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나라: 이사야 16] 다윗의 장막이 굳게 설 것이요
이사야 16장 강해
요절: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5)
이사야 15에 대한 경고이고, 16장은 모압의 멸망에 대해 예언합니다. 선지자는 모압에 대해 권면하지만, 모압은 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권면을 듣지 않으며 마침내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압이 망하는 가운데 다윗의 나라를 굳게 세우시고 다윗의 나라를 통하여 모압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피난처를 구하는 모압 사람들)
1-4a절을 보면 모압 백성들은 패망 후에 예루살렘의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조공으로 보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 땅 통치자’는 유다 왕을 가리킵니다. 이 유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셀라’는 모압 남쪽 에돔의 보스라 부근 도시나 모압 땅의 한 지역을 가리킵니다. 선지자는 모압이 유다 왕에게 조공을 드리며 그를 섬기라고 권면합니다.
다윗 시대에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었습니다(삼하 8:2). 이스라엘 왕 아합 때에도 모압 왕 메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새끼양 10만 마리를 바친 적이 있었습니다(왕하 3:4). 이와 같이, 이제도 모압은 유다 왕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유다 왕에게 복종하라는 권면은 유다 왕이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셀라에서 광야를 거쳐, 하나님의 딸 시온 산으로 조공을 보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모압 족속이 패망 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패망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모압의 여인들은 있을 곳이 없어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털린 둥지에서 흩어진 새끼 새들처럼, 아르논의 나루터에서 헤매고 다닙니다. 아르논은 모압의 북부 국경으로서 동서로 가로질러 사해로 흐르는 강입니다. 모압이 멸망할 때 모압의 여자들은 보금자리를 떠나 새들처럼 방황할 것입니다. 3절에서 '너는 방도를 베풀라'고 할 때 너는 유대인을 말하고 '나'는 모압사람들을 말합니다. 모압사람들이 유대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모압사람들이 유다백성에게 애원합니다. 공의로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합니다. 뜨거운 대낮에 밤과 같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처럼 쉼터가 되어 달라고 합니다. 멸절하는 자가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피난처가 되어 달라고 합니다. ‘토색하는 자’ ‘멸절하는 자’ ‘압제하는 자’는 모압을 괴롭혔던 앗수르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듯이 그들도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나라에서 사는 모압사람들)
4b,5절을 보면 모압인이 피하여 있는 유다에서는 폭력이 사라지고, 파괴가 그칩니다. ‘망하였고’ ‘그쳤고’ ‘멸절하였으며’라고 과거형으로 표현된 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나타내는 표현법입니다. 압제자들이 모압 땅에서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가문에서 메시야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나와 신실과 사랑으로 그 백성을 다스릴 것입니다. 다윗의 가문에서 일어나는 왕은 충실히 판결할 것입니다. 정의를 구하며 옳은 일이면 지체하지 않고 할 것입니다. 다윗 왕국의 회복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왕국은 인자함과, 충실함 혹은 진실함과, 공평과 의로 굳게 설 것입니다.
다윗왕국이라는 말에 은혜가 됩니다. 다윗의 나라는 사울의 시기가 있었고 자녀 가운데 성폭행과 살인이 있었고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반역이 있었습니다. 모압의 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회개하고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윗의 왕국과 같이 문제투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운데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망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굳게 설 것입니다. 다윗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현재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다윗의 집처럼 문제가 많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 은혜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십니다. 장차는 천국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메시야의 나라가 모압인들에게 진정한 쉼이 되십니다.
(교만한 모압인의 통곡)
6-8절을 보면 유다 백성이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압이 교만하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매우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하여 화를 잘 내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허풍뿐이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합니다.
모압땅은 풍요로웠습니다. 모압은 그들에게 포도가 풍성하게 소출되자 교만하고 허황되었습니다. ‘그 자랑이 헛되도다’라는 ‘그의 헛된 말들은 옳지 않도다’라는 뜻입니다. 모압의 문제점은 교만이었습니다. 모압은 심히 교만하고 거만하며 자신을 헛되이, 과장되이 자랑하였습니다.
그 자랑하는 말들은 다 옳지 않았습니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신뢰하며 높이는 태도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교만한 모압 백성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못 이겨서 통곡할 것입니다. 길하레셋에서 풍성하게 늘 먹던 건포도빵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 것입니다. ‘길하레셋 건포도 떡’이라는 말씀에서 ‘건포도 떡’은 ‘기초들’(foundations)(KJV), ‘파괴로 드러난 기초들’, ‘파괴된 잔해들’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길하레셋은 모압의 수도입니다.
모압은 성읍들의 멸망과 밭의 곡물들과 열매들의 없음을 인하여 슬퍼하며 통곡할 것입니다.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원이 황무지가 되었음을 탄식합니다.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즐겨 마시던 포도주의 산지가 황무하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포도나무 가지가 저 멀리 야셀에까지 뻗어 나가고, 동쪽으로는 광야에까지 퍼져 나가고, 서쪽으로는 그 싹이 자라서 사해 너머로까지 뻗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포도 가지를 꺾었습니다.
(모압의 패망에 대한 이사야의 슬픔)
9-11절을 보면 야셀이 울듯이, 이사야는 통곡합니다. 말라 비틀어진 십마의 포도나무를 두고 통곡합니다. 이사야는 헤스본과 엘르알레야에 눈물을 흘리며 눈물로 땅을 적십니다. 소리가 그쳤다는 말은 ‘떨어진다, 소멸된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는 모압의 멸망을 동정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모압은 이전에 풍성한 포도와 그 외의 여름실과의 수확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기뻐하던 그 즐거움과 기쁨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시고 그것을 빼앗기도 하십니다. 여름 과일과 농작물을 거두는 모압의 흥겨운 소리가 모압에서 그쳤습니다. 이제 기름진 밭에서 즐거움도 사라지고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포도원에서 노랫소리가 나지 않고, 기뻐 떠드는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포도주틀에는 포도를 밟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흥겨운 소리를 그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모압을 생각하니, 그의 심장이 수금 줄이 튀듯 떨립니다. 이사야가 모압의 수도 길하레셋을 생각하니, 그의 창자가 뒤틀립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모압을 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슬퍼합니다. 이사야의 슬픔은 바로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모압의 소용없는 기도)
12-14절을 보면 모압 백성이 산당에 올라가서 피곤하도록 제사를 드리고, 그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해도, 모압의 멸망은 막을 수 없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그들의 신 그모스를 섬겼고 기도하였을지라도, 그들의 모든 종교적 행위와 기도가 헛되었습니다.
종교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며, 신이라고 다 괜찮은 것이 아니며, 경건하다고 다 선한 것이 아닙니다. 바른 경건이어야 하고 참 신을 섬겨야 하고 참 종교를 가져야 합니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에 계시된 종교,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며 그가 인간의 생활법칙으로 주신 십계명을 행해야합니다.
이것이 전에 주께서 모압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 년 기한으로 머슴살이를 하게 된 머슴이 그 햇수를 세듯이, 이제 하나님께서 모압의 멸망에 대한 삼년을 헤아리십니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입니다. 삼 년 안에 모압의 영화가 그 큰 무리와 함께 모두 능욕을 당할 것입니다.
남은 사람이라야 얼마 되지 않아, 보잘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소용이 없다’는 말은 ‘힘이 있지 않다’ 혹은 ‘수가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모압의 멸망은 일찍부터 예언된 바이었지만, 이제 3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 것이며 그 남은 수는 심히 적고 그 국가는 미약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3년 이내에 회개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모압이 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바로 다윗의 장막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불경건과 우상숭배에 떨어집니다.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경건생활의 시작입니다. 참 경건을 구해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는 ‘절대’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씁니다. 절대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행복의 길입니다.(신 10:12-13).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