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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0210224 남평 문씨세거지, 기내미재 산행- 지산
매화꽃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것은 2월초 강추위에 피는 통도사 자장매의 개화소식일 것이다. 벌써 꽃소식 받은 지가 2, 3주가 지났다. 좀 늦긴 했으나 이번 2월 산행은 문씨세거지 매화를 찾아가기로 했다. 매화구경은 오래된 고목에 몇 송이가 오롯이 피는 것을 보는 것이 제격이다. 그런 고매를 보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 먼 곳까지 가야 한다. 대구에서 가까운 곳에도 그런 매화가 있다고 하는 곳이 문씨세거지다. 문씨세거지의 고매古梅는 고택古宅 안마당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문을 열지 않아 볼 수가 없다.
우리 산행도 오늘 88번째, 사람의 나이로 치면 미수米壽가 되는 셈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던 당나라 두보, 그때는 70세까지 살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오늘날이라고 해도 88세米壽, 역시 쉬운 나이는 아니다. 숲과문화반 산행이 10년째가 되어 산행 횟수가 이제 88회를 맞이하게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2월 마지막 주일 오랫동안 집안에 갇혀 있다가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기지개를 켜면서 춘색이 짙어지는 들판으로 나오게 되었다. 문씨세거지 매화 구경을 하고, 기내미재까지 4,2km 구간을 걷고, 자동차로 화원 본리리 위쪽에 있는 백호미나리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주동일 박사의 퇴계 선생의 매화시 특강으로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
9시30분에 상인역 앞에 있는 장보고 식자재마트 주차장을 출발하여 10시에 문씨세거지 주차장에 모이기로 했다. 오늘은 송수태, 주경숙, 김주영, 주동일, 이영환, 박명희, 이명순 선생이 차를 가지고 와 참석한 14명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왼편 목화밭, 그다음 인흥사지 탑, 오른쪽 홍매화 뒤에 큰 나무 회화나무 보호수(문경호 나무)
항상 숲과 문화반 산행에 동행하여 좋은 말씀을 해주고 계신 이영환 선생의 참석을 모두 반가워했다. 지난번 그리고 지난 1월 사문진 답사에 빠졌던 주동일, 김주영, 조성자, 박건애 선생이 같이 하여 총 14명의 회원이 참석하였다. 오늘 특별히 송수태 영남차회 이사도 참여하여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월이 갈수록 문씨 세거지의 주변 모습이 더욱 세련되게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활짝 핀 매화 향이 더욱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멀리서 보아도 인흥사 터 빈터에 모아서 심어놓은 매화가 화려한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녹색이 비치는 청매, 하얀 빛이 햇볕에 반사되어 더욱 희게 보이는 백매, 거기에 붉은색을 띈 홍매, 붉은 색이 짙고 짙어 흑매라고 부르는 매화가 한데 어울려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끼어 좀 쌀쌀하다고 느껴졌지만 걷기에 편한 날씨다. 매화 밭에 들어가 활짝 피었거나 아직 옹골진 꽃봉오리를 사진에 담느라 바쁘다. 매처학자梅妻鶴子라 했던 임포(林逋)는 매화를 소영암향疏影暗香이라 했다는데 이곳의 매화는 좀 느낌이 달랐다.
매화나무 밭을 돌아서나와 길가에 새줄기가 황색을 띤 4-5m되는 나무가 보인다. 황금회화나무다. 가지의 색깔이 돌연변이 된 품종이다. 조경업자들이 재미를 보는 수종이라고 한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집 담장높이가 2.5m가 넘어 높게 보인다. 이영환 선생 말이 이곳 지세가 북풍이 세어 담장을 높이 했다고 설명해준다. 골목길을 돌아 나오면 문희갑 전 대구시장 집 앞에 보호수 표시판을 달고 있는 회화나무가 서있다. 이름하여 “문경호나무”다. 달성공원에도 “서침나무“가 있다. 그것을 본으로 나무에 사람이름을 붙인 것 같다. 문경호文敬鎬(1812~1874)는 이 마을 입향조라고 한다.
槐목과 欅목에 대한 이야길 나누고 있다.
홍매화 밭에서 한가한 시간
문희갑 전시장 집 대문에는 “얻었다 한들 본래 있던 것, 잃었다 한들 본래 없던 것”이라는 글자가 보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회화나무는 괴목(槐木)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도 괴목이라 부르고 있어서 혼동할 때가 많다. 중국에서 회화나무는 괴槐, 느티나무는 거欅라고 한다.
주반장 안내로 영춘화를 보러 연못 뒷쪽에 있는 담장 밑으로 갔다. 노란 꽃 색깔이 아름다운 영춘화가 줄기 하나에 줄줄이 이어 피어있다. 자스민의 한 종류다. 자스민은 꽃 종류가 여러 가지이며 파키스탄의 국화로 대부분이 난대지방에 자라는 나무다. 영춘화 바로 곁에 있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미선나무는 아직 죽은 듯 조용하다. 3월 말이나 되어야 크림 빛깔의 깔끔한 꽃잎이 피어나게 되면 숨겨놓은 향기가 넘쳐흐르게 될 것이다.
앞에 만들어져 있는 연못은 연蓮들이 많이 나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4, 5월에는 연대가 올라오고, 한여름 7, 8월에는 탐스러운 연꽃이 피면 화려한 축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맑은 물 위에 청둥오리와 원앙이 유유히 헤엄쳐 노니는 모습에 마음에 평화가 스미는 것 같다. 연못 가운데 서있는 키가 큰 아름다운 소나무 한그루가 이 연못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문익점 동상 뒤에 1단보쯤 되어 보이는 목화밭이 있다. 작년의 목화가 그대로 남아있어 하얗게 드러나 보이니 그것 또한 이색적이다.
매화구경하면서 마을 골목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아직 11시가 되기 전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코-스는 여기서부터 기내미고개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다. 오솔길이나 산길이 아니고 임도, 그것도 시멘트로 포장된 일등급 임도로 힘든 길은 아니다. 나와 이영환 선생은 앞장서서 쉬엄쉬엄 올라갔다. 옥산서원의 유사 책임을 맡은 후로는 오랜만에 같이 산행하게 되었다.
이 선생은 옥산서원 유사를 맡은 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초하루 보름에 올리는 제에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열성이다. 옥산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후 큰 행사를 여러 번 개최하느라고 진이 빠질 만도 한데 여전히 씩씩하고 진보적이다. 이러한 힘이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고루 전해 오는 것 같아 오랜만에 같이 동행하는 것 역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기내미재 휴식
기내미재 휴식 할 때 쑥뜸으로 기치료 중
사람마다 특기가 다양하다. 주동일 선생은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문씨세거지에서도 조성자 교수의 오른손 엄지가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굳어졌다고 두 군데 뜸을 떴는데 기내미 고개 중간 휴식벤치에 앉아 조 교수와 함께 박건애 선생도 뜸을 뜬다. 나이가 들면 온몸의 경락이 쇠하여 기의 흐름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 이때 뜸이 효능이 있다고 한다. 지난번 지리산 산천재에 가서 하룻밤을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주동일 선생의 팬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무거운 바리톤의 목소리, 중국문화권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한문화권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치료氣治療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 사진 찍는 기술이 월등하고, 거기에 핸섬한 매너까지 어느 하나도 빼놓을 데가 없어 보이는 신사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숲과 문화반 산행에 가끔 참가하지만 앞으로 항상 같이 했으면 좋겠다.
기내미재 단체 사진 (찍사 주동일)
휴식하고 있는 곳이 지난번 2016년 6월 21일(39차) 숲과문화반 산행길로 이 고개를 거쳐 비슬산 둘레길로 까치봉에 올라갔다는 코-스라고 주반장이 귀뜸을 해준
다. 그 당시 24명의 회원들과 함께 까치봉과 장군봉을 등산하고 내려왔다. 그 때 이영환 선생이 ‘까치봉’이라는 한시를 남겨 주었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오늘도 귀련표 계란과 명희표 석류쥬스가 배달되었다. 담소하며 까치봉 시를 읽어본다.
登鵲峯(까치봉에 올라)- 이영환
鵲去空岑登鵲峯(작거공잠등작봉) 까치 봉에 올라가니 까치는 떠나 버리고
鬱蒼嵐翠待予逢(울창람취대여봉) 울창한 숲과 푸른 안개가 나를 맞이하네,
非仁非智水山癖(비인비지수산벽) 인자도 아니고 지자도 아닌 내가 산수를 좋아하니
浩氣淸風無主容(호기청풍무주용) 임자 없는 호연지기와 청풍을 수용할 수 있겠구나.
[2016.9.21. 숲과 문화반 야외 수업을 참관하고]
역시 이영환 선생의 시상詩想이 느껴진다.
쉼터 주변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앞으로 1.2km 만 더 가면 기내미 고개 주차장이 나온다고 한다. 기내미재는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와 옥포면 반송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기내미재에 대한 정확한 명칭 유래를 찾을 수 없지만 '귀넘이' 또는 '귀네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상향인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개로 '귀넘이재' 또는 '귀네미재'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기내미재'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기내미재 주차장에는 주동일 선생, 김주영 선생, 이명순 선생 자동차가 주차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14명이 3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다시 명곡초등학교로 내려와 문씨세거지가 있는 본리리로 들어왔다. 이어 골짜기 끝에 있는 백호미나리집으로 향했다. 백호미나리집은 염혜송 선생이 운영하는 돼지삼겹살에 미나리를 같이 먹는 식당이다. 전번 지리산 산천재 갈 때도 같이 간 주반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반갑게 맞아주어 식탁을 마주하고 돼지삼겹살에 생 미나리를 데쳐 맛있게 먹고 거기에 미나리 전까지 한입 베어 무니 미나리 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주동일 선생이 가져온 52도 빽알을 아주 예쁜 유리잔에 두 잔이나 마셨더니 하늘이 돈짝만 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어 우리 주반장님의 특기인 찻상이 차려지고 귀티 나는 찻잔에 담긴 향긋한 차를 다 같이 음미하였다.
맛있는 점심 식사
주경숙 선생 찻자리
백호식당 실내 정원
주동일 선생 특강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주동일 선생의 ‘매일생불매향梅一生不賣香’이라는 제목으로 퇴계 선생의 매화시에 대해 특강을 하였다. 퇴계선생은 유독 매화를 사랑하여 110수가 넘는 매화시를 남겼다고 한다. 오늘은 그중 4수를 골라 읽고 해설을 해주었다. 오늘 특강에서는 두향과 퇴계의 러브스토리는 뒤로 살짝 미루어둔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두향과 퇴계의 사랑이야기를 붙임으로 남겨둔다.
즐거운 하루 산행 모두 집안에서 꽁꽁 묶어놓았던 마음의 사슬을 풀어헤치고 봄처녀의 숨결을 만끽한 매화산행이 되었다. 늘 항상 같이해주던 권영호 산행대장과 윤채영, 백영란, 최후대 이희숙 선생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았다.
이영환 선생이 보내준 ‘仁興園 玩梅’를 올린다.
〇 仁興園 玩梅 (인흥원 매화를 완상하며)
迎春元月廣居堂(영춘원월광거당) 정초에 봄맞이를 인흥원으로 갔는데,
紅白梅花滿發揚(홍백매화만발양) 광거당 담 밖에 홍매 백매는 만발하여 드날리네.
傲雪凌霜保直性(오설능상보직성) 눈서리 능멸하고 곧은 본성 지키며
誰孚冷蘂吐幽香(수부냉예토유향) 찬 꽃술이 토해 내는 그윽한 향기 누가 믿으랴!
物情人事隨時變(물정인사수시변) 물정과 인사는 때에 따라 변해도
寒士不交陋巷藏(한사불교누항장) 은둔하는 선비는 지조를 바꾸지 않고.
文氏家門垂訓戒(문씨가문수훈계) 문씨 고택 대문에 걸린 가훈은
得之本有失初亡(득지본유실초망) “얻었던들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었던들 애당초 없었다.”는 것이네.
이영환 선생 “律詩 平起式으로 졸작을 하였습니다. 韻統은 下平聲 일곱 째 陽韻에서 堂. 揚. 香. 藏. 亡. 字를 취하였습니다. 平仄을 맞추려고 했습니다만....”라고 했다.
봄이 짙어지는 다음 달 3월 산행을 기대하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오늘 산행을 계획하고 마무리해준 주경숙 산행반장에게 참가자 모두 감사의 말을 전하다.
참가자
강희숙 김미경 김주영 박건애 박귀련 박명희 박용구 송수태 이명순 이영환 조성자 주경숙 주동일 홍화선 (총 14명)
주동일 선생 강연초록
◎ 梅一生不賣香 :
매화는 매은(梅隱), 매선(梅仙)이라고 하고 유교의 선비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는 매화의 추위에 견디는 성질과 다른 꽃보다 일찍 피는 성질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1천원짜리 화페에 얼굴이 그려져 있는 퇴계 이황(1501-1570)은 유독 매화를 좋아 하셧답니다. 매화에 관련된 시 107수를 남겼고 梅花詩帖이라는 시집도 편찬하셨습니다. 그가 임종한 날 아침에 “매화에 물을 주어라” 하고, 그 며칠 전에 이질에 걸려 설사를 하고 있을 때 매화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면서 “매형에게 불결하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다.”고 했다 합니다.
陶山月夜詠梅 六絶 中 4首(도산월야영매1) -달밤에 도산에서 매화를 읊다 - 李滉(이황)
1.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한데 홀로 산의 집 창문에 기대니 밤 풍경 차고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이라 매화가지 끝으로 달 떠오르니 정말 둥글둥글하네.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하니 다시 약한 바람 이르도록 부를 필요 없으리니,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이라 절로 맑은 향 온 뜰 사이에 가득하게 되리.
3.
步屧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한데 뜰 안 거닐자니 달은 사람을 따르는데,
梅邊行繞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고 매화 곁을 내 빙빙 몇 번이나 감돌았던가?.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하니 밤깊도록 오래 앉아있다 일어나는 것조차 잊어버렸는데,
香滿衣布影滿身(향만의포영만신)이라 향기는 옷과 두건에 가득하고, 달그림자는 몸에가득하네.
4.
晩發梅兄更識眞(만발매형갱식진)하니 매화형 늦게 피니 더욱 진실함을 알겠는데,
故應知我怯寒辰(고응지아겁한진)이라 내 추위 겁내는 것 알고서 일부러 그랬으리.
可憐此夜宜蘇病(가련차야의소병)하니 아리ᄄᆞᆸ도다, 이 밤 의당 병이 낫게 되리니,
能作終宵對月人(능작종소대월인)이라 밤새도록 달 마주하는 사람 될 수 있겠네.
매화를 의인화하여 높여서 부른 호칭.
6.
老艮歸來感晦翁(노간귀래감회옹)하여 노간 매화시에 주자는 감동받아
託梅三復嘆羞同(탁매삼부탄수동)이라 수동(羞同)이란 글귀에 세 번이나 감탄했다네.
一杯勸汝今何得(일배권여금하득) 하여 너에게 한잔 권하고 싶으나 할 수 없어
千載相思淚點胸(천재상사루점흉)이라 천 년 전 생각에 눈물로 가슴 속을 적신다.
주자와 동시대의 시인인 간재(艮齋) 위원리(魏元履)이다. 간재가 편지에 매화 시를 써서 보냈는데 한 구절이 주자를 사로잡았다. 그 구절은 수동도리미춘색(羞同桃李媚春色)이다. 복사꽃 오얏꽃과 함께 봄빛을 경쟁하는 일을 부끄러워 한다.라는 뜻이다.
수동(羞同)은 매화가 바로 저런 허접한 꽃들과 함께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 조선4대가 중 한사람인 象村 申欽신흠(1566~1628)의 「野言야언」 중에 시 한 수에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하고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 매화는 일생 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는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하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함이 없으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라 버드나무 줄기는 백번을 꺽여도 새가지가 돋아난다네.
매화는 매은(梅隱), 매선(梅仙)이라하고,. 유교적인 이상 인격인 선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매화의 추위에 견디는 성질과 다른 꽃보다 일찍 피는 성질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하지만 <논어>나 <맹자>, <시경>, <서경> 등에는 매화의 상징이 없습니다. 매화가 꽃으로서 주목되고 총애받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위진남북조 시대(220-581: 한나라이후 수나라까지)의 도연명 등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그 뒤 송대에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명대에 이르러서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기 유학자들에 의해서 매화의 유교적인 상징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답니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광동성, 사천성, 호북성 일대로 알려져 있으며, 그 한자명과 함께 한국과 일본으로 전례되었다고 합니다. 개나리 진달래는 물론 도화(桃花)는 복숭아꽃 이화(李花)는 배꽃 등의 수순한 우리말이 있지만, 매화(梅花)는 그저 매화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확벽(黃蘗)선사의 선시를 읽으며 마치겠습니다.
不是一番寒徹骨하면 爭得梅花撲鼻香 이라
뼛골 쑤시는 한기를 한번 겪지 않았다면, 코끝 찌르는 향기를 매화가 어찌 얻었으리.
<陶山月夜詠梅>
첫댓글 고맙습니다.
사소한 일들까지 좋게 보아 주시니,
부끄러워 다시 뵙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厚顔이 되어야 명예고 재물이고 얻을 수 있을텐데,
아직 계란 나이라
맑은 물에 비치는 제 모습에도
얼굴이 붉어 질 떄가 더러 있어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백신과 함께 우리들의 봄도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을 비롯한 숲 문화반 여러분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잘 읽었습니다.
주동일 선생께서 厚顔이 되어야 명예와 재물을 얻을 수 있다고 점잖게 에둘러 말하셨는데, 나의 경험으로는 우리나라에서 學界든 政界든 財界든 출세를 하려면 厚顔으로는 출세를 할 수 없었습니다. 출세를 하려면 비전(Vision)도 아무것도 없이 다만 철판같이 두꺼운 얼굴과 뻔뻔스러운 것에 철저한 黑心 뿐입니다. 이것을 적당히 활용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는 것을 버스 떠난 뒤에 알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낙오한 한 노인의 넋두리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鐵面皮와 黑心이 대결하는 장면을 TV등 여러 가지 매체들이 중계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이렇게 된 원인은 하늘이 인간을 창조하여 각자의 얼굴을 만들고 마음을 부여 할 때, 그 얼굴 속은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마치 승용차 유리에 선팅(Sunting)한 것처럼 감추었고, 또 컴컴한 복심(腹心)도 표면에서 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요정도 굴러가는 것은 맑은 물(道心)에 비쳐보는 모습(良心)에 얼굴이 붉어지는 羞惡之心을 가진 주동일선생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주신 말씀 가슴에 새겨 흐려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뵙고 귀한 말씀, 좋은 시를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