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 사케 이야기
‘데카’라는 이름의 사케가 있다. 데카는 刑事의 속어이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영국 경찰을 Bobbies라고 부르는 정도의 애칭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술 이름이 하필 ‘형사’일까? 이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2001년 5월 8일 아오모리(靑森)현 히로마에(弘前)시의 소비자금융회사인 다케후지 히로마에 지점에서 강도살인방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상의 범인이 석유통을 들고 동지점에 들어가 현금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지점내에 그대로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버리고 도주한 것이다. 불은 삽시간에 번져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큰 화재로 이어졌고, 미처 피하지 못한 사원 5인이 사망하고 탈출한 4명도 중경상을 입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경찰이 범인 검거에 나섰으나, 현장은 온통 폐허가 되어 제대로 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수사는 난항을 겪었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듯 했다. 그러나 아오모리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헌신적이고 집요하게 수사를 계속하였다. 그 결과 10개월 뒤인 2002년 3월 범인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범인은 빚에 쪼들리던 택시운전사였다. 자치 장기화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아오모리 경찰은 작은 힌트도 놓치지 않았다. 범인이 불을 붙인 신문지의 인쇄 상태를 철저히 분석해서 해당 신문이 인쇄된 공장과 배달 지역을 특정한 후,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일일이 탐문 수사를 벌여 용의자를 좁혀가는 주도면밀함과 집요함으로 범인 검거에 성공한 것이다. 해당 범인은 재판을 거쳐 유죄가 확정되고 결국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죄값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다케후지 히로마에지점 방화사건’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강력사건이다.
수사 당시 범행현장 인근에 소재한 사이토주조(齋藤酒造)에 많은 형사들이 드나들면서 탐문을 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는데, 사이토주조의 18대 사장인 도이 마리(土居真理, 참고로 여성)씨가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수사에 전념하는 경찰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또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범인이 검거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마을에 다시 평화를 돌려준 형사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헌정용 사케를 만들고 이름을 ‘데카(형사)’로 명명한 것이다.
도이 사장은 이번 일이 경찰과의 첫 인연이 아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양조장 건너에 노인 실종이 발생했는데, 집에 혈흔이 흥건한 사건성이 높은 실종이었다고 한다. 그때 양조장을 방문하여 머리를 숙이면서 아무리 작은 단서라도 좋으니 꼭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는 형사들의 모습, 한 겨울 눈이 내리고 만물이 꽁꽁 얼어붙는 엄동설한에도 24시간 동태조사를 위해 사건발생지에서 꼼짝도 안하고 오가는 사람과 차량을 주시하는 형사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도 형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실종된 노인의 시신을 발견하고 범인도 체포하였다고 한다.
데카의 포장을 뜯으면 안내문(시오리)이 하나 나온다. 이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희 양조장이 소재한 아오모리현 히로마에시는 츠가루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사쿠라, 네부타(누워있는 부처상) 그리고 성으로 알려진 작은 마을입니다.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시간이 흐르던 마을에 나라 전체를 뒤흔든 강도방화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양조장에도 연일 많은 형사분들이 탐문활동을 위해 방문하셨습니다.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눈 속에서도 잠복 근무를 하고,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형사분이 오셨습니다만, 무엇 하나 질문에 답하고 수사를 도와드릴 없었던 저희로서는 다만 한 순간이라도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일 수 있도록 그저 따뜻한 한 잔의 차를 대접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사건이 해결되어 평화로운 마을에서 안심하고 잠자리를 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사분들에게 진심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술맛 자체는 털털하고 거칠 것 같은 형사의 이미지와 달리 매끈하고 수려한 타입의 쥰마이슈이다.
술병에는 법규상 의무적으로 부착하는 라벨 외에 또 한 장의 라벨이 부착되어 있다. 일본어 가능자를 위해 원문을 함께 게재한다.
「魂の酒
被害者の悲しみに接し 共に涙を流し
被害者を励まし慰め 事件の解決のために
もくもくと働く男達『刑事』
そんな寡黙で 勇気のある男達のために
精魂こめて造らせていただきました
魂의 술
피해자의 슬픔과 조우하여 함께 눈물을 흘리고,
피해자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남자들
‘데카’
그런 과묵하고 용기있는 남자들을 위하여
정성과 혼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심금을 울리지 않는가.
이렇게 정성스레 담근 술을 난제의 사건으로 부심하는 경찰서에 격려용으로 보내는데, 지금까지 아오모리 외에 치바, 교토, 카가와, 시마네현 경찰 수사본부 등에 보냈다고 한다.
형사들이 힘든 수사 마치고 좋은 성과를 거둔 후 이 술 한 잔 먹으면 형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한 보람을 느끼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살 맛 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갈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일반 소매점 출하는 하지 않으며 오직 양조장 직접 방문이나 통신 판매로만 개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5&nNewsNumb=20160520292&nidx=20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