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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부 ㅡ 지금은 강화읍이라 불리지만 예전 심도기행당시엔 강화유수가 다스리던 부내면 강화부라 불리었다. 지금 그 강화부엔 골담초 어여쁘게 피어 흐드러졌고
산중엔 파스텔톤 보라빛 귀족적인 색감으로 더없이 매혹적인 게다가 향기는 또 어쩜그리 숨 넘어가게 좋은지 암튼 으름덩굴 지천으로 피어 바람결타고 스치듯 스쳐가는 계절
계절의 여왕 5월을 코앞에 두고 나들길 15코스인 고려궁 성곽길을 향해 또는 5코스인 고비고갯 길을 향해 강화터미널서 몇발짝 철종임금 등극로를 따라가다보면
강도남문 안파루의 아치를 통과하게 되고 몇걸음 더 앞으로 나가 3교차로에서 그 곳에서 고갤 외로하면 합일초등학교로 가는 새 언덕길이 있고 그대로 죽 따라가면 1928주택이 나오며 오른편으로 종로약국으로 가는 방향인데 게서 1~2분만 더 고비고갯길을 따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100년이 되어가는 한옥이 한채 백범 김구선생님께서 독립운동당시 3개월을 숨어살며 제자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시던 유서깊은 집이 나온다. 큰 나무대문 기와집
38년간 비어있는채 이제나 저제나 새 주인을 기다리다 집이 많이 지쳐 점점 더 아파 지붕한켠 무너지기도 할때 드디어 새 주인장이 나타나 미국에 살고있는 후손들로부터 사게되어 집은 활기를 찾아가며 보수작업과 함께 민속문화 전시장으로 쓰이게된다는데 우선 먼저 한중일 3국의 찻집이 문을 열게되어 지금 한창 준비중이시다. 그 모습 살짝 엿보자
옛 축대가 보이는 집 ㅡ 축대위에 분을 심어화단을 맹글어 놓으셨다.
그러고보니 이 집은 건축도 한.일 두나라 문화가 공존하는데 우리 찻집도 동서양이 만나는가보다. 다소 생경한데 의도적이라고.. 이란다. 깊은 뜻이 있겠거니~ㅎ
이곳은 바위솔선생님 옛 사진기록에도 있는 부엌 뒤 280년이던가하는 뒤주가 있던 곳 갖가지 부엌살림살이들이 지금은 다 치워지고 이렇게 차실이 되어 사물 한바탕 울리기를 기둔다.
새롭게 더구나 옛 한옥집 부엌에 가마솥 그대로인채인 이곳은 강화전화국옆 옛날 목화예식장 자리에 있던 지유명차가 들어서고 주인은 그냥 그대로 마리학교 교장선생님이셨고 강화도 아리랑을 짓고 부르시는 성국모선생님이시다. 물론 성국모선생님은 천부경노래도 부르시는데 초청되어 전국을 누비시기도... 예전 지유명차 자리는 곧 꽃차 찻집으로 변신을 하게된다. 그 분들도 준비중이시고.
아직 정식 오픈은 아니지만 임시 문은 연 상태 저녁 10시까지 계시단다. 관심있으신 님들은 가 보셔도 좋으실 듯...
차 마시는 공간이다.
부엌에 찻집을 내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이 집을 관리하고 계시던 분들이 이사를 하셔야 하는데 그냥 더 사셨으면 해서 최성숙교수님께서 그렇게하라하시고 우선 부엌에 지유명차를 들이시게 되어서다. 혹 누군가는 조금 이상하네 할수도 있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최교수님의 맘자리를 엿보게하는 대목이기도.. 왜냐면 이제 새 주인이 되었는데 사정은 힘들어도 걍 나가달라고 하실수도 있는데 그러려니하시고 배려해주는 그 맘이 사람사는 냄새이지 않을까싶어 훈훈키도 하고 사정이 그러하니 부엌에다 내자하는 그 맘도 히야~ !!!!!
누군가는 벌써 이상하다고 노랠부르기도 했단다. 그러나 실제로 가보면 nice nice~~
38년간 굳게 닫혀있던 문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이곳으로 찻집을 드나들게 되는데 요문 오른켠벽 안쪽으로 우리나라 찻집이 문을 열게되어 지금 착착 준비중 얼추 인테리어 마치고 간판 준비중이며 허가를 기다린단다. 곧 광고와 함께 오픈예정인데 어떤 모습? 쉿! 아직은 비밀야여
뜰에서 본 다락을 둘러싼 문도 덩달아 열렸는데 이 문이 열리는것인지조차 몰랐었단다. 그만큼 이집은 집 건축을 보는것만으로도 흥미진진인데 한옥에 유리는 100년이 더된 일본유리 유리 여기저기 후지산이 그려져있고 칼라유리도 많은데 저녁에 불빛에 보면? 이것도 직접 보시길~ 그래서 뭐든지 시대상을 말한다고 하나보다 그릇하나 집하나 사람들 복식이며 음식까지도...
게다가 이 황부잣집은 건축당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최교수님께서는 이 집을 다 보수마친뒤 당시 목수들의 후손들을 초대해 큰 잔치한번 여신다고.. 참 참신한 어른이 새 주인이 되신게구나싶다. 기록은 새 주인이되고 다락의 잡다한것들을 아궁이에 불사르는데 막 불붙이려는 순간 최교수님께서 잠깐~ !!! 멈추라하고 찬찬이 살펴본뒤 태우라고 하려는데 거기서 당시 기록들이 고스란이 나왔다하니 얼마나 고마운일인지~ 나중에 민속자료로 우리들도 누가지었는지 보게된다.
아직은 어린 수양 회화나무 마치 연두빛 일산같아
댕대이로 넘는 남쪽으로 차들이 드나드는데 아직은 여기저기 정리할곳이 많기만.. 샌달을 신고 서 계신님이 최교수님이시고 마침 이은용 하곡서원 전회장님께서 잠시 들리셔서 담소중
대청마루다 끼워마추기한 공이든 마루 남쪽으로 3중문이고 민화가 병풍처럼 그려져있고 대들보는 직접 보시는 기쁨을 위해 패스 ㅡ 지금은 살림살이며 빨래들도 널려있다.
기와지붕과 봉황새와 어린 회화나무
아직 자목련 한 송이 벙글기 전
돌탑은 지유명차 성국모 샘 작 ㅡ 샘은 천주교 하점성당엘 나가신다.
인석은 5월에도 벙글어 있을테지 풍악소리 들으려~ ㅎㅎ
이 문으로 145년만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들이 행사행렬들이 화려하게 들어왔었다. 지금도 여전히 강화도사람들이 오가는 사대문중 남문인 안파루
ㅡ 안파루 부내12동 ㅡ
화남 고재형선비
안파루 위에 앉아 술잔을 들고 보니 번화한 집들이 차례차례 보이네 복사꽃 살구나무가 삼만 그루나 되는데 그림자 중에는 누대 없는 곳이 없도다.
영의정 김상복은 1761년 9월 시 지으시길
누각에 올라 옛날 남문루를 물어보고 싶어서 칼에 기대 가을 바다에 높게도 의지하네 오십리 성터는 반쯤이 허물어지고 병자정축년 사건은 고금이 다르구나 선원선생 사당에 우주가 머물렀고 갑곶나루에 손놓고 앉아서 관방 잃었네 성세에 소임 나눠 은혜도 못갚고서 벼슬을 버리고 한가로이 노니네.
* 김상복 ( 1714~1782) 자는 중수 호는 자연 이조.호조.예조판서와 우의정.영의정을 지냈고 평소 펑빈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죽을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않으셨다 함
강도남문은 그렇게 성안의 작은 변화들을 오늘도 지켜보고 있었다.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유수 민진원이 건립 303년동안의 변천사를~ 1906년엔 화남 고재형선비의 심도기행을 지켜보았듯이 2009년 생겨난 강화나들길을 지켜보며.
찻집의 문을 여느라 분주한 나날속에 바쁜 지유명차도 우리찻집도 새로운 강화도의 명소로 거듭나시길 찻집도 문전성시 이루어 나날이 발전하시길 부자되시길 기원하며 작은 소식하나 약속대로 올려놓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섬 강화도 심도기행 화남길위에서 단기 4347 갑오년 사월 스므이레 강화장날 춤추는 꽃길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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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성들인 손길 잘 읽고 갑니다.
언제고 기회닿으면
백범 김구선생께서 변성명하시고 숨어
독립운동하시던 제자집인 이곳에 한번 같이가셔요.오시면 사진도 보실 수 있을터이니.. ^*
강화의 새로운 명소의 탄생이군요
안내 감사합니다^^
뵌지 오랜데 잘 지내시죠?
어쩌다 오랜 길벗님들은 근세들어 조용 근황들이 새삼 궁금해지는 이즈음입니다.
아주 오래도록 목이 타들어가던 집인데 새롭게 활기를 띠어가는 모습 넘 고맙고 감사한 이즘
사람도 사랑을 먹고 살듯 집도 자신을 돌봐주고 이뻐해주는 이들 만나니 생긋 웃네요. 언제 같이 가셔요 샘*^ㅡ^*
아는만큼 보인다~!!
새삼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들길을 찾는 누구라도 한번은 들려보시게 될 의미깊은 집
오래도록 들려볼적마다 안타깝고 아프던 집 넉넉한 주머니면 사서 제 모습 찾아주고팠던 집
이젠 제 주인을 만나 얼마나 다행스런지~~ 나들길 걷고 차 한잔하러 가입시더
아버지 먼길떠나 보낼때 얼굴 본 님께서 우리찻집 주인이 된답니다. 그래서 더 반갑고 낯설지 않을거라구 아마도 *^ㅡ^*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富)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强)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ㅡ백범 김구선생님 말씀중에서 ㅡ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은 일을 해 보고 죽게 하소서!" 라고 하셨던 백범선생님은 그렇게 남북으로 나뉘는것을 반대하셨다는데..
남문 아치를 지나 그렇게 놀라운 사연이 깃들어 있을 줄이야?
심도에 어울리는 고택이 이제 주인을 찾아 사람들을 맞이하며
속살을 보여 주게됨 참 경사입니다. 멋진분들과 함께 차 한잔
나누며 지난 역사를 바탕으로 새역사를 열어가는 이야기 꽃
상상만으로도 절로 무언가 느껴집니다. 숨은 사연 맛보기로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문 홍예는 그렇게 숱한 역사라는 이름으로 짠 비단실을 우리들 눈앞에 놓아줍니다.
그 비단실 무가보로 가져다가
삶이라는 이름의 마음무늬를 짜고 아니짜고는 저마다의 자유 !!!!!!!!
같은것을 대하면서도 귀히하시는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행백리자님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