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의 감동, 그 뒷 이야기
격정이 끝난 다음은 늘 공허하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지 1주일이 흐른 지금, 선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71년생 돼지띠 동갑내기
임오경 감독(
서울시청)과 라디오 MC
이은하씨는 여전히 몸살과 무기력감 등 올림픽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임 감독은 지난 올림픽에서 남녀 핸드볼 경기 해설을 맡았고 이씨는
MBC 표준FM ‘이은하의 아이러브스포츠’를 현지에서 진행했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지난 4년간의 땀과 눈물, 투지를 아낌없이 토해내는 선수들을 지켜보며 이들도 함께 기뻐하고, 울고, 아쉬워했다.
여자 핸드볼 팀의 동메달 확정 순간 울먹이며 눈물보다는 환한 미소를 국민에게 당부했던 임오경 감독과 남자체조
양태영, 남자역도 이배영, 카누
이순자 등 노메달 선수들과의 잇단 단독 인터뷰로 메달 이외의 감동을 전한 이은하씨. 이들을 최근 여의도 MBC 사옥에서 만나 스포츠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열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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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 해설을 맡은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과 메달권에 들지 못한 선수들과 집중 인터뷰한 ‘이은하의 아이러브스포츠’ 진행자 이은하씨는 “스포츠는 결코 기록 경쟁이 아니라 그 기록에 얽힌 사람들의 땀과 눈물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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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들 보면 눈물부터 난다”
임오경 감독은 지난달 23일 여자 핸드볼팀의 동메달 확정 순간 “너무나 아름다운 이 순간, 선수들은 빼앗긴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을 땄다.”면서 “시청자들도 오늘만큼은 울지 말고 환한 미소로 이들을 응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금메달) 때부터 시작해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은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메달) 등
여자핸드볼 맏언니 선수로 활약하다가 지난 7월 창단한 서울시청 감독으로 활동하던 중 해설위원으로 깜짝 데뷔한 임 감독은
이번에 처음으로 코트 밖에서 ‘어린 동생들’을 응원했다.
그는 “올림픽 때마다 눈물이 나는 이유가 예전에는 내가 선수라서, 그간 코트에서 흘리는 땀과 눈물, 고생이 그 순간
벅차올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본 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더라”면서
“(선수에서 감독으로 변한 지금 역시) 여자핸드볼은 늘 내게 눈물이고 짠함이고 안타까움”이라고 말했다.
이은하씨는 몸싸움이 유난히 심한 여자핸드볼의 경기 속성에서 눈물의 이유를 찾았다. 이씨는 “왜소한 우리 선수들이 키 큰
외국선수들 틈바구니에 끼어 나자빠지고 그 와중에도 투지를 발휘해 골을 넣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남자경기가 대체로 인기 있는 구기 종목 중에서 유독 여자핸드볼이 국민으로부터 더 관심과 성원을 끄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들은 올림픽 기간에만 여자핸드볼 등 이른바 ‘비인기 종목’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아쉬워했다.
임오경 감독은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 팀이 선전한 것은 선수들의 뚝심과 투지 때문이지 결코 풍부한 관심과 지원에
있지 않다고 잘라말했다. 임 감독은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더욱 더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한다는 절박감과 투지가 선수들 사이에서 공유돼 동메달을 딴 것”이라며 “올림픽 때의 전 국민적 관심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평소에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하씨도 “핸드볼 전용 경기장은 전국에 단 한 곳도 없고
4∼9일 핸드볼 코리안리그 전국실업대회 역시 대다수 관객은 볼 수 없는 전남 무안서 열린다.”고 아쉬워했다.
# “‘여자라서 안 돼’라는 말이 싫다”
임 감독과 이씨는 닮은 점이 꽤 많다. 임 감독은 자신의 선수 지도 방식에 대해 “선수들에게 과정에 걸맞지 않은 결과물을
낼 때는 화를 내고 엄하게 다루더라도 그들 모두가 내 가족처럼 소중하다는 초심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했고,
이씨는 ‘아이러브스포츠’ 제작·진행 원칙에 대해 “단순한 스포츠 뉴스를 전달하는 게 아닌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나는
‘스포츠 쇼’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이외 동갑내기로 각각 ‘악바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고
박성우 감독과 정지원 아나운서 등 각각 스포츠계 스타들과 결혼해 슬하에 딸 1명을 둔 것도 닮았다.
무엇보다 이들은 핸드볼과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첫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임 감독은 국내 유일의 여자핸드볼
실업팀 이자 아시아 최초 여성 감독이며 이은하씨는 2002년 라디오·TV 스포츠 프로그램 첫 단독 여성 MC 시대를 열었다.
임 감독은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이 너무 싫었다.”면서 “여성 감독으로서 뭐가 더 낫다는 말보다는 좋은 성적으로
다른 감독들에게 경쟁심과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씨 역시 “편안함과 세심함 등 여성으로서 장점을 살리면 자연스럽게 타 프로와 차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비단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방송프로그램, 특히 스포츠 관련 프로는 선수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애정이
기본이 돼야 하고 이러한 점에서 ‘이은하’의 ‘아이러브스포츠’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출처: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