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진주지역의 학교 교가 누가 많이 작사했나?(4)
지난 회의 끝부분은 진주중학교 교가에 대해 말하던 중이었다. 주상섭 작사, 이재호 작곡인데 이재호는 특별한 경우로 읽힌다.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가요 작곡가가 진주중학 음악교사로 있었고 학생들에게는 학교시간에 가요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재호는 일본 우에노 음대를 다니면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학생 중에 이봉조가 있었는데 한 시람씩 가창실력을 테스트할 때 불려나간 이봉조는 영 노래가 아닌 노래를 불렀다. 진주 사람들이 노래 못부르는 사람을 ‘돼지 목 따는 소리’라고 했는데 모두 이봉조 실력을 ‘돼지 목 따는 소리’로 평가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이재호 음악교사는 “이봉조의 노래는 음악성이 있다”고 평가했는데 그 평가와 후일 우리나라 가요계 내지 영화음악의 1인자가 된 이봉조의 위상이 일치하고 있음에 다들 놀라워했다는 것 아닌가.
그 이재호가 진주중학교 교가를 작곡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교가를 부르고 지냈다. 사실 필자도 이를 모르고 열심히 교가를 불렀다. 산유화, 산장의 여인, 나그네 설움, 불효자는 웁니다, 번지 없는 주막, 대지의 항구, 꽃마차, 귀국선, 홍콩 아가씨, 단장의 미아리 고개. 울어라 기타줄아, 물방아 도는 내력 등 노래방 노래 30프로가 이재호 곡임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진주 지역에 공식 문인이 아니면서 작사가로 알려져 온 체육교사가 있다.조재업이다. 그는 후에 시조시인이 되었다. 그는 문산초등학교 교가와 진주외국어고등학교 교가를 작사했다.
“창공에 높이 솟은 월아산 바라보면/ 희망과 광명이 우리를 부른다/ 여기에 배움 받고 조국을 지키는/ 자랑스런 우리들 한마음에 살자/ 영광의 내 고장 우리를 길러주는/ 문산교 마당에 영광이 빛나라” 동심에 가까운 낱말들이 선택되고 생활을 견인하는 평이한 낱말들이 눈에 띈다.
다음에는 최재호 시조시인이 등장한다. 진주동명고교, 진주동중학교 교가를 작사했다.
“저 하늘 구름 속에 솟은 두류봉/ 이 강산 비바람에 머문 촉석루/ 세월도 강물인데 넋은 남아서/ 만고에 푸른 빛이 가실 줄 없다/ 이 기상 이 정신을 이어 받아서/ 빛내리 영원토록 우리 동명고” 이 교가는 설립 주체가 바뀌면서 새로 지어진 교가가 아닐까 한다. 작사를 한 최재호 시조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진주지부 제1대 회장 제3대- 제5대 회장까지 역임한 진주문인협회 주춧돌이다. 그간 경남일보 사장, 삼현여자중고등학교 설립자 교장, 개천예술제 수차례 대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어린 시절 한학을 한 학자로서 한문 내지 한시 전통과 근대이후 현대시조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의 시조 <석굴암>은 명가곡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고 그 시비는 삼현여고 교정에 세워져 있다. 가사에서 강이나 산이 등장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중에 촉석루를 과감히 이끌어 낸 점이 강점이라 할 만하다.
교가 작사를 현직 교장이나 설립자가 직접 쓴 예로는 정영수(진주보건대), 강명찬(진주정보고 경해여중), 공삼진(경남예술고등학교), 하종주(경상사대부설고), 오경환(경진고등학교), 김정홍(진서고등학교) 박민기(봉원초등학교), 김용태(진주교대부설초등) 등을 들 수 있다.
박민기 봉원초등학교 초대 교장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삼장사 혼이 깃든 진주의 서북/ 황새등 높은 곳에 자리 잡아서/ 다정하고 씩씩한 어린이 모임/ 우리들의 배움터 그 이름 봉원”
박교장은 개교 당시 교장으로 작사했다. 아마도 교장으로 있으면서 학교를 짓고 손수 가사를 지어 기념식에서 이 교가를 불렀을 것이다. 그는 수필가로서 ‘경남수필’ 초대 회장을 지냈다.
어떤 수필집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88.86 양 게임을 앞두고 “우리 생애에 이 두 행사를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라 할 것입니다”하고 천진난만 좋아했다.
박민기 수필가는 설창수 시인이 발행인으로 발간했던 <영문>에서 수필가로 추천받아 문단 활동을 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