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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가장 필요한 때 – 용서
누가복음 17:1-6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누가복음을 자세히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언제나 특정 대상에게 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군중에게 하시는 때가 있고, 어떤 개인에게 하시는 때가 있으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특히 따로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본문은예수께서제자들에게따로하시는말씀입니다. 그러므로1절을보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1-10절입니다. 5절을 보니 제자들을 “사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께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복음을 맡겨 파송한 사람들이 사도들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열두 사도는 아니지만,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주의 복음을 맡겨 파송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눅 17:1).
여기서 “실족하게 하는 것들”은 원어로 (스칸달라)라고 하여 복수형으로 되어 있고 그 뜻은 덫을 만들어 놓고 그 덫에 걸리도록 미끼를 놓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미끼로 어리석은 사람을 유인하여 덫에 빠지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죄를 짓게 만들어서 마귀의 손아귀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칸달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삼손에게 덫의 미끼였던 들릴라가 있습니다.
[
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5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
6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더라
](삿 16:4-6)
여기서 들릴라는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만들어 놓은 덫의 미끼입니다. 만일 삼손이 이 미끼에게 속아서 자기의 힘의 비밀을 털어 놓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깨뜨리는 죄를 지으면서 원수의 덫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삼손은 창녀 들릴라의 미끼를 물고 블레셋 방백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
16 (들릴라가)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삿 16:16-21)
마귀가 가장 전형적으로 이런 죄를 짓습니다. 미혹하고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하는 짓 말입니다. 마귀에게 조종당하는 악인들은 하늘의 지혜가 없는 어수룩한 사람들을 세뇌 시키거나 가스라이팅하여 죄를 짓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가 공중 권세를 잡은 이 세상에는 실족하게 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하는 미혹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남을 해롭게 하고 무너뜨리고 파멸시키기 위해 파 놓은 함정이 이곳 저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과 그로 인한 재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로 부름 받은 주의 제자들은 결코 사람들에게 이러한 실족하게 하는 마귀의 미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실족하게 하는 일들에 관여된다면 그 제자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초리와 징계가 있을 것이고, 말도 다 표현 못할 비참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남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받아야 할 화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연자맷돌을 자기 목에 달아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고대 로마나 수리아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공공질서를 파괴하고 안녕을 어지럽힌 사람들의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던지는 사형 법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에 해를 끼칠 뿐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이 이런 유의 해악한 사람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을 실족시키는 비열한 죄악들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행위, 모략하고 중상하는 행위, 자기 이익과 이기심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행위, 이유 없이 미워하고 시기하는 행위 등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이러한 무서운 화를 말씀하시면서 실족하게 하는 죄악을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죄”로 국한시키십니다. 즉, 어떤 특이한 죄를 의도적으로 가리키십니다.
자, 먼저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는 누구입니까? 감사하게도 동일한 표현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반복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여기서 “작은 자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는 연약하지만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의 자녀를 뜻함이 확실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본문의 내용과 겹치면서 “이 작은 자 중의 하나”가 누구인지 더욱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4-7)
이처럼“이작은자중하나”는“나를믿는자들”로서예수님을영접한자들입니다. 이에예수님은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라고 하셨습니다. 즉, 2절에서 “이 작은 자 중 하나”는 예수님께 나아온 어린이뿐만 아니라 초신자나 연약한 신자 등,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연약한 제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여 실족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투신하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주님의 이 말씀은 주의 백성의 믿음을 넘어뜨리는 행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죄악인지 강력하고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연약한 신자의 믿음을 실족시키는 것은 마귀의 짓으로서 그러한 행위는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며 두 가지의 교훈을 한꺼번에 하십니다. 하나는 갓 믿는 신자나 약한 신자의 신앙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주의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실족시키는 것은 마귀의 미끼가 되는 짓이기에 무서운 화가 임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런 죄를 가장 전형적으로 짓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주께서는 친히 주의 백성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경계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1-1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큰 죄는 거짓 복음을 전하는 죄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 예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앞으로 주께서 복음으로 세우시는 교회의 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적인 지도자들로서 그들의 가르침에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이단성 가르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사람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을 전한다면 그 제자는 가룟 유다처럼 배도자로 드러나면서 주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행 1:17-19).
마찬가지로 구약 시대에도 거짓 선지자를 주의하라는 말씀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알아볼 수 있는 판결 기준도 알려주셨습니다.
[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
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5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 13:1-5)
이 말씀에 따르면,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이 거짓과 참 선지자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가 하는 것이 판단 기준입니다.
[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라
](신 18:20-22)
지금 이 시대의 더럽고 추잡하고 복잡한 이단 교주들 및, 예언 및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많은 거짓 목사들이 다 여기에 해당하며 그들은 어김없이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과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죄”로는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가 부정과 불의를 행하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경우 그 지도자에게 영향을 받는 신자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즉, 지도자의 죄악을 덮어주려는 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방관함으로 실족하는 것이 되고, 또한 그 지도자로 인해 믿음이 실족하는 자들 역시 신앙을 잃고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무나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삶과 성품이 복음의 능력으로 온전해야 선생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
17 선생(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20 …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 2:3, 17, 20-24)
이러한 엉터리 영적 지도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고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죄로는 지도자나 권위자가 자기 아래 있는 자들로 하여금 악행을 일삼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혹으로 하든, 혹은 강제로 하든 그러한 자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아래 있는 무리들을 가스라이팅 하거나 거짓 교훈으로 무조건 복종하도록 세뇌 시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이 죄악으로 향하거나 선한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고 있다면 나를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가 참으로 주께서 세우신 종인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아무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 및 거짓 선생들이나, 죄악을 저지름으로 신자들의 본이 되지 못하는 엉터리 영적 지도자들,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악한 자들이 바로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자들이며 그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가 나타나서 큰 화가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주님의 심각한 말씀을 기억하고 신자들에게, 특히 성숙한 신자들에게 이러한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롬 14:13).
또한 바울은 로마서에서 마지막 당부를 할 때 거치게 하는 자들, 즉 죄를 짓게 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7-18).
여기서 개역 개정이 “거치게 하는 자들”은 원어로 (스칸달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바른 교훈 및 그 교훈이 어떻게 행하라고 가르친 것과 반대로, 거짓 교훈을 가르치거나 또한 불의의 죄악 된 행위를 하도록 미혹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에 원인 제공을 하거나 그들의 믿음이 실족하도록 하는 원인이 되어서도 결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그들의 전통으로 율법을 악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죄로 이끄는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좋아했고 양심이 화인 맞아서 과부와 고아의 재산까지 착취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자기들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판단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 15).
그러므로 예수님은 3절에서 당부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이 말씀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조심하여 죄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함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 조심하는 사람들은 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에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은 자기 욕심을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우리가 진실한 성도이고 또한 성장하는 신자라면 자기 욕망을 자제하고 스스로 자기 분수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성령 안에서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혀를 다스리지 못해 거짓과 비방의 죄악을 자주 범하고 성적 욕망도 다스리지 못해 음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마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는 가장 어리석은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처럼 늘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깨어 있는 가운데 스스로 실족하거나 혹은 남을 실족하게 하는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뜻은 스스로 조심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지 못해서 죄의 함정에 빠지는 것도 잘못이지만 남을 죄의 덫에 빠뜨리기 위해 마귀의 미끼가 되는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남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 함정을 파는 사람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실족하게 하거나 시험에 들게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4).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는 ‘네 형제’라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즉, 주 예수님을 믿는 신자를 말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교회 공동체 내의 한 지체를 말합니다. 그 지체가 내게 죄를 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저, 어떤 다른 형제가 신자인 내게 죄를 범하면 경고해야 합니다. 여기서 경고하라는 원어는 (에피이마오)인데 이는 상대에게 그가 잘못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 형제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매번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마태복음 18장 22절을 보면, 우리 주님은 일곱 번에 일흔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1-22).
이때 사도들이 일곱 번에 일흔 번씩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신음하듯이 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그렇습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한 형제가 내게 계속 범하는 죄를 계속 용서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영의 도움을 받으면 이러한 용서가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인간적으로는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 용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주께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이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 기도인지 아십니까? 이 기도는 내 자신을 계속 부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요, 미움과 원한과 섭섭함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예수님의 마음을 충분하게 허락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사실 우리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용서의 교훈은 ‘형제’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에게 확장됩니다. 이때 그러한 용서는 믿음이 없이는 실천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44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39-42, 44, 48)
[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7, 19-21)
내게 거듭 악을 행하는 악한 자에게 선을 행하라는 이 부탁을 어떻게 믿음 없이 행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이 악에게 물들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까?
이렇게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 주의 제자가 훈련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2-15)
이때 신자들이 용서의 능력을 얻는 비결이 바로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형제들 사이에서 계속 용서하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주 예수님께 믿음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그러자 예수께서는 믿음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 곧바로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뽕나무를 뿌리채 뽑아 바다에 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내게 죄를 짓는 형제를 용서해 주는 것은 오직 참 믿음으로 가능한데 이런 믿음은 아무리 작은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이라도 신자의 삶에서 어마어마한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용서할 수 없다고 해도 주의 제자가 믿음으로 용서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위대한 하나님 나라 일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내게 거듭 죄를 짓는 형제를 용서한다는 것은 원수라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살아내시고 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본의 최고 절정이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사건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기 바랍니다. 인격적으로 우리 주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그분의 지시를 따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그리스도의 영을 구하기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복음과 함께 하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은 복음적인 설교를 듣는 것이고, 친히 성경을 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면 믿음이 더하여져서 영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물론, 주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자 할 때 어려움이 있고 손해를 보기도 하고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연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때에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면 믿음이 강하여집니다. 즉, 믿음의 성장은 고난과 맞물려 있습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5-7).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그러므로 용서하는 문제에 대해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주 예수께 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믿음을 더할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인 예배와 기도와 말씀 묵상에 힘쓰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이 깊어짐으로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여지면 어떠한 손해와 아픔과 억울한 일에 대해서도 넉넉히 이기며 어떤 상황에서든 하늘의 평강과 기쁨과 의의 능력을 놓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그러한 믿음의 용서는 신자의 삶에 승리를 가져올 것이며, 빛이 어둠에 이기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기뻐하고 인정하시는 보상의 열매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신자는 결국 복 있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7).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기적과 큰 일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 진행되는 일상 생활에서 죄에 대한 부분에서 믿음이 가장 필요합니다. 특히 악한 일을 당했을 때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고 도리어 더 깊은 지혜와 온전한 성품으로 나아가려면 믿음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 용서의 삶이 바로 영광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오는 성령의 능력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죄악을 넉넉히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
그러므로 주께서 나를 용서하심 같이 서로 용서하기 바랍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골 3:13).
물론 죄악을 당할 때 가해자 형제를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노와 원망과 원수 갚는 일을 하기보다 “주여 제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하며 내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공의로운 처리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주 예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심 같이 그 형제를 용서하면 서서히 평강과 기쁨이 찾아오면서 천국을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눅 6:37),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그렇습니다. 용서는 쉽지 않으며 상대가 내게 저지른 상처를 극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원수를 갚으려는 밧줄을 내려놓고 공의를 주께 맡기고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용서는 우리가 다른 죄악을 저지르거나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독한 마음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충성스런 주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믿음으로 용서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계속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의지하며 본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스데반 집사처럼 끝까지 용서할 수 있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신자가 될 것입니다.
[
55 스데반이성령충만하여하늘을우러러주목하여하나님의영광과및예수께서하나님우편에서신것을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원수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밖으로내치고돌로칠새
59 …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55, 56-60)
이러한 스데반의 용서의 모습이 우리 모든 신자들의 용서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극히 아름다운 용서의 삶은 오직 부활하셔서 영광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덧입을 때 가능하기에 우리는 믿음을 더욱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 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죄악을 범하였는지 돌아봅시다. 얼마나 동일한 죄악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했는지 돌아봅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천벌을 받아 죽지 않았으며 지옥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좋은 영생을 얻었고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에 속한 풍성한 것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 주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해 우리는 만 달란트를 사함 받은 자들이라고 알려줍니다. 일만 달란트는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칠 때 약 6조원에 해당합니다. 즉, 하나님의 용서는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의 가치가 무한하기에 때문에 가능합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을 계획하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히 용서 받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무한한 가치의 속량으로 인해 단번에 영원히 죄 사함을 받은 우리 신자들은 마땅히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스데반처럼 용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을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교회 안의 형제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을 용서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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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롭고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소망 합니다.
밝은 미소와 기쁨이 가득 담은 행복에 문을 살포시 열어 봅니다.
향기에 예쁜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