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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2)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24) [듣고 실행하라]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내 가르침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을 가면 마을이 산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수님이 자라신 나사렛도 산위에 있었고,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등 여러 도시들이 산위에 있었다. 요르단의 암만을 가는데 광야의 산을 한참 올라가서 만날 수 있었다. 가이드는 산위의 기온이 선선하기에 그런 것 같다고 하였지만 본문의 말씀을 접하면서 ‘우기 때에 비가 와 범람할 경우에 마을이 휩쓸려 집들이 떠내려갈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산은 대부분이 바위로 암반이 되어 있어서 그 위에 집을 지으면 홍수를 피할 수도 있고 견고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광야의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 우기 때에 비가 내려서 범람하게 되면 그 집은 무너지게 된다. 이스라엘은 건기에는 건조하지만 우기에는 비가 와서 광야에 강이 범람하여 체험학습 같던 학생들 여러 명이 휩쓸려 사망한 적도 있었고, 요르단의 페트라도 비가 갑자기 내리자 범람하여 관광객 여러 명이 피하지 못하여 사망한 기사도 있었다. 그러므로 건축자는 집을 지으면서 그 땅의 지질을 분석하여 바위 위에 집을 견고하게 짓게 된다.
요즘에도 일부 유목민들은 간혹 이렇게 물이 흐르지 않는 와디 근처에 천막을 치고 생활한다. 이렇게 허술한 집들은 우기가 되어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불어난 물에 휩쓸려 간다.
■ 1970년 4월 8일 새벽 6시 30분, 마포구 창전동 산2, 와우시민아파트 15동 콘크리트 5층 건물이 붕괴되었다. 이 사고로 33명 압사, 4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공회사는 대룡건설이란 회사였다. 공사비는 제3공구 13동에서 16동까지 네 동을 짓는데 들어간 공사비는 택지 조성비 제외하고, 평당 건축비는 1만이었다. 이 아파트는 1969년 6월 26일에 착공하여 1969년 12월 26일 준공했다. 공사기간은 딱 6개월이다. 자재 사용 내역을 보면, 19mm 철근 70가닥이 필요한 기둥에 5가닥을 사용했다. 시멘트를 적게 넣어 모래와 자갈만 섞인 기둥이 되었는데, 여기에 사용된 물은 하수도 물이었다. 세워진 건물의 강도는 1평방미터당 28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었는데, 실제로는 900kg의 하중이 걸렸다.
오늘 내 인생을 보시라. 튼튼할까? 허약한가? 무너지는 중인가? 오래 버틸 것 같을까? 튼튼하다면 잘 유지하고 허약하다면 리모델링하시라. 그래서 남은 인생 무너지지 않고 잘 유지되게 하시라. 무너지지 않는 인생의 집을 지어라! 무너지지 않는 신앙의 집을 지어라!
집의 가치는 내구성(耐久性-오래 견디는 성질)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유네스코 등재 문화유산이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 조선 왕릉, 해인사 장경판고,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 유적지구,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남한산성,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 등이다. 공통점은 건축물이 잘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보존되지 않으면 문화유산이 될 수 없다. 그리스 로마의 문화재는 돌로 만든 것이 많다. 우리나라는 목조 건축물이 많아 장기간 보존되지 못한 것이 많다. 화재나 풍파를 잘 견뎌야 가치 있는 문화재가 된다.
인생도 그렇다. 아무리 멋진 인생이라도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 비바람이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다. 지금은 평탄할지라도 반드시 바람 불고 비오는 날이 올 것이다. 지구상의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태풍이 불고, 집중 호우가 쏟아지고, 눈 폭탄이 내리고, 춥고 덥다. 지진은 기후변화보다 더 무섭다. 땅이 흔들리면 모든 건축물이 다 무너진다. 빌딩, 교량, 각종 구조물들이 추풍낙엽이 된다. 이런 풍파를 이길 수 있어야 건강한 인생이 된다.
신앙의 도전도 심각하다. 예전에는 이단자들이 조용히 숨어서 믿었다. 이제는 이단자들이 교회까지 침투하여 바른 신앙을 가르쳐주겠다고 야단이다. 갈등과 분쟁으로 신문 방송에 나온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독교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호감도가 밑바닥이다. 교회가 세속화 되고 복음이 변질되었다. 바른 신앙과 바른 삶보다는 물질 축복에 매달려 있다. 마귀는 점점 날뛴다. 비바람이 점점 심해진다. 이런 도전들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그나마 허약한 신앙을 송두리째 날려 보낼 수 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염려만 한다거나 이로 인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어떤 비바람이 다가온다 해도 주초만 튼튼하면 견딜 수 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된다. 그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이고, 산상수훈의 결론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지어라!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다! 다시 한번 본문을 보시라.
마 7:24-25 / [듣고 실행하라]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1. 반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반석 위에 세워야 할 신앙
인생 건축의 핵심은 주초(柱礎)에 있다. 주초(柱礎)가 좋아야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는다. 인생의 가장 좋은 주초는 반석이다. 반석 자체가 모든 흔들림을 막아준다.
그 반석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 반석은 바로 세상의 그 누구도 또는 하늘과 땅에서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반석이다. 세상에는 나름대로의 주초들이 있다. 철학의 주초도 있고, 지식의 주초도 있으며, 돈과 재물의 주초도 있다. 교양과 명예의 주초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초보다 가장 안정적인 주초는 바로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말씀이다.
반석! ‘pevtra’(페트라 – 반석)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베드로! 베드로란 이름이 바로 이 반석이란 단어이다. 베드로 사도의 원래 이름은 시몬, 히브리 식으로는 시므온이다. 예수님은 시몬이란 이름을 베드로(Pevtro)란 이름으로 바꿔주셨다. ‘너는 베드로(Pevtro)라. 내가 이 반석(pevtra)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석은 로마 교회(카톨릭)가 말하는 것처럼 베드로의 인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것과 같은 신앙을 의미한다.
마 16:16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 1:11-12 /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백성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 그리스도가 곧 반석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이 바로 반석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위에 세워졌다는 말로 본문에서 예수님은 반석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을 곧 반석이라고도 말씀하셨다.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곧 모래로 표현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그 신앙은 반석 위에 세운 것이 되며,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면 모래위에 세운 것이 된다는 말이다.
마 7:24, 26 /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26) 그러나 내 가르침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앞서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이라고 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반석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신앙이 반석이 아니고, 행위가 반석이란 말씀인가? 그런 뜻이 아니다. 신앙과 행위는 항상 붙어 다닌다. 신앙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영의 눈으로만 보이지만, 행위는 육신의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신앙은 행위로까지 보여야 한다.
롬 10:9-10 / 만일 여러분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하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굳게 믿으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을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확실하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5:13-16 /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느냐? 너희는 아무데도 쓸모 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참 신자라고 하셨다.
정리하면 이렇다. “참 신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긴다. 그런 사람은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참 신자다!”
여기에서 믿음과 행위가 항상 함께 있어야 참된 신앙 반석이 될 수가 있다. 이에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다.
마 16:13-19 / [베드로의 고백]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침례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참으로 복되구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18) 내가 네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 어떤 죽음의 세력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네가 땅에서 잠가 둔 문은 어떤 것이든 하늘에서도 잠길 것이고, 땅에서 열어 둔 문은 하늘에서도 열릴 것이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하여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아래의 행위는 우리에게 많은 실망을 주었다. 즉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은 신앙에서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은 신앙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 16:21-23 / [수난에 대한 첫번째 예고; 막 8:31-9:1, 눅 9:22-27]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일과 거기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그 일이란 예수께서 유대인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절히 말하였다. ‘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23)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의 책망은 사람들의 책망과는 달리 무한한 사랑이 포함된 것으로 이어서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아주기 위한 교훈이 들어있다.
마 16:24-28 / [예수를 따르는 길]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터인데 그때에 각 사람이 살아온 대로 심판할 것이다. 28)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인자가 자기 나라의 왕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반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면 모래는 무엇일까? 본문에서 모래는 이단 신앙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모래는 그릇된 철학도 아니며 세상 풍속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상 숭배도 아니다. 모래는 오직 주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것이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잘못된 신앙이다.
모래 위에 집을 건축하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있다. 만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셨다면 그분께서 그 안에 들어오셔서 그를 이끌어 가실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예배 참석에 열심이었고, 설교도 ‘아멘! 아멘!’ 하면서 잘 듣는다. 성경도 열심히 본다. 단지 말씀을 따라 살지 않을 뿐이다.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은 우상숭배나 이단 신앙과 다를 바 없다. 자기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뜻을 하나님 뜻보다 먼저 내세우는 즉 성령의 이끌림을 제대로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신앙생활에서 말하기나 듣기는 매우 쉽지만 그러나 들은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어떠한 사람이 큰 자인지를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마 5:19-20 /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계명이라 하여 이를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보다 더 의롭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7:21-23 / [너희를 알지 못한다]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2)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나 자신 스스로 나를 점검하지 말고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으로 헤아려보자. 하루 빨리 나 자신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골수골수 점검해 고쳐달라고 간구하자.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그분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르자.
히 4:11-16 / 그러므로 우리도 이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이 넘칩니다. 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로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욕망까지도 가르고 그 정체를 드러내게 합니다. 13) 하나님께서는 누가 어디에 가 있든지 그 사람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눈앞에 숨겨질 수 있는 피조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우리도 우리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낱낱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4)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바로 우리를 도우실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에 대한 신앙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가 당하는 이 시련을 몸소 겪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단 한 번도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신 일이 없습니다. 16) 그러니 우리도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자비를 입고 필요에 따라 주시는 은혜와 도우심을 받읍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반석 위에 신앙 건축을 했을까? 아니면 모래 위에 건축했을까? 반석 위에 집을 지었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다. 모래 위에 지었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서운 시련이 다가와도 끄떡없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심하게 무너진다. 신앙, 인격, 삶도 함께 침몰할 것이다.
주님은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부에서 바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내 인생의 성패는 신앙의 주초에 달렸다. 신앙은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신앙은 하나님께 듣고, 실행하는 과정이다. 실천이 없다면 모래이다. 그림의 떡이다. 아무 실효성이 없다. 실효적 신앙! 그것은 오직 행함에 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약 1:22-25 / 또 듣기만 하고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23) 만일 누가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그 사람은 거울 앞에서 떠나면 곧 자기 모습을 볼 수가 없고 또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인간을 죄에서 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계속 착실하게 지켜 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율법대로 실천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큰 복을 내리십니다.
지금 내 인생을 반석 위에 올려놓으시라. 모래 위에 있는 인생을 철거하시라.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다 천국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 주님을 믿는다면 이제부터라도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깨닫게 하시며 알려주시는 말씀대로 실천하시라. 그러면 남은 인생은 반석 위에 든든히 세워질 것이다
2. 잘못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1. 예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즉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그 무리에 속했을지라도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는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고전 3:10-16 / 하나님의 은총으로 유능한 건축자가 된 나는 기초를 놓았고 아볼로는 그 위에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기초 위에 건축을 하는 데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11)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기초를 놓았으니 그 외의 다른 어떤 기초도 놓을 수가 없습니다. 12) 그러나 그 기초 위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건축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은 보석을 사용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 또는 짚을 사용할 것입니다. 13) 그리스도의 심판날이 오면 모든 사람들이 세운 건축물은 불의 시험을 받아 건축자가 각각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그 건물이 존속될 것인가, 참으로 완벽한 건물인가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눈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14) 그리하여 그 기초 위에 적절한 재료로 건물을 지음으로써 그가 지은 건물이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사람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15) 그러나 그가 세운 건물이 불타버린 사람은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자신은 화염 속을 빠져 나와 겨우 목숨만은 구하듯 그렇게 구원받을 것입니다.
2. 잘 지은 건물일지라도 잘 관리를 해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마태복음 13:24-30을 늘 마음에 두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믿음이 좋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악한 원수 마귀가 와서 밀밭 사이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3제자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듯이 피곤하지라도 그리고 성령님의 지시가 있을 때에는 필히 깨어 기도해야 한다.
마태복음 26:40-41에서 ‘깨어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서 '깨어 있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그래고레오'인데, '깨어 있다' '지켜보다' '주시하다' '망보다' '방심하지 않다' 등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히브리어 '샤카드'는 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깨어 있음(시 127:1)을 뜻한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적군의 침입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하여 전방을 주시하는 것, 그것이 깨어 있음의 기본적인 의미다. 그런 점에서 '깨어 있음'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긴박한 사태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자세를 뜻한다. 곧 '깨어 있음'은 앞으로 닥칠 위기를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여러 차례에 걸쳐 깨어 기도할 것을 강조하신 것처럼 성령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말씀해 주시면 파수꾼처럼 철저히 관리를 해야 한다. 육적 관리,만 마음 관리 또는 영적 관리도 있다.
누구보다 마음 성전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바울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방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을 읽으며 지나쳐서는 안 되는 대목들이다.
고전 3:16-21 / 여러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성전인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17)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거나 허물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정결하며 여러분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8)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 표준으로 판단해서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매우 슬기롭다고 생각한다면 그 모든 생각을 내던져 버리고 차라리 바보가 되십시오. 그래야 정말 슬기로운 사람이 됩니다.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슬기롭다 자처하는 자들 궁리하는 것 순식간에 끝장내 버리시지’(욥 5:13)라고 씌어 있듯이 인간은 자기 지혜에 걸려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20) 또 ‘여호와께서는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모두 잘 알고 계신다’(시 94:11)라고 하는 말씀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이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지 마십시오(문자적으로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철저히 준비할 것과 행할 것을 말씀하셨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과 기름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마 25:1-13). 또한 맡겨진 사명이 얼마이든지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마 25:14-30). 그리고 진정한 이웃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마 25:31-46). 그리하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신랑과 함께 결혼 잔치에 들어갈 것이며, ‘잘하였다. 너는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라는 칭찬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다. 또한 마지막 심판날에 ‘내 아버지께 복받을 사람들아, 와서 천지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 집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다.’고 하시며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3.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서 빨리 고쳐야 할 잘못된 신앙
네 가지가 현재 신앙형태로 많은 사람들이 혼란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 기복주의 / ‘예수 믿으면 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열심히 믿어 복받자!’라는 형태를 말한다. 성경은 분명히 복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복을 받아 잘 먹고 살게 된다’라고 믿는 것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부자로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서 믿음이 좋은 것이며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며 믿음이 없는 것이다.’라고까지 말한다.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일까? 이러한 기복주의 신앙생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삼 2절을 인용한다.
요삼 1:2 /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또 영혼이 건전한 것같이 몸도 건강하기를 빕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과연 기복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영혼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와 같이 범사에도 잘 되었으면 한다는 사도 요한의 소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진정한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하는 것이다.
엡 1:3 / [그리스도를 통해 받는 영적 축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한없는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2. 율법주의 / 율법을 지켜야 즉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고 성화되고 복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자기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이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키키려고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할 때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천국민의 율법을 지켜나갈 수 있게 된다.
롬 10:3 /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율법과 관습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선량한 인간이 되는 길이라 여기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또한 행동을 정형(定型)화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뜻에서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선의 기준을 세워 놓고 그 틀 안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행동을 규범으로 틀을 만들어 놓고 정형화시키는 것. 그렇게 하면 구원을 받고 성화되고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율법주의다.
눅 18:9-14 / [바리새파 사람과 세관원의 기도]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자기가 옳은 사람이라는 것을 뽐내는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는 세관원이었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더욱이 저기 있는 세관원과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는 절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도 없고 간음한 일도 없습니다. 12)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13) 그러나 세관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용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그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관원이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나로부터 은혜받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지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어야 한다.
마 7:21-23/ [너희를 알지 못한다; 눅 13:25-27]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2)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뒤늦은 후회보다는 미리 자기를 검토하여 쫓겨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율법을 지킴으로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킨 것과 안 지킨 것을 비교한다면 율법을 지킨 것은 티끌만도 못할 것이다(욥 42:6).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나아가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은 오직 은혜를 거저 받는 것이다.
엡 2:8-9 /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조차도 여러분의 자발적인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9) 이렇게 구원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여 받은 보수가 아니므로 아무도 자신의 선행을 내세워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자기의 행위를 앞세우기 전에 모든 것이 전적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 근거함을 알고 감사함으로 만 가지 은혜를 한 가지라도 갚기 위하여 애를 써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라는 것이다.
3. 신비주의 /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격적으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현상이나 체험적으로 해석하고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창 127).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사귀는 것 즉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할 때에 그분을 알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저 그 분은 저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내가 필요할 때 그분을 부르고 그때마다 내려오셔서 어떤 일을 해결하시고 또 올라가시는 그러한 분이 아니라 내 안에 영으로 오셔서 나와 함께 교제하시는 분이시다.
샤마니즘적인 신앙 관계가 잘못된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연결 시켜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은사자들이 등장하고 예수 무당(?)들이 나서서 무엇인가 신통한 일들을 한다고 생각해 그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현상과 체험을 중요시 여기고 치우친다. 신앙의 수준을 체험이나 꿈 현상에 의해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체험과 은사 신비주의적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어린아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 깨달음이 없음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찾다가 점점 이상한 형태의 신앙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교회에 잘못된 신비주의 팽배해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신비주의는 유치한 기적과 표적을 강조하는 주관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형태로서 교회성장 방법으로 악용된다. 예를 들면 최근에 내적치유, 또는 영성운동을 가르치는 단체에서 어떤 훈련과 연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장래 일을 예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의 무속화를 시도하는데, 이러한 주장들이 상당히 보편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에 대한 능력을 ‘더 이상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분으로서 기적과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행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만일 더 이상 기적이 없다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사랑이신 하나님께 기도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거저 받은 은사들을 자기 욕심으로 또는 자기 멋대로 사용한다면 무서운 징계가 따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엄중하게 경고를 하셨다.
마 7:22-23 /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사도 바울이 왜 자기 자랑은 십자가밖에 없다고 왜 강조하였는가를 깊이 살펴야 한다.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한 경험들이 자신에게 독이 되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과 이적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앞으로 사도의 길을 걸어야 하는 제자들에게 겸손과 온유를 배우라고 하셨고, 섬기는 도를 가르치시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요한복음 3:1-2을 보자. 무엇이 중요한가를?
요 3:1-2 / 어느 날 밤이 이슥할 무렵 바리새파에 속한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 한 사람이 예수께 회견을 청해 왔다. `선생님,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선생님을 보내신 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이신 표적이 그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늘표적을 요구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새롭게 거듭날 것을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이해조차 못했지만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에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어 만든 방부제를 100근 가량 가져 왔다. 예수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방부제를 바르고 길고 고운 베로 감아(요 19:39-40) 장례를 치러주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이름 뜻을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내실 분이다’, 또한 ‘임마누엘’이라고 한 목적은 우리 모두에게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고, 3년간의 공생애 기간에 가르치셨던 것이 무엇이며 이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나타내 주고 있다.
4 방임주의(放任主義 - 선악의 구별에 대하여 너무 엄격하지 않은 타협적이고 포용적인 주의 -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주의) / 이것은 복음을 말하고 있는 복음주의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았으니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기도도 할 필요가 없다.’ 등을 주장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리가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복음을 어설프고 애매하게 깨닫게 되면 이러한 방종주의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율법으로부터 왜 자유케 하셨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이유는 율법 아래서 살면 육신적인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서 7장이 이 사실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율법을 강조하면서 지키려 하면 육신의 정욕이 발동을 하게 된다. 율법은 육신과 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려 하시는가? 그것은 영의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롬 7:1-6 / [결혼의 비유]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율법을 잘 알고 있으니 말씀드립니다만, 율법은 죽은 사람에게는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십니까? 2)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한 법에 따라서 남편에게 매여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더 이상 법적인 이유로 남편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3) 만일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으면 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안되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4) 지난날에는 유대교의 율법이 여러분의 남편이요,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었으므로 여러분이 율법과 한 결혼은 무효가 된 셈입니다. 이제 율법은 더 이상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여러분도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분과 결혼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게 하려고 이 결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5) 우리가 육신에 매여 살 때는 죄 많은 욕망이 아직 우리 안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나 거역하고 죄에 물든 행실, 즉 죽음에 이르는 썩은 열매만을 맺었습니다. 6)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이나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는 이미 죽고 지금은 하나님을 섬기는 참다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정해진 규칙에 무조건 복종하며 살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과 뜻을 다해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된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지 결코 방종으로 갈 수 없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기 위하여 자유하게 하신 것이다.
결론은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신 이유는 율법으로는 결코 노력만 하다가 끝날 뿐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함으로 방종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삶의 원리가 바뀌었다는 것이지 방종해서 이제는 아무 것도 안하고 내키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복음을 깨달은 자들에게는 참 인격적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지니 ... 만일 결과가 인격적 열매가 아니라 방종이라면 그가 깨달았다는 즉 복음 안에서 자유해졌다는 깨달음은 잘못된 깨달음인 것이다.
이 같은 4가지 신앙 형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정리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결과들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이끌림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갈 5:16-25 / [성령의 열매와 육신의 일]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르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여러분은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우리는 성령께서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악한 일 하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살며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 본성의 욕망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두 힘은 서로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쪽 틈에 끼여서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18) 그러나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더 이상 억지로 율법에 복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22)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생활을 지배하실 때 그분은 우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여기에는 율법에 반대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4)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25) 만일 우리가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면 모든 생활 역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결 론
마 7:24-27 / [듣고 실행하라]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내 가르침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 일본 동경에 100년의 역사가 넘은 임페리얼 호텔(제국 호텔)이라는 유명한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은 미국의 건축가 플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의해서 세워진 호텔이다. 처음 호텔이 건축을 짓는다고 선언했을 때 일본 사람들은 지진이 잦은 지역에 호텔을 짓는다고 야유와 조소를 보냈다. 이 호텔을 짓는 데는 4년이나 걸렸는데 그 절반인 2년은 기초공사 하는데 소모를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며 이렇게 비난했다. “강진에 버틸 건물은 없다. 불가능한 일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지 마라.” 야유했고, “왜 기초공사를 하는데 쓸데없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느냐?” 야유했다. 드디어 4년 만에 제국호텔이 완공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돈과 시간을 많이 들였다고 나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후 1952년 도쿄 역사상 최악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때 동경의 2/3정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수십 만 명이 목숨을 잃고 심하게 다쳤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유독 제국호텔만큼은 끄떡하지 않았다. 불과 유리창 5개만 깨졌을 뿐, 그 안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안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