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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로맨스] 09 - 누구를 원망하랴? 텍사스 히트
1. 프롤로그
-박무열의 집 거실
8회 엔딩이 유은재의 시선이었다면 이곳은 박무열의 시선이다.
유은재 :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댁이 좋아졌어여.
박무열 : (귀로는 들었지만 이해가 안간다)...
유은재 : (똑바로 본다) 좋아해여. 그래도 운명이 있다면 내 운명은 댁이예여.
유은재가 똑바로 보자 박무열은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이제까지 알아오던 꼴통이 전혀 다른 사람같다.
심장이 한번 욱씬한다. 마른 침을 삼킨다.
초인종이 울린다.
-문앞 복도
강종희가 서 있다. 선물상자를 들고 있다. 없나?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누른다.
2. 타이틀
‘제 9회 누구를 원망하랴? 텍사스 히트’
텍사스히트란 잘못 맞은 타구가 내야와 외야의 중간, 수비수가 잡을수 없는 위치에 떨어져 만들어진 행운의 안타를 뜻한다.
물론 상대팀에게는 불운의 안타!!‘
3. 박무열의 집 거실 (밤)
박무열이 유은재를 바라보다가 어쩔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박무열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유은재가 크게 심호흡을 한다.
(강종희) : 뭐하고 있었어?
유은재 : (강종희 목소리에 돌아본다)...
강종희 : (들어오다가 유은재를 보고 역시 주춤한다) 어...안녕하세요.
유은재 : (고개만 꾸벅한다)...
강종희 : 선물.. (선물 건넨다) 메리 크리스마스.
박무열 : (좀 전의 충격에서 아직 못 벗어났다) 어...
강종희 : 핸드 메이드야.
박무열 : 고맙다.
강종희 : (먼저 자백하듯) 완전 핸드메이드는 아니구, 색깔만 다시 칠했어. (씨익 웃는다)
박무열 : (곤란하다) 어...
강종희 : (그제서야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눈치 챈다. 잠깐 분위기를 살피다가) 혹시 내가 방해한거야?
박무열 : (곤란한 상황이다) 아니 그게...
강종희 : (어쩌나 잠깐 생각하다가) 아.......나중에 다시 올게.
박무열 : (말리지 않는다. 막 배웅하려는데)...
유은재 : (고개를 숙인채 으하하하하 웃는다)...
강종희 : (나가려다가 돌아본다)...
박무열 : (돌아본다)...
유은재 : (고개를 들면서) 도저히 못하겠네.
박무열 : ...?
유은재 : (강종희에게) 들어와요.
강종희 : (뭔상황이야. 박무열을 본다)...
유은재 : (핸드폰 꺼내며) 잠깐만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강종희 : (그사이 박무열에게) 뭐야?
박무열 : (자기도 모른다. 유은재를 본다)...
유은재 : (핸드폰에 대고) 동아냐? 내가 졌다. 손발이 오글거려서 더는 못하겠다. 그 돈 너 가져라.
4. 김동아네 집 거실 (밤)
외출 준비하다가 전화받은 김동아.
김동아 : 무슨 돈? 야! (듣다가)... 우리가 언제 내기를 했는데? (뚝 끊긴다) 야! (밖으로 나간다) 뭐래는 거야?
5. 박무열의 집 거실 (밤)
유은재 : (씩씩해졌다) 걸려도 이딴게 걸려 갖고...
박무열 : (뭔가 예상밖이다) 뭐냐? 너.
강종희 : (호기심을 갖고 쳐다본다) ...
유은재 : 어제 송년회 하다가 동아랑... (종희에게 설명한다) 동아라고 친구 있거든여.
내기를 했는데 그게 말도 안되는 놈에게 고백하기가 걸려갖고...10만원 날렸네.
박무열 : 그게 나냐?
유은재 : 그럼 누구겠어여?
박무열 : (울컥한다) 왜 니들 장난에 날 끼워넣어?
유은재 : 뭘 정색을 하고 그래여? 재밌자고 한건데...
박무열 : (왠지 열 받는다)...
강종희 : 그래서 박무열은 뭐라고 대답했어?
박무열 : 어? ...너 미쳤냐 그럴라 그랬지.
유은재 : 거봐. 내 저럴 줄 알았어.
강종희 : (이해가 안된다) 그런 장난을 왜 해요? 상대방에게 되게 실례지 않나?
유은재 : 에?
강종희 : 만약 박무열이 고백을 받아들이면 어떡해?
유은재 : (순간 뭐라고하지...) 종희씨가 우리 사이를 몰라서 그래여.
우리 둘이는요. 죽이고 싶은 사이거든요. (박무열에게) 그쳐?
박무열 : 그건 그런데... (아직도 아까의 여운이 조금은 있다. 진짜 장난이었나)...
강종희 : (이 두 사람은 뭘까? 번갈아본다)...
유은재 : (말 돌린다) 선물 안 뜯어봐여? 선물은 받는 즉시 뜯어보는 게 예읜데.
박무열 : (선물 뜯으며) 예의도 없는데 예의는...
오르골이 나온다.
강종희 : (안주 집어먹다가 가리키며) 여기하고 여기하고 색칠 다시 했고, 먼지도 털었어. 돌려봐. 소리도 나.
박무열 : (시키는 대로 한다. 음악이 나온다)...
강종희가 음악에 맞춰 제멋대로 춤을 춘다. 박무열이 웃는다.
강종희를 향해 웃는 박무열을 유은재가 슬쩍 본다. 강종희의 사랑스러움이 부럽다.
강종희 : (문득) 박무열은 뭐 없어?
박무열 : 있긴 있는데...
강종희 : (좋아라) 있어? 내놔.
박무열 : (방으로 들어간다)...
유은재 : (사건이 일단락됐다. 안도의 한숨쉰다)...
강종희 : (돌아본다)...
유은재 : (우물쭈물 잔을 부딪친다) 메리크리스마스.
강종희 : (잔 부딪친다)...
박무열이 나온다. 선물을 내민다. 강종희가 좋아라 포장을 뜯는다.
유은재 : 내건여?
박무열 : 넌 뭐 줬냐?
유은재 : 선물은 원래 의뢰인이 고용인에게 주는 거잖아여.
박무열 : 의뢰인에게 장난이나 치는 게...
강종희가 선물을 다 풀렀다. 향수다. 강종희가 손목에 향수를 뿌려 냄새를 맡아보고, 박무열에게도 맡게 한다.
유은재가 두 사람을 보다가 돌아보는 박무열과 시선이 부딪친다. 유은재가 외면한다.
박무열 : (오해한다) 네 선물도 있어.
유은재 : 에?
박무열 : 네 건 집으로 배달시켰어.
유은재 : 뭔데여?
6. 유은재의 집 거실 (밤)
택배 상자를 뜯는다. 한우세트다. 유창호와 은재아빠가 한우 세트를 보고 놀란다.
(유은재) : 소고기요?
7. 박무열의 집 거실 (밤)
유은재 : 크리스마스에 소고기라......
박무열 : (유은재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자) 한우야. 너 고기 좋아하잖아. 환장을 하면서...
유은재 : 한우든 미국산이든... (강종희 선물, 향수를 흘깃 본다)...
박무열 : 싫으면 내놔.
유은재 : 줬다 뺐으면...
박무열 : (입을 막는다) 야. 야!!!
강종희 : (캔맥주를 다 마셨다) 박무열. 술 내놔!!
박무열 : (냉장고로 향한다)...
8. 엘리베이터앞 (밤)
박무열이 올라감과 내려감 표시를 둘 다 누른다.
박무열과 강종희는 오수영에 관한 얘기를 나눈다.
강종희 : 학원?
박무열 : 어. 좀 됐을걸.
강종희 : 하긴 오수영은 선생님하면 잘할거야.
옛날에 나 처음 학원갔을 때도 선생님보단 오수영한테 배우는 게 더 많았으니까...
엘리베이터 도착했다.
강종희 : (엘레베이터에 타며) 나도 애들이나 가르쳐볼까?
박무열 : 뭐?
강종희 : (유은재에게) 잘가요.
유은재 : (턱으로 목례한다)...
곧, 다른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9. 엘레베이터 (밤)
예전엔 몰랐는데 작은 공간에 둘만 남으니까 박무열은 유은재가 신경 쓰인다.
유은재 : 웬일이래? 딴 때는 가든 말든 쳐다도 안봤으면서...
박무열 : 너 취했잖아.
유은재 : 이정도야 입가심이지 뭐.
박무열 : 자랑이다... (머리를 흐트러트리려다가 멈칫한다)
(인서트)
유은재 : 댁이 좋아졌어여.... 좋아해여.
박무열이 그대로 손을 거둔다. 아무렇지도 않던 유은재와의 스킨쉽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10. 오피스텔 앞 도로 (밤)
박무열과 유은재가 택시를 기다린다.
유은재는 택시가 언제올까 도로에 관심을 쏟고, 박무열은 유은재를 본다.
박무열 : (마침내) 야. 꼴통.
유은재 : 에?
박무열 : 아까 너 진짜루...
유은재 : (택시를 향해 손을 든 채로 박무열을 본다) ...
택시가 왔다.
박무열 : (택시문 열어준다) 조심해 가라.
유은재 : (택시에 타서 꾸벅 인사한다)...
11. 택시 (밤)
폭풍같은 하루였다. 유은재가 축 처져있다.
좀 전의 일이 생각난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온몸을 비틀며 소리없이 절규한다.
택시기사 : (룸미러로 보다가) 속 안 좋으세요? 잠깐 세울까요?
유은재 : (몸부림 딱 멈춘다. 세상 다산 것 같은 목소리다) 괜찮아여.
12. 유은재네 집 거실 (밤)
한우셋트를 앞에 놓고 고민 중인 유창호와 은재아빠.
유은재 : (들어오며) 다녀왔습니다.
은재아빠 : (부른다) 은재야!!
유은재 : 예.
은재아빠 : 이런게 왔다?
유은재 : (한우세트를 본다) 예...
은재아빠 : 박무열 그시키가 보냈던데?
유은재 : 연말이니까 뭐... (방으로 들어간다)...
은재아빠 : 망할 놈. 이딴걸 준다고 뭐 우리가...
유창호 : (얼른) 한운데...
은재아빠 : (움찔한다) 한우가 아니라 별거래도 그렇지. 그 인간 같지 않은 놈이 준걸 우리가....
유창호 : (등급을 확인한다) 1플러스 플러슨데...
은재아빠 : (갈등 생긴다) 그래? (깊은 한숨) 돼지갈비만 같아도 당장 버릴텐데...
유창호 : (슬쩍) 사람은 미워도 고기는 죄가 없잖아여.
은재아빠 : (솔깃하다) 대체로 그렇지?
옷을 갈아입은 유은재가 나온다.
은재아빠가 한우셋트를 냉장고에 집어넣느라 주방으로 향한다.
유은재 : (화장실로 들어가려다가 거실의 창호에게) 아빠 어떻게 됐어?
유창호 : 어?
유은재 : 고백한댔잖어.
유창호 : (주방쪽 보며) 채인 사람 얼굴은 아니잖어. 저 얼굴이...
은재아빠 : (그러고 보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유은재 : (아빠 보다가) 그래. 한 집안에 하나라도 잘돼야지... (축 늘어져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유창호 : (은재가 들어간 화장실 보며) 저 등짝은 채인 등짝인데....
13. 박무열의 집 침실 (밤)
박무열이 잠을 청한다.
(유은재) : 댁이 좋아졌어여...좋아해여.
박무열 : (돌아눕는다)...
(유은재) : 그래도 운명이 있다면 내 운명은 댁이예여.
박무열 : (일어나 앉는다) 미쳤나. 왜이래?
14. 강종희의 집 거실 (아침)
막 잠에서 깬 강종희가 나온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고양이 물그릇에 따라주다가 바닥에 뒹구는 종이쪼가리들을 발견한다.
강종희는 잠에서 막 깨난 상태라 눈을 반쯤 뜬 상태다.
강종희 : (고양이 얼굴을 붙잡고) 숏트 이게 다 뭐야? 어! 너 진짜...
(고양이 입에다가 입김을 불어넣는다. 고양이가 괴로워한다. 낄낄대며 종이를 주워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한번만 또 이러면 그땐 양파 먹고 딥키스해줄거야. 너.
화장실로 향한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쓰레기통. ‘눈이 훼손당한 박무열사진’을 강종희는 보지 못했다.
15. 박무열의 집 거실 (아침)
아줌마가 스카프를 목에 매고 있다.
초인종이 울린다. 유은재가 들어온다.
아줌마 : 어서와요.
유은재 : (꾸벅 인사한다. 아줌마 스카프를 본다)...
아줌마 : 무열이가 크리스마스라고...
유은재 : 예. 이쁘네요.
아줌마 : (기분 좋다. 주방으로 간다)...
유은재 : (한숨 쉰다) 소고기라...
박무열이 방에서 나온다. 두 사람 눈이 마주치자 웬일인지 슬며시 외면한다.
16. 타격연습실 (낮)
연말이라 조용하다. 박무열이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특이하게 중간에 리본 매듭이 온다.
박무열이 타자석에 들어선다. 배팅볼 투수가 공을 던진다. 빗맞고. 빗맞고. 급기야 헛스윙까지..
박무열 : (투수에게 손을 들며) 잠깐만...
17. 타격연습실 복도 (낮)
유은재가 박무열의 훈련을 지켜본다. 진동수가 지나가다가 잠깐 멈춰 선다.
진동수 : (박무열 타석이 끝나자 큰소리로) 무열아!! 다섯시까지야.
박무열 : 어!
유은재 : 어디 가세요?
진동수 : 영화보러요.
유은재 : (뜻밖이다) 둘이요?
18. 영화관 매표소 (저녁)
양손에 팝콘을 든 강종희와 콜라를 든 오수영이 서있다.
박무열은 표를 끊고 있고. 유은재는 뚱한 얼굴로 진동수와 기다린다.
진동수 : (유은재 옆에서) 옛날엔 넷이 자주 놀았거든요.
유은재 : (그랬거나 말거나) 에...
박무열 : (돌아보며) 꼴통. 너 영화 볼 거야?
19. 영화관 (밤)
진동수 옆에 오수영이 앉았다. 한 콜라를 나눠먹는다.
그 옆에 강종희와 박무열이 앉았다. 박무열이 들고 있는 팝콘을 강종희가 집어먹는다.
그들 뒤에 뒤에 자리. 유은재 혼자 앉아 팝콘을 씹으며 콜라를 마신다.
강종희가 박무열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박무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종희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유은재, 팝콘을 우적우적 씹는다. 옆에 남자가 돌아볼 정도다.
뭐? 유은재 째려본다. 남자. 쫄아서 스크린을 본다.
20. 더블데이트 몽타쥬
-강종희 오수영이 옛날 오락을 한다. 박무열과 진동수가 열띤 응원을 한다.
강종희가 진다. 박무열은 과도하게 분해하고, 진동수와 오수영은 과도하게 기뻐한다.
유은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본다. ‘쳇! 유치하게’
-진동수와 오수영이 한 팀. 박무열과 강종희가 한 팀이 돼서 축구게임같은걸 한다.
유은재가 그들을 본다. ‘쳇! 놀고있네’
-야구공 던지기를 한다. 공 다섯 개로 깡통을 죄다 쓰러트리면 커다란 인형을 받는 게임.
진동수가 던진 공에 깡통이 족족 다 쓰러질 때마다 주인이 턱을 떨어트리고 본다.
다음은 박무열 차례다. 더 빠르게 쓰러진다.
유은재가 그들을 본다. ‘흥!’ 코웃음을 친다. 코가 나왔다. 닦는다.
-거리
곰인형을 안은 박무열과 진동수.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오수영과 강종희.
강종희가 박무열을 보며 뭐라고 이야기한다. 박무열이 깔깔 웃는다.
강종희가 박무열 팔뚝을 ‘앙’ 문다.
장난치는 두 사람을 유은재가 따라가며 지켜본다.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려서 더 이상 비웃을 수도 없다.
21. 롯데리아 (밤)
박무열이 대여섯명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있다. 사인을 해주는 중이다.
아이들 서너명이 모자. 수첩. 되는대로 들고 기다린다.
유은재가 박무열 근처에서 경호중이다.
좀떨어진 곳 테이블, 오수영과 강종희. 진동수가 앉아있다.
진동수 : (오수영에게) 안 힘들어?
오수영 : 조금.
강종희 : (축 처졌다) 옛날엔 이렇게 놀고 춤 추러도 갔는데...
진동수 : 옛날처럼은 무리지.
강종희 : 하긴 박무열이 저렇게 유명해졌으니 이런 데도 못오겠다.
오수영 : (무의식적으로 진동수를 살핀다)...
강종희 : 진동수는 질투 안 해?
진동수 : ...?
강종희 : 전에 중학생들이 진동수한테 사인해달라고 하니까 박무열이 물 뿌렸잖아. 기억 안나?
마침, 점원이 ‘315번 손님’ 부른다.
진동수 : (일어나며 농담한다) 쟤하고 나하고 그릇의 차이가 다르지..
오수영 : (진동수를 본다. 마음이 상한걸 숨기느라 웃는다)...
강종희 : (그런가...조금 큰소리로) 진동수 냅킨 좀..
음식을 받으러온 진동수에게 유은재가 슬쩍 묻는다.
유은재 : (일르는것처럼) 근데요. 강종희씨는 나이도 어린데 왜 다 이름 불러요?
진동수 : (냅킨을 챙긴다) 종희는 좋아하는 사람은 다 이름 불러요. 나이 상관없이... 관심없는 사람한테는 깍듯하고...
(음식을 챙겨 간다)...
박무열 : (음식을 들고 가는 진동수 확인하고 마지막 사인해준다) 자. 여기까지.
사인 못 받은 아이들, 속상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무열은 테이블로 온다.
강종희 : (햄버거 나눠주며) 오수영꺼. 진동수. 박무열. (등뒤에 혼자 앉은 유은재에게) 이건 은재씨꺼.
유은재 : (받으며) 고마워요. 종희씨이!!
오수영 : (강종희에게) 영국 언제 갈거야?
강종희 : 몰라.
오수영 : 네가 모르면 누가 알어?
강종희 : 어쩌면 안 갈지도 몰라서...
박무열 : (강종희를 본다)...
떨어진 자리. 유은재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오수영 : 그래도 돼?
강종희 : 나 그림 그만 뒀어.
박무열 : (강종희를 본다)....
오수영 : (왠지 가장 놀랐다) 왜?
강종희 : (남의 얘기하듯) 그만 둔게 아니라 못그리겠어. 재능이 없어졌나봐.
오수영 : 그런지 얼마나 됐는데?
강종희 : 1년쯤.
다른 사람은 심각한데 강종희는 아무렇지 않다. 열심히 햄버거를 먹는다.
강종희 : (신기한 일이라는 듯) 근데 있잖아. 대신 나 되게 건강해졌다. 신기하지?
진동수는 박무열을 슬쩍 본다. 박무열은 햄버거를 먹는다. 맛도 못 느끼면서...
오수영은 강종희를 본다. ‘정말인가?’
강종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22. 진동수의 차안 (밤)
진동수는 운전 중이고 오수영은 조수석에 앉았다. 둘 다 말이 없다.
오수영이 조용히 한숨을 쉰다.
진동수 : 왜 그래?
오수영 : 응...?
진동수 : (뭐라고 하려다가) 아니야.
오수영 : (다시한번 조용히 한숨 쉬더니) 내가 그림 관둔거...사실은 종희때문이었어.
진동수 : 어?
오수영 : 어떻게 보면 엄마 때문이고. 어떻게 보면 종희때문인데... 종희가 중3때 나 다니는 학원에 처음 왔거든.
걘 그때부터 그림 시작한 거니까 되게 늦은거구, 난 유치원 때부터 엄마한테 배운 그림이구...
그때두 종희 그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어. 대회 나가면 상 받고 그러는 건 난데...난 알고 있었어...곧 역전될거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꼈으면 모르겠는데...엄마가 종희 그림을 본거야. 엄마도 나랑 똑같이 느낀거구....
내가 못참겠는건 그거였어. 엄마 눈에도 그게 보인 다는 거...
진동수 : (분위기 가볍게 하려고) 난 이제까지 나 땜에 관둔 줄 알았는데...
오수영 : 억울해?
진동수 : 그래. 억울하다.
오수영 : (웃는다) 오빠 안 만났으면 그렇게 몇 년 더 끌려 다녔을거야. 하고싶은게 없으니까 시키는거라도 해야지 이러면서...
23. 도로 (밤)
진동수의 차가 지나간다. 차창으로 보이는 진동수와 오수영은 다시 다정해보인다.
24. 벨르 에포크 (밤)
주방안. 김동아가 귤을 까며 한쪽 테이블을 본다.
여자 두 명이 술을 마신다. 나이는 20대 후반쯤. 그중 눈화장이 진한 여자가 서윤이쪽을 자주 바라본다.
서윤이는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김동아. ‘오호’ 드디어 뭔가 있구나 싶다.
눈화장이 진한 여자가 화장실을 가는척, 지나가며 서윤이 앞에 접은 메모지를 내려놓는다.
서윤이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여자를 흘깃 보고 메모를 확인한다.
김동아. 드디어 잡았다!!!!
서윤이가 메모지를 움켜쥐더니 쓰레기통에 버린다.
서윤이가 칵테일을 서빙하는 동안, 김동아가 재빨리 나와 쓰레기통 안에서 메모지를 집어 주머니에 스윽 넣는다.
25. 김태한의 차안 (밤)
메모지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김동아 : (메모지를 흔들며....말도안돼)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예여.
김태한 : (운전하며 김동아를 흘깃 본다)...
김동아 : 서윤이를 관찰한지 일주일동안 접근이라고는 이런 것 밖에 없으니...
요즘은 여자들은 왜 이렇게 적극적인 걸까요? 인류의 짝짓기 환경에 변화가 생긴 걸까요?
김태한 : (차를 세운다) 다 왔습니다.
김동아 : (안전벨트 푼다...) 아참... (가방에서 카드를 꺼낸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김태한 : (생각 못했다) ...고맙습니다.
김동아 : (혼자 흐뭇하다) 제 사진으로 만들었거든요. 비키니.
김태한 : (본다)...
김동아 : 책상 앞에 꽃아 놓고 봐도 돼요. (내린다) 안녕히 가세요.
김태한. 김동아가 집안으로 들어가는거 확인하고 카드 봉투를 연다.
비키니라...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본 다음 카드를 꺼낸다.
여섯 살쯤 여자아이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v자를 그리며 서있는 사진이 붙어있고.
그 테두리에 연하장에 흔히 보이는 장식이 되어 있다.
뒷장에 근하신년이라는 한자.
‘오늘 하루 행복하셨습니까? 새해든 아니든 하루하루 행복하세요’ -당신의 동아-라는 서명이 보인다.
김태한의 입술끝이 약간, 아주 약간 올라가는 것도 같다.
26. 유은재의 방 (밤)
유은재가 스킨로션을 바르고 침대에 앉는다. 노크와 거의 동시에 김동아가 들어온다.
김동아 : (카드 준다) 새해 복많이 받아.
유은재 : 올해는 뭐냐?
김동아 : 비키니.
유은재 : 김동아. 점점 과감해진다.
김동아 : 새해엔 문란해질거거든.
유은재 : 서윤이는 어때? 뭣 좀 알아냈어?
김동아 : 그 자식 여자한테 인기 되게 좋아.
유은재 : 또.
김동아 : 사과도 되게 잘 깎고.
유은재 : 또.
김동아 : 손가락도 되게 길어.
유은재 : 반했냐?
김동아 : 잠깐 흔들리긴 했는데 내 마음은 이미 김실장꺼라서...
유은재 : 김실장이랑 합의는 된거냐?
김동아 : 조만간 합의 볼거야. 너는? 고기자랑 뭣 좀 있어?
유은재 : (아. 얘는 오해중이지)...
김동아 : (유은재가 말이 없자) 어떻게 좀 해봐라. 카드는 보냈어?
유은재 : ...
김동아 : 네가 무슨 초절정 꽃미녀라고 앉아서 사랑을 기다리냐? 끊임없이 찔러도 될까 말까구만.
유은재 : (한숨을 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김동아 : 기적같은 일이지.
유은재 : (본다)...
김동아 : (헤헤 웃는다) 책에 써있어...
27. 대학교 주차장 (낮)
승합차 문이 열린다. 대학 야구부원들이 공. 글러브, 야구배트등 장비를 나른다.
진동수가 제대로 배달된 건가 전표와 물건을 확인한다.
28. 야구부원실 (낮)
박무열과 모교 감독(50대)이 이야기중이다. 유은재는 한쪽에 서 있다.
선수들이 장비를 한쪽 구석에 쌓아놓는다.
박무열 : 내가 졸업하면서 분명히 그랬죠. ‘FA되면 크게 한방 쏜다.’ 감독님 그때 안 믿었죠?
감독 : 지명도 간신히 받은 놈 말을 어떻게 믿냐?
박무열 :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는데 아직도 안 짤리는거 보면 뭐 있어 진짜.
감독 : (박무열 엉덩이를 툭 찬다) 이 자식이... (하다가 창밖 마지막 짐을 들고 오는 진동수를 본다) 동수 매니저일 본다며.
박무열 : 예...
감독 : 1차지명 받은 놈은 2군을 들락거리다가 조기은퇴하고... 야구 참...알수 없다 진짜...
29. 대학 운동장 (낮)
대학 야구부원들이 러닝중이다.
박무열과 진동수가 담벼락에 기대서서 후배들의 러닝을 지켜본다.
박무열 : 저기 나무 있었잖아.
진동수 : 그랬나?
박무열 : 기억 안나? 그 밑에서 형수가 싸온 김밥 먹고 그랬잖아.
진동수 : (기억난다) 맞다.
두 사람이 추억의 장소를 본다.
진동수 : 어떡할거냐?
박무열 : 어?
진동수 : 종희말이야. 너 헤어져있는 내내 종희 못 잊었잖아.
박무열 : 못 잊기는...
진동수 : 내가 널 모르냐?
박무열 : (농담한다) 형은 날 몰라. 난 깊이를 모르는 남자거든.
진동수 : 깊이가 없는 남자겠지. 얕디얕은 놈.
낄낄대는 두 사람.
뒤쪽. 은재가 양손에 커피를 들고 다가온다.
진동수 : 종희 우울증 치료된거면 너네 문젠 해결된거잖아.
유은재 : (뒤에서 쫑긋한다. 무슨 얘긴가) ...?
진동수 : 내가 보기에도 옛날보단 많이 좋아진 거 같고. 너도 옛날의 박무열은 아니구.
박무열 : (뒤에 와있는 은재를 발견한다. 커피를 하나 받는다)...
진동수 : 고민할거 뭐 있어? 두 사람 알만큼 알고... (그제서야 은재 보고, 커피받으러 손 내밀며) 빨리 빨리 진도 나가.
유은재 : (이런 미운 소릴 하다니...진동수에게 주려던 커피를 원샷해버린다)...
진동수 : (내밀었던 손이 부끄러워진다)...
30. 오수영의 집 주방 (낮)
오수영이 핸드폰으로 요리 레시피를 확인한다. 마지막 장식을 하고, 요리를 식탁위에 내놓는다.
일단 요리의 모양새가 훌륭하다.
강종희 : (젓가락부터 들며 감탄한다) 와... 오수영 옛날에는 라면도 못끓였잖아.
오수영 : (거실의 진우영에게도 한 접시 갖다 준다) 닥치면 다 하게 돼.
강종희 : 야구 선수 부인들은 이런 거 다 해?
오수영 : (다시 식탁 쪽으로 온다)...
강종희 : 난 요리 못하는데... (먹는다)...
오수영 : 그림...정말 그만 둘거야?
강종희 : 그만둔 게 아니라 못 그리는 거라니까.
오수영 : 그렇게 쉽게 포기가 돼?
강종희 : (아무렇지도 않지만) 쉽게? 1년을 애썼는데?
오수영 : .....앞으로 어쩔거야?
강종희 : 전에 내가 말했잖아. 하고 싶은 게 두 가지가 있다구. 하나는 그림그리는 거. 하나는 박무열 와이프로 사는 거.
오수영 : ...
강종희 : (먹으며) 야구선수 부인은 어때? 재밌어?
31. 벨르 에포크 (밤)
주방의 김동아가 과일을 닦으며 슬쩍 밖을 본다. 서윤이가 서빙하느라 홀로 나가고 있다.
김동아가 조용히 쪽방으로 들어간다.
32. 벨르에포크 쪽방 (밤)
종업원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물건을 놓아두는 곳이다.
김동아가 밖의 상황을 살피며 들어온다. 서윤이의 배낭을 뒤지기 시작한다. 책이 몇 권, mp3, 노트북. 필통, 핸드크림이 전부다.
책속에 뭐가 있을까 싶어 책장을 후루룩 넘겨본다.
33. 벨르에포크 (밤)
서빙을 마친 서윤이가 주방 쪽으로 온다. 김동아가 없다.
쪽방 쪽을 본다. 그쪽으로 다가간다.
34. 쪽방 (밤)
책속에도 아무것도 없다. 혹시 이중 바닥인가 싶어 배낭의 표면을 쓸어본다. 없다.
그때 문이 열린다. 정신없이 뒤지고 있던 김동아. 문 뒤에서 숨을 멈춘다. 큰일 났다.
가방의 물건들은 죄다 나와 있고. 변명할 거리도 없다. 그때...
(마담) : 윤이 학생.
서윤이 : (문손잡이를 잡은 채 돌아본다) 예.
(마담) : 누가 찾는데....
서윤이 : 예!!
서윤이 나간다.
김동아, 죽을 뻔했다. 숨을 천천히 몰아쉰다.
35. 벨르 에포크 (밤)
서윤이가 나온다. 마담이 가리키는 곳을 향한다. 고기자가 바에 앉아 씨익 웃는다.
잠시 후, 쪽방에서 나온 김동아가 서윤이의 뒷모습을 보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고기자가 김동아를 슬쩍 보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다.
고기자가 수첩을 뒤집어 놓으며 서윤이를 본다.
고기자 : 오랜만이야.
서윤이 : (잠깐 날카로워지지만 곧 웃는다) 예. 잘 지내셨어요?
고기자 : 맥주한잔.
서윤이 : (맥주 따른다) 어쩐 일이세요?
고기자 :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고 겸사겸사...
서윤이 : (웃는다)...
고기자 : 돈 벌었잖아. 놀러도 가고, 쉬기도 하고 그러지. 곧바로 알바야?
서윤이 : (잔받침 깔고 맥주 놓아준다) 학비 몇 번 내면 없어질텐데요.
고기자 :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그 학벌에 왜 과외를 안 해? 그게 훨씬 짭짤할텐데...
김동아. 주방에서 사과를 까며 두 사람을 본다. 웃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느껴진다. 뭔가 있다고 확신한다.
서윤이 : 과외요. 1학년 때 몇 번 했었는데, 못하겠더라구요. 부자집의 그... 달착지근한 공기 때문에...
고기자 : 응?
서윤이 : (웃고 만다) 별거 아니예요. 그냥 몸을 움직이는 쪽이 편해서요.
고기자 : 뭐 판검사되면 평생 이런 일 못할테니까....
대화를 끝낸다. 고기자가 맥주를 마시며 수첩의 메모를 확인한다.
서윤이는 마른행주로 컵을 닦는다.
수첩 안에 끼워져있던 사진이 팔랑 바 안으로 떨어진다.
서윤이가 줍는다. '그것은 눈을 훼손당한 박무열의 사진‘이다.
고개를 빼고 쳐다보던 김동아도 사과를 놓칠만큼 놀란다.
서윤이가 아주 잠깐 멈칫하지만 고기자에게 건넨다.
고기자 : (사진 받으며) 고마워.
뭔가 있다. 김동아가 자세히 듣기위해 주방에서 나오다가 마침 마담 눈에 띈다.
마담 : (문밖에서) 동아씨. 빗자루 갖고 이리 좀 와.
김동아 : (하필) 예? 지금요.
마담 : 빨리...
김동아. 하필 이런 때. 할 수 없다. 빗자루를 찾아 밖으로 나가며 고기자와 서윤이를 돌아본다.
36. 벨르 에포크 앞 (밤)
가게 앞에 쓰레기가 날리고 있다.
마담 : (팔짱끼고 선채로 지켜보며) 이런 건 알아서 해야지..일일이 시켜야 되나?
김동아 : (안쪽을 흘깃 본다. 어쩔 수 없다. 맹렬하게 비질한다)...
37. 벨르 에포크 (밤)
서윤이와 고기자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서윤이 : (잔을 닦으며 마침내 픽 웃는다)..
고기자 : ...?
서윤이 : 고기자님이었어요?
고기자 : (긴장을 숨긴다) ...?
서윤이 : (할일 하면서 시선은 자기 손끝에 둔 채로) 누가 보냈나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왜 하필 나한테 보냈어요?
고기자 : ...
서윤이 : 아니면 여러사람한테 보낸 건데 내가 걸린 건가?
고기자 : ...
서윤이 : (고기자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그제서야 자기가 너무 앞서갔나 생각한다) ...?
고기자 : 그러니까 너도 이걸 (사진) 받았는데 누가 보냈는지는 모른다.
서윤이 : (어쩌나 싶다. 애매하게 웃는다)...
고기자 : 거기 뭐라고 써 있었냐?
서윤이 : (고기자를 보며 웃기만 할뿐)...
고기자 : 말안해도 돼. 이미 알고 있으니까. 강종희에 대해 써있었겠지.
김동아가 들어온다. 서윤이, 표정 감추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김동아 두 사람을 스윽 본다. 고기자가 계산하고 일어난다. 김동아가 돌아본다.
38. 커피숍 (밤)
김동아가 들어온다. 서둘러 김태한을 찾는다.
김동아를 본 김태한이 책을 덮는다. 매니지먼트에 관한 전문서적이다.
김동아 : (자리에 앉자마자) 잡았어요.
김태한 : 예?
김동아 : (급하다) 좀 전에 어떤 남자가 와서 서윤이랑 한참 얘기하고 갔는데요.
그 사진을 갖고 있었어요. 눈이 뽕뽕 뚫린 박무열 사진.
김태한 : ...
김동아 : 볼펜 줘봐요.
김태한 : (자켓에서 볼펜 뺀다) ....
김동아 : (빼앗다시피 받아서 냅킨에 그린다) 카메라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어떻게 생겼냐면요. 얼굴이 길쭉하고. 눈이 옆으로 길고. 입이 커요. 나이는 30대 초반... (하다가 얼굴이 굳는다)...
김태한 : 왜요?
고기자가 들어와 둘러본다.
김동아 고기자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얼른 김태한 옆자리에 가 등돌리고 앉는다.
김동아 : (낮은소리) 그 남자예요.
김태한 : (돌아보려한다) 예?
김동아 : (김태한이 못 돌아보게 얼굴을 잡는다. 다급하다) 돌아보지 마요. 내 뒤를 쫓아왔나 봐요.
김태한 : ...
김동아 : (슬쩍 본다)
고기자 : (이쪽으로 온다)...
김동아 : (큰일났다. 김태한의 몸을 방패삼는다. 다급하다) 나한테 키스하는 척해요.
김태한 : 예?
김동아 : (김태한의 머리를 억지로 잡아당기며) 영화도 안봤어요? 빨리...
김태한 : (김동아 힘에 끌려가지 않을려고 의자 등받이를 잡고 버팅기는데)...
김태한 뒤. 고기자가 갸웃하며 서있다.
김동아 : (고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김태한 가슴에 이마를 부딪치며 탓한다) 들켰잖아요.
고기자 : 김실장?
김동아 : (뭐야?)...
김태한 : 소개하죠. 김동아씨. 고재효기자님.
김동아 : (뭐야) ...?
고기자 : (아는 척한다) 아까...바에서 맞죠?
김동아 : (김태한과 고기자를 번갈아본다) ...어떻게 된 거예요?
김태한 : 고기자님도 서윤이 뒤를 캐고 있길래, 협력하기로 한겁니다.
김동아 : 에?
김태한 : (고기자에게) 어떻게 됐습니까?
고기자 : (자리에 앉으며 냅킨의 그림을 본다) 서....
김동아 : (고기자가 말하기 전에) 나한테는 왜 말안해줬어요?
김태한 : 갑자기 결정하는 바람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고기자 : (그림 가리키며) 이게 뭐야? 사람이야?
김동아 : (냅킨을 구겨버린다) 쳇 마음만 있어봐 어떡하든 연락하지. 텔레파시도 있고..
김태한 : (고기자에게) 서윤이하고 만난 건 어떻게 됐습니까?
고기자 : (본론이다) 우리 예상이 맞았어. 서윤이도 사진을 받았어.
39. 버스 안 (밤)
뒷자리에 앉은 서윤이가 책과 표지사이에서 사진을 꺼낸다. ‘눈이 뽕뽕 뚫린 박무열의 사진’이다.
다시 사진을 넣고 책을 덮는다. 생각에 잠긴다.
40. 커피숍 (밤)
김동아는 좀 삐진 사태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기만 할뿐 끼어들지 않는다.
김태한 :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는 게 확실합니까?
고기자 : 어. 서윤이는 처음에 그 사진을 내가 보냈다고 착각했어.
김태한 : (생각한다)...
고기자 : 범인은 서윤이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김태한 : ...?
고기자 : 며칠 지켜봤다며? 겉으로 보이는 서윤이는 어떻다고 생각해?
김동아 : ...
김태한 : (김동아가 말 안하자) 성실하고, 똑똑하고...
고기자 : (뒷말을 잇는다) 예의바르고, 도덕적이고 열심히 살려는 명문대생.
나도 녹음 테잎을 듣기 전까진 서윤이가 그런 말을 했을거라고 상상도 못했어.
근데 범인은 서윤이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았을까?
김태한 :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이다.
고기자 : 그렇다면 아직도 서윤이 주변에 있을 거야.
둘 다 말이 없다. 김동아는 여전히 삐져있다.
김태한 : 그럼 고기자님은 앞으로 어떡할 생각입니까?
고기자 : 난 일단 꽃뱀 쪽을 다시 확인해보고...
김동아 : (에엣) 고기자님?!!
고기자 : (왜이래?) 예?
김동아 : 그.... 그 ....고기자... 유은재...그 고기자?
고기자 : (왜이래. 김태한을 본다) ...?
41. 구단 휴게실 (밤)
유은재가 인상을 쓴다. 뭔가 도저히 참을수 없다는 표정이다.
마침내 유은재가 하품을 한다.
지나가던 송현진 조현우와 눈이 마주친다. 송현진은 킥킥 웃고, 조현우는 꾸벅 인사한다.
유은재도 얼른 인사한다. 잠을 쫓기 위해 스트레칭을 한다.
42. 락커룸 (밤)
운동을 끝낸 박무열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조현우와 송현진이 들어오며 인사한다.
송현진 : (옷갈아 입으려다가) 선배님.
박무열 : 어?
송현진 : (왠지 키득대며) 선배님 경호원이요. 애인 있어요?
박무열 : 꼴통? 아니 없을걸. 왜?
송현진 : (킬킬댄다) 현우가 자기 스타일이라고...
조현우 : (송현진 엉덩이를 걷어찬다)...
박무열 : (어이없다) 진짜루? 꼴통이? 왜?
조현우 : 아니 그냥...귀엽잖아요.
박무열 : 귀여워? 어디가?
조현우 : 웃을 때 귀엽잖아요.
박무열 : (흉내 낸다) 음하하하 이게?
조현우 : (멋적어 웃는다)...
송현진 : 그렇게 웃을 때마다 아주 죽겠대요.
박무열 : (참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나간다)...
조현우 : 선배님!!
박무열 : (돌아본다)...
조현우 : (부끄럽지만 할 말 다한다) 좀 물어봐주세요. 나 어떻게 생각하냐구?
43. 복도 (밤)
박무열이 나온다. 늦은 시간이라 조용하다.
휴게실에 유은재가 혼자 기다리고 있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문득 유은재가 씨익 웃는다. 박무열이 왜 저러나 지켜본다.
44. 휴게실 (밤)
유은재는 강종희의 웃음을 생각해본다.
(인서트)
-무표정하다가 갑자기 깔깔깔 웃는 강종희.
유은재. 거울을 보며 인상 쓰다가 갑자기 깔깔깔 웃는다. 이게 아닌데... 다시한번 해본다.
45. 복도 (밤)
박무열이 유은재의 생쇼를 본다. 참 신기한 생물이다.
46. 휴게실 (밤)
강종희의 웃음을 흉내내던 유은재. 이번엔 춤이 생각난다.
(인서트)
오르골 음악에 맞춰 제멋대로 춤추던 강종희.
유은재가 주변을 본다. 복도...박무열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숨긴다.
유은재가 강종희 춤을 흉내내본다. 형편없다.
47. 복도 (밤)
박무열이 슬슬 웃음이 난다. ‘뭐하는 거냐?’
박무열은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히 귀여워서 웃는 웃음이다.
락커룸쪽에서 나온 조현우와 송현진이 이쪽으로 온다.
박무열 : (조현우를 보자마자) 야 꼴통. 그만하고 가자.
유은재 : (완전 놀란다)...
박무열 : (먼저 나간다)...
유은재 : (깜짝 놀랐다. 따라 나간다)...
48. 커피숍 (밤)
김동아는 고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호기심 만빵이다.
고기자와 김태한은 사건에 대해 논의 중이다.
고기자는 김태한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가끔 김동아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김태한 : 저는 서윤이의 학교 기록을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고기자 : (메모하고 수첩을 접는다) 어...
김태한 : (슬슬 끝낼까) 더 할 얘기 없으면...
김동아 : (얼른) 저요. 질문있어요.
김태한 : (본다)...
김동아 : 고기자님은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고기자 : 에?
김동아 : 그러니까 어떤 여자 스타일 좋아하냐구요?
김태한 : (김동아를 본다)...
고기자 : (왠지 김태한 눈치를 본다) 그건 왜요?
김동아 : 이제 한팀이라면서요. 서로에 대해 알아야죠.
고기자 : 아니 아는 건 아는 건데...
김동아 : 섹시한 여자. 귀여운 여자? n 솔직한 여자. 내숭떠는 여자?
고기자 : (일단 대답한다) 난 쫌 보수적이라서, 나한테 맞춰주는 여자 좋아해요.
김동아 : 예를 들면?
고기자 : (김태한 눈치를 또 본다) 그니까 나한테 잘못이 있더라도 내가 막 화 났을 땐 좀 참아주다가
나중에 차분히 얘기할 줄 아는 여자?
49. 박무열의 거실 (밤)
유은재 : (들어오며 버럭) 웃기시네.
박무열 : 맞잖아.
유은재 : 내가 언제 (흉내 내며) 이랬어요. (춤추며) 이랬지.
박무열 : 뭐가 다른데?
유은재 : (입으로만 욕하며 실내 안전을 확인한다) 망할...
50. 커피숍 (밤)
김동아 : 참는 여자라...그건 좀 곤란한데...
김태한 : (불쑥) 전 솔직한 여자가 좋습니다. 화나면 화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김동아 : (관심 없다) 예에. 그러시구요. (곧바로 고기자에게) 고기자님. 터프한 여자는 어때요?
고기자 : (김태한을 흘깃 본다)...
김태한 : (이 남자. 처음으로 미묘한 패배감을 느낀다)...
51. 박무열의 집 거실 (밤)
유은재, 실내의 안전을 확인했다. 박무열은 물을 마신다.
유은재 : (아직 툴툴댄다) 그럼 내일 열시 반까지 오면 되죠?
박무열 : 어...
유은재 : (신발 신는다)...
박무열 : (보다가 불쑥) 너 조현우 어떻게 생각하냐?
유은재 : 조현우요? 좋은 3루수죠. 어깨도 좋구. 타격만 좀 보완하면...
박무열 : 그런 거 말고...
유은재 : 그럼 뭐요?
박무열 : (잠깐 생각해본다) ...됐다.
유은재 : (뭐야. 돌아서는데) ...
초인종이 울린다. 인터폰 모니터에 강종희가 보인다.
강종희가 한손에는 와인을 한손에는 고양이를 안고 들어온다.
강종희 : (고양이 내려놓으며) 이 돼지. 너무 무거워. (신발신은 유은재 보며) 가는 거예요?
유은재 : (와인과 강종희를 번갈아본다) 에...?
박무열 : (와인을 받는다) 뭐야?
강종희 : 면세점에서 산건데 먹어치우려고...
박무열 : (와인을 보다가 문득 은재에게) 안가냐?
유은재 : 가여...
강종희 : 안녕히 가세요.
유은재 : (가고 싶지 않다) 에....
할수없이 나간다.
52. 오피스텔 복도 (밤)
유은재가 나온다. 문을 닫자마자 아무렇지 않던 표정 다급해진다.
유은재 : (문짝을 보며) 이게 뭐하자는 수작이지? 한밤중에 술을 들고 찾아와서 뭐? 육탄공세야?
동방예의지국에서 이게 말이 돼? (안에서 소리가 들리자 얼른 문에 귀를 갖다 댄다)...
53. 박무열의 집 거실 (밤)
박무열이 와인 잔을 준비하는 동안 강종희가 와인을 따려한다.
박무열 : (와인 받아들며) 이리 줘.
고양이가 문 앞에서 야옹거린다.
박무열 : 쟤 왜 저래? (인터폰 모니터를 켜본다)
모니터에 나오는 화면, 유은재가 문 앞에 바짝 서있다.
박무열 : 꼴통. 뭐하냐?
54. 오피스텔 복도 (밤)
유은재 : (깜짝 놀란다. 내가 보이나)...
(박무열) : 뭐하냐구?
유은재 : (문에 뭘 닦는 시늉하며) 예? 여기 뭐가 붙었어여.... 됐다. 누가 이런걸... 나 가여.
아무렇지도 않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55. 박무열의 집 거실 (밤)
박무열 : (피식 웃으며) 저 꼴통!! (돌아온다)....
강종희 : (냉장고쪽으로 가며) 안주 뭐있어. 치즈있어?
박무열. 와인을 따기 시작한다. 펑! 소리 들린다.
56. 버스안 (밤)
맨 뒷자리에 앉은 유은재. ‘이것저것 이상한 상상’하느라 괴롭다.
앞자리. 남녀커플이 꼼지락꼼지락 키득대며 애정행각중이다.
유은재 : (생각할수록 울컥) 뭐하자는 거야 진짜.
바짝 붙어있던 남녀가 움찔한다. ‘설마 우리보고?’
유은재 : (허공을 노려보며) 문란해. 너무 문란해...
남녀. 눈치 보며 떨어져 앉는다.
57. 박무열의 집 거실 (밤)
고양이가 육포를 먹고 있다. 박무열과 강종희가 고양이를 지켜본다.
박무열 : 몇 년 키웠어?
강종희 : 6년 반.
박무열 : 고양이 좋아했었나?
강종희 : 아니... 쇼트가 좋은거야.
박무열 : (테이블위의 육포를 찢어 고양이에게 내미느라 몸을 숙인다. 그 바람에 목걸이에 걸린 반지가 옷밖으로 나온다)
그럼 나도 고양이 키워볼까?
강종희 : (반지를 잡는다) 이거...
박무열 : 어...
강종희 : 아직도 갖고 있었어?
박무열 : (목걸이를 풀러 반지를 빼준다)...
강종희 : 근데 왜 내거까지 갖고 있어?
박무열 : 네가 돌려줬잖아.
강종희 : 내가? 아니야. 나 그냥 잃어버렸는데..
박무열 : 무슨소리야. 우편함에 넣어놓구선.
강종희 : 아닌데...
박무열 : 맞아.
강종희 : (확신할 수 없다) 그땐 뭐...내가 내 정신이 아니긴 했는데... (반지를 껴본다)...
다시 반지를 끼는 강종희를 지켜보는 박무열.
강종희 : (박무열을 본다)...
박무열 : (슬쩍 시선 돌린다) 그림 안 그리면 뭐할 거냐?
강종희 : 글쎄...
박무열 : (중얼거린다) 강종희가 그림 그리는 게 싫어질 때가 있구나...
강종희 : 박무열은 야구 관두고 싶었던 적 없어?
박무열 : 딱 한번.
강종희 : (본다. 언제냐는 듯) ...?
박무열 : 네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강종희 : 힘들었어?
박무열 :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강종희 : (박무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여기서 기분 좋으면 내가 변탠거지?
박무열 : 넌 어땠는데? 나랑 헤어지고서?
강종희 : (박무열을 본다) 어땠을 것 같애?
박무열과 강종희가 서로를 바라본다.
야밤에 와인 몇 잔, 부분 조명, 예전에 사랑하던 두 사람, 두 사람 분위기에 떠밀린다.
박무열이 와인잔을 내려놓고 강종희에게 다가간다. 강종희가 들고 있는 와인잔이 흔들린다.
박무열이 강종희에게 입을 맞춘다.
58. 유은재네 집 마당 (밤)
유은재가 샌드백을 친다. (* 잘 쳐도 됩니다. 은재는 경호원이 되기위해 이것저것 많이 배웠습니다. 실력만큼 치세요)
망상을 막기 위해 몸을 고달프게 하는 중이다.
59. 강종희의 집 거실 (밤)
강종희가 들고 있는 와인잔이 넘칠 것 같다. 박무열이 강종희가 들고 있는 와인잔을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박무열이 다가가자 강종희가 소파위에 눕는다. 박무열이 그 위로 다가간다.
강종희가 박무열의 셔츠 단추를 풀르는 동안, 박무열의 손이 강종희 윗옷 속으로 들어간다.
고양이가 기분나쁜 듯 으르렁댄다.
60. 유은재네 집 마당 (밤)
유은재가 샌드백을 두드린다. 김동아가 들어온다.
김동아 : 얘가, 얘가... 너 이러면 안돼.
유은재 : (숨을 몰아쉬며 김동아를 본다) ...
김동아 : 고기자의 스트라이크 존은 신사임당인데, 넌 이런 걸 두드리면 되겠니? 그러니까 번번이 헛스윙이지.
유은재 : (주먹을 멈추고 호흡한다)...
김동아 : 고기자는 보수적이랜다. 조용조용하고, 차분차분하고, 그런 여자 좋아한댄다.
유은재 : (김동아를 본다. 얘 오해를 언제 풀어야 되나)...
김동아 : 어쩌겄냐?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잔데...네가 바뀌어야지.
유은재 : 나도 바꾸고 싶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그대로 바뀌고 싶은데...
김동아 : 그래. 일단 자수에 뜨개질부터 하자.
유은재 : 근데...한편으론 날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면 안되나 싶기도 하고...
김동아 : (쓸쓸해 보이는 유은재를 본다) ...그럼 고기자 포기하고 그런 사람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든가.
유은재 : 나타날까?
김동아 : 장담은 못한다!.
유은재 : (픽 웃으며 돌아선다)...
61. 박무열의 집 거실 (아침)
박무열이 막 나간다. 아줌마. 배웅하고 돌아선다.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 위를 치운다. 와인잔이 두개다. 하나의 와인잔에는 립스틱이 묻어있다.
아줌마 와인잔을 싱크대로 가져간다.
62. 엘리베이터안 (아침)
유은재와 박무열이 탄다.
유은재가 박무열을 흘깃 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무열 : 뭘 봐.
유은재 : ....아니예여. (지하 1층 누르며) 차. 지하 1층에 있져?
박무열 : (지하 1층 지우고 1층 누른다) 로비부터 갔다가...
63. 1층 엘레베이터앞 (아침)
박무열과 유은재가 나온다. 로비 쪽으로 가려는데.
(강종희) : 박무열!!
강종희가 다른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
박무열과 유은재가 그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그사이 강종희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다.
유은재, 강종희에게 목례하고 문 옆에 선다.
강종희 : 몇 층?
박무열 : 지하 1층.
강종희 : (지하 1층을 누른다)...
유은재가 숨을 멈춘다. 강종희 손가락의 반지를 본다. 충격이 너무 커서 얼만큼 충격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박무열 : 그게 아직도 있단 말야?
강종희 : 봄에 허문다는데...
유은재는 귀가 웅웅거려서 그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박무열과 강종희가 내린다.
유은재는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있다.
64. 지하 1층 엘리베이터앞 (낮)
박무열 : (내린다) 어쩌다 생각났어?
강종희 : (내린다).. 오수영이랑 통화하다가...
박무열 : (말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그때 형이랑 형수는...
유은재는 멍하니 엘리베이터 안에 남아있고 문이 닫히려 한다.
박무열이 잽싸게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다시 열린다.
박무열 : 꼴통. 뭐하냐?
유은재 :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박무열과 강종희를 번갈아보고 말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박무열 : (유은재를 본다. 쟤 왜 저래?)...
65. 벽화 앞 (낮)
색이 바랜 벽화가 있는 곳이다. (가능하다면 곧 허물어질 지역에 서 있다)
박무열과 강종희가 나란히 걸어온다. 추억을 더듬는 그들은 전보다 더 다정해보인다.
그 뒤를 유은재가 따라온다.
강종희 : (기억을 더듬는다) 내가 담당한 쪽이 어디지?
박무열 : (그림을 전체적으로 본다) 이런 그림이었어?
강종희 : (뭔가를 찾는다) 이쪽 어딘데....
유은재는 그들과 좀 떨어져서 경호중이다.
유은재는 얼핏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분명히 슬퍼하고 있다.
강종희 : 뭐 기억나는 거 없어?
박무열 : 네가 한밤중에 불러냈잖아. 나 씻고 잘려고 하는데... 그래서 내가 손전등 갖고 나온 건 기억나.
강종희 : 맞다. 박무열이 손전등으로 내 다리만 봤지.
박무열 : 보라고 치마 올려준 건 누군데... (큭큭 웃다가 생각났다) 아. 내가 네 치마 밟았었다.
강종희 : 쭈그리고 앉았었나?
박무열과 강종희가 쭈그리고 앉는다. 가끔 지나가던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본다.
유은재가 두 사람을 본다. 유은재는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
박무열 : 여깄다.
강종희 : (박무열을 밀어내듯 붙으며) 봐봐.
그들이 찾은 건 벽화 아래쪽에 몰래 찍어넣은 손바닥 자국이다. 두 사람이 손바닥을 맞춰본다
강종희 : 여기 뭐라고 써있는데...
손바닥 자국 옆에 글씨. 강종희 잘보이도록 먼지를 턴다.
유은재가 그들을 본다.
66. 유은재가 보는 박무열과 강종희의 몽타쥬
한밤중. 8년전 박무열과 강종희가 몰래 온다.
현재의 유은재는 그 자리에 서서 과거의 박무열과 강종희를 보고 있다.
과거의 박무열과 강종희는 유은재를 보지 못한다. (과거의 그들은 컬러고, 현재의 유은재가 오히려 흑백이었으면 좋겠다)
벽화 제작이 거의 끝난 상황이다. 늦가을쯤이다.
종아리까지 오는 치마를 입은 강종희는 한쪽에 보관된 물감통을 꺼내고,
박무열은 손전등으로 비춰주다가 은근슬쩍 종아리를 비춘다.
그걸 눈치챈 강종희가 볼테면 보라는 듯 치마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려준다.
박무열이 만지려하자 강종희가 찰싹 때린다.
둘이 벽화 아래쪽에 쭈그리고 앉는다. 강종희가 손바닥에 물감을 칠해 찍는다. 박무열도 똑같이 한다.
박무열은 뭔가 아쉽다. 붓으로 뭐라고 쓴다. ‘나는 너를 만나 사랑하기 위해 태어...’ 까지 썼는데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비가 달려온다.
박무열이 강종희 손을 잡고 도망간다.
현재의 유은재가 깔깔대며 도망가는 젊은 두 사람을 본다.
67. 벽화 앞 (낮)
‘나는 너를 만나 사랑하기위해 태어...’라는 글귀. 박무열이 그 글귀를 바라본다.
강종희 : 이거 진짜야?
박무열 : ...?
강종희 : 날 만나 사랑하기위해 태어났어?
박무열 : (농담한다) 태어났을까? 그렇게 쓸려고 했어.
강종희 : (웃는다)...
박무열 : (일어난다) 여기 언제 허문다고?
강종희 : 올봄에...
박무열 : (벽화를 본다. 어쩐지 쓸쓸하다) 갈까?
강종희 : (어쩐지 쓸쓸함을 느낀다) 응...
강종희가 박무열의 팔짱을 낀다. 박무열이 강종희 손을 잡아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그 뒤를 유은재가 따라간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68. 건물 앞 (낮)
박무열의 차가 갓길 주차한다. 강종희가 차에서 내린다. 인사하고 쇼핑몰 쪽으로 걸어간다.
69. 박무열의 차안 (낮)
운전석의 박무열이 강종희를 눈으로 배웅하다가 뒤쪽을 본다.
박무열 : (유은재에게) 앞으로 와.
유은재 : (시키는대로 한다)...
박무열 : 너 오늘 이상하다.
유은재 : ...
박무열 : (출발하며) 아까도 몇 번이나 태클의 기회가 있었는데. 네가 조용하니까 무섭잖아.
유은재 : 아파서 그래여.
박무열 : 어디가 아픈데?
유은재 : 온몸이 아파여.
박무열 : 몸살 걸렸냐?
유은재 : ...
박무열 : 많이 아퍼?
유은재 : 죽을거 같애여.
박무열 : 진짜야? 그럼 뭐 하러 나왔어.
유은재 : (전혀 즐거운 기색없이) 농담이예여.
박무열 : (무슨 농담을 이렇게 해)...
70. 쇼핑몰 (낮)
강종희가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한쪽에 ‘화방’이있다. 미술도구를 사는 젊은 여자가 한명 보인다.
강종희는 지금 그림을 그릴수 없게 됐다. 그리운 듯 그쪽을 보다가 그냥 지나쳐간다.
71. 오수영의 엄마집 방 (낮)
오수영이 결혼 전에 썼던 방이다. 미대를 다니던 시절 그대로 남아있다.
오수영이 전에 그린 그림들을 본다. 이젤에는 그리다 만 그림이 아직도 그대로 놓여있다.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72. 오수영의 엄마집 거실 (낮)
오수영의 엄마와 진우영이 함께 들어온다. 오수영의 엄마는 진우영에게만은 다정하다.
진우영 : 엄마!
오수영 : (진우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에게) 한시까지 온다 그랬잖아요.
오수영엄마 : 우영이가 배고프다고 해서 뭣좀 먹이느라고...
진우영 : (모자를 벗으려하자)...
오수영 : 벗지 마. 지금 갈거야.
진우영 : (엄마 눈치를 보며 다시 쓴다)...
오수영엄마 : 종희 왔다며?
오수영 : (엄마를 본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진우영 : (엄마 눈치를 본다)...
오수영엄마 : 왜 얘기 안했니?
오수영 : 당분간 비밀로 해야 돼요.
오수영엄마 : 종희한테 한번 연락하라고 해라.
오수영 : 왜요?
오수영엄마 : 왜라니?
오수영 : (어쩐지 묘한 쾌감을 느끼며) 종희 그림 관뒀대요.
오수영엄마 : ....?
오수영 : 종희한테 직접 들은거예요.
오수영엄마 : (믿지 않는다) 그림 안 그리고 뭐하겠대?
오수영 : (엄마를 향해 처음으로 미소 짓는다) 글쎄요. 엄마한텐 그림이 전부겠지만 종희한테는 그림말고도 딴 게 있나부죠.
가자. 우영아.
진우영 : (할머니와 엄마의 분위기에 눈치를 보다가 꾸벅 인사한다)...
오수영엄마 : (딸의 도발을 차갑게 바라본다)...
73. 구단 휘트니스센타 (낮)
박무열이 스트레칭 중이다.
74. 복도 (낮)
유은재가 박무열을 지켜본다.
박무열이 연습하는 모습을, 뒤돌아보며 동료선수와 농담하는 모습을.
헬스기구를 조정하는 모습을, 무슨 말을 들었는지 돌아보며 씨익 웃는 모습을...
(진동수) : 은재씨!!
유은재 : (돌아본다)...
진동수 : (서류건네며) 사회봉사 날짜 잡혔어요.
유은재 : 예...
진동수 : (휘트니스센타를 쓱 보고 돌아서려는데)...
유은재 : 선배님은 운명을 믿으세요?
진동수 : (본다) ...?
유은재 : (박무열 본채로)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 다시 만났는데도 인연이라면 그건 분명 운명이겠죠?
진동수 : 무열이하고 종희요? 두 사람 특별하긴 하죠. (잠시 지켜보다가 가버린다)...
유은재 : (동의한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핸드폰을 꺼낸다)
75. 빈 사무실 (낮)
케빈장이 부동산 중개인(정장을 입은 남자)과 함께 사무실을 둘러본다.
부동산중개인2 : 주변이 사무실이라서 조용하구요. 원하신대로 냉난방 완벽하구요. 무엇보다 (블라인드를 착 걷는다) 전망이...
케빈장 : (창밖을 본다. 탁트인 시야. 이거다. 박수가 절로 난다) 브라보!!
(핸드폰이 울린다. 젠틀하게) 죄송합니다. (핸드폰 받는다) 어. 유은재. 지금 사무실 보러 왔는데...
76. 구단 복도 (낮)
유은재 : 이따가 밤에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예... (끊는다)...
77. 빈사무실 (낮)
케빈장 : (경쾌하게 핸드폰 끊는다) 계속하시죠.
부동산 중개인 : (만족스럽다) 보증금을 얼마나 넣냐에 따라 임대료가 결정되는데요. 보증금은 얼마를 예상하십니까?
케빈장 : (돈이야 뭐, 여유있게 쳐다본다)...
78. 빈 복도 (낮)
케빈장이 걸어온다. 무표정한 얼굴로 선글라스를 척 낀다.
케빈장 : (영국신사의 도도함 유지하며 걷다가 마침내) 드럽게 비싸네.
79. 주차장 (밤)
유은재와 박무열이 나온다. 유은재가 운전석 문을 열어준다.
박무열 : (안하던 짓을 해) 왜 그래?
유은재 : (문을 잡고 서 있는다)...
박무열 : (일단 탄다)...
유은재 : (문을 닫고 조수석에 탄다)...
80. 박무열의 차안 (밤)
박무열이 운전하며 유은재를 힐끗 본다. 유은재는 진짜 경호원의 얼굴을 하고 정면을 바라볼 뿐이다.
유은재는 슬쩍 창밖을 본다. 차창을 프레임삼아 박무열과의 일들이 지나간다.
-처음 만났을때 엎어매치기.
-한강을 달리던 일.
-일본 여관에서 벌였던 몸싸움.
-차갑게 으르렁대는 박무열.
-꽃뱀으로부터 박무열을 구해내던 일.
-박무열에게 마음이 생겼던 순간.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박무열.
-산속에서 만난 박무열.
-함께 끌어안고 기뻐하던 일.
-그리고 강종희 손가락의 반지.
-강종희 손을 잡아 자기 주머니에 넣는 박무열.
유은재가 창을 외면한다. 더는 보고 싶지 않다.
81. 박무열의 집 거실 (밤)
박무열과 유은재가 들어온다.
박무열 : (궁시렁대며 냉장고쪽으로 간다) 쓰레기 줍기가 뭐냐? 쪽팔리게...
유은재 : (방마다 안전을 확인한다)...
박무열 :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내일부터 추워진댄다... 단단히 입고 와라.
유은재 : (현관앞에 서서 박무열을 잠시 본다)...
박무열 : 뭐? 할말있냐?
유은재 :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정중한 태도로 인사한다) 안녕히 계세요.
박무열 : 너 왜 그래? 다시 안볼사람처럼....
유은재 다시한번 박무열을 보고 나간다.
박무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물을 마신다.
82. 복도 (밤)
유은재가 문을 닫고 잠깐 문에 기대선다. 그제서야 눈물이 나온다.
유은재가 숨을 들이마신다. 복도를 빠져나간다.
83. 강종희의 집 거실 (에필로그)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서 으르렁댄다. 샤워를 하고 나온 강종희가 고양이를 본다.
강종희 : 숏트!!
무슨일인가 싶어 인터폰을 켜본다. 그림자가 휙 지나간다.
84. 누군가의 방 (에필로그)
눈이 훼손된 박무열의 사진.
누군가가 뒷장에 뭐라고 쓰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 말도 쓰지 못한다. 펜이 닿았던 점하나 찍혔을 뿐.
누군가가 사진을 구겨버리고 불을 끈다. 문 닫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