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박여름
목요일 구름 밥상 외
능소화는 불꽃으로 튀고요
캐스빌 앞 둥근 시계는 정오를
온몸으로 껴안아요
도련님, 우리 도련님
밥은 먹고 가세요
프라이팬 도로 위, 토마토는 춤추고요
소방차 목마름이 그 위를 달려요
수족관 속 물고기 뛰쳐나와요
붉은 정오가 질식해요
색맹인 도련님, 우리 도련님
목요일은 한솥밥 먹고 가요
셔틀버스에 아침을 두고 내린 낮달
하얀 눈동자가 풀리고요
맥문동에 빠진 힘없는 축구공
태양 위로 다시 올라요
도련님, 우리 도련님
채송화보다 작은 도련님,
밥은 먹고 가야지요
식탁 위에 구름만 가득 차렸어요
해바라기가 설익었다고 불평은 마세요
장미학습원 장미는 가시를 학습 중이듯
목요일도 바싹구름, 연습 중이지요
가벼운 지문만 남기세요
여름 언덕을 넘는 우리 도련님,
안녕,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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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찾아서
아버지가 문밖으로 사라지자
매서운 눈도 떠났다
집을 벗어나기 좋은 날이다
아침부터 참새와 아이들이 내기한다
“없는 지문 대신 질문할게. 네 눈에는 뭐가 들었니?”
참새는 동공을 굴리며 눈을 찾는다
흔들림 속에서 새팥콩꽃이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생각보다 넌 참 이쁘구나”
“생각보다 넌 생각이 참 이쁘구나”
비에 젖은 묵직한 종이박스
깊은 눈으로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탈출하기 좋은 날이군”
박스 사이로 목줄 풀린 개가 꼬리를 내리고 지나간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달들이 굴러 나온다
보름달 서비스* 트럭 가득 달을 싣고 와 하늘에 단다
관람객들은 달을 향해 풍선을 띄운다
풍선 안에는 눈 뜬 꽃이 가득하다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네? 네? 어색한 대답만 남기고 그는
풍선 속으로 사라진다
탈출한 도시가 어두워진다
누군가 긴 끈을 잡아당긴다
말린다
집이다
*보름달 서비스: 에릭 요한스 작품. 스웨덴 출신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및 리터칭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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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름|본명 박금숙. 강원도 태백 출생으로 2024년 《시와소금》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방송대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