되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지만 그들은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손수 만든 수공예품은 화려하고 정교해서 외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티벳 출신 아가씨에게 덤으로 얻은 팔찌를 양팔에 착용하니 나즈막히 내려앉은 히말라야의 속삭임이 들려오는듯하다

더러움과 깨끗함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현지인들은 착하디 착한 염소의 얼굴과 영락없이 닮았다
길 한가운데서 말라가고 있는 당나귀의 똥, 때가 끼어 반들반들한 낡은 옷, 손톱 밑에 낀 때...이게 더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자본으로 치장한 우리들의 허물이 순백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더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현수교 건설 현장
참롱으로 가는 길목에서 현수교를 건설하는 현장을 만났다
여자들이 망치로 돌을 깨서 자갈을 만들고, 당나귀로 자재를 실어 나르는 등 완전한 수작업이었다
순례하는 도중에 계곡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놓여진 현수교는 대단히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긋지긋한 계단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하게될 참롱으로 오르는 길은 지긋지긋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편마암으로 아주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회장님께서 세어보신 결과 2,640 계단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나흘 전에 이 계단을 내려왔는데 올라갈 때는 너무너무 힘들어서 여러번 쉬어서 올라갔다

현지인들의 주술 행위
동네 안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주술적 행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흙덩이에 꽂아놓은 닭의 깃털과 흰 실, 비스켓, 돌멩이, 여러가지 곡식, 고추, 마늘, 밀가루로 만든 소의 형상 등이 보인다
혹독한 히말라야의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들에게 의지하면서 힘을 얻는가 보다

참롱에서의 점심 식사
나흘 만에 다시 참롱에 도착하니 기념품 가게의 테벳 아가씨가 제일 반겨 주었다
다시 가게에 들려 이것저것 토산품을 샀더니 티벳 아가씨는 싱글벙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주방팀이 점심으로 오무라이스를 만들어 내왔는데 여태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이 있었다

지누단다로 가는 길
여기서 오른 쪽으로 가면 고라파니를 거쳐 푼힐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틀면 지누단다로 가는 길이다
지누단다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먼지가 푹푹 일어나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지누단다에서 노천온천에 몸을 담글 생각에 기대가 컸는데, 일정이 촉박하여 그냥 내려간다고 해서 실망하였다

방목하는 염소떼
지누단다로 가는 길목에서 수백 마리의 염소떼가 풀을 뜯는 광경을 보았다
많은 염소들의 배를 채워줄 만큼의 풀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이들은 풀뿌리, 나무 껍질까지 먹어 치웠다
오늘 밤에 우리들은 흠없는 염소를 한 마리 잡아서 제단에 바칠 계획인데...고기에 굶주린 우리들의 기대가 컸다

지누단다(Jhinudanda) 1,780m
지누단다에 도착하자 몸이 녹초가 되어 'Red Bull'이라는 에너지 음료를 한 개씩 마셨다
캔의 바깥에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두 마리의 붉은 소가 그려져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박카스 같은 음료였다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고, 순례 도중에 여러 번 마주쳤던 배불뚝이 형제를 만나 곰 세마리가 되었다 ㅋㅋㅋ
여기에서 30분만 내려가면 뜨끈뜨끈한 노천 온천에 있는데...열흘 동안 씻지 못한 몸이 말이 아니었다

계단식 경작지(다랭이 논)
히말라야에는 이같은 계단식 경작지가 산꼭대기까지 조성되어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옥수수, 밀, 귀리 등을 경작하는 다랭이논은 경지 면적을 최대화 하려는 수단이며, 마을이 고지 위에 앉아있는 형상이다
우리같은 이방인이 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였지만 이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땀흘렸을 현지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뉴 브릿지(New Bridge)마을
드디어 히말라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뉴 브릿지 마을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2000년 여름에 푹우로 다리가 쓸려 내려간 뒤 새로 다리를 놓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이젠 Old Bridge로 바꿔야 할듯...
앞으로 모디 콜라가 흐르는 Kalpana Guest House에는 예쁜 딸들이 둘이나 있어서 분위가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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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없는 염소 한 마리를 바치다
우리는 흠없는 염소 한 마리를 잡아서 히말라야 여신에게 바치고, 산속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염소 수육과 내장 볶음은 기막히게 맛있었으나 술이 마땅치 않아 맥주를 마시는 바람에 포만감이 느껴졌다
함께 고생한 포터들과 주방팀에게도 염소 고기와 맥주를 보내주었더니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새벽에 출발하다
새벽 5시 반에 염소사골국으로 식사를 마치고, 6시에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하였다
오늘은 호텔에서 편안히 자면서 목욕까지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왼쪽으로 아득한 절벽이 있고 그 아래로 모디 콜라가 흐르고 있어 우리들의 발걸음은 여간 긴장되지 않았다

공부하는 산골마을 아이들
처마 밑에서 아이들이 양말도 신지 않은채 공부하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교사(?) 한 명이 네명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애잔한지 마음이 울컥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서 네팔의 희망을 보았다

결국 지프차를 타고 내려가다
나야풀까지 내려가는 길은 여간 길지 않아 친구가 뒤쳐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프차를 부르게 되었다
친구 덕분에 다리가 불편한 몇몇이 지프차를 함께 타고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지프차를 대절하는 요금은 2천 루피(약30,000원)였는데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였다

에베레스트 맥주를 마시다
히말라야에 와서 에베레스트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맥주병에는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의 모습이 있는 상표가 붙어 있었다
히말라야의 맑은 바람과 시원한 물소리가 녹아있는 에베레스트 맥주는 기나긴 여정을 지나온 우리들의 피로를 싹~ 씻어주었다

다시, 나야풀로 돌아오다
우리가 여드레 전에 출발하였던 나야풀로 다시 돌아와서 일행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다
기막히게 맛있는 밥과 누룽지, 생강차를 해주었던 주방팀, 30kg의 카고백을 지고간 포터들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다
덜컹거리고 유리창까지 빠져서 바람이 함부로 들어오는 낡은 버스를 타고 포카라에 도착하여 주방팀, 포터와 작별하였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예티항공이 1시간 이상 연착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많이 늦어져서 배가 많이 고팠다

달밧을 먹다
왕족들이 이용하였다는 네팔의 전통 식당에 들어가서 달밧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식당의 입구에서 예쁜 아가씨가 주술적 의미가 있는 붉은 '틱카'를 양미간에 살짝 찍어 주었다
계속하여 한식만 먹어서 현지 음식이 먹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우리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현지인들의 전혀 성의없고 맥빠진 모습도 밥맛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하였다
틱카(Tikka)를 찍다
식당 입구에서 종업원이 입장객들의 이마에 붉은 점, 틱카를 찍어 주었다
인도나 네팔인들이 기도를 올리기 전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틱카를 하는 일이라고 한다
틱카는 이마 한가운데 칠하는 붉은 점으로... 행운과 축복이 함께 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현지에 오면 그들의 생활방식과 풍습에 동화되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기꺼이 받아들였다

럭시를 계속 리필하다
네팔의 소주라 할 수 있는 럭시맛이 괜찮아서 계속 리필을 요구하였다
종업원들도 애교로 봐주는지 웃으면서 계속 따라주는 바람에 기분좋게 마실 수 있었다
럭시를 따르는 모습은 주둥이가 작은 주전자를 머리 위까지 들어서 높은 곳에서 따라주는데.. 참 재미있었다

타멜시장에 가다
우리가 첫날에 묵었던 히말라야호텔에서 열흘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다음 편안하게 잠잤다
다음날 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카트만두의 명물 타멜시장에 가서 남아있는 루피화를 모두 소비하였다
시장은 대단히 복잡하고 먼지와 매연으로 코가 따가운데 차와 오토바이의 소음, 호객꾼들의 외침으로 시끌벅적하다

트레킹 허가서와 완주증명서를 받다
'서울아리랑'으로 돌아와서 삼겹살로 점심식사를 하고 안나푸르나 트레킹 허가서와 완주증명서를 받았다
그동안의 힘들고 괴로웠던 낮과 밤, 장엄한 설산과 빙하, 스쳐 지나간 다양한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에베레스트가 고향인 가이드가 5천 미터 고지에서 채취하였다는 자연산 동충하초를 사서 마지막 배낭을 꾸렸다


현수막을 서울아리랑에 기증하다
그동안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현수막에 모든 사람이 사인하여 서울아리랑에 기증하였다
서울아리랑에 오는 세계의 순례객들이 우리들의 순수와 열정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우리를 완벽하게 안내했던 가이드 펨바(Pemba)와 서울아리랑 김창남 사장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삶이라는 또다른 히말라야로 돌아오다
카트만두에서 15시 40분에 이륙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몸을 싣고 약 5시간 가량 비행 끝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제 삶이라는 이름으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히말라야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리라
새벽 4시 반에 송천동에 도착하자 안승환, 문영현, 성용재님이 눈물겨운 환영을 해줘서 큰~ 감동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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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을 다녀와서
안나푸르나 순례(6) -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로 돌아오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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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2 11:4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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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하십니다. 안나푸르나를 무사히 완주하고 돌아 오신 진짜 사나이 여덟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ㅉㅉㅉ
추억은 오랫동안 두고 두고 발효되어서 앞으로의 삶에 참으로 좋은 거름이 되어 인생이 더욱 더 빛날테지요.
마지막 사진에 대한 항공 비행기를 바라보니 고생끝 행복시작입니다.


네팔의 히말라야와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가 있다면 저는 후자에서 살거예용
시간과 정성이 듬뿍담긴 산행기는 정말 멋져요
여러날 동안 산행기 읽으며
자연과 현지인들의 삶속에서
경이로움과 애잔함..
마음안의 모든 오욕이 씻겨짐을 느꼈습니다.
인생에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맘은 굴똑 같으나...
진정 도전하고 행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삶을 살때마다 가슴속에 켠켠히 채워 논 히말의 산행이
자양분이 되어 빛나리라 믿습니다.
동안 산행기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회상은 짧고 공상은 길구나
내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는 곳
내가 한번도 태어나지 않아야 할 곳
히말라야 .......................................고은의 詩 <히말라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