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위한 일에, 쓰여지고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자기 몸의 주인으로서 행세합니다. 자기 신체에 대해서 누구도 주인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이 자기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숨이 끊어지면 상황이 급변합니다. 숨이 끊어졌다는 것은 주인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숨이 끊어진 시신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주권국가에서는 국가가 모든 시신의 법적 주인이 됩니다. 유가족이 시신의 주인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국가가 주인으로 나섭니다. 단지 유가족에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국가가 허락함으로써 통상적인 장례가 진행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주인은 로마 당국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있던 어머니 마리아도 아니고 제자 요한도 아닙니다. 마리아를 비롯하여 십자가 아래에 있던 네 명의 여인과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에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당시 십자가 형틀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새의 밥이 되고, 아래로 끌어 내려져서는 맹수에게 찢겼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 아래로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로마 당국이 일반인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합니다. 맹수의 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 9:22) 하신 말씀이 불투명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등장한 두 인물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했던 니고데모입니다.
요셉은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입니다. 요셉이 본디오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 인도를 요청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요셉의 청을 허락했습니다. 요셉이 예수님의 장례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예수님을 깊이 신뢰하는 제자임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장례를 위해서 결단하고 나섰습니다.
니고데모는 장례에 쓸 향유를 가져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왕의 장례식에 쓰이는 양 이상으로 풍족하게 가져왔습니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왕중 왕’이요, ‘만주의 주’였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의 신앙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의 믿음의 결단으로 예수님의 시신은 당시 왕 이상의 장례로 치러지고 돌무덤에 봉안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예수님이 선포한 “부활”을 위하여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모름지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쓰임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평생 쓰여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의 쓰임을 받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가장 고귀한 쓰임은 하나님이 써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