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단(惹端)스럽지 않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공부에 매달리면서도 원효와 같은 스님들은 선방을 나와서 ‘언어와 생각으로 가 닿기 힘들다’는 선을 대중에게 말의 형태로 전달하려고 애써 왔다. ‘들에 단을 세우고 설법을 듣는 자리를 만든다’는 뜻의 한자어인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스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대중들이 많이 몰려든 상황을 일컫다가,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하는 시끄러운 판’을 뜻하는 일반어로 자리잡았다.”
이 글은 근자의 어느 일간신문에 게재된 것이다. 불교 법회의 하나인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말이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하는 시끄러운 판’을 뜻하는 말로 뜻이 확대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바르지 않다.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서로 다투며 떠드는 시끄러운 판을 야단법석이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의 야단법석은 불교의 야단법석(野壇法席)과는 다른 야단법석(惹端-)이란 말이다. 그러니 한자어 야단(惹端)과 야단(野壇)을 혼동하고, 고유어 법석과 한자어 법석(法席)을 혼동한 것이다. 사전에도 두 단어는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
‘떠들고 시끄럽다’는 뜻의 야단법석은 야단(惹端)이란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야단은 야기요단(惹起鬧端)의 줄어진 말로서, 떠들썩하거나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을 뜻한다.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을 가리키는 야단법석(惹端-)은, 바로 이 야단에 순수한 우리말 ‘법석’이 어우러진 말이다. ‘법석’은 여러 가지 소리를 내어 시끄럽게 떠들거나 그런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법석을 떨다’ 할 때의 그 법석이다. 그러니 야단법석(惹端-)은 ‘떠들썩하다’는 뜻을 지닌 야단과 법석이 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야단나다, 야단맞다, 야단받이, 야단스럽다, 야단야단, 야단치다 등의 말들도 모두가 이 야단(惹端)을 어근으로 하여 생긴 말이다.
반면에 법석(法席)은 야외의 불교 법회를 뜻하는바,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서 베푸는 불교 강좌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떠들썩하다는 뜻의 야단법석(惹端-)은, 불교의 법회인 야단법석野壇法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별개의 말이다. 야단법석(惹端-)을 야단법석(野壇法席)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야외에서 여는 법회가 떠들썩할 것이라는 생각과 결부된 것이라 보인다. 그러나 야단법석(野壇法席)은 반드시 야단(惹端)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불교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와 같이 했기 때문에 불교의 용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생활 용어로 쓰이는 어휘가 많다. 그 일부를 간략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강당, 거사, 건달, 걸망, 걸식, 공부, 과거, 현재, 미래, 관념, 교만, 노파심
누비옷, 늦깎이, 다반사. 단도직입(單刀直入), 단말마, 대중, 도구, 동냥, 말세
망상, 명복, 명색(名色), 무심, 무진장, 밀어(密語), 방편, 범부, 분별, 불가사의
선남선녀, 세계, 스승, 시달리다, 실상, 아비규환, 아귀, 아수라, 외도(外道)
유명무실, 이바지하다, 인연, 자유자재, 점심, 중생(짐승), 지사(知事), 지혜
착안, 찰나, 참회, 출세, 탐욕, 투기(投機), 행각, 현관
법회 이야기를 하였으니, 이에 덧붙여 일반 사람들이 헷갈리는 법회 이름에 대하여 살펴본다.
글을 읽다 보면 영산회상(靈山會上)과 영산회상(靈山會相)이란 말이 있어 혼동될 때가 있다. 영산회(靈山會)란 석가가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모임을 말한다. 석가가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는데 가섭만이 그것을 알고 빙긋이 웃었다는 염화미소의 고사도 이 법회에서 나왔다. 이 법회에 관련된 것을 가리킬 때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한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설법,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와 같이 쓴다. 이때의 상(上)은 구체적인 또는 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를 나타내는 접미사라 할 수 있다. ‘인터넷상(의 문제), 전설상(의 인물), 통신상(의 비밀), 회의석상(에서 한 말)’ 등에 쓰인 ‘-상’과 같은 뜻으로 보면 된다.
영산회상(靈山會相)은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궁중음악의 악곡명이다. 몇 개의 악장을 조합하여 하나의 곡으로 구성한 복합형식의 기악곡으로서, 영산회의 불보살을 노래한 것이 주가 된 곡이다.
그러니 영산회상(靈山會上)은 법회의 이름이고, 영산회상(靈山會相)은 악곡의 명칭이라 알면 된다.
다음으로 산림법회(山林法會)에 대해서 알아보자. 어떤 이는 이를 산 속의 절에서 이루어지는 법회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산속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산림법회는 수행자가 안거(安居) 기간이나 정한 기간에 일정한 주제로 여는 법회를 말한다. 이 산림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두어 가지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 첫째는 산림이 ‘파인아산(破人我山) 양공덕림(養功德林)’이란 구절의 ‘산’과 ‘림’을 따 왔다는 것이다. 풀이하면, 인아(人我)의 산 곧 남[人]과 나[我] 사이에 가로 놓인 산을 무너뜨리고, 베푸는 공덕의 숲을 기른다는 뜻이다. 이때의 숲은 많다는 뜻이다. 곧 많은 공덕을 짓는다는 뜻이다.
남과 나 즉 자아와 세계를 분별하지 않는다면, 행과 불행,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의 대립이 없어진다. 공덕의 숲은 나를 버리고 남과 함께 하는 것이다. 모든 고통은 나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나다 남이다 하는 분별의 산(山)만 없애 버리면 일체의 고통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욕망이 생기고, 나와 너를 구분 짓기 때문에 시기심과 미움이 생긴다. 이러한 분별심을 없애자는 것이 산림법회의 의미다.
이와는 좀 다른 해석도 있다. 산림[숲]은 나무라는 개별적 자아를 버리고 오직 평등성에 입각하여, 더불어 살고 함께해야 이룰 수 있다는 대승의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사는 모두가 서로 얽히어 있는 인연의 숲으로 된 것이지, 하나의 나무만으로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나무만 보지 말고, 모든 것은 하나라는 숲을 보자는 것이 산림법회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그 뜻은 마찬가지다. 나를 버리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나아가 남을 위한 공덕을 짓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산림에서 살림이란 말이 나왔다고 하는 이가 있는데, 이는 바른 설명이 아니다. 살림은 고유어 ‘살리다’의 어간 ‘살리’에 명사를 만드는 접사 ‘ㅁ’이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살게 만드는 것이 곧 살림이다.
그리고 야단스러움과 관련이 있는 ‘난장판’이란 말에 대하여 덧붙이려 한다.
난장판이란 말이 시끌벅적한 과거 시험장에서 유래되었다고, 보통 이야기들 한다.
과거 시험을 보는 곳에는 전국에 사는 선비들이 몰려들어 매우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했다. 특히 나라가 어지러웠던 조선 후기에는 과거장 또한 질서가 없고 엉망이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일도 다반사였고 사람이 상하거나 죽기까지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어지럽게 뒤엉켜 떠들어대는 과거판의 모습을 가리켜 난장판이라 하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과거를 보는 마당에서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어 뒤죽박죽이 된 곳이라 풀이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이야기가 아니다. 난장판은 말 그대로 난(장亂場)에서 벌어지는 행태에서 비롯된 말이다.
난장이란 오일장과 같은 정기적 장이 아닌, 특수한 장이라는 뜻이다. 난장은 물자가 다량으로 생산되는 지역이나 인근지방의 생산물이 많이 집산되는 곳에서 열리게 되는 임시로 열리는 장이다. 특수지역 및 특수산물이 한꺼번에 많이 생산되는 지방에서 열리는 부정기적인 장이다. 이때 난장을 여는 것을 '난장을 튼다'라고 한다. 난장은 하루 동안만 열리는 정기적인 장과는 달리 때로는 물자가 생산되는, 또는 집하되는 기간에 따라 짧게는 10일, 길게는 2개월까지 열리기도 하였다
난장은 지방의 경기부양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하여 열리는 수도 있고, 지방의 흉액을 예방하기 위하여 열리기도 하였다. 즉 흉년·수해·산사태·화재·지방관의 죽음·호환(虎患)·유행병 등의 사례가 자주 발생하여 폐촌의 위기가 생길 때 여기에 대한 벽사의 행사로 난장을 트는 것이다.
또 별신굿이 벌어지는 곳에도 난장이 섰다. 난장을 여는 것을 ‘난장튼다’고 했는데 영남의 일부지방에서는 ‘벨신한다’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벨신한다’는 말이 곧 ‘별신굿을 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보아도 별신굿이 열리면 난장이 따라서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별신굿이 길어야 3,4일 정도밖에 열리지 않지만, 옛날에는 몇 달씩 오랜 기간 행해졌다. 그야말로 그 지역의 축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 행사 기간에는 자연 난장이 서서 갖가지 물건들이 늘어서고 온갖 잡패들이 모여들었다.
난장에는 정기적 시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물량이 많았고, 종류도 다양하여 고양이 뿔과 중의 상투도 살 수 있다는 속언이 나올 정도였다. 난장에는 장사꾼만 모이는 것이 아니고 인근 지방인은 물론 보부상이나 먼 곳의 사람까지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그뿐 아니라, 연예인·복술쟁이·투기꾼·도박꾼·건달패·싸움패·사기꾼·요식업자·창녀 등과 난장굿을 벌이는 무당도 모여들어 소비를 조장하고 유흥적 낭비를 유발시켰다. 이와 같이 난장에는 각지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각자 자기의 이익추구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질서 있는 지연적 유대성은 깨지고, 사회규범이 파괴되어 비속하고 파렴치한 언행이 난무했으며, 폭행·사기 등이 흔하게 행해지고 노름판·싸움판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리하여 ‘난장판’이라는 속어가 생겨나 무절제·무질서·풍기문란 등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니 난장판이란 말이 과거시험장에서 유래한 것이 결코 아니다. 원래 난장판에서 행해진 무질서와 다툼의 행태가, 후대에 과거장에서도 벌어지는 경우가 생겼으므로, 원래의 것이 그쪽에 비유되어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첫댓글 野壇法席)과 惹端法席, 나장판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충분히,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장 박사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송하 선생님,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