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2(수)■
(사도행전 17장)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묵상/행 17:16-34)
◆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 아덴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16)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오자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했다. 우상들은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읽었던 제우스, 헤라, 아폴론, 아테나 등 수십 개가 될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지금은 아무도 믿고 있지 않지만, 당시 사람들은 진짜 믿었다. 이것을 보고 바울이 격분했다.
바울의 격분은 하나님의 질투심이다.
출애굽 시절에 이스라엘이 발람의 꼬임에 빠져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 우상숭배를 하였다. 이 범죄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 염병이 퍼져나가는 와중에 한 사람이 또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자기 막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그 둘을 모두 죽였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민 25:1-13)
질투를 일반적으로 나쁜 것으로 간주하지만 정당한 질투라는 것이 있다. 내가 받아야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뺏는 것에 대한 질투는 정당하다. 자식이 사기꾼을 아버지보다 더 신뢰하거나, 부인이 바람둥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질투는 정당하다. 아예 남이라면 그런 질투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바울의 격분은 오히려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이런 것에 격분하지 않았다. 다만 우상숭배하는 이방인들을 가축처럼 여겼을 뿐이다. 바울의 격분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열정에서 나온 것이다. 무디는 성령을 받고 난 뒤에 전도에 불이 붙었다. 그는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영혼 상태를 느끼면서 전봇대에 기대서 울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그는 19세기 말에 미국의 부흥에 사용되었고, 그를 통해서 무려 100만 명이나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다. 그 부흥의 일환으로 회개한 청년들이 조선에도 선교사로 왔다.
오늘날에는 바울이 느꼈던 격분, 그리고 무디가 느꼈던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드물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그런 마음을 주십시오.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 아테네 사람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21)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 학파는 오늘날 사회책에서도 볼 수 있는 유명한 학파였다. 이들의 철학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바울을 '말쟁이'로 비하한 것을 보면 그들이 교만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테네 사람들은 진리를 탐구하는 듯했지만, 사실은 지적 호기심에 불과했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진리를 아는체했고, 선생 노릇을 했다. 진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토론을 사랑했고, 자신이 인정받는 데에서 만족감을 얻었다. 이런 자들이 무언가 아는 체를 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너 자신을 알라'로 외치고 다닌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똑같다. 사람들은 진리를 사모해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식을 모으고 그것을 자랑할 수 있는 대상들을 찾아다닌다.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오랫동안 있는 사람들이 특히 그 증상이 심하다. 잘 가르친다는 소리 한번 듣고 싶어서 이것저것 열심히 끌어모으고 연구하나 정작 자신이 진리를 믿고 변화될 생각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것은 별 소득이 없다. 이들에게는 이것조차도 다양한 지식 중에 하나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결국 바울은 아덴에서 이런 철학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아마도 바울은 비웃음을 당하고 조롱당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라고 말한 것은 이때의 경험이 녹아있는 말이 아닐까?
복음은 토론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설득이 아니라 선포되어야 한다. 복음의 선포가 강력한 것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며 실제로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롬 1:16)
◆ 바울의 메시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24,25)
그동안 유대인들을 전도했던 메시지는 있는데, 이방인을 전도한 메시지는 없었다. 그래서 바울의 이 메시지는 더욱 연구할 만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메시지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말이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당시에 제우스의 아들이 도처에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이기 때문이다. 단지 '정하신 사람'(31) 이라고 칭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였음을 전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먼저 알아야 했다.
바울의 이 말을 주목해보라.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께 무언가 드려서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많은 종교가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신을 섬긴다. 사람들이 만든 신(神)은 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유한하며 인간의 섬김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가끔 밤하늘의 별들을 보라. 저렇게 광활한 우주를 만드신 분이 무언가 부족해서 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받기보다 무엇을 주기를 더 원하시는 분이시다.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셔야 하는지를 일깨우고 있다. 인간이 만든 하나님은 엉터리다. 진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다. 인제 그만 회개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구원받아서 그를 경외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헌금, 믿음이 없는 봉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에게서만 예배와 찬양과 봉사를 받으시는 분이다. 어린 자식이 흙 떡을 만들어서 주면 아비는 크게 기뻐하며 받는다. 비록 먹지 못하는 것이지만 자식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이웃 남자가 그런 것을 주면 화를 낼 것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30)
이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명하셨다. 더는 세상을 추구하지 말고 제대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자.
천지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아버지의 광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더욱 알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영광과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제 평생에 정직한 예배자로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