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 사람은 낡아지나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은
2018, 9, 2
고후4 : 16-18
여러분 지난번에 내가 말씀 드린 설교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가 있다면 자기도 믿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씀 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지옥의 실상을 증거 한다 해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증거가 없어서 못 믿는 것이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믿음으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이 주께서 성경 통해서 자기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의 말씀을 받은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는 주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하시는 초청장과 같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 말하면 주의 말씀에 크게 은혜를 받고 그 은혜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은혜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다시 그 은혜로 돌아오게 하는 말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리키시는 물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말씀을 은혜로 받은 사람은 언제나 그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마치 생수를 솟구쳐내는 샘물처럼 다시 그 은혜를 새롭게 받게 한다는 뜻입니다.
주의 말씀에 크게 은혜를 받으면 주의 말씀은 언제나 변함없이 생수를 솟아내는 샘물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러한 은혜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다윗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천한 목동으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미리 정하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다윗을 다음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은 결코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위를 약속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 받은 자들의 모본으로 다윗을 그 예와 증거로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과 주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사해 주신 것을 믿는 믿음과 주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을 것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시는 증거로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시면서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다면 무엇을 더 의심하겠습니까?
우리가 받은 성령이 우리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보증이십니다.
이처럼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우리에게는 부활과 영생이 확실한 것입니다.
앞에 있는 고린도후서 3장 18절 말씀은 주님이 재림해 오실 때에 우리들이 주님 앞에 서서 영광의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서서 심판을 받는 날 우리의 상은 우리가 얼마나 주의 형상을 닮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상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하게 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틴데일 주석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와 같은 형상의 변화는 한 시점의 깨달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장기간의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동사의 시제가 현재시제로 되어 있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변화의 계속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경험으로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믿음도 더 확실해지고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형상도 분명해 지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어느 유명한 신학대학교 교정에 두 개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고 합니다.
두 동상 동일한 인물을 표현하고 있는데 한 동상은 얼굴과 머리 눈과 코와 입과 귀 모양이 분명하고 팔 다리 모든 사람의 지체 모형이 분명한 동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옆 있는 다른 동상은 아직 미완성으로 전체 모형이 두리 뭉실해서 얼굴부분의 눈 코 입 귀 모양이 분명치 않은 동상이라고 합니다.
그 신학교에서는 이 두 동상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자 했습니까?
내 생각으로는 여러분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형상은 분명하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 아닐까요?
16절 본문 말씀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우리가 어떤 경우를 만나든 낙심하지 않는 이유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첫 째는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살면서 환난을 당하지만 결과는 영원한 영광을 얻게 하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도다.”
겉 사람이란 우리의 육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겉 사람이 너무나 낡아서 이제 곧 무너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낡아지고 또 환난과 우환과 염려와 근심으로 점점 낡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이 낡아지는 것은 언젠가 벗을 징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겉 사람을 의지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겉 사람과는 달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나는 겉 사람이 날로 낡아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지만 속사람도 날로 새로워지는 것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속사람을 큰 개념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속사람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믿음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의 마음을 가리켜 속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가면서 우리의 속사람도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5장 4절 하 반절에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함이라.” 하시는 말씀은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해 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죽을 것”이란 자기를 위하여 육신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이 주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믿음을 갖게 되면 그 동안 주의 말씀을 대적해 오던 육신의 마음은 힘을 잃고 소멸되어 갑니다.
이 것을 가리켜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한다.”고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이처럼 육신이 마음을 소멸 시키고 죽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의 은혜와 믿음을 갖게 되면, 육신은 소멸되어 가지만 속사람은 주의 은혜로 날로 새로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를 더 알아가면서 속사람이 성장해 주의 마음과 주를 더욱더 닮아가며 주의 형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형상을 크게 입을수록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면류관이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17절에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당한 환난은 결코 가벼운 것도 아니요, 짧게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주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래 그가 당한 환난은 계속 되었고, 또 언제나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우리가 받는 환난은 잠시이고 경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큰 영광의 그 영광의 영원한 것에 비교하면 그가 세상에서 받는 환난은 잠시이고 가벼운 것이라고 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벌거벗은 자가 되면 영원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입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면류관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 점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각각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능력과 면류관이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 앞에서 각자가 한 번 받은 그 심판대로 영광과 존귀가 영원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또 다른 변화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육신을 이기며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순종의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기독교 역사의 위대한 종들의 말을 들어보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지만 우리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마음을 다해 육신과 극렬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을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 하노라.”
히브리서 12장 4절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주를 의뢰하며 피 흘리기까지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다,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 해도 담대 하라, 세상을 이긴 내가 너희 안에 있어 너희의 싸움을 내가 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의지하고 담대하게 행하라,”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의 육신과 세상에 대항해서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시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와 상관 없이 죄와 육신에 대해서 싸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싸우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의뢰하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이 세상 것들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들은 잠간 있다가 다 없어질 것들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주님은 재림해 오시는 것이며, 그 때에 우리는 부활하여 영광의 새 몸을 입고 주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우리에게 약속 된 영광과 존귀와 면류관을 받는 것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자의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천만번을 죽어도 자기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부활할 것을 알고 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만 원하는 것은 주님을 더 아는 것과, 세상과 육신을 이기고 어떻게 주의 뜻대로 행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요즈음 시편 16편8절에서 다윗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 쪽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하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나도 다윗처럼 내 앞에 주님을 모시고 그분을 생각하면서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내 앞에 모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27편 1절에서 “여호와는 빛이시오, 내 생명의 능력이시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의 지혜와 생명의 능력과 힘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4장 17절에서 “주께서 내 옆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 옆에 서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을 앞에 모시고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는 비밀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진실하게 기도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