㉓ 발우공양
뉴욕서 인기끄는 불교식 식사법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농민들. *출처=연합뉴스
몇 년 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정부의 수입 허가 방침에 들고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 논란이 정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쓸쓸했습니다. 현대의 육식 문화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사람들이 육식 문화를 깊이 반성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광우병은 왜 생겨 났습니까? 학계에서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 내장을 먹였기 때문에 광우병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기를 더 빨리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소에게 고기를 먹인 것입니다.
◇ 윤리학자 피터 싱어, 그리고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농부이자 변호사인 짐 메이슨이 같이 쓴 책
어떻게 초식동물에게 고기를 먹일 수 있는지, 그 발상 자체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이 같이 쓴 『죽음의 밥상』은 이 시대의 성찬이 죽음의 밥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옮긴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먹을거리가 흔치 않았던 과거라면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른다. ‘사람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영양학이 풍미할 때라면 또 모른다. 그러나 지금 오로지 남의 살을 씹고 삼키는 맛과 재미를 위하여, 동물을 먹어도 될까?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가두고, 때리고, 피를 뽑고, 목을 잘라도 될까? ……
끊임없이 젖을 짜낼 수 있도록 젖소를 쉴 새 없이 강제 임신시킨 다음,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빼앗고는 곧바로 죽여버려도 되는 걸까? 빼앗긴 새끼를 찾아 슬피 울며 발을 구르는 어미 소 의 절규를, 자동차 엔진에서 어쩌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 정도로 생각해버려도 좋을까?”
이 글은 ‘살육됐다고 의심이 되는 고기’는 먹지 말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동물은 언제나 배가 고플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조차도 허기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의 구성원 중 유일하게 배고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마구잡이식 자연 개발의 부메랑으로 날아온 환경문제 때문에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 뉴욕에서는 불교식 식사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식 식사법이란 입 안의 음식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씹고,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삼가며 식사에만 집중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우리 사찰에서 하는 발우공양과 다를 바가 없는 식사법입니다.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 뉴욕에서 불교식 식사법이 유행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제법 큽니다.
요즘 사람들은 식도락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음식 버리는 일을 예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식 식사법의 유행은 소비를 조장하는 현대 식문화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신도들이 미얀마 탁발승들을 위해 공양을 준비해 올리고 있는 모습. *출처=오마이뉴스
제가 공양의 참뜻을 깨달은 것은 미얀마의 마하시 선원에서 수행하면서였습니다. 오전 8시가 되면 출가자 100여 명이 일렬로 서서 마을을 도는데, 그 광경이 실로 장관입니다.
홍염(紅焰)을 발산하는 아침 해를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출가자들의 모습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승가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숭고합니다.
탁발의 신호로 행렬의 선두에서 종을 치는데, 그 종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릅니다. 종소리에 맞춰 마을 주민들이 미리 준비한 공양물을 들고서 자신의 집 앞으로 나옵니다.
공손하게 합장한 뒤 공양물을 건네는 주민들을 보고 있으면 ‘저 공양물을 받아먹고서 정진하지 않으면 그 인과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하는 마음이 절로 납니다.
틱낫한 스님과 함께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적도 있는데, 이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탁발이었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고국인 베트남에서 탁발을 했는데, 스님을 필두로 발우를 들고 늘어선 대중의 모습은 밥이 담긴 발우에 모든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나긴 수행 여정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틱낫한 스님의 모습에서는 어떤 숭고함마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각기 모든 생명체의 삶을 지탱해주는 공양물의 순환, 그 둥근 원을 떠올렸고 대자연의 일원으로 살아 있다는 게 행복했습니다. <계속>
글 | 마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