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자 / 문인수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 시집『배꼽』(창비, 2008) ......................................................................
요즘에도 한쪽 팔걸이만 있는 의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7~80년대의 사무실에는 그런 의자가 있었다. 나도 한동안 오른 쪽 팔걸이만 있는 그런 의자에 앉아 사무를 본 적이 있다. 그 의자를 차지하기 전에는 그냥 직각의 맨 의자였고, 그 의자 다음으로 겸손하게 돌아가는 양쪽 팔걸이가 붙은 의자에도 앉아 보았지 싶다. 등받이가 제법 깊숙하고 끽끽 회전하는 차장님의 검은 색 의자가 한때 부러웠고, 그보다 좀 더 높은 등받이에 몸을 푹 맡긴 채 양 다리를 꼬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색인지 졸음인지 삼매경에 돌입한 부장님의 의자를 투기하기도 하였다.
한 때 생맥주를 전문으로 파는 프랜차이즈 호프집이 창궐했던 적이 있었다.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고 객장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구실로 손님들이 앉는 의자는 등받이도 없고 겨우 엉덩이와의 접점 면적만을 고려한 좁은 이동식 동글 의자가 있다. 그 의자엔 얼른 마시고 다음 손님을 위해 자리를 비워 달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요즘엔 그런 의자를 객장에 두고서 의도한 대로 몇 회전씩 굴리며 호황을 누리는 호프집은 거의 없다.
의자를 소재로 쓴 시는 많다. 그만큼 의자가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아 관찰과 사유의 응시도 빈번했다는 이야기다. 문인수 시인이 보았던 식당 의자는 야외용 간이의자다. 보송보송한 햇빛이 내려앉는 해변이나 평수 넓은 잔디밭, 물빛 고운 수영장 같은 장소와 잘 어울리며, 실제로 그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의자다. 그러나 시에 등장한 의자는 같은 재질이지만 돼지창자를 구워 파는 막창집이거나 삶은 오징어 숭숭 썰어 초고추창에 버무린 안주와 함께 소주를 파는 천막 식당의 흰색 간이 의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식당의자는 아무런 계급이 없다. 누구나 먼저 엉덩이를 들이대기만 하면 임자다. 한때 덜거덕거리며 부산하게 끌려 다녔던 이력은 이제 오간 데 없다. 속을 다 파내고 뼈만 남아 앙상한 네 다리가 비로소 또렷하게 보인다. 몇 날 며칠 비를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도 않는다. 오래된 충복 같기도 하고 인도의 요가승 같기도 한 그 의자에게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란 별칭이 조용히 씻긴 굿 한 판 홀로 치룬 ‘전문가’에 의해 주어진다.
플라스틱 성형으로 단순하게 찍어낸 저 식당의자를 저토록 환한 여백의 결 무늬로 다시 찍어내다니 참 대단한 관찰과 사유의 깊이다. 시퍼렇게 날선 시선과 스스로 요가 수행승의 몸처럼 숭고한 동작을 복제하는 능력이 없다면 제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인 이 시는 아마 태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권순진
Good In Blues - Tony Joe White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