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얀꽃은
정운기
조팝나무는
조밥나무가 아니고
사월에 피는 설유화雪柳花다
이팝나무는
이밥나무가 아니고
오월에 피는 영원한 사랑이다
백정화는
유월에 피는
유월설六月雪이 아니고
두메별꽃이다.
관계
안철수
너와 나
서로의 관계가 느슨한 것은
외로움 때문이다
마음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면
멀리 있어도 외롭지 않다
함께 있어도 마음이 멀리 있으면
혼자처럼 외롭다
낯섦으로 만나
서로가 같은 방향을 향해
길들여지는 것은
버리지 못할
너와 나, 우리의
끈끈한 관계를
서로가 만드는 일이다.
괭이밥
안철수
오래 버티며 살던 주인
시름시름 앓다가 떠난 지난봄
빈집 창문에
노란 등불 하나 걸렸다
비어있던 사랑채에
간간이 괭이 울음소리 들리고
빈집 지붕 위에도
바람이 쉬었다 간다
당돌함으로 밀어 올린
하트모양 이파리
버려둔 마음 밀어내고
깊게 뿌리 내린 이주민 같은 꽃
버려둔 토분이 비로소
화분이 되었다
빈집 가득 사랑을 새겨
밤새 괭이 울음 질펀하겠다.
남남 되어
최영숙
하염없이 봄비 내리고
맥없이 떨어져 버린 꽃잎들
꽃물 되어 멈칫멈칫 흘러가고
성치 못한 심신 맥 놓고 있다
책 한 권 건지지 못한 속상함
어이없어 눈물꽃 되어 흐른 날
책장에 무심히 쌓이고 쌓인
수많은 책들은 비를 맞은 채
선별할 틈 없이 압축기에 들어가고
여름 전쟁
정운기
폭염 속에서도
예초기를 들고
풀과 전쟁하는 것이
매실나무를 위한 평화인가
개구리와 풀벌레가
놀라서 뛰는데
예초기를 돌리는 것이
나만의 독재인가.
노스텔지어
박명희
한 갑자 예순을 날려 보내버린 지금
고향의 언덕위에 가로누워
느리게 게으른 석양을 바라보고 싶다
아는것 모르는것 다 뭉쳐 보아도
감동 없이 그저 싱거운 저녁
정신 없이 달리던 젊은 나무였던
그때가 부럽다
이런 날이면 첼로의 저음에
있지도 않은 마음을 눌러 놓아 둔 채
소나타 마지막 음을 기다린다
다시 무한한 수평선 그리움
돌아 가야 할 곳
가 닿고 싶은 곳
변하지 않은 한곳을 향해
나는 한 바닷가에 오래 오래 서 있다
나의 정원
장진
나의 정원 주인은
햇살과 바람과 물입니다
과해도 부족해도 탈이 납니다
초록 생명들과의 사랑은
매일이 밀당입니다
목마름을 이기고
시원한 공기에 춤추며
여린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매일을 살아냅니다
정원에 초대받은 나는
꽃내음에 취하고
빛깔에 감동하고
기어이 살아내는 생명의 신비로
매일이 기쁨입니다
카페 게시글
시산 제38집 출판원고방
38집 원고(2024 공모 제출 신작)
지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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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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