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면 캐나다 밴쿠버의 피어슨 국제공항에 는 한국 학생이 넘쳐난다. 대부분이 유학생이다. 이 중에는 초등학생 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도 적지 않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자국에 들어오는 유학생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면서 한국 학생의 캐나다 유학 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밴쿠버 교육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밴쿠버에서 초등교 육과 중등교육을 받는 한국인 학생은 모두 7,900여 명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유학생을 받아들이지 않던 버나비 지역이 유학생 입학을 허가 하면서 올해는 9,0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30% 이상이 조기유학생이다.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면서 대부분 부모는 자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국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한국에서 무너지는 공교육 에 실망하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이왕 비용이 많이 들 어가는 것이라면 유학을 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으로 자녀를 외국 으로 보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을 깨닫는다. 부모들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영어 하나라도 잘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어린 나이에 낯선 환경에서 공 부해야 하는 학생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의 초-중등교육기관은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외국인 영어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 지 않는 나라에서 유학온 학생은 우선 이 프로그램에 등록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캐나다에 유학하기만 하면 금발의 캐나다 백인 아이와 어 울려 공부하는 줄로 알고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 쳐야 한다. 처음 유학온 학생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것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외국인 학생과 ESL 에서 겨뤄 좋은 성적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영어 공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학부모는 자녀가 영어만 사용 하는 학생과 어울리기를 바라지만 그 기대도 접어야 한다. 한국 조기 유학생이 늘어나면서 밴쿠버의 어느 곳에서도 한국 학생이 없는 곳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ESL 학급에는 한국 학생 5~6명 정도 없는 곳이 없다. 때문에 조기유학생은 언어 장벽이 있는 외국인 학생보다는 한국 에서 온 학생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따라서 조기유학을 떠난 자녀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영어권에서 태어난 것처럼 유창한 발음 으로 영어를 구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이루기 어려운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출석만 하면 졸업을 시켜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캐나다에서는 학업성적이 따르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 언어가 자유롭지 못 한 조기유학생은 세컨드리 스쿨(중-고등학교)을 졸업하는 것조차 어 려운 것이 현실이다.
비영어권 유학생은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1년간은 ESL에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정규과정에 빨리 입학하지 못한다. 그 결과 졸업에 필요 한 수업일수를 채울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은 불가능해 지며, 대학 입학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학생 가운 데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비율이 30%에 달하는 것을 보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 조기유학생이 제대로 졸업하는 비율은 절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밴쿠버가 속해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고등학교 과정을 마 치고 대학교에 진학하려면 우리나라의 고교 2학년에 해당하는 11학년 과 12학년 동안 필수과목을 포함해 52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그 다음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프로빈셜(주정부 대입시험)까지 통과해야 비 로소 대학 입학 자격이 생긴다. 게다가 캐나다에서 4년 이상을 공부하 지 않았다면 여기에 토플시험까지 봐야 하기 때문에 조기유학생이 대 학에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한두개가 아니다. 실제로 고등학생 이 된 이후에 조기유학을 오는 학생 70% 정도가 제때 졸업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교육청의 학업 부진 학생 학점이수 프로 그램을 통해 고교 과정을 다시 듣는다.
지난해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 이민온 ㅊ씨(47)는 한국에서 줄곧 전 교 1, 2등을 다투던 딸이 ESL을 1년간 하고도 그 다음해에 또다시 ESL을 들어야 할 지경이 되자 제때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ㅊ씨는 이전에 받은 성적을 인정하지 않는 다른 학교에 들어 가기 위해 두 번이나 밴쿠버 내의 다른 도시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자기 자식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는 학습지진아가 돼버렸다는 사실에 ㅊ씨는 당혹스럽기만 하다. ㅊ씨는 "하지만 어쩌겠어요. 학교 도 졸업하지 못하고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갔다가는 졸업장도 없으니 대입검정고시부터 다시 봐야 하는 상황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캐나다에서 유학생의 대학입시를 지도하는 경력 3년의 입시학원 강사 ㄱ씨(32)는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보낼 수 있는 것이 조기유학이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려면 부모의 의지나 기대보다는 학생 자신의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캐나다에 가면 입시지옥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에 가려는 학생은 방학 중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을 오가면서 하루 네댓 시간씩 다음 학기 과목을 예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기유학을 결행한 학생은 입시지옥뿐이 아니라 높은 언어 장벽 까지 넘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자녀를 유 학길에 오르게 하면서 학부모는 막연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보다는 절반 이상의 유학생이 대학 진학에 실패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인식하 고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적 교육열에 내몰리는 초중고생
외국 대학이 아닌 외국 초-중-고교로 가는, 소위 조기유학생은 몇 명 이나 될까. 그리고 이들이 선호하는 지역은 어디일까. 일단 교육인적 자원부가 전국 1만여 개 초-중-고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기유학 생은 2001년에만 7,944명이었다. 이는 2000년(4,397명)에 비해 2배 가 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집계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 로 일선 유학원들은 보고 있다. 조기유학은 중졸 이상의 학력자로 제 한하고 있어, 초-중등학생 93~94%는 불법유학으로 이뤄져 정확한 숫 자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조기유학은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정책'에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돼 적어도 20만여 명이 다녀왔거나 현재 유학 중일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유학 연령층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 유학 열풍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된다. 교 육부에 따르면 초등학생 조기유학은 1995년 235명에서 2001년에는 2,107명으로 6년 사이 무려 10배 가까이 늘었다. 중-고교를 포함한 전 체 유학생 가운데 초등학생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0.4%에서 26.5%로 뛰었다.
대학이 아닌, 초-중-고교로까지 유학을 가면서 외화유출도 심각한 수 준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조기유학생의 유학비용은 모 두 2억9천만달러로 추정했다. 어마어마한 돈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 는 것이다. 조기유학생의 국가별 인원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이 없다. 대체로 미국-캐나다-호주 등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하지만 중국-싱가포르-인도 등으로 떠나는 조기유학생 수가 최 근 크게 늘고 있다.
조기유학의 원인은 대체로 외국어 능력 배양, 과다한 사교육비, 한국 교육에 대한 불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 르면 조기유학의 이유로 외국어 능력 배양이 응답자의 18.2%, 한국 교육에 대한 불만이 17.8%, 과다한 사교육비가 17.0%로 각각 나타났 다. 한국무역협회 신승관 박사는 "우리 국민의 국내 교육 서비스에 대한 포기현상이 대학교에서 의무교육인 초-중등학교까지 확대되고 있다"면서 "이는 소위 한국적 교육열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 업붕괴' '학교붕괴' 등 우리 교육의 현 주소를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 했다.
실제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2년 세계 경쟁력 연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육 분야 효율성은 49개 중 31위, 교육체제 경쟁 력은 32위에 각각 그쳤다. 이는 경제 규모 13위, 국가 경쟁력 27위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2. 영어 장벽에 주저앉는 아이들
밴쿠버 지역은 국제학생을 위해 각 학교마다 ESL 과정을 의무적으로 두어 새로 유학온 학생이 캐나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대부분 이 과정에서는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없다. 기본적인 영어회화 능력을 습득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학부모는 이 과정에 들어간 자기 자녀가 곧 유창한 영어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졸업 때까지 이 과정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대학 진학도 못하 는 경우가 많다.
물론 캐나다에서 1~2년 정도 생활하다보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요 한 영어회화는 많이 늘기 때문에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 문하는 등 일상회화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이곳 학교에서 정규과 정을 듣기 위해 요구하는 영어 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다. 생활영어가 아닌 아카데믹 영어(공부하는 데 필요한 영어)를 습득하지 못하면 대 학 진학도 못한 채 백인 사회의 언저리만 맴돌다가 돌아가야 한다.
정규 수업을 듣지 못하면 대학 진학을 위한 시험인 프로빈셜(주에서 실시하는 수학능력시험)을 볼 자격도 얻지 못한다.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졸업장을 받지 못하고 학점을 따지 못한 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이곳저곳 커뮤니티 컬리지를 기웃거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실제로 이민자를 포함한 한국 학생 가운데 B+ 이상의 영어 성적을 받 는 학생은 몇몇 우수한 학생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유학생이 우수한 영어 성적을 거둔다는 것과 캐나다와 미국의 대학이 쉽게 학점을 주 기 때문에 백인보다 높은 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수학이나 과학도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시험 문 제를 파악하지 못해 낙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유학생 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졸업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학점을 따기 위해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는 사례까지 나 오고 있을 정도다. 쪽지에 시험볼 내용을 적어서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이 허다하고 시험 당일 학교를 빠지고 친구에게 시험지를 받은 후 다음날 그 시험지로 시험을 봐서 성적을 내는 일도 있다는 이야기가 학생 사이에 퍼져 있을 정도이다. 영어 실력에 문제가 있으니 수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고 과제물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어 결국 학교 생활마저 불량해지기 십상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강압적인 통제를 하지 않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불량해지는 학생도 눈에 띄게 증가하 고 있다.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 실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부모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영어회화가 곧 영어 실력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캐나다 학교는 학생이 영어회화(spoken English)에 얼마나 익숙한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중요 한 것은 수업을 이해하고 수업 내용을 영어로 발표하고 보고서를 작 성할 수 있는가(academic English)의 여부이다. 구어체 영어가 아니라 문어체 영어라는 얘기이다.
우리나라 중학교 1~2학년을 마치고 온 학생은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비로소 영어회화만 중시했던 그간의 영어공부가 얼마나 도움이 안 되 는 것이었는가 깨닫게 된다. 유학생활 2년째라는 ㄴ군(15)의 말이다.
"한국에서는 문법 공부를 하지 않았어요. 영어회화 학원에서 회화공부 를 많이 했는데 여기서는 문법 책부터 다시 하고 있어요. 학교 ESL 수업시간에도 문법을 제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걸요."
그렇기 때문에 밴쿠버에는 현재 유학온 학생의 영어를 지도하는 크고 작은 학원이 30여 개 성업 중이다. 학원이라고 해봐야 학생 네댓 명 들어갈 만한 강의실 두세 개가 있는 것이 고작이다. 학생은 방과 후 3 시간 이상 좁은 학원에서 영작문과 영어 읽기 수업을 받는다. 이밖에 개인지도 형태의 지도가 밴쿠버 전 지역에서 성업 중이다.
유학생 개인지도 경력 5년째라는 ㄱ씨(36)는 낮 시간에는 대학에 다니 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집으로 몰려드는 학생 10여 명을 맡아 영작문 과 영어 독해, 과학을 지도하고 있다. ㄱ씨의 수업 방식은 특이하게도 소위 구식 영어공부법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도 개인지도 선생 가운데 는 인기를 얻고 있어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 없을 정도이다. ㄱ씨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영어를 가르치면 한물 갔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다들 쉽게 공부하려고만 하니까요. 하지만 여기서는 20년 전에 한국에 서 공부하던 식으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떤 학생은 자기 아버 지가 읽던 영문독해 책이나 종합영어 책으로 공부하겠다는 경우도 있 습니다. 학교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작문이지 회화가 아니니까요."
ㄱ씨는 유학부터 떠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녀 를 유학으로 떠미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준비되지 않은 유학생활 을 하다가는 고작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학력이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ㄱ씨는 학생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려고 유학을 온 것은 아닐 텐데 실제로는 고등학교라도 졸업하면 다행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워털루 공대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은 ㄱ양(17)은 조기유학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평균적인 조기유학생 에 비해 다소 늦은 고등학교 1학년에 유학길에 오른 ㄱ양은 중학교 3 학년 때부터 유학을 떠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고 한다. 우선 캐 나다의 학제를 연구하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 캐나다 공립학교에서 사 용하는 교과서를 미리 구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영어는 학교 수업에 만족하지 않고 영문학을 전공한 어머니에게 작문과 읽기 등을 따로 배웠다. 그 덕분에 유학 후에도 한 학기 만에 ESL을 벗어나 정규수업 을 들을 수 있었고, 그래도 다소 부족한 영어 점수는 과학과 수학에서 만회하며 평점을 관리했다.
캐나다 학교는 단순히 유학만 떠나면 무언가 되겠지 하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생각이 통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 조기유학의 쓴 맛을 본 사람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유학 앞서 1년 준비과정은 필수
국내 전문가 대부분은 아직까지 조기유학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이 고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채 정립되기도 전에 타국에서 생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교육부에서 중학 생 미만의 해외 유학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의 박호남 유학지원팀장은 "조기유학을 계획하 는 학부모는 유학을 마친 뒤의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너무 어렸을 때 해외의 교육환경에 물들 경우 귀국 후 한국의 교 육제도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박 팀장은 또 "경험칙상으로도 한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뒤 학 위 취득 등을 위해 유학을 가는 경우보다 조기유학으로 건너간 학생 의 학업 성취도가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기유학에 매력을 느끼는 학부모가 기대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외 국에서 생활하니 영어 하나라도 잘 하겠지'라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이익훈 이익훈어학원 원장(한양 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은 "한국어를 숙지하기 전에 외국어를 익힌다 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정한다. 이 원장은 "교육 효과 면에서는 본다면 되도록 일찍 보내는 것이 좋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 그러나 영어는 분명 외국어이기 때문에 일단 한국어를 충분히 익힌 뒤 떠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사항을 고려할 때 조기유학이라고 해도 최소한 중학교 1학년 과 정 정도는 마친 뒤 떠나는 편이 좋다는 게 이 원장의 지론이다. 이 원 장은 이에 덧붙여 "영어를 위해 조기유학을 보내느니 차라리 방학을 이용해 한두 달 단기 어학연수를 보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 기 간에 영어를 많이 배우는 것은 어렵지만 영어에 대한 공포심 제거와 학습동기 유발의 측면에서는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것.
YBM 시사유학개발원 복현규 원장 역시 지나치게 빠른 조기유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복 원장은 "조기유학을 성공적으 로 마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 유학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며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두면 적절한 유 학 시기는 어느 정도 가치관이 정립될 시기인 중학생 이상"이라고 말 했다.
복 원장은 "국가별로 유학시스템과 경비, 수업시기 등이 다르기 때문 에 각 나라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최소 유학 1년 전부터 차 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어학에 대한 준비이다. 유학을 떠나면 언어에 대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미리 준비를 한다면 어느 정도 시간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복 원장은 " 수학과 과학 과목은 한국 학생이 오히려 우수한 능력을 보이지만 쉽 게 생각하는 역사 과목의 경우 복합적인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에 사 전에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 한국보다 더 무서운 사교육비
캐나다는 미국에 비해서 학비가 저렴한 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 적인 개념일 뿐이다. 우리나라 보통 가정이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경제적으로 윤택한 가정뿐 아 니라 보통 가정이라도 자기 자녀를 보다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도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유학생이 외국에서 지출한 총액은 45억8 천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무역연구소 최근 자료). 이는 자녀 를 유학 보낸 가정에서 한 명에 매달 3백만원 정도를 지출한 것과 같 은 액수이다.
캐나다에 조기유학을 하기 위해서는 매달 3백만원 이상의 경비가 들 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민자 자녀는 주 정부의 보조를 받기 때문에 사립이 아닌 공립학교에 보낼 경우 등록금 부담은 전혀 없다. 하지만 조기유학생은 1년 등록금만 1천만원 가량이 든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 부대 잡비이다. 하숙을 할 경우 매달 평균 80만원 에서 1백만원 정도가 들고, 미성년자에게는 보호자를 반드시 선임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숙집 주인에게 보호자 역할까지 의뢰할 경우 그 비용을 따로 부담해야 한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학생의 경우 보호자가 하는 일이란 것이 고작 해야 학교 행사에 학생이 참여해도 좋다는 보호자 허락 서명을 해주 는 것밖에는 없지만 보호자 비용을 50만원에서 80만원 정도 요구하기 도 한다. 그 밖에 밴쿠버의 높은 물가를 고려할 때 조기유학생에게 우 리나라에서 보내주는 용돈은 300달러, 우리 돈으로 25만원 정도이다. 그밖의 기타 비용을 합하면 학비와 함께 필요한 비용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백만원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마땅한 직업을 구하기 힘들더라 도 밴쿠버의 이민자는 한국에서 오는 조기 유학생만 있으면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이 없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하숙집(Home Stay)에서는 보통 점심 도시락을 싸준다. 집에서도 영어 를 써야 빨리 말이 는다는 이유로 한국인 가정이 아닌 이탈리아계 이 민자 가정이나 백인 가정에 자녀를 맡길 경우에는 점심 비용이 추가 로 더 들어간다. 한국인 가정에서 하숙을 하는 경우는 백인 가정에 비 해 15~20% 정도 하숙비를 더 비싸게 받지만 음식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지는 않아도 되는 데 비해, 다른 백인 가정에 묵을 경우 점심 도 시락은 입맛에 맞지 않는 샌드위치나 피자 한 조각을 싸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한국인 조기유학생은 대개 학교 식당에서 다른 음 식을 사 먹고, 하숙집에서 싸 온 샌드위치는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점심값이 더 추가되는데 학교 식당의 급식 비용은 한 끼에 2달 러 50센트 정도 하므로 한 달에 50~100달러 생활비를 더 지출해야 한 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사교육비 부분이다. 조기 유학생이 초기부터 쉽게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규수업은커녕 ESL수업마저도 좇아가기 버거워 허덕이는 것이 대부 분이다. 많은 학생이 부족한 영어를 학원이나 개인교습을 통해서 보충 하고 있다. 영어 한 과목만 교육받을 경우 학원에 매달 350~400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개인교습을 받으려면 매시간 30~50달러를 부담해야 한 다. 그러므로 보통 조기유학생 한 명이 영어를 따로 배우기 위해 매달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적게는 500~2,500달러에 달한다.
조기유학생이 사교육을 받기 위해 지불하는 금액은 생활환경에 따라 점차 높아지는 추세이다. 선생의 집중적인 관심과 수준에 맞춘 교육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학원보다는 개인지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활 수준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다는 북부 밴쿠버 지역과 서부 밴쿠버 지역, 그리고 밴쿠버 서부 등 이른바 부촌에서는 각 과목별로 개인 가정교사를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에 지출 되는 비용은 각 과목별로 600~1,200달러, 많게는 3,000~5,000달러까지 도 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 학부모가 지출하는 것보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조기유학생의 사교육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캐나다의 공교육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완비됐다고 하지만 언어가 자유롭지 않 은 한국 조기유학생으로서는 또 한 번 사교육의 힘을 빌 수밖에 없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희극인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자녀를 공부시키면서 밴쿠 버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소개된 후부터 캐나다 유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실제로 조기유학 비용은 아무리 아낀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한국 서민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넘어선다. 아무리 부유한 가정이라 하더라도 외 화를 낭비한다는 점에서는 가능한 한 쓸데없이 소비되는 비용을 줄이 기 위해 학부모가 직접 자녀의 유학생활 주변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 하다.
예를 들어 숙소를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선택해서 통학 거리를 줄여 좀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거나 하숙집과 대화를 통해 숙식비용과 보호비용을 서로 절충할 수도 있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개인교사를 구하는 문제에도 학부모가 직접 나서야 한다. 무작정 유학 원을 통해서 수속을 하고 개인교사를 구했다가는 소개비 명목으로 정 기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싼 물건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으로, 동대문시장으로 발품을 팔아야 하 듯, 자녀의 조기 유학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의 노력이 필요 하다.
▲대원외고 박혜진양의 조기유학 고백
조기유학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대다수 유학원 관계자의 말이 다. 그렇다고 해서 조기유학을 겁낼 필요는 없다. 끈기와 노력만 있으 면 못 넘을 산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영국에서 4년 동안 성공적으로 유학을 마치고 온 대원외고 1학년 박 혜진양(15-사진)은 "일단 가서 뭐든지 부딪쳐보라"고 당당하게 말했 다.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다. 박양이 유학을 가게 된 것은 1994년 대우건설에 근무하는 아버지가 박양의 조기유학을 위해 해외주재원을 자청하면서다. 박양은 영국 롱필드공립초등학교에 입학 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영국에서 첫 공식교육을 시작 한 셈이다. 야무진 박양은 영국의 친구와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각종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초등학교 3년을 마치고 같은 이름의 중 학교에 입학해 다니다가(영국은 초-중-고가 3-4-5제임) 1998년 귀국 한 후 경기 분당 초림초등학교 5학년으로 복귀한 뒤 내정중학교에 진 학했다. 상위 6% 정도의 실력인 박양은 특수목적고로 별도의 시험을 쳐서 입학하는 대원외고에 무난하게 합격했다. 박양은 현재 대원외고 유학반에 있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가려는 것이다. 미국 아 이비리그의 예일대-브라운대 경제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박양은 대 학을 졸업한 뒤에는 로스쿨에 진학해 국제적인 법률가가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다.
▲유학생활은.... "영국에 간 지 3개월 지나니까 웬만한 말은 알아들어요. 물론 대화에 완전히 끼지는 못하지만요. 처음 간 6개월은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후로는 친한 친구도 사귀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어요. 영어가 비록 잘 안됐지만 합창단이나 연극부 같 은 방과 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유학 중 기억에 남는 학습방법은?
"영국에서는 한 주제를 갖고 체험도 하고, 비디오도 보고, 책도 읽 고.... 그리고 프로젝트를 내줘 일종의 보고서를 써오게 돼 있어요. 그 러면 학생들은 동네 도서관에 가서 조사하고 자기가 그림도 그리고 요약도 한 후 제출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공부한 것이 스스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유학생활 중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제 사고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만 있던 사람을 보면 시야가 한 정돼 있을 수가 있거든요. 신문이나 TV에서 접하는 것이 대부분인 사 람은 편견을 갖기 쉬워요. 하지만 저는 직접 체험하고 왔으니까 무조 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돼요. 그리고 더 넓게 바라본다고나 할까 요. 편견 같은 걸 싫어해서 좀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한국에 돌아와서 고생했을 것 같은데...
"영국과 다른 주입식 교육이라서 수업이 상당히 지루하고 힘들었어요. 또 수학 진도가 달라 엄마와 함께 방과 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유학 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그만큼 우리나라에 와서 적응을 하는 것 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유학갔다 와서 적응 못해 다시 가는 아이도 많이 봤거든요. 또 유학을 갔다 와서 목표를 뚜렷이 세우는 것 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유학갈 후배에게 조언을 한다면?
"일단 가서 뭐든지 부딪혀보라고 하고 싶어요. 처음 유학가서 완벽하 게 영어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실수를 안 한다는 것도 불가능 하다고 봐요. 무조건 부딪치면서 하나하나 익혀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대학과정을 미국에서 하려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공부하는 것이 재미도 없고 효과도 없는 것 같아요. 대원 외고에서 유학반 프로그램에 든 이유 중 하나가 고등학교 생활을 뜻 있게 보내고 싶어서예요. 외국 대학 갈려면 과외활동을 많이 해야 하 잖아요. 이런 이유로 인턴십도 해보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려고 해요.
그리고 솔직히 이런 활동이 즐거워요."
4. 탈선과 폭력, 왕따는 없다?
지난해 9월 밴쿠버 1번 고속도로에서 한국인 학생이 모는 미니밴이 도로 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돼 함께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목숨을 잃 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를 낸 운전자 ㅎ씨(21)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조기유학을 왔고 현재는 캐나다 최고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에 다니는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이 사고 후에 한국인, 특히 나이 어린 조기유학생의 생활습관을 개선해 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린 나이에 조국을 떠나 외국 땅에서 공부하는 조기유학생은 흔히 세 번의 도전에 직면한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영어와의 전쟁이다. 영 어로 생소한 과목의 수업을 소화해 내고 대학입시까지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두번째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혼란이다. 이런 문제는 학교에서보다는 가정에서 많이 일어난다. 캐나다의 가족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 거나 폭력 부모로부터 미성년자를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은 자칫 한국 인 가정을 붕괴시킬 수도 있을 정도이다.
지난 2월 이민생활 2년째인 ㅂ씨(45)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경찰에 의 해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로 연행됐다. 학교 공부는커녕 과제물도 제 대로 하지 않는 아들(중학교 2학년)을 나무란 것이 화근이었다. 성미 급한 ㅂ씨는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회초리로 때렸고 아들은 학교에 서 배운 대로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했다. 변호사와 한인 단체 회원의 노력으로 겨우 풀려난 ㅂ씨는 "이제 아들이라고 생각하기도 싫을 정 도"라며 탄식했다. 이 사건 이후 더 이상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게 된 ㅂ군은 친구에게 부모님이 꾸중을 하거나 회초리를 들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가 됐다. 이제 ㅂ군의 생활을 제어할 사 람이 가정에서는 더 이상 없어졌다.
세번째는 지나칠 정도의 자유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학교에서 는 학생에게 수업태도가 나쁘지만 않으면 과제물을 제때 제출하지 않 아도 심하게 꾸중하지 않는다. 가벼운 주의를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일하게 생활하다가는 학기가 끝날 때쯤 돼서야 성적 표와 학습태도에 대한 평가점수를 최하점으로 받아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이쯤 되면 아무리 후회해도 때는 늦은 것이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조기유학생도 늘어나기는 했지만 부모와 떨어 져 혼자 생활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자기 절제가 부족한 나이에 방탕해지기 쉽다는 점이다. 조기유학을 보내는 부모는 대개 경제적으로 윤택하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서도 최대한 편 의를 제공하고 싶어하고 충분한 용돈으로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캐나다에서는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운전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학생도 이따금 눈에 띈 다. 주말이면 다운타운의 나이트클럽에서 한국에서 온 어린 학생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입장할 때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기도 하지만 5달러만 주면 가짜 신분증을 만들 수 있다. 서울 강남처럼 술 집이 많은 것은 아니라도 소주방이나 만화방 등을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 주변에서 언제든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의 탈선 환경은 어 디든 존재하는 셈이다.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놓고 이제쯤은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을 것이라 고 생각하는 학부모는 그 시간에 자녀가 학교에서는 고등학교조차 졸 업하기 힘든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히고 저녁이면 나이트클럽과 만화 방, 24시간 영업하는 PC방을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 께 해야 한다.
지난해 5월 밴쿠버의 유명 관광지인 스탠리공원에서 조깅을 하던 한 국인 어학 연수생 ㅂ양이 백인 남성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ㅂ양은 이 사건 이후 뇌에 충격을 받아 현재 겨우 의식만 회복한 상태이다. 밴쿠버 교민 사회와 유학생들은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밴쿠버 서리(Surrey)에서 역시 한국 여자 유학생이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일어난 데 이어 한 주 후에는 한국의 가 족에게 전화를 하려고 나온 한국 여자 유학생이 백인 남성의 습격을 받고 차에 끌려가 성폭행당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경찰은 이들 사건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교포들은 동 양계 여성이 완력이 강하지 않고 성적 수치심과 언어 장벽 때문에 신 고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벌인 일이라며 흥분했다. 유학생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밴쿠버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유네스코(UNESCO)에 의 해 몇 번이나 선정됐지만 밤거리는 그리 안전하지 못하다. 특히 도심 지는 저녁 8시 무렵부터 아침 8시 무렵까지는 출입을 삼가야 할 만큼 위험하다. 우범지대라고 이름이 난 헤이스팅스 거리에서는 마리화나 는 물론 필로폰도 비교적 싼 값에 구할 수 있고 거리마다 매춘부가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호기심 많은 조기유학생이 이곳에서 쉽게 마리화나에 손을 대기 시작하기도 한다.
학교도 안전하지 않다. 한국에만 학원 폭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캐나다에서는 폭력 학생이 있더라도 학교장의 경력에 먹칠을 하지 않 기 위해서 사건 자체를 숨기거나, 학생을 문제 학생을 제적하지 않는 미온적인 대응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학교 폭력을 사회 문제로 인 식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의 안전에 위험이 되는 학생은 지체하지 않 고 제적시키거나 전학보낸다. 심할 경우 보호감찰을 받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인 학생 사이의 선-후배 문화는 이런 것으로도 근 절되지 않는다.
조기유학 온 지 1년이 된 ㅈ군(14)은 지난 7월 선배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고 폭행당한 뒤 학교에 조사를 요구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학 생은 어린 학생이 선배에게 존댓말을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라고 말해 단순 경고만 받았다. 이 사건으로 ㅈ군은 학 생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전학을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이 많 은 학교의 경우 이런 식의 선-후배 문화가 만연해 있다. 문제 학생은 교사의 경고를 받을 때마다 "이런 것은 문화적 전통"이라는 말로 빠 져나오곤 한다.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캐나다 사회에서는 이민자의 '문화적 전통'을 존중하고 있어 이것을 교묘히 핑곗거리로 이용하는 셈이다. 이런 핑계로 문제 학생은 퇴학을 면할 수 있겠지만 한국인에 대한 학 교측의 인상이 좋을 리 없다. 이처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문제 자체를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결국 자신 을 지키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5. 캐나다에도 학벌차별은 심하다 북미의 교육제도에 의하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더라도 대학에 들어가 거나 직업을 구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가는 문제가 된다. 흔히 미국이나 캐나다에는 학벌의 제한이 없고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 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캐나다가 오히려 고교 평준 화가 이미 이뤄졌고 대학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학간 격차를 줄 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한국보다 훨씬 더 명문 대학을 따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아무도 고교만 졸업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지만 캐나다에서 어 느 대학을 졸업했느냐고 묻는 것은 실례이다. 유망한 기업체에 취직 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차별을 하지 못하도 록 하기 위해서 이력서에 나이와 성별을 기입하지 않고 사진 첨부를 요구하지 못하게 하지만 유명 투자회사에서는 명망 있는 대학원에서 받은 경영학 석사학위가 없는 경우 입사지원서를 내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학벌 차별이 없다는 말은 사실과 많이 다른 셈이다.
그러므로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기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많은 유학 생의 안일한 자세는 조기유학이 겨우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졸업하는 것으로 끝날 위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학 진학이 어렵다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대학에 진학하는 유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성적이 충분하지 않아 개방 대학이나 커뮤니티 컬리지 등에서 2년간 공부한 후에 성적을 올려서 정규대학으로 전학을 하고 있다. 여기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기가 어 려울 경우에는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거나 이름뿐인 대학으로 진학 한다.
우리나라로 돌아가서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더라도 특례입학 모집 전 형에 따른 시험을 치러야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수학능력시험을 봐 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제도에서 이미 멀리 떨어져나온 유학생 이 한국에서 치러지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 가능한 게 현실이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학생은 이 름뿐인 사립대학에 입학하기도 한다.
미국과는 달리 공교육이 잘 정비된 캐나다는 사립학교보다는 공립학 교가 정규학교로서 수준 높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반 해 사립학교는 설립이 쉽기 때문에 건평 150평 정도의 창고 건물 하 나를 빌려 컬리지라는 이름으로 개교하고 신입생을 끌어들인다. 한국 에서 이런 컬리지를 '단과대학'이나 '전문대학'으로 번역하는 것은 오 류이다. 캐나다에서는 소규모 취업학원, 심지어 대학 입시학원도 컬리 지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교육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오판하 기 십상이다.
이들 사립 컬리지는 같은 직업학교라고 해도 공립학교에 비해 형편없 이 떨어지는 인지도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밴쿠버 최 고의 기술학교로 일컬어지는 BCIT 등 몇몇 공립계 직업학교를 제외 하면 사립학교들의 취업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 가운데는 한국 사람 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도 몇 곳 있는데 대개 한국의 유학원과 연계해 서 유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토플 성적을 입학 조건으로 요구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한국어로만 수업이 진행되므로 이런 곳에서 수업을 들 을 경우 토플 성적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 다.
이런 학교는 흔히 PPSEC 인가로 주정부 인정을 받았다는 광고를 통 해 유학생을 안심시키거나 자기네 학교에 유학하면 영주권을 얻거나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광고를 하기도 한다. 실패한 조 기유학생의 마지막 희망은 영주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능 력이 없는 학생이 사립대학을, 그것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립대학을 나와서 영주권을 얻는 것이 쉬울 리도 없지만 무엇보다 병역의 의무를 피해보려는 왜곡된 희망을 가지는 것은 더욱 더 문제 일 수밖에 없다.
유학은 분명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가치관 이 명확하지 않거나, 생활신조가 분명하지 않아 자신을 통제할 수 없 는 어린 학생이라면 쉽게 결행할 만한 것은 분명 아니다. 단순히 영 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피해야 하는 것이 조기유학이다. 언어는 단지 영어 단어 몇 개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저명한 음악 교육가 스즈키는 바이올린을 배우려는 학생에게 활을 잡게 하기 전에 편안히 바이올린 음악을 많이 듣도록 지도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생기고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외국어 단어를 외우게 하는 것보다 선 행돼야 할 과제이다. 길을 묻거나 물건을 사는 등의 간단한 외국어 표현은 필요할 때 1주일만 따로 외우더라도 외국 여행에서 큰 불편을 겪지 않는다.
유학온 지 1년 만에 정규수업을 듣고 그 이듬해에 월반하는 등 뛰어 난 학업 성취도를 보여준 ㅇ양(15)은 다른 백인 학생보다도 훨씬 빠 른 학업성적으로 올해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ㅇ양의 경우 에는 유학 오기 전부터 한 차례의 어학연수를 통해서 현지 분위기를 익히고, 영문법 교과서를 완전히 암기할 정도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은 한국에서 1년 전부터 영어공부에만 매달린 애 들이에요. 무작정 와서 공부한다고 하는 애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힘들어요."
ㅇ양의 말에서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밴쿠버로의 조기유학생도 대부분은 외화 낭비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