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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1 팡틴
손님(2)
사나이는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한동안 걸었다. 인가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밭 한가운데였다. 눈앞에는 밑동을 바짝 베어 낸 그루터기로 뒤덮인 낮은 언덕이 있었다.
지평선은 캄캄해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밤의 어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주 낮게 깔린 구름이, 마치 언덕을 덮어씌우듯이 하며 하늘 가득히 퍼져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달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으며 아직도 중천에 남은 황혼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구름도 하늘에서 일종의 흰 천장을 이루어 지상으로 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나이는 걸어온 길로 되돌아갔다. 아마 밤 8시쯤 되었을 것이다. 그는 길을 몰랐기 때문에 무턱대고 걸었다. 이리하여 시청을 거쳐 신학교가 있는 데까지 왔다. 그는 교회 앞 광장을 지나면서 교회에 대고 주먹질을 해 댔다.
이 광장 모퉁이에는 인쇄소가 있었다. 나폴레옹이 직접 받아쓰게 하여 엘바 섬에서 가져온, 군대에 대한 황제와 친위대의 포고문이 처음 인쇄된 것이 바로 이 인쇄소였다
모든 희망이 없어진 그는 기진맥진하여 인쇄소 문 옆에 있는 돌의자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이때 한 늙은 부인이 교회에서 나왔다. 그녀는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사나일르 보고 말했다.
“여보세요. 거기서 뭘 하고 있나요?”
그는 화가 나서 통명스럽게 말했다.
“보면 모르겠소? 친절한 아주머니, 이렇게 자고 있잖아요.”
친절한 아주머니, 사실 이 이름에 걸맞는 부인은 R 후작 부인이었다.
“이 의자에서?”
그녀가 물었다.
“나는 19년 동안 나무 침대에서 잤죠. 지금은 돌침대고.”
“군인이었나요?”
“그래요, 아주머니.”
“어째서 여관에서 자지 않나요?”
“돈이 없으니까요.”
“어쩌면 좋아. 지갑에는 4수밖에 없는데.”
R 부인이 말햇다.
“그것이라도 주시오.”
사나이는 4수를 받아 들었다. R 부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까짓 돈으로는 여관에 들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부탁해 보세요. 이대로는 밤을 지낼 수 없어요. 춥고 배도 고플 테죠. 자비를 베풀어 재워 줄 만한 집도 있을 텐데요.”
“여러 곳에 가 보았죠.”
“그랬더니?”
“모두 쫓아내더군요.”
친절한 부인은 사나이의 팔을 붙들고 광장 저쪽에 있는 주교관 곁의 작은 집을 가리켰다.
“당신은 여러 군데 가 보았다고 말했죠?”
“그렇소.”
“저 집에도 갔었나요?”
“아니오.”
“거길 가 보세요.”
그날 밤, 디뉴의 주교는 시내를 산책한 뒤 꽤 늦게까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의무’에 관한 저술에 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교는 8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큰 책을 무릎 위에 펼쳐 놓고 네모진 작은 종이쪽지에 불편을 무릅쓰고 무언가 적고 있었다.
마글루아르가 침대 머리의 벽장에서 그 은식기를 꺼내기 위해 들어왔다. 잠시 후 미리엘 주교는 책을 덮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식당에서 누이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좁고 기다란 식당은 정원 쪽으로 창문이 나 있고 드나드는 문은 한길로 통해 있었다. 과연 마글루아르는 식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을 하면서 바티스틴과 세상 이야기를 했다.
주교가 식당에 들어섰을 때 마글루아르는 무어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잠글 수 없게 된 식당 문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험상궂은 부랑자 이야기였다. 수상한 부랑자가 시내의 어느 곳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오늘 밤에는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은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경찰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서장과 시장이 서로 반목하여 무슨 사건을 일으켜서라도 상대방을 모함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별 있는 사람은 자기가 경찰인 셈치고 조심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리고 문을 단단히 잠그고 빗장을 지르는 등 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 마글루아르는 이 마지막 말을 강조햇다.
주교는 자기 방에서 추위에 떨다 왔기 때문에 난로 곁에 앉아 불을 쬐며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마글루아르가 강조한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이 말을 다시 되풀이햇다. 그러자 바티스틴이 오빠에게도 불쾌감을 주지 않고 마글루아르도 만족시켜 주고자 말을 꺼냈다.
“오빠, 마담 마글루아르의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글쎄다, 들은 것 같기도 하군.”
주교가 대답하고는 의자를 반쯤 회전시켜 나이 든 하녀를 바라보면서 친절하고 유쾌한 듯한 태도로 물었다.
“아니, 왜 그러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우리 집에 어떤 위험이라도 닥쳤나?”
마글루아르는 아까 한 말을 재차 늘어놓았다. 자신도 모르게 과장을 섞어 가면서. 한 방랑자, 부랑자, 위험스런 거지가 지금 시내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여관 주인 리바르도 그 누구도 그 나그네를 재워 주지 않아서 저물어 가는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얼굴 생김새가 여간 무시무시한 게 아니더라는 이야기였다.
“정말인가?”
주교가 말했다. 흥미를 갖고 질문하는 듯하여 마글루아르는 신이 났다. 그녀에게는 주교가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의기양양해서 말이다.
“그렇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오늘 밤 시내에서 어떤 불행한 사건이 일어날 겁니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더구나 경찰은 힘을 못 쓰고, 산간 지방인데 거리에는 가로등도 없다니…..밖에 나가면 캄캄해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바티스틴도 저와 같은 의견이고요.”
“나는…..”
누이동생이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마글루아르는 이 말을 무시하기라도 하듯이 계속 지껄였다.
“우리는 이 집이 전혀 안전하지 못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허락하신다면 자물쇠 장수인 폴랭 뮈제부아에게 가서 전에 달았던 빗장을 다시 달아 달라고 말하겠어요. 빗장은 있으니까 다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요. 오늘 밤만이라도 빗장을 꼭 달아야 해요. 누구라도 밖에서 열 수 있는 문이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어요. 더구나 주교님께서는 언제나 ‘들어와요’하고 말씀하시는 습관이 있지 않습니까. 한밤중에라도 …..아아, 무서워요. ‘실례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제법 컸다.
“들어와요.”
주교가 말했다.
문이 열리고 한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는 두세 시간 전에 이 디뉴 시내에 들어온, 여태껏 마글루아르가 이야기하던 그 사나이였다. 한 발짝 안으로 들어선 사나이는 문을 열어 둔 채로 발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벽난로의 불길에 그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끔찍스러웠다. 그것은 불길한 출현이었다. 어께에는 배낭을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눈은 거칠고 피로해 보이며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글루아르는 소리칠 기력도 없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멍청하게 굳어져 있었다. 바티스틴은 몸을 몰려 들어온 사나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가 난로 쪽으로 천천히 머리를 돌려 오빠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곧 침착성과 명랑함을 되찾았다.
주교는 조용한 눈으로 나그네를 바라보앗다. 그리고 이 낯선 사나이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려는 듯 입을 막 벌리려는 순간, 사나이가 두 손을 지팡이 위에 올려놓고 주교와 두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거센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장 발장이라는 사람입니다. 전과자지요. 19년이나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나흘 전에 석방되어 퐁타를리에로 가는 길입니다. 툴롱에서 나흘이나 걸어 왔습니다. 오늘은 120리나 걸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도착하여 겨관에 갔습니다만, 시청에서 내보인 노란색 여행증 때문에 거절당했습니다. 시청에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다른 여관에도 갔습니다. 나가라고 하더군요. 어느 여관에서나 말입니다. 아무도 처를 맞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교도소에도 갔는데 수위가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개집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개가 덤벼들더군요. 개가 인간처럼 저를 쫓아냈습니다. 마치 제가 누군지 아는 듯했습니다. 저는 밭에 가서 노숙하려 했습니다.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가 올 것 같다. 비를 멈추게 하는 하느님도 안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내로 돌아와 어느 집 문간 밑에서라도 자려 했습니다. 저쪽 광장에서 돌의자에 누워 있는데 어떤 친절한 부인이 이 집을 가리키며 ‘저 빕에 가 보세요’하더군요. 그래서 찾아온 것입니다. 여기는 어딥니까? 여관입니까? 돈은 있습니다. 교도소의 적립금이지요. 감옥에서 19년간 노동해서 번 109프랑 15수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돈은 가지고 있습니다. 몹시 피곤합니다. 120리나 걸었고 허기져 있습니다. 재워 주시겠습니까?”
“마글루아르. 한 사람분의 식사를 더 준비해요.”
주교가 말했다. 나그네는 식탁 위의 램프 쪽으로 서너 걸음 다가섰다.
“그게 아닙니다.”
그는 의아한 듯이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전과자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사나이는 호주머니에서 노랗고 큰 종이쪽지를 꺼내 펼쳐 보였다.
“이것이 저의 여행증입니다. 보시다시피 노란색입니다. 이것 때문에 어디서나 쫓겨났습니다. 읽을 수 있습니까? 저는 읽을 줄 압니다. 감옥에서 배웠지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감옥에도 학교가 있습니다. <장 발장, 석방된 유형수, 출생지는…..>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19년간 복역. 주거침입과 절도로 5년, 탈옥 미수 4회에 14년. 극히 위험한 인물임> 이렇습니다! 모두들 저를 쫓아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재워주시겠습니까? 여기가 여관입니까? 식사와 침상을 주시겠습니까? 마구간이라도 있습니까?”
“마글루아르. 침소에 있는 침대에 흰 깔개를 깔아요.”
주교가 말했다. 두 여성이 얼마나 순종으 잘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마글루아르는 그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식당을 나갔다. 주교는 사나이 쪽으로 돌아섰다.
“자아, 어서 앉아 불을 쬐세요. 이제 곧 저녁이 준비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식사하는 동안 잠자리도 마련될 것입니다.”
그제야 사나이는 이해했다. 지금까지 어둡고 굳어 있던 그 표정이 경이와 의아와 기쁨으로 변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지껄이기 시작했다.
“정말입니까? 뭐라고요, 저를 재워 주시겠다고요? 저를 쫓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요? 전과자인데도요? 저를 ‘당신’이라 부르시는 군요! 신에게도 쫓겨나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신분을 밝혔던 겁니다. 아아, 내게 이곳을 가르쳐 준 부인은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저녁을 먹을 수 있고, 침대도 있고 이불과 깔개가 있는 침대! 다른 사람과 같이! 나는 19년 동안 침대에서 자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쫓겨나지 않아도 되다니! 당신은 훌륭한 분이군요! 하지만 저는 돈을 가지고 있어요! 값은 치르겠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주인장,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친절한 분이세요. 그런데 당신은 여관집 주인이 아닙니까?”
주교가 말했다.
“나는 여기 살고 있는 신부요.”
“신부!”
사나이가 계속해 말했다.
“아아, 친절하신 신부님. 그렇다면 대금은 청구하시지 않겠군요? 신부….저 큰 성당의 신부님? 참 그렇지. 나는 바보로군! 신부님의 모자를 미쳐 못 보다니!”
그러면서 사나이는 배낭과 지팡이를 당에 내려놓고 여행증을 집어넣은 다음 의자에 걸터앉았다. 바티스틴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이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친절하신 신부님이군요. 경멸하지 않으시다니! 훌륭한 신부님이란 참 좋은 것이군요. 제가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까?”
주교가 말했다.
“그렇소. 돈은 그대로 넣어 두시오. 얼마 가지고 있다고 했죠? 109프랑이라고 했나요?”
“그리고 15수가 있습니다.”
“109프랑과 15수. 그 돈을 버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소?”
“19년입니다.”
“19년.”
주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나이가 말을 이어 했다.
“저는 그 돈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나흘 동안 저는 25수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그라스에서 짐 싣는 일을 도와주고 번 돈입니다. 신부님이시라니까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있던 교도소에도 교회사(敎誨士)가 계셨습니다. 하루는 주교님도 보았습니다. 모두들 예하라 부르더군요. 마르세유에서 온 마조르 주교였습니다. 신부님 위에 있는 신부님이죠.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표현이 잘 안 되는군요. 저하고는 인연이 머니까! 아시겠지요, 제가 하는 말을? 그 사람은 교도소 한가운데에 있는 제단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머리에는 금으로 만든 뾰족한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 대낮의 햇빛에 그것이 빛나고 있었어요. 우리는 세 방향으로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는 대포와 불붙은 화약 심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무어라 말했지만 너무 구석져서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교라는 것이더군요.”
사나이가 말하고 있는 동안 주교는 열려 있는 문을 닫으러 갔다. 마글루아르가 돌아왔다. 그녀는 1인분의 식기를 가지고 와서 탁자에 놓았다.
주교가 말했다.
“마글루아르, 그 식기를 되도록 난로 가까이에 놓아 줘요.”
그러고는 손님을 향해 말했다.
“알프스 지방은 밤바람이 차요. 당신은 몹시 추워 보이는군요.”
주교가 이 ‘당신’이란 말을 정중하면서도 정답게 부를 때마다 사나이의 얼굴은 환희 빛났다. 전과자에게 ‘당신’이라니! 그것은 메뒤즈 호(1816년 7월 2일 프랑스에서 침몰한 배로 12일간 표류하는 동안 149명 중 15 명만 생존함. 너머지는 물에 빠져 죽거나 생존자의 인육으로 먹힘)의 조난자에게 주는 한 잔의 물과도 같았다. 모멸당한 자는 존경을 갈망하는 법이다.
“램프가 어둡구먼.”
주교가 말했다. 마글루아르가 그 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주교의 침실로 가서 난로 위에 있는 두 개의 은촛대를 가져다가 불을 켜고는 탁자 위에 놓았다.
사나이가 계속해 말했다.
“신부님. 저를 경멸하지 않으시다니 정말 친절한 분이십니다. 깍듯이 맞아들여 촛불까지 켜 주시다니요. 제가 어디서 왔고 얼마나 가련한 녀석인가를 말씀드렸는데도.”
주교는 그의 곁에 앉아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꼭 말할 필요는 없었어요. 여기는 내 집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지요. 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은 묻지 않습니다. 당신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리고 목말라 있어요. 잘 오셨습니다. 나에게는 감사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당신을 맞아 들였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피난처를 원하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이 집을 사용하지 못해요. 나그네에 불과한 당신에게 말합니다. 이 집은 내 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집입니다. 여기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 필요가 어디 있겠소? 그리고 당신이 이름을 말하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는 이름이 하나 있어요.”
사나이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정말입니까? 제 이름을 알고 계셨나요?”
주교가 말했다.
“그렇소. 당신의 이름은 ‘나의 형제’라는 것이오.”
사나이가 외쳤다.
“신부님! 제가 여기 들어올 때에는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친절히 대해 주시는 바람에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줄도 모르겠습니다.”
주교가 사나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무척 고생을 했겠군요.”
“지긋지긋합니다! 붉은 죄수복, 발에는 쇠로 만든 족쇄, 잠자리는 널빤지에 더위와 추위, 노동, 득실거리는 죄수들, 몽둥이찜질! 별일도 아닌데 이중으로 쇠사슬을 채우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토굴 속에 집어넣고, 병에 걸렸을 때에도 쇠사슬을 채우니 개가 차라리 행복할 겁니다. 19년 동안 말입니다! 저는 이제 마흔 여섯 살입니다. 지금은 노란색 여행증, 이것이 저의 전부입니다.”
주교가 말을 받았다.
“그렇군요. 당신은 정말 슬픈 곳에서 나왔습니다. 내 말을 들어 보세요. 천국에서는 흰 옷을 입은 10명의 의인보다도 눈물로써 회개하는 한 사람의 죄인에게 더 많은 기쁨을 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 고통스러운 장소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품고 나왔다면 당신은 분명히 가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선의와 온정과 평화를 갖고 나왔다면, 당신은 우리들보다 더욱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마글루아르는 묵묵히 저녁을 준비했다. 물과 기름과 빵과 소금으로 만든 수프, 약간의 베이컨, 양고기 한 조각, 무화과, 신선한 치즈, 큼직한 검은 빵. 주교가 평소에 먹는 이들 음식 외에 오래된 보랏빛 포도주 한 병도 곁들여 놓았다.
순간 주교의 얼굴에서는 손님 접대를 즐기는 사람들의 공통된 표정이 떠올랐다.
“자아 어서 듭시다.”
주교는 원기 있게 말했다. 주교는 낯선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일에 익숙했다. 사나이는 주교의 오른쪽에 앉고 누이동생은 주교의 왼쪽에 앉았다. 주교는 기도를 끝낸 다음 손수 수프를 떠 주었다. 사나이는 마구 먹어 대기 시작했다.
문득 주교가 말했다.
“식탁에 빠진 게 있는 것 같은데….”
과연 마글루아르는 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식기만을 갖다 놓았던 것이다. 순진한 자랑이기는 했으나, 주교가 손님을 초대할 때엔느 6인분의 식기를 식탁에 갖다 놓는 것이 이 집의 관습으로 되어 있었다. 이 우아한 사치는 가난을 존중하는 부드럽고도 엄격한 가정에 있엇 매력 있는 유희의 하나였다.
마글루아르는 주교가 지적한 의미를 얼른 알아차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나가 주교가 요구한 3인분의 식기를 가지고 돌아와 각자가 앉은 자리에 놓았다. 이들 식기는 식탁 위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비앵브뉘 예하는 누이동생에게 편히 자라는 말을 한 다음, 탁자에서 은촛대를 들고 하나는 손님에게 주면서 말했다.
“자아, 내가 침실까지 안내해 드리리다.”
사나이는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주교의 방을 지날 때, 마글루아르는 은식기를 침대 머리에 있는 벽장에 챙겨 넣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저녁마다 자기 전에 하는 마지막 일이었다.
주교는 사나이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은촛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하얗고 깨끗한 침대가 손님ㅇ르 기다리고 있었다.
주교가 말했다.
“그러면 편히 쉬세요. 내일 아침에는 떠나기 전에 우유를 뜨겁게 해서 한 잔 드리지요.”
“아아, 정말이지! 댁에서는 나를 이렇게 당신 곁에 재워 주겠다는 말입니까?”
그러다 사나이는 갑자기 몸을 돌려 증오에 찬 눈으로 주교를 쏘아보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아니, 정말 날 이렇게 당신 곁에 재우실 생각이오? 이렇게 정중히 말이오. 내가 어떤 짓을 한 사람인지 생각이나 해 보셨소? 내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 않소. 그리고 또 내가 훙악한 짓을 할는지도 모르지 않느냐 말이오!”
주교는 천장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그건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오.”
주교는 정중하게 기도드리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입술을 움직이면서 오른쪽 두 손가락을 들어 사나이를 축복했다. 사나이는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주교는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침실에 사람이 들어가면 기도실 한끝에서 다른 끝까지 커다란 커튼이 쳐져 제단을 가리게 되어 있었다. 주교는 이 커튼 앞을 지나면서 무릎을 꿇고 짤막한 기도를 드렸다. 잠시 후 그는 뜰로 내려셨다. 걷기도 하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영혼과 사상을 저 위대한 선의 신비에 바치고 있었다.
사나이는 완전히 피로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희고 훌륭한 이부자리를 즐길 여유도 없었다. 죄수들이 흔히 그러듯이 그는 콧김으로 촛불을 끄고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들어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정원에 나갔던 주교는 자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에는 온 집이 잠 속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