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공격은 분명합니다.
복음을 중성화시키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사탄이 없앨 수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J. C. 라일은 “사탄은 복음을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복음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거나, 혹은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복음의 유용성을 무력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라고 했습니다.
‘neutralized’, 무력화, 중성화한다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지 아닌지 모르게 만드는 것, 더 이상 능력이 없어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반려견을 중성화하면 암컷인지 숫컷인지 모르게 되고, 생식 능력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없던 일로 할 수 없는 사탄이 복음을 교란하여 복음의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미래학자이자 감리교 목사인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은 교회의 발전 단계를 네 개의 M으로 설명합니다.
Mission Church (선교 교회)
Ministry Church (목양 교회)
Maintenance Church (현상 유지적인 교회)
Museum Church (박물관 교회)
첫 번째는 ‘미션 처치’(Mission Church)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가지고 세워집니다. 예수가 구원이고, 복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하니까 사람이 모입니다. 모이면 성경 공부도 하고, 제자 훈련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잘 훈련하고 양육하는 이것이 ‘미니스트리’(Ministry, 목양)입니다.
그런데 저는 미션 교회에서 목양 중심의 교회로 넘어갈 때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목양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모여서 훈련받고, 양육받고, 제자로서 파송받는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이는 구심력이 너무 세면 복음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원심력의 에너지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세상은 너무 힘들고 교회가 도피처가 되면서 전도도 안 하고, 선교도 안 하고, 복음도 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메인터넌스’(Maintenance), 유지하는 단계로 갑니다. 늘 하던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10년째 하던 것을 그대로 합니다. 교회에 새로운 것이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새 영을 부어주고, 새 일을 행하기 원하시는데, 하던 대로 하겠다는 고집, 그대로 있으려는 힘인 기득권, 교만, 나만 답이라는 생각들이 교회를 메인터넌스 단계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뮤지엄 처치’(Museum Church)가 됩니다. 유럽의 성당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예배드리고 오셨습니까? 사진 찍고 옵니다. 100년 후 한국 교회에도 사진 찍으러 오지 않는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박물관처럼 아름답지만 생명력은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는 말입니다.
팀 켈러도 이 위험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교회든, 아무리 신학이 건강해도 복음의 독특성을 시야에서 놓치고, 다른 종교들이나 비종교와 더 유사한 관행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우상은 우리의 탐욕으로부터 나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로부터 나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우리는 일평생 하나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우상숭배는 정확히 하나님을 인생의 두 번째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그래서 문제없는 척 세상에 나가면 돈이 1등이고, 교회에 오면 하나님이 1등이고, 그렇게 1등과 2등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익숙해집니다.
1등을 차지하는 것은 늘 바뀝니다.
돈, 집, 차, 성공, 권력도 됐다가, 하나님이 2등인 것도 괜찮은 척 살아가는 것이 잘못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때부터는 예수보다 중요해지는 것도 많아집니다.
저는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고 늘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복음입니다. 복음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종교와 복음의 차이를 아십니까? 종교는 인류 최초의 범죄 이후부터 계속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세울 수 없습니다. 늘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유한하고, 힘이 없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제를 떠안고 살 수도 없어 괴롭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강한 존재, 초월자를 찾습니다. 그것이 신(神)입니다. 기복적인 샤머니즘의 경우 해도 달도 별도 섬기고, 짐승도 섬기고, 자연도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나로부터 출발하여 신을 향해 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고, 문제 해결자도 아닙니다. 신앙이 종교화되면 ‘먹튀’가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왔다가 문제가 없으면 가버립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나로부터 출발해서 신을 향하지만, 복음은 신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시작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대하면, 신앙의 목적이 그분 자체가 아니라 그분에게서 얻을 것이 됩니다. 신이 나를 잘 봐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얻기 원하는 것들입니다. 때로는 우상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매우 탐욕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기도해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나가도록 부름받은 존재이지, 이 땅을 영원한 본향처럼 생각하며 여기서 더 잘 생존하는 데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무언가 구하는 기도를 그만하고, 하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 예수로 충분하다, 박광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