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06/200626]쿨한 ‘도시 할머니’ 우리 숙모
아버지쪽 친척이라곤 작은집이 유일하다. 할머니가 작은 아버지를 낳지 않으셨으면 아버지는 4대 독자가 분명할 터이니, 귀하고 또 귀한 일이다. 아버지는 7남매만 낳아 기르고 가르친 게 아니고, 당신보다 6살 아래인 동생의 학업과 취업조차 책임졌으니 그 어깨가 심히 무거웠을 것이다. 천지간에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 치매를 5년도 넘게 앓다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짧은 글을 남기며 통곡하셨다. “네가 나보다 먼저 가다니…” 어느새 3년 전이다.
숙부는 산림보호 감시원을 하다 전주로 올라오셔 구멍가게를 하며 네 명의 동생들을 가르쳤다. 통반장을 수십 년을 하면서 동네 궂은 일을 자기 일처럼 하시는 등 ‘법 없이도 살 양반’이라고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애기들을 무척이나 예뼈하셨다. 청소년 시절에는 아버지(떡애기때 돌아가셨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며 할머니와 아버지께 생떼도 많이 부렸지만, 빠듯한 살림에도 큰집 조카인 우리에게도 참 잘 대해주신, 고맙고 친절하신 분이었다.
작은 어머니는 당연히 혼자 남으셨다. 85세. 예전 같으면 상노인, 극노인이겠지만, 초고령사회가 아닌가. 지금 이 나이로 돌아가시면 ‘10년도 더 사실텐데’ 하며 서운해 하는 게 요즘 장례식장 문상 풍경이다. ‘고로롱 팔십’이라는 속담은 ‘고로롱 백년’으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여기저기 많이 아프시다. 도시 서민으로 동생들을 가르치느라 팔북동 공장에도 오랫동안 다니며 고생도 많이 하셨다. 무릎 관절염으로 잘 걷지를 못하자, 최근 양쪽에 인공관절 수술을 하셨다. 넉 달이 지났건만, 천근만근 걷기가 자유롭지 못하다.
어제는 전주에 올라오는 길에 이것저것 푸성귀를 뜯어 갖다드렸다. 잔정 많은 조카가 와준 것도 고마운데, 이런 것까지 챙겨왔냐며 반색을 한다. 숙모는 우리 어머니와 다르게 일반 ‘도시 엄마들’처럼 상당히 쿨한 편이었다. 중학교를 작은집에서 다녀 더 각별한 정리情理가 있는 것같다. 참말로 그악스럽게 농사만 지어 돈을 만드는 엄마와 달랐던 게 좋았다. 엄마는 전형적인 농촌의 대가족 어머니였으므로, 며느리들과 약간의 갈등도 쿨하게 풀지 못하셨다. 반면에 숙모는 아들과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듯, 서운할 법도 한데 술술 잘 넘어가는 슬기가 있었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는 등 쿨하면 좋을텐데, 생각한 적이 많았다. 누구라도 한계가 있는 법,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이 늘 병을 끼고 사셨지만,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큰집 조카들에게도 잘 해주신 고마운 분이다.
보자마자 치마를 걷어올려 양쪽 무릎을 보여준다. 절개한 흔적이 너무 적나라하여 제대로 보지 못하겠다. 양쪽 다 50cm는 족히 되는 듯 흉터가 흉했다. 언젠가는 유방암 초기라 하여 절개를 했는데, 수술하여 꼬맨 자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숙모와 조카 사이에 흉되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보니 마음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조카인 나도 맘이 너무 짜안한데, 사촌동생들의 마음은 어떨까? ‘쿨하다’는 것은 숙모와 얘기가,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이다. 포기할 것은 얼른 포기하고, 자식들한테 서운한 것은 빨리 잊고, 당신의 신병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가짐이 저절로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집我執을 버려야 스트레스가 안생긴다. 스트레스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던가. 천명天命에 순응할 마음을 가지는 것은 슬기롭고 지혜롭게 늙어가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 세상 소풍을 끝낼 줄 아는 사람이 사실은 별로 없지 않은가.
나는 그런 점에서 숙모 앞에선 어리광도 부릴 수 있고, 부리고 싶다. 나는 그런 숙모가 좋다. 사랑한다. 치매에 걸린 숙부 뒷바라지에 5년도 넘게 힘드셨으니, 이제 아프지 않고 노년을 즐기셨으면 좋으련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 게 속상한다. 다행인 것의 하나는 친정언니와 거의 대부분 같이 지내시기에 보기에 심히 좋다. 늙으면 역시 피붙이밖에 없지 않은가. 아니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무릎도 얼른 제자리를 찾아 씩씩하게 걷지는 못해도 불편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강녕을 빈다.
첫댓글 아침부터 우리 작은엄니 생각이 납니다.
밤늦게 찾아가도 조카 술상도 차려주시던 작은엄니 우리 집안에 여자 어르신중 유일한 작은엄니 뇌수술도 하시고 여러번 아프셨지만 막내아들 신부님의 기도덕분인지 지금은 많이좋아지셔서 건강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