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이 항공기 자살 테러 습격을 받는다. 이 사건으로 3000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본토가 공격을 받은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그해 10월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테러리스트의 훈련 캠프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군사시설에 공습을 가했다. 그후 아프간 전쟁은 13년간 계속됐다. 1조 달러 이상의 세금이 투입됐고 2,300명 이상의 미군이 전사했다. 아프간 민간인의 희생도 2만명이 넘는다. 알카에다 리더로 알려진 빈 라덴은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간에서 소련에 대항할 목적으로 구성된 조직 무자헤딘의 일원이었다. 이 무자헤딘은 바로 미국의 CIA가 뒤를 봐주던 조직이다. 미국이 키운 빈라덴에게 미국이 당한 것이다.
미국은 2003년 전선을 이라크로 확대했다. 부시 정권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테러리스트와 연루되어 있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2주만에 후세인 정권은 붕괴됐다. 하지만 대량살상 무기의 증거를 발견하는데는 실패했다. 9.11테러위원회 역시 알카에다와 후세인의 협조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헛다리 짚은 격이다. 이라크의 전쟁은 8000억달러의 비용과 미군 4,469명 전사, 3만여명 부상이라는 큰 상처를 남겼다. 미국은 9.11테러 사건과 관련돼 아프간과 이라크를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관련 혐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처단했다. 9.11테러 사건에서 미국은 자국에게 피해를 줄 경우 피의 응징을 하고 그 댓가를 혹독하게 경험하게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에게 밉보일 경우 잔인한 처벌이 가해진다는 미국식 법칙을 강하게 표출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정의라고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미국의 정의와 관련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세계 2차대전으로 가본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습격사건으로 방관자에서 직접 개입국으로 태세를 바꾼다. 유럽에서는 독일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수행한다. 전쟁중 인도차이나 반도와 필리핀 등지에서 일본에게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가 상당했다. 일본군은 미군 포로에 대해 처참한 대우와 인간이하의 태도를 보였다. 수많은 전쟁 포로들이 더운 날씨에 숨져갔다. 특히 버마 죽음의 철도 공사에서는 포로 25만명 가운데 10만명이 사망했다. 그들의 사진은 눈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들이었다. 몸집이 큰 미군들이 그런 상황에서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다.필리핀에서 자행된 바탄 죽음의 행진에서는 부상당한 포로들에게 땡볕에서 하루종일 버티게하는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굶주림과 구타를 당해 행진자 6만여명 중 1만명이상이 탈진으로 사망했다.
이외에도 중일전쟁때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에서 일본 군대가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른바 난징 대학살 사건이다. 5만여 명의 일본군이 1937년 강간, 학살, 약탈을 자행했고 기관총에 의한 무차별 사격과 생매장, 불태워 죽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광기로 30만 명이 넘는 중국인을 학살했다. 그밖에 일본군이 저지런 만행은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런 일본 전범들을 처단하기 위한 전범 재판이 1946년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이름하여 도쿄 전범 재판이다. 하지만 이 도쿄 전범 재판에서 미국이 보여준 처사는 미국이 내건 정의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부정한 것을 처단하며 불의에 분연히 저항하는 그 정신이 바로 미국이 건국때부터 내건 정의였다. 미국이 자유만큼 중요시 생각한 개념이 바로 정의이다. 하지만 그런 정의는 불행하게도 도쿄전범재판에서는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과 팽창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도쿄전범재판이 이뤄졌다. 핵심 전범들 가운데 고작 7명만 처형됐고 나머지는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석방되거나 감형되고 그후 어느날 모두 풀려나는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 바로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진주한 미국 맥아더 원수의 작품이다. 일본을 잘 구슬려 자신들의 속국으로 삼고 자신들의 충실한 심복으로 만들려는 의도만이 존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군국주의 청산이란 이뤄질 수가 없었다. 핵심 전범들이 모두 정치 경제 고위직에 올라 또 다시 그들 맘대로 일본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미국의 충견으로 살 것을 맹세한 댓가로 말이다.
식민지였던 한반도와 중국, 인도차이나 반도 그리고 동남아시아 식민지들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 등 식민지제국들이 주도한 도쿄 전범재판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자칫 자신들이 보유한 식민지에 흠이 생길까 하는 우려때문이었다. 그들에게 결코 정의란 없었다. 아니 자국이기주의가 바로 정의였다. 도쿄 전범재판은 일제 전범들을 처단하는 자리가 아니고 일제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자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에서 맥아더가 주도하는 미군정이 이럴진데 맥아더의 충실한 부하 하지 중장이 지휘하는 남한이 어떻게 친일 청산을 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의 정의 실종으로 일본은 기고만장해지고 한때 미국을 넘보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맥아더의 그 바다와 같은 아량과 은덕으로 일본은 기사회생했다. 한국은 친일 청산의 기회를 놓쳤고 아직도 한국에서는 친일파들이 정치 경제 사회 도처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미국은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스파이더 맨 등 이런 저런 영웅들을 만들어내서 미국의 정의로움을 전세계에 알리려 몸부림치지만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액면 그래로 믿지 않는다. 미국의 정의는 자국의 이익과 부합할 때 발동되는 것이지 자국의 이익에 반하면 그것은 논할 가치조차 없는 사안이 되고 만다. 과연 미국의 정의는 어디로 사라졌나. 원래 있기나 한 것인가. 미국 정의의 실종이 한국에게는 너무도 뼈아픈 역사로 남아 있다.
2023년 2월 1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