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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갑절의 영감을 주소서(최한나)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왕하2:7-14] 말씀.아멘!!
본문의 “갑절의 영감을 주소서”는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엘리야의 말에 엘리사가 제시한 용청이다. 이 문장은 “제발” 혹은 “원컨대”를 뜻하나 부사 ‘나’가 ‘이다’ 혹은 ‘있다’를 뜻하는 동사 히브리어 “하야”와 함께 사용되어 간절한 기원문의 형태로 되어 있다. 한편 “영감”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 내지는 “영”을 뜻하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 능력”이란 의미로 쓰였다. 또한 “갑절”로 번역된 히브리어 쉐나임은 “반복하다”라는 뜻의 의미로 “부분”을 뜻하는 명사“히브리어 (페)”의 연계형 (피)와 결합되어 “두 볷”이라는 의미가 된다,
마침내 엘리야는 이제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승천하게 될 줄을 알고, 엘리사에게 원하는 것이 었다면 청하라고 했다. 그 마지막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는 스승을 결코 하늘로 떠나보낼 수 없다는 엘리사의 집념을 엘리야도, 엘리야의 하나님도 높이 평가하셨다. 엘리사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가슴속에 있던 말을 토해 낸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왕하 2:9). 바로 이것이었다. ‘당신의 영감!‘ 그것은 엘리야에게 부어 주셨던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영광, 거룩한 리더십의 능력,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으심을 의미했다. 여기서 엘리사가 "갑절이나"라고 표현한 것은 신명기 2l:17에 나오는 장자의 몫을 구한 것이다. (거기에 보면 유산을 줄 때는 장자에게 2배의 몫을 주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아버지의 권리를 계승함을 뜻한다). 엘리사가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엘리야보다 갑절이나 뛰어난 영적 능력을 가지고 2배의 영광을 누리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즉 이는 한집안에서 맏아들이 다른 형제들이 받는 몫의 두배의 유산을 차지하며 그 가문을 잇는 권리를 가지는(신21:17) 히브리 전통과 관련된 표현으로서, 자신을 엘리야의 영적 장자와 같이 취급하여 그의 선지직을 계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12절에서 엘리사가 사라진 엘리야를 “아버지”로 호칭한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사의 요구는 엘리야 보다 더많은 능력을 행하고 싶다는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승이 가진 영적능력을 자신도 가지며 스승이 걸어간 선지자의 길을 자신도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면서 어려운 사역을 감당해 왔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이제 자기에게 그 바통이 넘어오려고 하자 자신의 능력으론 감당할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갑절의 능력을 구한 것은 스승보다 뛰어나겠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모자람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선지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엘리야가 떠나는 시점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절실히 느끼고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절박함으로 엘리야를 붙잡은 것이다. 아니, 엘리야의 하나님을 붙잡은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말이 의미히는 바는 단순히 엘리사가 엘리야에 비하여 배나 많은 기적을 베풀게 된다는 단순한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 엘리야의 승천을 바라보면서 엘리사가 절규하였던 말인바 “이스라엘의병거와그마병이여”(12절)라는 말은 그만큼 엘리야가 이스라엘에있어서 모든 영적인힘의 근원이 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이후 엘리사가죽게 되었을때,당시의 왕이었던요 아스에 의하여 되풀이됨으로 말미암아 확실히 그가 엘리야의 사역을 그대로 계승하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13:14). 영적인 스승을 떠나 보내게 되었던 엘리사의 슬픔이 어찌나 컸던지, 엘리사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절규하였다. 옷을찢는 것은 극심한 슬픔에 대한 표현이다.
둘째, 선지자를 거두어 가심은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엘리야를 통하여 진행하셨던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의 사역은 끝나고 이후부터는 엘리사를 통한 심판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다(암 8:11-14).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수단이요 방편으로서 은혜의 본질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선지자를 세우시고 말씀을 공급 하신다(호 12:13). 참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원리는, 곧 당신의 말씀을 증거할 선지자를 세우시는 가운데 그들을 통하여 선포하게 하신바 당신의 말씀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방법에 있는 것이다.그러나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거부하였고, 타락시켰으며, 미혹시켰다(암 2:11,12).
셋째,엘리야의 승천은 저들에게 자신의 품을 숨기는 것으로 나타났으나,그의 능력이 계속해서 엘리사를 통하여 나타남으로써 그의 사역은 저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 일은 엘리사가 취했던 엘리야의 옷으로 말미 암아 요단 강의 물이 다시 한번 갈라지는 것으혹 나타나게 되는데, 그러나 그와 같은 기적은 단순히 그러한 직무의 계승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직무의 계승은 계송이로되 그 모든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순전히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서 엘리야의 뒤를 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 관하심에 의해서 새로운 사역자로 부르심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엘리야의 겉옷에 의하여 요단 강물이 갈라지게 되는 것은, 엘리사에게 있어서는 그가 앞서 가졌던 소원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위에 있는 많은 선지 생도들을 호E하여 엘리사가 명실상부한 엘리야의 후계자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이 제 엘리야를 대신하여 엘리사를 그처럼 세우신 것이다. 엘리사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도구가 되어 이스라엘 앞에 서게 되었다.
26.말라가는 시냇가에서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왕상 17:1-7절 말씀 아멘!!
본문은 아합 왕과 엘리야의 대결 및 남북 두 왕의 통치에 대하여 다루는 16:29-22:53의 연속 부분이다. 여기서는 북왕국 이스라엘 제7대 왕 아합의 통치와 종교적 악행 및 히엘의 여리고 건축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16:29-34에 이어 아합 왕을 향한 엘리야 선지자의 가뭄 선포와 그릿 시냇가 도피 생활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엘리야가 극악한 우상 숭배에 빠져 있던 아합 왕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리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1절). 이렇게 하여 열왕기하 2장까지 이어지는 소위 “'엘리야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엘리야 이야기가 무려 여덟장에 걸쳐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엘리야 선지자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탁월한 활동을 한 선지자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타난 바 그에 대해서는 디셉 사람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열왕기 기자 에게 있어서 주요 관심사는 엘리야 자체가 아니라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 심에 있었음을 반영해 준다. 즉 열왕기 기자는 엘리야의 전기를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기복하고자 하였기 때 문에 엘리야의 탁월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 의 신상 명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 엘리야의 가뭄 예언은 바알 숭배에 빠져 있던 아합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바알 숭배자들은 비가 오거나 오지 않는 것이 전적으로 농경 신 이었던 바알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합에게 있어서 엘리야 의 경고는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불손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엘리야가 처할 위험을 아셨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릿 시내로 도피하게 하시고 까마귀를 동원하여 엘리야 를 먹이셨다(2-7절).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삶에는 종종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찾아온다. 마치 풍성하게 흐르던 시냇물이 어느 순간 말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당황스럽고 불안한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다.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가 경험한 시냇가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상황을 허락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가운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살펴본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릿 시냇가로 갔다. 그곳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엘리야를 먹이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그릿 시냇가에서 엘리야는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지냈다. 까마귀는 일반적으로 더러운 동물로 여겨졌지만, 하나님은 그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셨다. 이는 하나님의 공급이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릿 시냇가의 물은 점점 말라갔다. 이것은 엘리야에게 큰 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시냇물이 완전히 마른 후,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로 인도하셔서 또 다른 기적을 베풀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시냇물이 마르는 것은 새로운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되는 신호일 수 있다. 열왕기상 18:1과 야고보서 5:17에 의하면 당시 이 같은 가뭄은 3년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계획하고 계시며, 그분의 타이밍에 맞추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공급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분의 방식으로 채우시며, 때로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우리의 삶에서 시냇물이 마르는 것 같은 상황, 즉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찾아올 때, 우리는 절망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말라가는 시냇가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을 신뢰할 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공급을 믿고, 시냇물이 마를 때 새로운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한분, 한분 되시기를 바란다.
27. 이 소리가 들림은 어찌 됨이요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삼상15:13-21 말씀 아멘!!
우리는 사무엘상 15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주셨지만, 사울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온전히 따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이 소리가 들림은 어찌 됨이요?”라고 물을 때, 사울은 변명을 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불완전하게 순종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이 무엇인지, 그리고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본문의 13-15절은 하나님의 명령과 사울의 불순종에 대하여 기록되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말렉 왕 아각과 좋은 가축들을 사로잡았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불순종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사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또한 사울은 사무엘이 그를 만났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순간 들려오는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그의 불순종을 드러냈다. 사울은 백성들이 좋은 것들을 취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변명했지만, 이는 그의 불순종을 가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부분적인 순종이나 자신의 뜻에 맞춘 순종은 결국 불순종이다.
이어서 16-19절에는 불순종의 변명과 자기기만에 기록되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백성들이 좋은 가축들을 취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했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자신의 불순종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미화하려는 시도이다. 사무엘은 사울의 변명을 듣고, 그가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왜 어겼느냐고 물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왜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는지를 물어본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의 판단이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귀 기울여야 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원하신다.
온전한 순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본문의 20-21절에 기록되었다. 사울은 여전히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고 좋은 가축들을 취한 것이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의 다 지켰다고 말하지만, 사무엘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온전한”순종이라고 가르친다. 부분적인 순종은 온전한 순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적 순종을 원하시며, 불완전한 순종은 불순종과 다름없다. 사울의 예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사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사울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부분적으로만 따랐고, 그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려 할 때, 그 결과는 고통과 슬픔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하여야 한다. “이 소리가 들림은 어찌 됨이요?”라는 질문이 우리의 삶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순종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8. 너희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던 줄을 알라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에스셀 33:30-33절 말씀 아멘!!
에스겔서 33장 30-33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지자와 그 메시지의 중요성에 대하여 기록되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에스겔 선지자와 그를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를 다룬다. 특히 이 구절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시기에 사역한 선지자로, 그의 사역은 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에스겔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경청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본문 3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백성들이 그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집 문과 담 곁에 앉아 그를 이야기의 주제로 삼았다. 그들은 에스겔이 전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말씀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지만, 그 마음은 진실로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말씀을 듣는 행위 자체에 만족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거나 도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무관심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다. 우리들은 하나님 말씀을 학문적으로 배우고 연구하지만, 그 말씀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며, 그 말씀을 전할 때에도 그 의미와 중요성을 진정성 있게 전달해야 한다.
31-3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기록되었다. 31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겔 앞에 앉아 그의 말을 듣는 척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이익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태도를 경고하신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곧 불순종이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로 비유하셨다(마태복음 7:26-27). 하나님의 자녀로써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말씀을 전할 때에도 청중들이 그 말씀을 실천하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
본문 33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였음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그들이 고난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 그제서야 에스겔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이 순간에 받아들여야 한다. 후회와 비탄은 때로 너무 늦게 찾아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그저 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그들의 삶과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생명의 말씀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전하는 말씀에 우리 자신이 먼저 순종하는 본을 보여야 한다.
에스겔서 33장 30-33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그가 전하는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후회 없이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자신이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전하는 말씀도 진리와 권위로 가득 차,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를 통해 그의 말씀을 전파하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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