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기행](19)안주가 필요없는 술-청양 둔송 구기주
예부터 땅의 신선(神仙)으로 불리는 구기자(枸杞子). 이 구기자의 오묘한 맛과 선인의 정성이 함께 빚어내는 전통술이 바로 구기주(枸杞酒)다. 구기자술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이를 구기주라 줄여 말하는 것은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 구기주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고 있다.
애주가들은 구기주를 ‘불로장생주(不老長生酒)’라 칭한다. 특유의 향과 감칠맛, 그리고 뛰어난 강장효과 때문이다. 집안 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 종가 맏며느리들이 온갖 정성과 손맛을 곁들여 빚은 이 술은 지금 충남 청양지역 하동 정씨(鄭氏) 가문에서 6대째 이어지고 있다. 시어머니로부터 비법을 전수한 임영순씨(69)가 1996년 ‘명인(名人)’에 지정됐고 그가 만드는 ‘둔송 구기주’는 2000년 9월 충남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됐다.
#구기자와 하동 정씨
청양 구기주를 빚는 비법은 하동 정씨 종부의 손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오고 있다. 구기주 명인인 임영순씨도 청양지방 하동 정씨 종가의 종부. 임씨는 시집오면서부터 구기주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 47년째 구기주를 담고 있다.
임씨에게 구기주 담그는 비법을 전수한 사람은 시어머니인 경주 최씨. 최씨 또한 시어머니인 동래 정씨로부터 명주의 비법을 물려 받았다. 이렇듯 150년 넘게 종가 맏며느리에 의해 전해진 구기주 비법은 현재 임씨의 맏며느리인 최미옥씨(45)에 의해 계승·발전되고 있다.
구기주를 얼마나 아끼는지 하동 정씨 가문에는 “(구기주를) 지고는 못다녀도 넣고는 다녀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종부들에 의해 빚어진 구기주의 그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피로회복, 탁월한 강장효과
구기주는 양질의 쌀, 청양의 명물 구기자, 그리고 칠갑산 맑은 물을 주원료로 해 전래의 비법으로 빚은 순곡주다. 구기자는 주요 강정제로 쓰이며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각종 약방서에 그 효과가 전해져 올 만큼 효능이 탁월하다. 옛말에 “집 떠나 천리(千里)에 구기는 먹지 말라. 이것은 정기를 보익(補益)하고 음도(陰道)를 강성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는 여행 중에 정기가 넘쳐서 혹시 실수할까봐 이를 경계한 뜻이 담겨 있다.
구기주는 특히 강정제와 간세포 생산촉진에 효과가 크다. 구기 열매에 베타인·비타민·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피로회복·강장효과뿐만 아니라 해열·기침방지·원기회복·동맥경화·고혈압의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
특히 말린 생약재로 빚은 술은 농도가 짙기 때문에 매일 저녁식사 전이나 취침 전에 작은 잔으로 2~3잔 정도 마시는 것이 좋다.
#새콤 달착지근한 맛 일품
구기주는 구기자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는 데다 새콤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16도가량이며 뒤끝이 깨끗해 아무리 폭음을 해도 다음날 ‘술국’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전통 명주 구기주를 빚기 위해서는 장인의 정성과 엄선된 청정재료가 사용된다. 우선 통밀을 깨끗이 씻어 방아에 빻은 뒤 적당한 양의 물에 섞어 누룩을 만들고 약 45∼50일 정도 띄운다. 다음에는 양질의 쌀을 2시간 정도 물에 담갔다 건져 시루에 담고 불을 지펴 만든 고두밥을 누룩과 함께 고루 섞은 후 완전히 식혀 술독에 넣는다.
구기자 잎과 열매·두충 등을 2시간 정도 삶아 술독에 넣고 적당히 물을 부은 후 섭씨 27∼29도의 온도로 10∼15일 정도 발효시켜 용수로 걸러내면 불로장생주인 구기주가 완성된다.
#안주거리가 필요없는 술
구기주에는 어떤 안주거리가 잘 어울릴까. 구기주 명인 임씨는 “술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술이고, 둘째는 안주거리가 필요 없는 술”이라며 “구기주는 안주가 필요 없는 술이다”라고 말한다.
구기자의 약효 성분을 함유한 약주인 데다 독특한 향과 빛깔, 맛이 일품이어서 따로 안주가 필요 없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즐겨 먹는 안주가 있을 것 아니냐”고 했더니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지만 구기자로 만든 한과와 파전은 금상첨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글 청양|정혁수기자 overall@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좋은 술 빚는 첫째조건은 정성”
전통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 속엔 전통을 잇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장인의 땀이 스며 있다. 15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 명주로 평가 받고 있는 청양 둔송 구기주에는 ‘명인’ 임영순씨(69·전통식품명인 제11호)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임씨가 ‘작은 언덕과 소나무가 있는 집에서 만드는 구기주’라는 뜻이 담긴 ‘둔송 구기주’를 빚게 된 것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순전히 시집을 잘못 온’ 탓이다. 임씨가 청양지방에 갈래를 친 하동 정씨 종가와 인연을 맺은 건 1958년 3월 21세의 나이로 이 집안의 종손 정찬흥씨에게 시집오면서부터다.
혹독한 시집살이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정씨 집안 사람이 됐고 대대로 내려오는 구기주의 비법도 배울 수 있었다.
임씨는 “시어머니가 술을 좋아하셨죠. 시집을 오자마자 술을 빚으라고 해요. 지청구 안 들으려고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죠. 그러면서 시어머니의 손맛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집안에 술이 떨어진 날이 없었어요. 보름에 한 번씩은 술을 빚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임씨는 누룩으로 빚는 전통 구기자술을 고집한다. 그 방식도 예전에 시집살이하면서 빚던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또 찹쌀과 멥쌀로 술밥을 찌는데 쌀은 방앗간에서 1등급 쌀로 직접 찧어온다. 수입쌀도, 정부미도 아니고 2등급 쌀도 아니다.
“특별한 이유가 뭐 있나요. 1등급이라야 16도짜리 술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죠.”
구기자술을 빚는 첫째 조건은 좋은 재료를 쓰고, 둘째는 깨끗한 마음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정성’이란다.
약재로는 두충잎·두충피·감초·구기자뿌리를 달여서 넣고 구기자는 따로 달여서 넣는다. 과연 구기자의 효능 때문일까. 임씨는 생전에 시어머니와 남편이 그렇게 술을 많이 먹고도 술국을 한번도 찾지 않은 것이 신통했다고 한다.
“백세주가 보약 반 첩이라면, 구기주는 보약 한 첩은 될 겁니다. 다른 술처럼 마시고 나면 입안이 끈적이지도 않고 누룩의 잔 맛도 남지 않죠. 감칠 맛이 돌아 잔을 비우면 한 잔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임씨의 구기주 자랑은 끝이 없다.
세계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명주를 만드는 게 남은 숙제라고 말하는 임씨는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제대로 된 민속주를 만드는데 ‘올인’할 작정이다. (041)942-8138
〈청양|정혁수기자〉
[전통주 기행]두충·솔잎등 첨가 간에 부담안줘
농업연구직 공무원으로 30년을 넘게 봉직했지만 나에게 술은 아직까지도 참 버거운 존재다. 술 한잔만 해도 금세 얼굴이 홍당무가 될 정도니 말이다. 그런 내가 민속주 전도사가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속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수년간의 일본파견 근무와 수십차례에 걸친 한·일 공동연구에 참여하던 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일본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민속주가 있다는 것과 그들이 민속주에 쏟고 있는 애정과 열정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는 그들의 민속주 사랑을 보면서 나는 구기주·인삼주·소곡주·솔송주 등 한국 대표 민속주를 떠올리게 됐고 ‘우리 민속주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각오를 갖게 됐다.
본래 우리는 김치를 비롯해 수많은 발효식품을 가장 우수하게 일생생활에 이용하는 지혜로운 민족이다. 민속주 역시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효소와 곰팡이를 적당히 발효시키는 기술의 산물로,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막걸리로, 농민들의 힘의 원천이 된 농주(農酒)로 사랑 받고 있다.
구기자술로 유명한 충남 청양군은 대표적인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국내 생산량의 75%를 차지하는 구기자의 산지로 이름 나 있을 뿐만 아니라 청양고추의 그 매운 맛은 정평이 나있다.
특히 구기자는 경지 면적이 좁은 이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 돼왔고 구기자를 원료로 한 전통한과·국수·냉면·된장·고추장 등 수많은 식품이 우리의 입맛을 당긴다.
그리고 이 구기자를 재료로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에서 생산되는 ‘둔송 구기주’는 으뜸 자랑거리다.
명인 임영순씨와 며느리가 함께 빚어내는 이 명주야말로 150여년간 축적된 전통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맛과 향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네 삶과 잘 어울리는 술이다.
구기주는 구기자 열매와 뿌리(지골피)·두충·솔잎 등 몸에 좋은 약용작물을 첨가해 발효시키기 때문에 술을 마셔도 간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한 동맥경화는 물론 고혈압 예방과 콜레스테롤 저하 등 성인병의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어 웰빙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주찬·충남농업기술원 청양구기자시험장〉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