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에서 소싸움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본적은 없었다. 티브이를 통해 영상으로 경험을 했다.
싸움 날 아침 소 임자는 소를 깨끗이 씻어준 뒤에 여러 가지 천으로 꼰 고삐를 메운다. 소머리에는 각색의 아름다운 헝겊으로 장식한다. 목에는 큰 방울을 달아준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소 임자도 머리에 붉은 수건을 옆으로 비껴 동인다. 오른편 허리에는 무릎에까지 이르도록 각색의 실로 수를 놓은 주머니를 차고 소를 몰고 싸움터로 향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소싸움의 준비 과정이다.
소싸움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한가위 즈음에 주로 하는 행사다. 의령에서는 벚꽃이 한물 지나가고 난 뒤 민속행사와 함께 벌어졌다. 몇 년 동안 코로나의 심술로 숨을 죽이며 힘을 기르고 기술을 연마하기만 했다. 드디어 한판 신나게 놀아보는 것이다. 힘을 겨루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싸움이란 말 대신 힘겨루기라고 달리 불렀다.
싸움이란 말은 살벌함을 동반한다. 누군가 하나가 쓰러져야 한다. 이긴 쪽도 상처투성이다. 죽고 죽이는 것.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 공격하는 쪽의 욕심 때문에 당하는 나라는 어쩔 수 없다.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희생이 크다. 착한 백성들만 죽어난다. 침략한 쪽이 이기면 많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지만 당한 쪽은 이기더라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방어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랬다. 왜놈들이 쳐들어왔다. 임금은 도망을 갔고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났다. 백성들은 스스로 생을 도모해야 했다. 나라를 구한다는 생각보다 자신들이 살아야 했다. 의병이 일어났다. 홍의장군 곽재우도 붉은 옷을 입고 말을 달렸다. 칼과 활을 차고 창을 들고 왜놈들을 무찔렀다. 뿔이 난 홍의장군 앞에 왜놈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붉은 옷만 보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도망가는 발걸음에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조선의 백성들은 착하고 순했다. 뿔을 숨기고 살며, 남을 공격하지도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으며 조용히 살았다. 그래서 수많은 외침에 고통을 겪고 눈물을 흘리고 생명도 잃었다. 잦은 왜구들의 약탈과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범, 거란과 몽고의 침입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우리 백성들은 그들과 맞서 싸웠다. 당하면 당할수록 뿔이 강해졌다. 백성들의 뿔은 저항이다. 착한 백성들이 한 번 뿔이 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뿔뿐이다. 숨겨진 뿔이 아니다. 성난 뿔이다. 순한 사람이 한 번 성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두고 건드리지 않으면 뿔은 보기보다 착하다. 그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다. 오직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일 뿐이다.
소들이 서로 뿔을 맞대고 상대를 떠받치고 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자기 마을의 소를 응원하는 함성을 지른다. 머리와 목 주위를 모래판에 문지르거나 발로 모래를 걷어내는 등 온몸으로 투지를 드러내는 녀석도 있다. 기술도 다양했다. 그저 머리로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놈들은 뿔을 좌우로 흔들어 상대의 뿔을 치며 공격하는 ‘뿔치기’, 상대의 뿔을 걸어 누르는 ‘뿔걸이’, 온몸으로 밀어붙이는 ‘밀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며 장내를 흥분시킨다. 그냥 머리를 받고 힘을 겨루는 줄만 알았던 소싸움만은 아니었다.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거나 밀리면 패한다. 이렇게 승부가 결정 나면 패자는 승복하고 도망을 간다. 그러면 승자는 그것으로 그만이다.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는다. 싸움이 아니다. 겨루기다. 거품을 문 입을 통한 씩씩거림은 사라지고 고요한 평화가 모래판에 깔린다. 평화공존 태평지대가 된다.
조선의 의병들도 그랬다. 왜놈들이 물러가자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왜놈들의 뒤를 쫓거나 왜놈들의 나라에 달려가지 않았다. 더 이상 목숨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도 평상시엔 뿔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올바른 정치를 하지 않을 때는 짐승처럼 뿔을 드러낸다. 국민들을 뿔나지 않게, 보이지 않는 뿔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힘없는 백성이라고, 주면 주는 대로 먹는 백성이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백성이라고, 뿔이 보이지 않는 백성이라고 맘대로 하다가는 백성들의 뿔에 받혀서 큰코 다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까운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수필과 인연을 맺은 지 삼십 년이 되었다는 스승은 수필을 짓는다고 했다. 목수가 집을 짓고, 아낙이 밥을 짓고, 어부가 배를 짓고,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고 했다. 글은 독자를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목수가 집에 들어가 살 사람을 위하여, 아낙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어부가 생선 먹기를 좋아하는 식도락가를 위해, 농부가 다른 사람의 먹거리를 준비하듯 수필가도 수필과 독자를 위해 글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수필이라고 글을 시작한지 겨우 삼 년이면서, ‘서당 개 삼 년에 풍월한다’는 말을 믿고 목에 힘을 주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며느리의 석 삼 년이 있는 줄 몰랐다. 범 무서운 줄 몰랐던 하룻강아지였다.
스승의 말씀은 회초리였다. 바늘이 되어 설익은 인간을 따끔하게 찔러주었다. 대나무의 마디와도 같았다. 투우의 투鬪자가 생각났다. 삼십 년 수필의 가르침은 삼 년짜리 나에게 뿔이었다. 만용과 자랑과 거들먹거림을 들이받은 성난 뿔이었다. 이 뿔의 상처가 아무는 날은 제법 오래 걸리겠지만 절차탁마의 길을 걷다 보면 내 뿔도 어느새 단단해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