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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현실을 이룰 수 있는 창조의 도구이다
민수기 14장 26절부터 32절까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
오늘 말씀은 민수기 14장 말씀입니다. 이 장에서는 모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여정을 하다가, 가나안 땅을 탐사하고 돌아온 이들의 말을 듣고 대처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가나안 땅을 염탐하고 온 후 가나안 땅에 거인이 있다는 이야기가가 들리자,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그 말에 동조해서 엉엉 울면서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 가나안 땅까지 가서 죽고자 하느냐, 차라리 여기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달랐습니다.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그들을 먹을 수 있다. 거기를 충분히 정복할 수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20세 이상의 모든 그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만은 그들의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런식으로 말이 엄청나게 큰 힘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대로 행하시는 예수님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수로로보니게의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한 여자를 개와 같이 취급하고 자녀의 밥상에서 그 떡을 취해서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수로보니게 여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상아래 개도 주인의 자녀가 먹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여인 스스로가 한 말에 의해서 예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야고보서 3장 4, 5절을 보면,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가 큰배를 조종하는 하나의 키와 같다고 합니다. 작은 혀에 의해서 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큰 배가 키에 의해서 움직이듯이, 우리의 몸이 우리의 인생에 우리 혀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또 "말은 불과 같다" 고 합니다. 얼마전 강원도 산불로 강원도가 큰 피해를 입은것처럼 불은 많은 것을 파괴하고 말살시켜 버립니다. 성경에서는 말이 불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을 파괴시키고 죽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말이라는 것은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말을 훈련하고, 그 마음을 훈련해서 긍정적인 말을 할수 있어야 겠습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이 은연중에 말에 담겨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마음이 순수해지지 않으면 말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순결하게 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또 말씀에 기초해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찰때 , 성령으로 채워졌을 때 우리는 긍정적인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두가 성령 충만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 모두가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을 함부로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고, 긍정적인 말을 한 갈렙과 여호수아를 콕 집어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말이라는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에 말에 대한 중요성을 조금 깊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 3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혼돈의 가운데, 무언가를 만드실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바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보여주고, 말씀은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힘을 조금 어렵게 풀어 쓰자면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은 현실을 이룰 수 있는 창조의 도구이다”
말씀은 우리를 넘어 하나님의 창조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말씀이 가진 창조의 힘, 말의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세상, 천지가처음 경험한 말씀의 힘, 말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다른 모든 생물들은 말씀으로 지으셨는데 사람은 손수 진흙으로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 귀에 한 번 바람을 한번 불어 넣어보겠습니다. 원래는 코에 바람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자칫 코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입냄새로 서로에게 실례가 될 수 있으므로 옆 사람 귀에 바람을 불어 넣어 보겠습니다. 한번 해보시죠.
어떻습니까? 어떤 기운이 느껴지시나요?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차가운 진흙에 직접 온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찰흙에 불과한 흙덩어리가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는 물질의 성질을 변하게 합니다.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은 진시황릉의 무덤에 있는 유명한 유적입니다. 이유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살아있는 사람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표정, 포즈, 의상 등은 모두 실제 군사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마치 그들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토우일 뿐입니다. 생기가 들어있지 않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토우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가정이지만, 아마도,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생기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곧 생명이고 말씀이 곧 능력임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기를 입은 우리의 말에도 생명과 능력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덧입은 우리의 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생명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군가의 한 마디의 위로가 죽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멀쩡한 사람을 죽음의 구렁으로 몰아 넣기도 합니다.
말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언어적, 사고적으로 발전하고, 다른 생명체와 소통하며,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의 중요성은 이러한 소통과 상호작용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다른 문화와 국가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의 힘과 영향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말은 사람의 내면에 큰 영향을 끼치며, 행동에도 변화를 일으킵니다. 말은 때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인간은 말을 통해 문학작품, 음악, 영화 등을 창작해왔으며, 이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또한 말로 인해 발생한 갈등은 많은 경우 조정되기도 하며, 이를 통해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말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정확하고 의미가 분명해야 합니다. 말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상처를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로 인해 위로를 받은 사람은 그 위로를 잊지 못합니다. 이러한 위로는 그 사람을 일시적으로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이 가진힘을 직간접적으로 매일 느끼고 산다고 할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는 말 한 마디로 천냥을 갚는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는 한 마디의 말이 가지는 영향력과 힘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속담은 동서양을 통틀어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속담은 말의 힘과 영향력이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에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관하며 삶과 죽음의 회전축을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생명의 말씀은 말씀의 생명력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말의 힘, 말씀의 힘입니다.
마태복음 8:5-13에서는 백부장의 믿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말씀으로 바로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생명이 가득한 말과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말을 전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말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말 안에 생명력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뿌리는 씨앗에는 어떤 종류의 말이 담겨있는 것일까요? 긍정적인 말, 부정적인 말, 불평의 말, 기쁨의 말, 위로의 말, 어떤 말일까요? 우리의 말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 우리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인지, 아니면 사람을 상처입혀 죽이는 말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말씀이 생명을 가진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배웠습니다. 말씀이 가지는 힘과 능력, 생명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리내는 말이 가지는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가 가지는 힘과 능력, 생명력은 곧 그 말을 듣는 상대에게 어떤식으로든지 영향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인 말과 말씀을 전하며 상대방의 인생을 살릴 수 있는 씨앗을 뿌려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은 능력과 더불어 생명을 주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의 힘을 여러번 강조합니다. 잠언 18:21은 "혀의 권능은 생명과 사망을 관장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내뱉는 말이 삶과 죽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비판적인 말이 상대방의 심신에 큰 상처를 줄 수 있으며, 그 결과로 상대방이 우울증이나 자살을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6:63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마태복음 4:4에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식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내뱉는 말이 상대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침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잠언 15:4에서는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내뱉는 말이 우리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말의 힘은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말의 힘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상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말로써 상황을 해결하거나,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은 인간의 말의 힘의 큰 장점입니다.
말의 힘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말 없이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말의 힘은 상대방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말을 선택할 때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며, 그에 맞는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고 그것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다.
여기 저를 아시는 분도 계시고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에어바이블이라는 공기조형물을 만드는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저희가 만드는 공기 조형물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조형물은 행사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사가 다 취소되고 거의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출이 없는 상태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막막하고 답답했습니다.
2019년도에는 회사 매출도 많이 오르고 주문량도 증가추세여서 2020년 초에는 마음먹고 신입직원도 거의 10명 가까이 뽑아 큰 투자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2020년 3월에 시작된 코로나는 정말 회사의 존폐를 걱정할 정도의 타격을 줬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새로 채용한 직원 대부분이 퇴사를 하고 몇몇 시니어급 직원도 같이 퇴사를 하게 되어 40명대의 직원이던 회사가 20명대로 쪼그라 들게 되었습니다. 직원 규모가 줄은 것을 걱정할게 아니라 회사가 살아남느냐를 걱정할 정도의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주변 거래처에서도 폐업 소식이 들려오고, 빚더미에 앉은 몇몇 대표의 극단적 선택의 부고장을 몇번 받고보니 정말 마음이 한없이 우울하고 낙담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문제라면, 우리가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세계에 유래가 없는 사고 앞에서는 우리의 노력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제가 가나안을 염탐하고 온 정찰대의 모습과 같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가나안을 정복해야 하는데, 거기 사는 거인같은 사람들을 보고 겁을 먹고 저기는 절대 정복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유대인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앞에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 아닌가?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럽게 회사를 망하게 할 거면 진작 몇년전에 망하게 할 일이지 지금 회사가 엄청 성장할 것처럼 희망고문해놓고 갑작스럽게 회사를 망하게 하는건 너무 잔인한거 아닌가…하는 식의 푸념을 했었습니다. 뭔가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푸념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묘하게 데자뷰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직원들 앞에서 푸념을 늘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직원들이 불안해하는데 더 불안해할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속앓이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 때부터 잠들기전 가족과 함께 성경 말씀을 읽고 하루를 기도와 말씀으로 마감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내가 기대고 구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말씀이 힘이 되고 말씀이 능력이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제 인생 요절 말씀인 디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말씀을 잡고 말씀이 능력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때,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때 말씀만이 힘이요 능력임을 믿고 또, 믿었습니다.
다시 2019년 상황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2019년은 회사 매출이 급신장을 이루고 큰 기획사와 이벤트 회사와도 연이 닿아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때입니다. 저희의 주력 제품이 공기조형물이라는 것은 아까 말씀드렸었습니다. 공기조형물의 매출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그외 다른 아이템에 투입된 인원들 대비 공기조형물 제조 인력의 손이 많이 모자라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다들 사람을 더 고용하자고 했지만, 섣불리 사람만 늘릴 수 없는지라 어떻게 어떻게 꾸역 꾸역 꾸려나가면서도 한편 마음에 이익이 별로 되지 않는 다른 아이템을 이참에 정리하고 공기조형물 제조 파트로 다 전환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속된말로 계륵 같은 아이템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런 아이템은 안하자니 살짝 아쉽고 하자니 별로 이익이 없는 아이템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2020년 초 10명의 인원을 새로 채용하면서 그해 3월~4월경 조직개편을 통해 이익이 많이 나지 않는 아이템의 인원을 공기조형물 제조로 전환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딱 그 시기에 코로나 펜데믹이 터졌고, 정작 우리 회사를 지탱해주고 우리 회사의 기둥이 되어주던 공기조형물 매출이 0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야말로 0 입니다 제로.
이럴때 회사를 살려준것이 정말 계륵처럼 여기던 아이템들이었습니다. 매출이 거의 없고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푸대접하던 아이템들 매출이 코로나 기간 동안 어느정도 회사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익을 볼 상황까지는 아니었으나 최소한의 적자폭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기조형물 사업을 18년째 해온 저는 나름 문제가 생기면 대처가 가능하다는 교만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경험에서 비롯되는 지식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이렇게 하면 돼, 저런 경우는 저렇게… 그런데, 제 지식과 경험이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때가 바로 코로나 펜데믹 때였습니다. 그 때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럴때 우리가 할 일은 낙담하고 좌절할 게 아닙니다. 힘이고 능력이 되는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이 날것 같지 않던 상황을 제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하시는 말씀의 힘, 말씀의 능력은, 제가 보잘것 없다고 여기고 제가 하찮다고 여기던 것을 이용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말 작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에는 상황을 역전시킬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네. 저도 안보였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공기가 제 머리를 휘날리는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것이 아닙니다.
의외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내일 해가 뜰것을 믿고 오늘 밤에 달이 뜰것을 믿습니다. 시원한 봄 바람의 상쾌함을 믿고 시원한 봄비의 청량감을 믿습니다. 그런데, 내 앞에 닥친 문제에서는 내 경험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말씀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씀의 능력을 계륵처럼 여기십니까? 오늘 하찮게 보이는 것이 내일 내 목숨줄을 살려줄 수 있습니다. 내가 미천하다고 여기는 것이 나를 존귀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을 맹신할 때 얻어지는 것은 자신에 대한 좌절감 밖에 없을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기를 입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기가 녹아있는 말씀으로 힘을 얻고 능력을 얻어 부활의 삶,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내 존재의 가치를 의심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의 능력이 내 안에 살아 계시기에 내가 삶을 살아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자격주신 자 안에서 제가 못할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게 힘을 주신 그 분 앞에서 제가 힘을 왜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그 힘을 그 능력을 믿어봅시다. 가나안 거인을 내 밥이요, 내 먹이로 보이게끔 하신 말씀의 힘을 믿어 봅시다. 부정적인 투정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안에서 가나안 땅을 밟는 꿈을 가지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안보였습니다. 큰길은 아예 보이지 않았고, 샛길도 개구멍 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럴때 사람들은 동분서주 하며 이사람을 만나고 저사람을 만납니다. 국가기관을 찾아다니고 컨설팅 업체를 찾아다닐테죠. 은행을 찾고 브로커를 만나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경앞에 서야 합니다. 골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의 해결 방식과 사뭇 많이 다릅니다. 무책임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것을요. 세상이 이치가 뭘까요? 세상을 만든 분의 뜻이 아닐까요? 세상을 만드신 말씀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세상의 이치가 됩니다.
"말씀은 현실을 이룰 수 있는 창조의 도구이다”
은혜로운 자격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