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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큰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사유는 지병이셨던 당뇨, 그리고 치료과정에서 찾아온 합병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
언제나 양복 차림이었던 그는 훤칠한 풍모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생전의 할아버지와 똑 닮으셨다.
집안의 대들보와 같았던 큰아버지는 엄한 인상이 가끔은 무서웠고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별세하시기 전 큰아버지는 병원에 얼마간 입원해 계시면서 병이 호전되기를 기다리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두 시간이 흐르고 남은 생 동안 관리만 꾸준히 한다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집안 내력인 당뇨로만 알고 있었다.
병원이 우리 집과 20분 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학교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병문안을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그날에 우리 가족이 함께 병원을 찾아갔었는데 병세가 심각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는 뼈만 앙상해진 큰아버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날에 무뚝뚝한 큰아버지가 평소와 너무나도 다르게 가벼운 주제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문을 여닫을 때 틈을 타고 들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어깨를 움츠리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많이 쇠약해 버린 것이 보였다.
야위어진 큰아버지를 앞에 두고 아빠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언제나처럼 저 멀리 떨어져 직접적인 이야기는 피하는 듯했다.
그런 동생에게 큰아버지도 선뜻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큰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무 다르게 살아온 서로에게 언제부턴가 다가가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 관계는 언제부터, 어디까지 흔들려 버린 걸까?
집에 온 후에 아빠는 병이 있는지 알면서도 달고 산 술, 담배 때문이라는 둥 한동안 큰아빠에 대한 걱정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매일 같이 했다.
이후 한참이 흐른 후, 큰아버지의 어느 기점을 기준으로 하루가 다르게 병세는 악화되었고 급기야 서울의 아산병원에 수술을 하러 가기까지에 이르렀다.
주말도 집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던 나에게 엄마는 언젠가 이번 주말엔 꼭 내려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적이 있다.
아빠는 몇일 전부터 아산병원의 큰아버지 곁에서 먹고 자며 큰댁 식구들과 생활을 하고 있고 평소에 언제나 장난스럽게 말을 하는 아빠지만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피곤함과 그보다 나는 모를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녹아 있어 안부를 묻기는커녕 알 수 없는 무서움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삼촌의 차를 타고 삼촌네와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8시간을 곧장 달려 자정쯤이나 되어서 서울에 도착했다.
아빠가 병원 앞으로 마중을 나왔고 그 밤에 아산병원의 중환자실을 찾은 우리는 보자마자 퉁퉁 부은 눈으로 또 오열하는 큰엄마와 사촌 누나들을 보고 그 심각함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날에 큰아버지는 죽은 사람과 다름없이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아빠와 나는 큰아버지를 뵙기 위해서 허가를 받은 후에야 병실에 잠깐 들어갈 수 있었다.
항상 의료진이 상주하는 그 병실은 많은 중환자가 있었다.
어렵사리 찾아뵌 큰아버지를 본 순간 나는 얼마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온갖 호스와 붕대로 칭칭 감겨져 온몸이 퉁퉁 불어 오른 한 사람을 보았을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가슴이 멈추는 듯 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전신에 멍이 든 듯 보랏빛을 띠는 피부를 봤을 때엔 가까이에 서는 것이 꺼려졌다.
아빠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물티슈로 형의 온몸을 닦아내었고, 지나가는 간호사들에게 온갖 것을 부탁했다.
붕대를 다시 감아달라며, 이 호스를 교체해 달라며….
호흡기에 의지해 가슴을 오르내리며 타의로 힘겹게 숨을 내쉬는 형과 생전에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운 동생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뼈아픈 이별을 했다.
자정이 늦은 아침에 더 가까운 새벽에, 아빠를 두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누구도 쉬이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 모두 슬퍼했다.
3일 뒤, 큰아버지는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몇일 뒤, 아버지가 상주가 되어 큰아버지의 장례가 크게 치러졌다.
바쁜 학교생활을 하며 큰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흐려질 때 즈음의 일이다.
주말에 집에 내려와 동네 친구들과 주점에 있을 때 아버지가 소주 한잔 하자며 갑작스레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약속 장소로 나갔다.
입이 이만큼 튀어나온 내 시야에 저 멀리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아빠가 보였다.
이미 어딘가에서 거하게 한잔 하고 오는 길이 랜다.
아버지를 부축하여 자주 가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창 한 후,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했다.
사실은 큰아버지 오랜 친구와 마산역 부근에서 한잔하고 오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먼 옛날 형제간의 추억을 주욱 읊으셨고 나는 옆에서 말없이 들어주었다.
이어져 나오는 아버지의 이제는 후회가 되어버린, 이룰 수 없는 소박한 바람들은 듣는 나마저 가슴이 먹먹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나에게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을 주문했고 마침 내가 아는 노래라 부르려 했다.
“이 노래 느그 큰아빠가 어렸을 적에 제일로 좋아했던 노래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전주에 섞여 들려왔다.
한참 부르던 중에 뒤에서 들려오는 끅끅 소리 내어 우시는 소리와 큰아버지에 대한 아빠의 너무 소소한 후회들이 모두 노랫말에 모두 녹아있는 듯 가사와 너무 잘 어울렸다.
친형을 잃은 아버지와는 비할 수 없는 작은 슬픔으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부끄러워 노래가 다 끝났지만 뒤 돌아볼 수 없었다.
흐르는 적막에서 그렇게 한참을 스크린만 바라봤고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큰 상처를 받은 죽음이다.
‘얼마가 견딜 수 있을까.
삶의 시간이 멈추는 것보다
내가 받은 사랑을 다 갚지 못할까 봐, 그게 더 두렵다.
세상에 빚을 지고 싶지 않다. 사랑만 남겨두고 싶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190p>
도서관을 거닐던 중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자 빌려봤던 이 책은 우연히 나의 경험과 너무 잘 어우러져 큰 감동을 주었다.
작가인 위지안은 30살에 중국 최고의 대학인 상하이 푸단대학의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친 엘리트로 또한 한 살배기 아들을 가진 엄마였다. 또한 숲을 사랑하여 ‘에너지 숲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한 거침없던 여장부와도 같았다.
악착같이 살아온 그녀는 꽃을 막 틔우려는 시기에 유방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판정을 받게 된다.
잃어버린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과 같이 이제 막 차오르던 그녀의 꿈 ,희망 그리고 아름다움마저 잃어버린 듯 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암과의 사투에서 그녀는 오히려 여태껏 알지 못한 소중한 삶의 의미들을 찾게 된다.
그때부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고통의 나락에서 글을 통해서 삶의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게 된 것이다.
위험하고 긴급한 상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간결한 어체에서 되려 애처로움이 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단순한 암 투병기가 아닌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한 여자의 영혼과 깨달음이며,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일 것이다.
누군가 내게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공기와 같이 내겐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에서일까, 그러한 질문도, 답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바보같이 오로지 성공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던 내게 위지안은 나를 멈춰 세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삶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얇은 책은 내 앞에 갑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덩그러니 던져주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삶의 이유가 각자에게 수학문제의 답처럼 명확하다면 이런 문제에는 골머리를 썩이지 않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의미는 확실하게 단정을 짓기도 쉽지 않고, 설사 그것을 안다고 해도 그대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본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안쓰러워하고 때론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도 스스로에겐 죽음이란 나와는 동떨어진 남의 일이라 착각한다.
작가 위지안의 시한부 인생과 같이 예고된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큰아버지와 같이 마지막 인사조차 나눌 틈이 없이 갑작스레 영원한 작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곁에 상주하는 죽음에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오래된 숙제가 아닐까?
다만, 내 뼈가 어딘가에 뿌려지고 난 후에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픔의 눈물이 아닌 나로 인해서 행복했다며 옅은 미소를 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그때마다 이 책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 같다.
‘어떤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난다는 것을.’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307p>
지난 3월. 큰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사유는 지병이셨던 당뇨, 그리고 치료과정에서 찾아온 합병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
언제나 양복 차림이었던 그는 큰 아버지는 훤칠한 풍모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생전의 할아버지와 똑 닮으셨다.
집안의 대들보와 같았던 큰아버지는 엄한 인상이 가끔은 무서웠고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별세하시기 전 큰아버지는 병원에 얼마간 입원해 계시면서 병이 호전되기를 기다리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두 시간이 흐르고 남은 생 동안 관리만 꾸준히 한다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우리 집안 내력인 당뇨로만 알고 있었다.
병원이 우리 집과 20분 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학교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병문안을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그날에 언젠가 우리 가족이 함께 병원을 찾아갔었는데 병세가 심각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는 뼈만 남아 앙상해진 큰아버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날에 무뚝뚝한 큰아버지가 평소와 너무나도 다르게 가벼운 주제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문을 여닫을 때 틈을 타고 들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어깨를 움츠리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많이 쇠약해 버린 것이 보였다.
야위어진 큰아버지를 앞에 두고 아빠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언제나처럼 저 멀리 떨어져 직접적인 이야기는 피하는 듯했다.
그런 동생에게 큰아버지도 선뜻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큰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무 다르게 살아온 인생살이가 서로에게 부담으로 다가 온 것은 언제부턴가 다가가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 관계는 언제부터, 어디까지 흔들려 버린 걸까?
집에 온 후에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 온 후, 아빠는 병이 있는지 알면서도 달고 산 술과 담배 때문이라는 둥 한동안 큰아빠에 대한 걱정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매일 같이 했다.
/*큰아버지이면 큰아버지, 큰 아빠이면 큰 아빠 용어를 통일해라.
큰아버지가 낫다. 그리고 '우리 아빠'를 '우리 아버지'로 고쳐라. 그것도 통일하는게 좋다.
이야기는 묵직하게 써 나가면서 아빠라는 호칭을 쓰니까 글에 힘이 떨어진다. */
이후 한참이 흐른 후,
큰아버지의 어느 기점을 기준으로 하루가 다르게 병세는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고 급기야 서울의 아산병원에 수술을 하러 가기까지에 이르렀다.
주말도 집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던 나에게 엄마는 언젠가 이번 주말엔 꼭 내려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적이 있다.
아빠는 몇일 며칠 전부터
/*몇일을 며칠로 써야 되도록 바뀐지 오래다. */
아산병원의 큰아버지 곁에서 먹고 자며 큰댁 식구들과 생활을 하고 있고 평소에 언제나 장난스럽게 말을 하는 아빠지만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피곤함과 그보다 나는 모를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녹아 있어 안부를 묻기는커녕 알 수 없는 무서움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삼촌의 차를 타고 삼촌네와 우리 가족은 삼촌의 차를 타고 8시간을 곧장 달려 자정쯤이나 되어서 서울에 도착했다.
아빠가 병원 앞으로 마중을 나왔고 그 밤에 아산병원의 중환자실을 찾은 우리는 보자마자 퉁퉁 부은 눈으로 또 오열하는 큰엄마와 사촌 누나들을 보고 그 심각함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날에 큰아버지는 죽은 사람과 다름없이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아빠와 나는 큰아버지를 뵙기 위해서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의 허가를 받은 후에야 병실에 잠깐 들어갈 수 있었다.
항상 의료진이 상주하는 그 병실은 많은 중환자가 있었다.
어렵사리 찾아뵌 큰아버지를 본 순간 나는 얼마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온갖 호스 의료장비 튜브와 붕대로 칭칭 감겨져 온몸이 퉁퉁 불어 부어오른 한 사람을 보았을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가슴이 멈추는 듯 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전신에 멍이 든 듯 보랏빛을 띠는 피부를 봤을 때엔 가까이에 서는 것이 꺼려졌다.
아빠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물티슈로 큰아버지의 형의 온몸을 닦아내었고, 지나가는 간호사들에게 온갖 것을 부탁했다.
붕대를 다시 감아달라며, 이 호스 튜브를 교체해 달라며….
호흡기에 의지해 가슴을 오르내리며 타의로 힘겹게 숨을 내쉬는 형과 생전에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운 동생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뼈아픈 이별을 했다.
자정이 늦은 늦어 아침에 더 가까운 새벽에, 아빠를 두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누구도 쉬이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 모두 슬퍼했다.
3일 뒤, 큰아버지는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몇일 며칠 뒤, 아버지가 상주가 되어 큰아버지의 장례가 크게 치러졌다.
바쁜 학교생활을 하며 큰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흐려질 때 즈음의 일이다.
주말에 집에 내려와 동네 친구들과 주점에 있을 때 아버지가 소주 한잔 하자며 갑작스레 전화가 왔다.
/*윗글 에서는 아빠라고 하다가 지금 문장에서는 아버지라고 나온다. 통일을 기해라. 아버지로.*/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약속 장소로 나갔다.
입이 이만큼 튀어나온 내 시야에 저 멀리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아빠가 보였다.
이미 어딘가에서 거하게 한잔 하고 오는 길이 랜다.
아버지를 부축하여 자주 가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한창 한 참한 후,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했다.
사실은 큰아버지 오랜 친구와 마산역 부근에서 한잔하고 오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먼 옛날 형제간의 추억을 주욱 읊으셨고 나는 옆에서 말없이 들어주었다.
이어져 나오는 아버지의 이제는 후회가 되어버린, 이룰 수 없는 소박한 바람들은 듣는 나마저 가슴이 먹먹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나에게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을 주문했고 마침 내가 아는 노래라 부르려 했다.
“이 노래 느그 큰아빠가 어렸을 적에 제일로 좋아했던 노래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전주에 섞여 들려왔다.
한참 부르던 중에 뒤에서 들려오는 끅끅 소리 내어 우시는 소리와 큰아버지에 대한 아빠의 너무 소소한 후회들이 모두 노랫말에 모두 녹아있는 듯 가사와 너무 잘 어울렸다.
친형을 잃은 아버지와는 비할 수 없는 작은 슬픔으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부끄러워 노래가 다 끝났지만 뒤 돌아볼 수 없었다.
흐르는 적막에서 그렇게 한참을 스크린만 바라봤고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큰 상처를 받은 죽음이다. <------이 문장은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동떨어지는 문장인데..?
/*매우, 너무. 작은..등의 부사도 뺄 것. 글에 힘을 빼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다. */
‘얼마가 견딜 수 있을까.
삶의 시간이 멈추는 것보다
내가 받은 사랑을 다 갚지 못할까 봐, 그게 더 두렵다.
세상에 빚을 지고 싶지 않다. 사랑만 남겨두고 싶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190p>
/*인용문도 왼쪽 맞춤해라. 부각시킨다고 가운데 맞춤하는게 더 산만하다.*/
도서관을 거닐던 중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자 빌려봤던 이 책은 우연히 나의 경험과 너무 잘 어우러져 큰 감동을 주었다.
작가인 위지안은 30살에 중국 최고의 대학인 상하이 푸단대학의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친 엘리트로
또한 한 살배기 아들을 가진 엄마였다.
또한 숲을 사랑하여 ‘에너지 숲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한 거침없던 여장부와도 같았다.
/*또한 둘 중에 하나를 지워라. 같은 단어 반복은 안 좋다.*/
악착같이 살아온 그녀는 꽃을 막 틔우려는 시기에 유방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판정을 받게 된다.
잃어버린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과 같이 이제 막 차오르던 그녀의 꿈 ,희망 그리고 아름다움마저 잃어버린 듯 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암과의 사투에서 그녀는 오히려 여태껏 알지 못한 소중한 삶의 의미들을 찾게 된다.
그때부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고통의 나락에서 글을 통해서 삶의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게 된 것이다.
위험하고 긴급한 상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간결한 어체에서 되려 애처로움이 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단순한 암 투병기가 아닌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한 여자의 영혼과 깨달음이며,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일 것이다.
누군가 내게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공기와 같이 내겐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에서일까, 그러한 질문도, 답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바보같이 오로지 성공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던 내게 위지안은 나를 멈춰 세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삶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얇은 책은 내 앞에 갑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덩그러니 던져주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삶의 이유가 각자에게 수학문제의 답처럼 명확하다면 이런 문제에는 골머리를 썩이지 않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의미는 확실하게 단정을 짓기도 쉽지 않고, 설사 그것을 안다고 해도 그대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본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안쓰러워하고 때론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도 스스로에겐 죽음이란 나와는 동떨어진 남의 일이라 착각한다.
작가 위지안의 시한부 인생과 같이 예고된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큰아버지와 같이 마지막 인사조차 나눌 틈이 없이 갑작스레 영원한 작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곁에 상주하는 죽음에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오래된 숙제가 아닐까?
다만, 내 뼈가 어딘가에 뿌려지고 난 후에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픔의 눈물이 아닌 나로 인해서 행복했다며 옅은 미소를 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그때마다 이 책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 같다.
‘어떤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난다는 것을.’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3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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