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하늘은 찌뿌듯하고 날씨는 밍밍하고 대추나무 과수원에 셋방살이하는 매화나무에는 성질 급하게 꽃을 피운 꽃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무거운 겨울 코트 벗어버리고 화사한 트렌치코트 입고 나갔다가 ‘멋 부리다 얼어 죽을 뻔했다’라는 친구가 생각나서 피식 웃는다.
몸살 약을 먹고 겨울에도 사용하지 않은 전기장판을 켜고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작심하고 쉬고 있다. 주말에 내려온다는 아들이 친구들과 단체로 몸빼바지를 샀다고 한다. 할머니 조끼랑 세트로 입고 촌에서 나무로 불을 피워 밥도 짓고 냇가에서 낚시로 물고기도 낚아서 매운탕도 끓여 먹으며 휴일을 보낸다고 한다. 다행히 시골에 할머니 집이 있어서 제대로 된 <촌집 살기>를 체험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어머님이 입으시던 겨울 조끼가 옷장에 여러 벌이 있다. 시골에 내려가면 입고 지낸다. 시골에서는 시골스럽게 입고 일하면 왠지 재미있고 신선하고 이벤트처럼 생각이 들어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온다. 어머님 옷이라서 정도 더 가고 밭에서 일할 때 편하게 털퍼덕 앉을 수 있어서 따로 일복을 가져가지 않는다. 장화에 모자까지 쓰고 헐렁한 몸빼바지를 입고 마당에서 어정거리면 남편이 ‘혼자서 일은 다 할 기세네’하면서 킥킥 웃는다. 장비만 화려하지 일의 성과는 거의 없으니 어이없어하는 말이다. 할 줄도 모르지만, 뒤로 빼지 않고 의욕만 앞서는 베짱이 디모도다. 기술자보다 뒤에서 도와주는 디모도가 더 상전이라고 놀린다.
시골살이를 어렵게 생각하면 재미없으니까 탱자탱자 놀다가 마음 내키면 열심히 한다. 어디까지나 시골집은 별장이다. 별이 쏟아지는 밤이 있고 초저녁이면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리는 칠흑 같은 밤이 있고 구름이 산허리까지 내려와 놀다가는 아침이 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조금은 멀지만, 한 달에 두 번 정도 여행처럼 다녀온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이곳저곳 옮겨가며 살아서 이렇다 하게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이제는 시댁이 고향이 되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마음 둘 곳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아들에게 우리가 남겨줄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 시간 같아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올해는 감나무를 심기로 했다. - 2024년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