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 대변항 '멸치'골목
싱싱함과 곰삭음의 풍경...

4월의 따뜻한 날,대변고개를 걸어서 넘는다.
대변항의 봄바람은 주위의 벚꽃을 어지러이 날리며 포구의 멸치 비린내를 데려와 필자를 마중한다.
벚꽃과 멸치 비린내?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대변항은 이러한 부조화를 절묘한 조화로 어울러내는 곳이다.
대변의 멸치는 벚꽃 피는 4월에 대변 연안으로 몰려온다.
그 때문에 벚꽃이 피면 대변 앞바다의 멸치도 은빛 비늘로 화들짝 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변항에서의 멸치와 벚꽃은 얼마나 조화로운 상관관계인가?
이 둘을 음미하며 대변항에 들어선다.

대변항.
전국 최대의 멸치전문어항.
싱싱한 멸치 비린내와 멸치젓 곰삭는 냄새로 아침이 서고 저녁이 지는 곳.
그리하여 멸치를 관광자원화하고,멸치 하나로 축제문화를 정착시킨 곳이 바로 멸치항구 대변이다.
멸치가 산업과 문화로 서로 숨쉬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멸치축제가 있는 4월의 대변항은 말 그대로 멸치로 파시를 이룬다.
멀리 통영에서까지 몰려온 멸치잡이 배들로 대변 앞바다는 불야성을 이루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젓갈 관광객으로 골목이 왁자지껄하다.
새벽에 출항한 멸치 배가 정오경에 갈매기 떼를 앞세우고 입항하면,
그때부터 대변항은 더욱 소란스레 활기를 띤다.
[대변항]에서만 볼 수 있다는 멸치후리기가 선원의 '후리기 소리'에 맞춰 시작되고,
어느 틈엔가 모여든 한 무리의 구경꾼들과 멸치 후리다 떨어진 멸치를 줍는 동네 촌로들.
그리고 하늘을 하얗게 덮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갈매기 떼까지…
역동적이면서도 정겨움이 묻어나는 풍경들이다.


멸치를 후리고 나면 멸치의 화려한 변신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루어진다.
경매장에서는 즉석 경매가 시작되고,멸치골목에서는 싱싱한 멸치를 회 무침용 횟감으로 다듬어 낸다.
그 옆에는 즉석에서 멸치를 소금과 버무려 10여초 만에 멸치젓갈을 담가준다.
가끔 좌판에는 후린 멸치를 바로 구워먹는 멸치통구이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이 거의 한식경 만에 다 이루어지니,멸치의 급한 성격과 걸맞은 일생의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대변항 멸치골목에는 계절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봄, 가을에는 주로 살아 튀어 오를 것 같은 멸치의 싱싱한 풍경을 멸치전문 횟집거리에서 즐길 수 있고,
여름, 겨울은 긴 세월이 만들어 낸 멸치젓갈의 곰삭은 풍경을 골목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이렇듯 대변의 멸치골목은 갓 잡은 싱싱함과 세월의 깊은 곰삭음이 서로 공존하는,
두 얼굴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싱싱함과 곰삭음이 서로 어울리고 보완되는 장소다.
싱싱함이 있어야 깊고 구수한 곰삭음이 탄생한다.
잘 곰삭음에는 세월의 더께가 묵직해야 비로소 싱싱함이 빛을 더하는 것이다.
싱싱함과 곰삭음...
이 둘의 조화로운 풍경은 멸치골목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인생의 한 단면은 아닐까?
언뜻 어부의 멸치 후리는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려온다.
"뒷섬이 멀어지고 앞섬이 다가온다. 힘차게 노저어라 어이야 어이야- 어요디요 어요디요."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