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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3일 월요일
[(녹)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하난야가 대립하는 내용이다.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을 하는 하난야를 꾸짖는다.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주님을 거역한 하난야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곧 죽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시자 그들은 겁에 질린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이르신다. 베드로는 주님의 명에 따르지만 곧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물에 빠진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건지시며 믿음이 약하다고 나무라신다(복음).
제1독서
<하난야,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8,1-17
1 유다 임금 치드키야의 통치 초기 제사년 다섯째 달에,
기브온 출신의 예언자이며 아쭈르의 아들인 하난야가
주님의 집에서 사제들과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에게 말하였다.
2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기로 하였다.
3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 다시 돌려 놓겠다.
4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유다의 모든 유배자를 이 자리에 다시 데려다 놓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정녕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겠다.’”
5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제들과,
주님의 집 안에 서 있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6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였다.
“아무렴,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
주님께서 당신이 예언한 말을 실현시키시어,
주님의 집 모든 기물과 모든 유배자를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옮겨 주시기를 바라오.
7 그러나 이제 내가 당신의 귀와 온 백성의 귀에 전하는 이 말씀을 들어 보시오.
8 예로부터, 나와 당신에 앞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많은 나라와 큰 왕국들에게 전쟁과 재앙과 흑사병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소.
9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가 참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드러나는 것이오.”
10 그러자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내어 부수었다.
11 그러고 나서 하난야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모든 민족들의 목에서 벗겨 이와 같이 부수겠다.’”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기 길을 떠났다.
12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부순 뒤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13 “가서 하난야에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오히려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
14 참으로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모든 민족들의 목에 쇠 멍에를 씌우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길 것이다. 나는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넘겨주었다.′’”
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2-36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물에빠져들기시작하자, “주님, 저를구해주십시오.” 하고소리를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베드로가 주님께 부탁한 의도가 무엇일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문득 개인적으로 이렇게 풀이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혼자라도 배에서 내려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요.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다른 형제들의 어려움은 제쳐 두고, 혼자만이라도 빠져나가려는 생각을 하였다고 상상해 본 것입니다.
때로는 공동체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다른 이와 함께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다 그만두고 사람들을 피하여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거센 바람과도 같은 어려움이 들이닥칠 때,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었든 나라도 살려 달라며 주님께 부르짖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베드로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 것처럼 혼자서 헤매기도 합니다.
바람은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그쳤습니다(14,32 참조). 배에서 내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과 함께 배에 머물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더라도 머물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 살고 싶다고 빠져나가더라도 주님께서는 아마도 우리의 손을 잡아 끌고 다시 배에 오르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의 일원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공동체에 늘 편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공동체이기에 풍랑에 맞서 함께 노를 저으며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제자들이 되면 좋겠습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더위를 즐깁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펄펄 끓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피정 센터가 바닷가 언덕 위라 그동안 시원했는데, 이제는 저희 집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하루를 잘 버티는 것 만해도 칭찬받아야 할 극한 더위입니다.
그래도 극성수기라 청소년 신앙학교는 계속됩니다. 오늘 오전 2박 3일 일정으로 한 본당 아이들이 빠져나갔지만, 한가하게 쉴 수가 없습니다. 이틀 후면 또 다른 일정이 계속됩니다. 하루 온종일 아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청소하고 점검하고, 마무리로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까지 분리 수거해서 한 트럭 배출하고 나니, 어느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저를 보며 불쌍한 시선을 보내지만, 저는 솔직히 너무나 보람되고 행복합니다.
너무 너무 덥다고 투덜대면서 하루 온 종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지내는 것보다, 온 몸으로 땀을 다 배출하며 열심히 일하니 마음이 얼마나 뿌듯해지는지 모릅니다. 팍팍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찬물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들이키는 캔 맥주 한잔!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천국이란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천국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으며, 보람된 일을 찾아 땀 흘려 일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을 만끽한다면, 어쩌면 천국을 앞당겨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덥다 덥다 외치며 괴로워하지만 마시고,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땀을 흠뻑 흘려보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 주님과 이웃,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기회를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나몰라라 하는 성당 공용 화장실, 땀 뻘뻘 흘리며 시원하게 한번 청소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더 좋은 피서, 주님께서 기뻐하실 피서는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요즘 더위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들처럼 역풍을 만나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나 몰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덕 위에 서서 ‘쌩고생’하던 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윽고 개입하실 순간이 오자 지체 없이 제자들을 향해 다가가십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던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 27)
이윽고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미친듯했던 바다는 순식간에 잠잠해졌습니다. 고통의 바다(苦海)인 이 세상을 건너가며 갖은 역풍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큰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삶이 흔들릴 때 마다, 죽을 것만 같은 회색빛 날들이 계속될 때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우리에게서 당신 눈길을 떼지 않고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리 큰 파도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아무리 칠흑 같은 밤길이 거듭된다 할지라도, 머지않아 그분께서 내 인생의 배 위로 올라오시면 순식간에 역풍은 멎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란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여행길입니다. 여행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는 관대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여행지에서는 집에서처럼 안락한 잠자리를 꿈꿀 수는 없습니다. 물설고 낯선 나라에서까지 내 입에 딱 맞는 향토음식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갖은 불편들, 낯선 문화와 접하면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순례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인생의 역풍으로 인해 두려울 때 마다, 갖은 인생의 고통으로 인해 힘겨울 때 마다, 우리 항해의 선장이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인생의 배, 선장실에 앉아계시고, 언제든지 내게 다가올 준비를 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처럼 나 그러하기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마태 14,25)
불신
거슬러
믿음이신
당신처럼
나 그러하기를
절망
거슬러
희망이신
당신처럼
나 그러하기를
무정
거슬러
사랑이신
당신처럼
나 그러하기를
홀로
거슬러
함께이신
당신처럼
나 그러하기를
죽임
거슬러
살림이신
당신처럼
나 그러하기를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먼저 호수 건너편으로 가려고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고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호수가 잔잔해졌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을 때가 바로 위기상황(危機狀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고, 찾고, 바라는 순간, 우리의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물 위를 걸어가다가 다른 것에 시선과 정신이 팔렸을 때 물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을 때,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볼 때,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할 때,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할 때 우리는 물 속에 빠져들 듯이 악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을 찾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원하며 늘 주님과 함께 모든 일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니고데모 (Nicodemus)
활동년도 : +1세기경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니고데무스, 니꼬데모, 니꼬데무스, 니코데모, 니코데무스
예루살렘 유대인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고, 산헤드린의 멤버였던 성 니코데무스(또는 니고데모)는 어느 날 밤에 예수를 몰래 찾아왔다.
그는 예수를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선생님”으로 인정하며, 영생에 대한 질문과 세례에 대하여 담화하였다
(요한 3,1 이하).
또한 그는 예수를 두고 논란을 일삼는 바리사이파와 대제관들에게 대하여 예수를 두둔하는 말을 하였다(요한 7,50-52). 또한 그는 예수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많이 가져 왔으며, 아리마태의 요셉과 더불어 예수님을 새 무덤에 모셨다(요한 19,39-42). 신약에서는 직접 언급한 바는 없으나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가 되었으리라 믿는 것이다.
한 복음서 외경에 의하면 초세기 교회에서 성 니코데무스의 이름은 자주 회자되었다.
그는 비록 신약성서에 그의 개종이나 순교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늘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성녀 리디아 푸르푸라리아(Lydia Purpuraria)
활동년도 : +1세기경
신분 : 의류상인, 바오로의 제자
지역 :
같은 이름 :
소아시아의 아크-히사르(티아디) 태생인 성녀 리디아는 자색 옷감 장수였는데, 필립비(Philippi)에서 행한 성 바오로(Paulus)의 설교에 감복하여 첫 번째 개종자로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 최초의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온 집안 식구들도 영세를 받게 하고, 사도 바오로로 하여금 그녀의 집에 기거하면서 선교활동을 하도록 협력하였다(사도 16,12-15).
리디아와 그의 가족은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자색 옷감 장수였는데, 그 말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부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사용된 자색 염료는 조개류에서 추출된 귀한 재료라서 그 색깔로 물감을 들인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상류층에 국한되었고 그렇게 비싼 옷감을 취급할 수 있었던 상인들 역시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이다.
부는 종종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생각되곤 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마태 19,24)라는 성서 말씀도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말씀은 가난하기만 하면 무조건 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서에는 리디아가 개종한 후 사업을 포기했다는 언급은 없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자기 재산을 지혜롭게 사용했을 것이다.
돈의 가치는 그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성녀 치라 (Cyra)
활동년도 : +5세기
신분 : 은수자
지역 :
같은 이름 : 키라
성녀 마라나(Marana)와 성녀 키라(또는 치라)는 시리아의 베레아(Beroea) 근처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들은 한 해 중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을 제외하고는 늘 거룩한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복자 아우구스티노 가조티크(Augustine Gazotich)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자그레브(Zagreb)
활동연도 : 1260?-1323년
같은이름 : 가조틱,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카조티크, 카조틱
아우구스티누스 가조티크(Augustinus Gazotich / Kazotic, 또는 아우구스티노 가조티크)는 1260년경 달마티아(Dalmatia) 지방의 토르기르(Torgir,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도시)에서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는 20세 때에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수도서원을 한 후 파리(Paris)에서 수학하고 귀향하던 중 친구인 야고보 수사는 노상강도를 만나 피살되고, 자신은 일주일간의 부상을 입고 무사히 귀향한 적이 있었다. 그는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과 행적을 본받고 전파하려고 애썼던 인물이다.
1303년 그는 교황 베네딕투스 11세(Benedictus XI)에 의하여 오늘날 크로아티아(Croatia)의 수도인 자그레브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즉시 교구 개혁을 시작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이 속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경 연구에 힘과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학교와 도서관을 설립했고,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수입을 나누어 주었다. 또 그에게는 치유의 은사가 있어서 많은 주민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는 참피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는 오스만투르크(Osman Turk)인들이 침입했을 때 기적의 나무가 되어 주민들을 구했다고 한다.
그는 교황을 만나기 위해 아비뇽(Avignon)을 방문한 후 자그레브로 돌아오지 못하고 1323년 이탈리아의 루체라(Lucera)에서 선종하였다. 1702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는 그에 대한 공경을 재확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