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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준수에 대한 교훈
20: 18-20
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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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성탄절과 연말연시의 절기 절교를 하느라 중단했던 출애굽기 강해설교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출애굽한 지 3개월 만에 시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고 하면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쌍방간에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가리켜 ‘시내 산 언약’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체결한 이 언약에 따라 출 20-23장까지 언약의 세부 조건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이 수여되고, 가장 먼저 도덕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이 주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십계명에 대해서는 지난해에 이미 상고한 바와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고 계시는 동안 산 아래서 기다리던 백성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에 찬 임재는,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선포하시는 현장에서 최고의 위엄을 지니고 임재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멸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1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에서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가 나고 연기가 온 산을 뒤덮은 것을 보고 떨며 멀리 서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가 나는 가운데 놀라운 위엄과 권능으로 시내 산에 임재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누군가의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인정한다는 것이 엄마나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하나님이실 때는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의 바로가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장자마저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당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 앞에 두려워하고 겸손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바로와 같이 교만함으로 스스로 멸망과 고통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과 만물을 주장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능력과 힘만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결국도 바로와 같이 고통과 멸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를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얻어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쪽에 해당되십니까?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지혜와 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동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곧 극심한 고통과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권능을 두려워하며 그의 말씀과 뜻에 겸손히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승리와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율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성도의 삶의 준칙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 만한 이런 위엄으로 임재 하셨을까요?
거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시는 율법을 경홀히 여기지 않고 엄중하게 최선을 다하여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크로스웨이 교재를 통해서 배운 대로 하나님의 언약에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이나 다윗과의 언약에서처럼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하신 종적 언약이 있고, 시내 산 언약처럼 인간 편에서 의무가 수반되는 횡적 언약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시내 산 언약은 인간 편에서 의무가 수반되는 횡적 언약으로써, 순종하면 축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가 되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시내 산 언약인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그것의 준수 여부가 곧 그들에게 축복과 저주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위엄찬 모습으로 임재 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경홀히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율법 준수 여부는 인생의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축복을 얻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최선을 다하여 지켜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율법의 준수 여부가 우리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 율법 가운데 소를 잡고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의식법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 외의 율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도들이 지켜야 할 삶의 규범으로 유효하며, 그것은 성도들의 삶에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축복되고 성공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율법을 삶의 준칙으로 삼고, 작은 율법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죄에서 떠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멀리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들에게 말씀하시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죽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죽을까봐 염려했을까요? 그것은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약의 후손이면서도 430년의 애굽 생활 동안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도 못하였고, 출애굽 과정에서도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토록 애쓴 모세와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죄인들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설수도 없었고, 만약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죽음을 당할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죄인은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죄인과 함께 하실 수 없고, 죄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들의 죄악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축복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죄를 회개하여 사함 받고 모든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만일 그의 삶이 여전히 죄악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열심히 구원과 축복을 간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헌금을 바치는 것보다, 먼저 죄에서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소리 높여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대로 죄에서 떠나 의롭게 사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형제에게 원망 받을 만한 일이 있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고, 죄인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하며, 혹시 죄를 지었을 때에는 단호히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주시는 구원과 축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예수님만이 인생의 참 중재자가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모세를 중재자로 내세워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라는 중재자가 없었으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안에서 난 인간들 가운데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가 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아담 안에서 난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스스로 중재자가 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죄인들을 대속하여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몸을 화목 제물로 삼으사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원과 축복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영원한 하늘나라라는 축복의 기업을 얻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중재자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세는 비록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기는 했지만, 인간으로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세의 중재는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죄의 장벽을 완전히 제거하심으로, 그 안에 있는 자로 하여금 누구나 다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참된 중재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해 죽음과 두려움에 떨고 있거나, 영원 한 생명과 축복을 얻기 원하면서도 방법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위대하고 유일하신 중재자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멸망치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과 축복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지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당장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영생과 축복의 자리에 이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를 축복으로 인도하는 방편이 됩니다.
20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사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심은 결코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멸망케 하기 위해 시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시험하시는 것은 오직 그들의 믿음을 더욱 성숙케 하고 그로 인해 그들을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랑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험은 그들을 멸망케 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신 것은 그 시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굳건한 믿음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가나안을 무사히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광야 생활 40년 동안 수많은 시험을 통해 연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시험을 주시는 것은 결코 심판하시거나 징계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더 깊은 믿음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축복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때로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심으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시험이 닥쳤을 때 그 시험을 더 큰 믿음과 축복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 시험을 당했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이 없는지 자신을 살펴보고,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시험을 당하여 넘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주실 때 성도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피할 길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시험은 어떠한 경우에도 성도로 하여금 실패와 좌절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믿음과 인내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 닥친 시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 큰 믿음과 축복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닥친 시험으로 인해 당황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험 뒤에 놓여 있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를 확신함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히려 시험을 신앙 성장과 축복의 기회로 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 가운데 임재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위엄찬 광경 앞에서 심히 떨며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동반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심으로써, 지금껏 십계명을 주신 분이 바로 자신이심을 이스라엘 백성의 뇌리 속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친히 명령하신 십계명을 준수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과, 지키지 않는 자에게 경고하신 저주가 결코 취소되거나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집행될 것이라는 자신의 굳은 의지를, 그 같은 위엄찬 현상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느 부부가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이제 그 돈으로 이스라엘로 휴가를 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이스라엘에 가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 산에 올라가서, 모세처럼 십계명을 펴서 큰 소리로 한 번 읽어 보겠소.” 이에 아내가 말하기를 “시내 산까지 갈 것 없이 이 안방에서 그 말씀을 지켜보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신 28: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 위에 세워서,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한 개인은 다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한 사람들이 다 개화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박사, 서재필 박사, 김활란 박사, 백낙준 박사, 김규식 박사, 조만식 장로 이런 분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여 우리나라의 개화기에 큰 등불 노릇을 한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민족적으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 순종한 나라는 다 복을 받았습니다. 영국이 그러한 나라였습니다.
영국은 원래 바다에서 남의 재산을 약탈하며 살았던 바이킹이라는 해적의 후손이었는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여 신사의 나라가 되고 대영제국이 되었습니다.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은 성경대로 하나님을 믿자는 결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생활목표가
1)하나님 제일주의
2)말씀 중심의 생활
3)철저한 신앙생활(성수주일. 십일조)
4)감사생활
5)협동생활이었습니다.
그러한 결과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스위스는 영토가 작은 산악의 땅입니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제일 G. D. P가 많은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덴마크도 마찬가지 입니다. 덴마크는 모래땅입니다. 그런데 '그룬트비'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이웃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땅을 사랑합시다.”하면서 성경대로 가르쳤더니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세계에서 제일 미개한 나라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나라들입니다. 곧 불교, 흰두교, 모슬렘교의 나라 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고 축복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의 그 위엄찬 광경을 평생토록 잊지 마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며, 미련할 만큼 우직스러울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여러분 자신과 후손들이 자자손손 영. 육간에 넘치는 복을 받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