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신흥 산업국으로 중국이 급부상하는 등 인류의 성장은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석유와 석탄 매장량은 한계를 드러낼 조짐을 보인다. 여기에 지정학적 요인도 작용해 중동에서 벌어진 잇따른 민주화 시위로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에너지 위기에 대한 전통적인 해답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이다. 수력·풍력 발전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부터 원자력 발전, 첨단 공법과 설비를 이용한 중질유와 셰일 가스 시추까지 다양한 해법을 보면 산업 사회의 미래가 지속가능하다고 여길 만도 하다.
하지만 '해법'을 구체적으로 따지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국제안보 및 에너지 전문가 마이클 클레어는 지난 5일 인터넷매체 <톰디스패치>(tomdispatch)에 올린 칼럼에서 인류의 낙관에 반기를 드는 일련의 변화를 설명했다.
고비용이 드는 중질유 시추에 선뜻 나서는 산유국은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친 강진과 쓰나미로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는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셰일 가스와 타르 샌드 등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 논란을 피할 수 없다.
클레어는 이런 논란에 앞서 미래에 에너지 소비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전제 하에서 공급을 수요에 맞추기 위해 시도되는 해법들이 결국 연료 가격의 폭등과 정치적 불안, 에너지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클레어는 또 그 끝은 가까운 미래에 현재의 노력들이 지구를 망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톰디스패치>에 수록된 원문의 주요 내용을 번역해 싣는다. (☞원문보기) <편집자>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심화된다
에너지에 관한 좋은 소식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고유가와 글로벌경기침체 덕에 석유 수요가 올해 예상만큼 많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의 5월 석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전세계의 하루 예상 석유 소비량은 19만 배럴 감소한 8920만 배럴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유가는 분명 최고 수준이긴 하지만, 올해 초 예상처럼 치솟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좋은 소식이란 걸 명심하라.
나쁜 소식이 있다. 최근 몇 주간 세계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가 됐건 제어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다. 땅 밑에는 한때 풍부했던, 얻기 쉬운 전통적인 에너지인 석유·천연가스·석탄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 땅 위에선 인간의 계산착오와 지정학적 요인이 특정 에너지 공급원의 생산과 가용성을 제한하고 있다. 이 양쪽의 문제로 인해 에너지에 대한 전망은 어두울 뿐이다.
여기 단순한 사실이 있다. 세계 경제는 에너지 생산에서 현상 유지는 있을 수 없는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 중국 같은 신흥국들의 탐욕스런 갈증, 미국 같은 기존 산업국의 경이로운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전세계 에너지는 매년 상당히 증가해야 했다.
미 에너지부(DoE)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 에너지 생산량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2025년까지 2007년에 비해 29% 오른 64경 BTU를 생산해야 한다. 에너지 사용이 예상보다 서서히 증가한다고 해도 수요를 맞추는데 실패하면 초과 수요가 발생하고, 이는 연료 가격의 상승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도한 정확한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2011년 벌어진 세 가지 결정적인 상황은 머지않은 미래에 있을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 리비아 내전으로 리비아의 석유 시추량은 '제로'에 가깝다. ⓒAP=연합뉴스
사우디가 무너진다면
올해 가장 중대한 '에너지 충격'은 튀니지와 이집트 등 중동 전역에 불어 닥친 '아랍의 봄'이 촉발한 일련의 사건들이다. 튀니지나 이집트 모두 사실 주요 산유국은 아니지만, 이들의 봉기가 풀어놓은 정치적 충격파는 리비아와 오만,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의 다른 국가들까지 퍼져나갔다. 현 시점에서 사우디와 오만의 지도자들는 시위를 통제하고 있지만, 리비아의 경우 보통 하루 170만 배럴의 석유를 뽑아내는 생산량이 '제로' 수준까지 떨어졌다.
석유 문제에서 이번 중동 사태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 세계 석유 생산량 예측치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및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는 다른 지역의 생산량 감소에 따라 공급 점유율이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증산이 필수적이지만 이들 나라 지도자들이 새로운 석유 매장층에 대한 개발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터프 오일(tough-oil)'이라 불리는 중질유 침전물은 경질유보다 돈이 훨씬 더 많이 드는 채굴 장비가 필요하다.
'이지 오일'(경질유)의 종말'이란 제목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사우디가 중질유 침전물에 수천억 달러를 자발적으로 쏟아 붇는 데에 의존해 미래의 석유 수요를 채우려는 희망에 대해 썼다. 그러나 현재 사우디는 인구 증가와 이집트같은 청년층의 반항을 보면서 막대한 부를 새로운 중질유 채굴 장비가 아닌 일자리 정책과 무기 구입에 쓰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페르시아만의 다른 군주제 산유국들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노력들이 효과를 증명할 지는 알 수 없다. 사우디의 청년층이 일자리와 돈을 보고 튀니지와 이집트 청년이나 시리아 반군보다는 덜 반항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현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사우디 왕조가 360억 달러를 들여 최저임금과 실업급여, 주택 공급을 늘려나가겠다고 발표했음에도 (사우디의 외국계 석유 기업을 돕는) 마나르 에너지 컨설팅사의 자파 알 타이에 이사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시한폭탄"이라며 "사우디 왕이 하고 있는 일이 저항을 예방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세계는 현재 리비아에서 발생한 석유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 사우디와 몇몇 산유국은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폭발'한다면 모두 백지화가 된다. 지난 4월 5일 세이키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 석유장관은 "만약 사우디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유가는 배럴당 200~300달러로 갈 것"이라며 "난 그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지만 그 누가 튀니지 사태를 예상했는가"라고 말했다.
하강길에 접어든 핵발전
에너지 시장에 대한 두 번째 주요한 전개는 예측 못한 강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한 3월 11일에 일어났다. 자연이 가한 두 공격은 처음엔 일본 북부의 에너지 인프라, 정련소와 항만시설, 파이프라인, 발전소, 운송로 상당 부분에 손실을 입혔다. 이어서 4곳의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유린했고,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6800메가와트의 전력 생산 여력이 영구 손실됐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덮진 강진과 쓰나미로 일본 내에서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고 있다. ⓒAP=연합뉴스
그 결과 일본은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수입량을 늘려 전 세계 공급 사정을 더욱 힘들게 했다. 산업 분석가들은 후쿠시마를 비롯해 다른 핵발전소가 폐쇄되면서 일본의 석유 수입이 하루 23만8000배럴까지 증가했고, 천연가스는 하루 12억 큐빅피트(대부분 액화 천연가스나 LNG형태다)까지 늘었다고 계산했다.
이게 쓰나미의 단기 효과다. 장기적으론 어떤가? 일본 정부는 이제 향후 20년간 14개 이상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월 10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일본 정부가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고안하는, "상처로부터의 출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그는 취소될 원전을 풍력과 태양력 같은 신재생에너지시스템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의 어떤 에너지 사용량 증가도 상당 부분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석유, 석탄, LNG 수입 증가에서 나올 것이다.
후쿠시마의 재앙, 원전 제작상의 결함 폭로, 원전의 유지보수 실패가 도미노 효과를 불러오면서 다른 나라들도 새 원전을 건설하거나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 독일이 먼저 나섰다. 3월 14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구형 원전 2곳을 폐쇄하고, 다른 15개 원전의 가동기한을 연장하려는 계획을 중단했다. 5월 30일 메르켈 정부는 중단 조치를 영구화했다. 대규모 반핵 집회가 일어나고 선거 차질이 빚어지는 가운데 메르켈은 가동 중인 원전 전부를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도 재빨리 움직였다. 3월 16일 중국은 원전에 대한 투자를 전면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 안전 절차를 검토하고 있는 새 원전 건설에 대한 허가 발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야심찬 핵 계획을 위험스럽게 밀어붙이던 인도나 미국 등 다른 나라 역시 비슷하게 원전 안전 문제를 검토했다. 5월 25일 스위스 정부는 3개의 새 핵발전소를 지으려던 계획을 중단하고 가동 중인 발전소도 2034년까지 폐쇄하겠다고 밝히면서 핵발전을 영원히 단념하려는 국가들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