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섣달 당시 명헌태후(헌종의 계비)가 병환으로 진맥을 받을 때 이야기다. 그 무렵 처음으로 신의술(新醫術) 공부를 했다는 의사를 대궐에 들였는데 왕비를,더구나 외간남자가 진찰은 커녕 얼굴을 대할 수도 없는 시절이라 그 진찰(診察.)풍경이 자못 기괴하다.
趙상궁이 어릴 때 이 광경을 목도한 바로는 방 중앙에 천정에서부터 장막(帳幕)을 드리우고 그 앞에 書案(궁중에서 쓰는 낮으막한 탁자)을 갇다 놓고는,태후가 그 위에 팔을 얹어 장(帳) 밖으로 손목만 내밀었다는 것이다.
장갑이 없었던 때라 저고리 소매 아래 흰 명주 헝겁으로 손을 싸고 겨우 맥 짚을 자리만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은 어떠했는가. 병자(病者)의 손목에 비단실을 붙들어 매고 이 실을 帳 밖으로 내놓으면 남자 의사는 실 끝을 만져보고 맥을 짚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명의(名醫)라도 이렇게 해서 바른 진단이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아주 위급한 경우이고 보통때는 의녀(醫女)가 진맥을 하고 침(鍼)을 놓았는데,워낙 전신(前身)이 기생(妓生) 비자(婢子)들이라 성과가 좋지 못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