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는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전해져 온 책이기에, **일부 내용이 후대에 가필되거나 원본과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사마천이 저술한 당대의 원본이 그대로 현전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주요 가필 의혹 및 정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전해지는 과정에서의 변형
* **표제(제목)의 변화:** 원래 사마천은 자신의 책을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렀으나, 후대에 와서 현재의 이름인 《사기(史記)》로 굳어졌습니다. 이는 이 책이 오랫동안 전승되는 과정에서 판본의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 **결락(缺落)과 보충:** 고대 서적은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유실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사기》의 경우도 십 편 정도가 실전(失傳)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후대 학자들이 다른 문헌을 참고하여 내용을 보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본래 사마천의 의도와는 다른 내용이 섞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 2. 가필이 의심되는 부분
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후대의 손길을 강하게 의심합니다.
* **〈오제본기〉의 첫 부분:** 《사기》의 서두인 〈오제본기〉 첫 문단 등은 문체나 내용의 성격상 사마천의 필치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화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중화주의적 색채를 더하기 위해 후대에 가필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 한무제 시대를 비판하거나 정치적 사안을 다룬 대목 중, 당시의 엄혹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마천이 직접 쓰기 어려웠을 만큼 노골적인 비판이 담긴 부분들은 후대인들의 가필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 **〈경제본기〉 등 단조로운 서술:** 본기 중 일부 내용이 지나치게 단조롭거나 구성이 엉성한 부분들 역시 원저자의 문체와 거리가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 3. 역사적 맥락
사마천 사후, 그의 외손자인 양운(楊惲)이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던 《사기》를 조정에 바치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과 이후 수백 년 동안의 필사 과정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해석이나 정치적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요약하자면:**
《사기》는 사마천이 쓴 핵심 골격과 방대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사기》는 사마천이 완성한 원본에 수백 년간 여러 학자의 가필과 편집이 더해진 '판본'**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고대 문헌학자들은 사마천의 본래 사상과 후대의 가필을 구분해내는 '사기 비평'을 중요한 연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