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추가 자료편(종말, 말세)
▣ 시대의 징조
본문: 요한계시록 9:13 ~ 21, 찬송 545장 (통 344장)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계 9:20~ 21)
그리스도인은 신앙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과 징조를 모두 읽는 안목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 시대의 징조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재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시대는 재앙의 시대입니다. 이 재앙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재앙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죽음이 도처에 있음을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 우상에게 절하고(20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씀은 이렇게 거듭되는 재앙을 피하는 길 또한 안내해줍니다.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재앙의 시대를 건너는 사람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건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복음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외치셨던 예수님의 일성(一聲)을 기억해봅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 15).”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완고한지요? 큰 재앙에서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거나 우상을 섬기거나 살인과 복술, 음행과 도적질을 자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 주신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해 열강에게 망하고 말았던 이스라엘이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음을 고발했던 에스겔 선지자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이와 같은 시대의 징조가 도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불신앙적인 모습들이 수없이 목격됩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습이면서 이미 나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혜의 등불을 환히 밝힙시다.
* 기도: 주님, 시대의 징조를 읽을 수 있는 안목과 지혜를 주소서. 아멘.
/가정예배365
▣ 종말 불감증
심판의 날 시계(Doomsday Clock)라는 게 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발행하는 한 과학잡지의 표지에 게재되는 것으로, 종말의 날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시해 준다. 각종 위기 요소를 시각 변경의 기준으로 삼는다. 핵무기나 테러 확산, 지구온난화나 지진, 천재지변 등의 영향을 반영해 조정한다. 2014년 1월 현재 23시55분을 가리키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보면 ‘종말 5분 전’이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말 이전에 성경은 이미 지구의 종말을 단언하고 있다. 그날은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고 최후의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기 전 미군 당국은 여러 차례 삐라를 뿌렸다. 8월 6일 0시 이전까지 50리 밖으로 피하라는 경고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다 큰 피해를 당하고 말았다. 삽시간에 히로시마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24만 명의 시민 중 무려 14만 명이 희생되고, 남은 사람들도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생하게 됐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가장 무서운 병은 불감증이다. 자각하지도 못한 채 죽어가기 때문이다. 종말 불감증도 마찬가지다. 노아 홍수 심판 전날, 소돔 유황불 심판 전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정신 줄 놓고 살다 멸망한 사람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마 24:13), 깨어 기도하고(벧전 4:7),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자(딤후 4:2). 종말은 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 그리고 재림 전 언제라도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 무조건 떠나야 되는 개인적 종말이 코앞에 있음을 절대 잊지 말자.
/홍문수 목사(신반포교회)
▣ 수직적인 종말론
기독교 종말론은 수평적(horizontal)이라기보다는 수직적(vertical)이다. 수평적이라는 말은 종말 사건이 시간적으로 먼 미래에 일어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수직적이라는 것은 종말 사건이 수직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임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마음껏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고 천국 가면 된다’는 태도는 기독교 종말론에서 설 자리가 없다. 오늘 이 자리가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어느 목사의 설교 중에 나온 간증이다. 경북 김천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교우가 있다. 그는 “예수님께 드려도 크게 부끄러울 것이 없을 만한 설렁탕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정성을 쏟아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뼈와 고기를 대주는 집에서 실수로 좋지 않은 재료를 보낸 적이 있다. 뼈를 고았는데 뽀얀 국물이 나오지 않고 누런 국물이 나왔다.
그는 “이번 한 번만 커피 프림을 넣어 색깔을 내라”는 말을 들었지만 국물을 다 버리고 그날 하루 장사를 하지 않았다. 적당히 모양만 그럴싸하게 하기 위해 프림을 쓰고 맛도 눈속임하기 위해 인공조미료를 듬뿍 넣어 장사할 수도 있다. 그것이 세상사는 요령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식이 아니고, 종말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태도가 아니다. 아마 그 설렁탕 주인은 주님이 당장 오신다고 해도 떳떳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홍 목사(우이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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