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회를 세우리라(I will build my church)...(23)
‘포도원의 품꾼들’은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화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어낸 비유이다.
하지만 번역의 오류로 인해 화자의 메시지가 왜곡된 전형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이 비유를 읽고서 인간의 상식적인 판단과 너무 다른 하나님의 주권을 떠올린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사람과 빈둥거리다가 나중에 달랑 한 시간 일한 사람의 품삯을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 지급하는 주인의 부당한(?) 결정을 다만 인간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재삼 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마20:1-3)
‘포도원의 품꾼들’은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지만 대부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비유’라고 분명히 명시한 본문은 실제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징적인 비유이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포도원은 천국을 상징하는 장소적인 관점이 아니라 포도원과 주인, 그리고 품꾼들과 부당한(?) 품삯을 포함해서 비유 전체가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 ‘통치’의 개념에서 천국(하나님 나라)를 나타낸다.
이를테면 본문이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 나라 신학’에서 힘주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상징으로 제시된 포도원은 세상의 가치, 상식과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특별한 속성을 제시하고 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마20:1-3)
만약에 천국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서 장소의 개념으로 주장한다면, “천국은... 집 주인과 같다”라는 문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종말 이후의 ‘새 하늘과 새 땅’의 개념에 대해서는 신학적인 논란이 거세지만, 집 주인은 사람이지 분명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천국은... 집 주인과 같다”로부터 시작하는 본문에서 포도원은 천국을 가리키는 장소적 의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특별한 속성이라는 주장을 인정한다 해도 어떤 면에서 포도원의 비유가 천국의 속성을 가리키는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1절부터 16절까지 이어지는 장문을 통해서 언뜻 떠올릴 수 있는 속성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가 보장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한 품꾼들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도원에 들어가서 ‘상당한’ 품삯을 받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나없이 일자리가 보장되는 사회는 분명히 이상적인 사회라는 관점에서 천국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여기에서 ‘상당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많은’이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문맥상 의미는 ‘일한 만큼’이기 때문에, ‘상당한’보다는 ‘해당하는’으로 옮기는 것이 바른 번역이다.
어쨌든 성경이 기록한, 제삼시부터 일한 사람만이 아니라 제육시와 제구시, 심지어 제십일시부터 일한 사람들까지 모두 ‘상당한’ 품삯, 다시 말해 같은 품삯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