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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마나식 그리고 알라야식을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오식(五識)이다. 안식(眼識)은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이고, 이식(耳識)은 귀로 들어 아는 것, 비식(鼻識)은 코로 냄새 맡아서 아는 것, 설식(舌識)은 혓바닥으로 맛을 봐서 아는 것, 신식(身識)은 온몸으로 느껴서 아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이 첫 번째 안식(眼識)이다. 눈으로 강력한 게 들어오면, 그것이 장애물이 되어 끊임없이 괴롭힌다. 수행을 할 때 집중을 못 하고 자꾸 딴 생각으로 빠져버린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온몸으로 느끼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사물이 우리 의식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정상적으로 순화되어 내 생명을 기쁘게 하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고, 나를 깨어있게 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게 전부 마장(魔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오식(五識) 다음에 의식(意識)이 있고, 일곱 번째 마나식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연결해주는 중간 고리가 마나식이다. 그리고 제8식이 인간의식의 바탕, 생명 의식의 창고 역할을 하는 알라야식이다. 그걸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는데, 장藏이란 저장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우주에서 태어나 살아온 삶의 전과정이 의식의 바다인 장식(藏識), 무의식에 전부 그대로 기록돼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수행을 하다보면 어릴 때 생각이 그대로 다 난다. 비록 어려서 말은 못해도,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문득 자연과 하나가 됐었다면, 그 때의 장면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사진이 찍히듯 순수의식에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어릴 때 일이 모두 떠오른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첫째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몸의 기운이 수승화강(水昇火降)의 과정을 거쳐 정화된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의 기능은 삼초(三焦)로 나누어진다.
폐, 심장, 머리가 상초(上焦)이고, 비위 중심의 소화기관이 중초(中焦), 방광, 신장 등 배설, 생식하는 기관이 하초(下焦)다. 즉 상초上焦에는 신神이 작용하고, 하초下焦에는 신神이 생성되는 힘의 근원, 내 몸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근원인 정精이 자리잡고 있다. 그게 내 몸 속의 천지다.
정精은 곧 땅이요, 신神은 곧 하늘이다. 정신精神! 인간은 몸 속에 하늘과 땅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 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둘째,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마음은 체(體)와 용(用)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체體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등,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고 마음이 작용하기 전 단계,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성性, 본성이라고 한다. “야~, 그래도 걔는 바탕은 착해. 본래 마음은 그런 애가 아니야. 본성은 착해.” 이런 말에서처럼,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불덩어리,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거기 보면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선후천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러한 본성에 머무르려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모든 죄업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마음 닦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후천적인 성품 그걸 기질이라고 하든, 성격이라고 하든, 환경적인 요인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형성된 지금의 ‘나’라는 독립된 개체가 갖고 있는 것 가운데 문제되는 것을 정화해서, 천지율려의 조화 속에 일체를 이루는 본래의 자기 생명의 모습, 즉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그 다음, 하나의 개체로서 구체적인 의식활동을 하는 것,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걸 정(情, emotion)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동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불가의 유식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감정활동에는 오식五識과 의식, 그 다음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제7식 마나식, 그리고 내 생명 의식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은 바탕인 장식藏識, 알라야식이 있다.
나무로 얘기하면, 잔가지들이 오식(안이비설신)이고, 잔가지들 아래로 뻗은 줄기가 의식, 의식의 줄기와 뿌리를 연결하는 가운데 큰 줄기가 마나식, 그 다음 뿌리가 알라야식이다. 뿌리에서 모든 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말이나 행동, 습관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해 온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닦으려면 자기의 과거 인생사, 더 나아가 전생부터의 어둠까지 모두 씻어내고, 잘못한 것, 죄 지은 것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기초 작업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수행을 통해 내 몸 자체를 정화해서 의식의 경계를 넓혀야 하는 것이다.
수행하려고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식(眼識)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몇 미터 이상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도 일정한 거리 이상이 되면 맡지 못한다. 이것이 보통 중생들의 몸이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내 몸의 음양 기운이 개벽되어 율려도수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혼탁한 음양이 순수음양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감아도 다른차원의 경계가 환히 보인다.
또 깊은 밤 주문(呪文,mantra)을 읽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뚝 소리가 난다. 귓밥이 스스로 파헤쳐져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또 아주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춤추면서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내 의식의 경계가 천지의 대생명과 하나가 되어, 내 생명이 온 천지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하게 되는 경계가 있다. 정신이 확 깨져서 수행을 잘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없어진다. 내 몸뚱아리가 온 우주 생명 자체라는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첫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수도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水氣가 순환循環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가 올라오면서 기혈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그런데 무형인 정신은‘망형망재(忘形忘在)’가 된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광명(光明)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간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간혹 수행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喎斜 같은 병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조상에서 남에게 원한을 맺게 해서 보복하려는 그런 크고 작은 척신들이 있다.
하나 예를 들어 수 년 전,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도 시키고 했는데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한 5일쯤 돼서 초통이 됐는데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닫아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이유야 어떻든지 그의 큰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니 철창엘 간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박선경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
도통의 범주를 또 다른 방식으로 유형화하는 방법이 있다. 도통의 뿌리와 그로부터 뻗은 도맥을 기준으로 하여, 크게 정력통精力通과 감화통感化通으로 나누는 것이다. 정력통은 문자 그대로 직접적인 수행을 통해, 내 온 정력을 쏟아 얻는 깨달음을 말한다. 정력통은 한 마디로, 자기 스스로의 정성과 힘으로 성취한 도통이다. 그 대표적인 게 불가의 선禪 수행으로, 앉아서 죽기살기로 수행에 용맹정진하여 도를 통하는 것, 그게 다 정력통이다. 물론 유가의 정성공부나 선가의 일심수행도 마찬가지다. 감화통이란 스승이 가지고 있는 도력道力과 천지정기에 힘입어 도통을 이루는 걸 말한다. 선천에는 어떤 도통이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 수행의 핵심으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도 궁극으로 내 마음을 밝혀서 성(性)을 본다는 것이다. 명(命)은 내 몸에 들어와 있는 삼신의 생명을 말한다. 명命은 목숨이요, 생명이요, 천명天命이며, 궁극으로는 조물주의 생명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인간의 육체는 얼마 살다 땅속으로 들어가 썩어 버리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삼신의 성령의 생명은 영원하다. 그 불멸의 생명력이 내 몸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불멸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게 수행이다.
유교도 성(性)과 명(命)을 닦는 것이 목적이다.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중용(中庸)』) 조화신(三神)이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삼신의 본래 마음. 성(性)이다. 내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요, 천지의 마음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받은 위대한 신성(神聖)!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道)이요,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길이다.
하늘의 조화신(造化神)이 내려와서 바로 나의 본래 마음, 인간의 본성이 됐다. 이 성性이라는 것은 심心방 변 옆에 날 생生자를 썼는데. 우리 마음이 생하는, 태동하는 그 바탕, 우리 마음의 본체, 심체, 우리 마음의 본원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나라고 하는 이 색신(色身), 몸은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 법신(法身)이 된다. 그게 바로 성(性)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법성法性,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지와 그 생명성, 신성이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체계적인 해석을 한 인물이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행촌 이암(李嵒,1297∼1364)선생이다. 그는 ‘신(神)의 세 가지 본성이 바로 조화신,교화신,치화신, 조교치(造敎治) 삼신이다.’라고 했다. 즉 신神은 창조적 손길로 만물을 끊임없이 지어내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낳아놓고 가르치는 교화신(敎化神),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치화신(治化神)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다가 늙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이 작은 몸뚱아리, 색신(色身)이 아니고, 이 우주 자체인 우리들의 본래 몸뚱아리 법신(法身)은 조화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 본성(性)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마음의 본성자리는 바로 조물주 신성 그 자체다. 이건 엄청난 사실이다.
조화지신(造化之神)은 강위아성(降爲我性)하고, 교화지신(敎化之神)은 어머니의 이 지구의 신성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명(命)이 됐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 불멸의 생명이다. 그래서 이 선사상(仙思想)이라는 것은 바로 성명정(性命精)에서 이 지구의 어머니의 신성을 근본으로 해서 선도(仙道)가 나왔다.
그다음에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治化神)은 바로 우리 몸에 들어와서 정(精)이 됐다. 이것을 성명정性命精. 하늘의 조화신, 땅의 교화신, 사람의 치화신. 사람은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있는 3가지의 참된 것. 이것을 하나님의 마음(性),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命),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는 생명의 동력원 정기(精)를 서양 사람들은 essence로 번역하는데 우리가 의학으로 보면 신장(腎腸)의 정수(精水)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신장(腎腸)의 정수를 축적해서 그걸 굳히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수도공부의 핵심인데, 지금은 남녀가 정(精)을 성을 즐기는데 쓰고 그러니까. 대부분 소멸당하는 것이다.
천지일월이 나를 만들어주고, 나에게 생명을 내주는 그 모든 열매가 정(精)이다. 정기를 잘 간직해야 여기서 힘도 나오고, 생명력도, 지혜도 나온다. 모든 것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정(精)이다. 그런데 지금의 음란문화는 인간의 정(精)을 파괴하고 분열시킨다. 수행의 근본은 정(精)을 굳히고 맑히는 가의 문제로 떨어진다. 정(精)을 순화해야만 공부가 된다. 수행을 통해서 본래의 성(性)과 명(命)이 하나였던 그 경계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 생명력이 우주와 더불어 하나인 영원의 경계, 그 자리는 무한의 광명 그 자체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인 상태다. 그럼 성(性)과 명(命)은 무엇이 다른가? 밝은 모습 자체는 성(性)이고, 그 모습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 그것을 하나의 생명력으로 표현할 때 명(命)이라고 한다. 수행이 아니면 내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명(生命)의 원래 말이 성(性)과 명(命)이다.
수행은 내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이다. 유형의 정(精)과 무형의 마음(心)을 닦아 생명의 본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 닦는 공부로 떨어진다. 마음을 바르게 가짐으로써 정(精)이 변화된다. 정(精)이 굳어지고 맑아지고 승화된다. 그러면 그만큼 높은 성(性)과 명(命)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행의 궁극은 생명의 본성인 성(性)과 명(命)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내 생명의 밝은 모습(性),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생명력(命)을 회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나의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 이것이 우리들 삶의 목적이다. 인간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래 모습, 성(性)과 명(命)은 하늘땅과 같다. 어머니 뱃속에서 천지와 더불어 호흡할 때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 인간적인 호흡을 시작하게 되고, 본래 우주와 하나인 성(性)과 명(命)이 분리된다. 눈을 뜨고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인 어둠에 휩싸여 그 이면의 세계를 전혀 못 보게 된다.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만큼 밝은 내 생명의 본래 모습, 내 마음의 근원인 성(性)이 후천적인 성(性)으로 바뀌면서 어둠의 세계로 떨어진다.
또한 하늘같은 무한의 생명력인 내 명(命)이 불과 몇 십 년 살다가 병들어 죽는 유한의 명(命) 자리로 떨어진다. 온갖 인생의 시련과 역경, 고난의 파도를 만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다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을 함으로써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회복한다. 천지와 같은 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내 생명의 기반인 성명정(性命精) 3가지 요소를 닦는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인 작용 요소로 보면 심기신(心氣身)이다. 마음(心)과 기(氣)와 몸(身)을 닦는 것이다. 내 몸(身)을 닦는 것은 구체적으로 정(精)을 닦는 것이고, 마음(心)을 닦는다는 것은 원래의 생명력(性)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기(氣)를 닦는다는 것은 하늘땅의 무한의 생명력(命)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본성이 대광명이다. 수행공부가 어느 경계로 들어가면 눈을 감고 있는데도 해가 뜬 것처럼 밝다. 생명의 본성, 인간 마음의 본성은 광명이다. 삼신(三神)이 바로 대우주 광명의 실체다. 동양에서는 이 삼신(三神)이 스스로 현현(顯顯)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왔다고 한다.『천부경』에서는 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고 한다.
천지인(天地人) 모두가 하나(一)의 자리에서 나왔으며, 도의 본원이 같다는 말이다. 이렇듯 삼신三神이 자기 현현하여 하늘과 땅과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천지인 모두가 조물주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와 광명을 가지고 있다. 삼신의 생명, 지혜, 숨결은 우리 몸속에도 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 우주만유 속에 삼신의 숨결이 살아 있고, 온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이 삼신의 생명은 우리 몸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이걸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창조적 신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또 진리를 제대로 깨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기만 하고 살아도 인간의 품격이 전혀 달라진다. 그러면 삼신(三神)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인간 몸속에 깃든 삼신(三神)의 3가지 손길은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조화신(造化神)은 내 생명의 근원, 내 마음의 뿌리 자리, 성(性) 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만물을 양육하는 교화신(敎化神)은 나의 명 命 , 순수한 우리말로 목숨이 된다. 목숨을 영어로 옮길 때, 수명(lifespan)으로 흔히 이야기하지만, 여기서의 명命 은 수명, 생명, 그리고 천명(天命) 사상까지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만물의 생명 질서를 바로잡는 치화신(治化神)은 내 몸의 정(精)이 된다. 내 몸속에서 삼신의 마음(性)과 생명(命)이 발동되는 것은 실제로는 내 몸의 정(精) 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속의 참 마음(性)을 닦고 내 속의 참 생명(命)을 키우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精) 을 잘 확보하는 것에 달렸다.
인간 몸속에 깃든 삼신(三神)의 3가지 손길은 만물을 낳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깨우치고 기르는 교화신(敎化神), 그리고 만물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치화신(治化神)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늘의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삼신(三神)이 인간의 몸에 내려와 性,命,精 삼진(三眞)이 된다. 환단고기는 하늘에는 삼신(三神) 이 있고, 땅에는 삼한(三韓)이 있으며, 인간 몸속에는 삼진(三眞)이 있다고 말한다.
삼신(三神)이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긴 3가지 참된 것‘이 곧 성명정(性命精) 삼진( 三眞) 이다.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이라는 삼신이 들어와 성(性)-명(命)-정(精) 삼진(三眞)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화신이 내 몸에 들어와 성(性)이 되고, 교화신이 들어와 명(命)이 되고, 치화신이 들어와 정(精)이 된다. 이는 내 몸 속에 삼신 하나님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내 몸속에 우주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것이 삼신문화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전해주는 깨달음의 한소식이다. 性,命,精 삼진三眞은 인간이 진리를 깨달음에 있어서 어떻게 그 길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말해준다. 그래서 진리를 성취한 인간이 되고자 할 때, 삼진三眞은 우리에게 삼관三關으로 작용한다.
관關이란 무엇인가? 여행에서 뜻하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그렇듯 성명정性命精을 지키는 것이 내 안에 내주한 삼신의 생명과 신성을 온전히 지켜 진리를 성취한 인간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성(性)이란 무엇인가? 성性은 마음의 본래 실상, 내 마음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은 변화막측하다. 수시로 바뀌고 변덕스러워서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마음의 본래 모습은 가을 하늘의 순수한 모습처럼 불변지체(不變之體)다.
성(性)은 심(心)방 변 옆에 낳을 생(生) 자를 쓴다. 문자 그대로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 하늘땅과 인간과 만물을 낳아 주는 조물주의 마음, 대자연의 마음이 바로 성(性)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체, 마음의 본래 모습, 본마음이요, 다른 말로 도심(道心), 천심(天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인간의 총체적인 의식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불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마음은 본래의 마음(本心), 진리의 마음, 도심道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인간 삶의 3대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이 들어 있다. 진선미의 발원처가 다름 아닌 삼신(三神)의 3가지 덕성이라는 것이다. 삼신三神이 낳은 천지인의 덕성이 각각 진선미(眞善美)이기 때문에, 진선미는 삼신(三神)에서 발원한 영원불변의 가치이다.
上界主神은 其號曰天一이시니 主造化하사 有絶對至高之權能하시며 無形而形하사 使萬物로 各通其性하시니 是爲淸眞大之體也오.
하늘은 ‘청정과 참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淸眞大之體)이다. 하늘은 언제나 맑고 참되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본성은 참(眞)이다. 그래서 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거짓된 세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지 대자연이 얼마나 넓고 신비로우며 무한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지 느낄 수 있다면 참의 세계, 진리의 세계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
下界主神은 其號曰地一이시니 主敎化하사 有至善惟一之法力하시며 無爲而作하사 使萬物로 各知其命하시니 是爲善聖大之體也오.
땅은 ‘선함과 거룩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善聖大之體)이다. 땅은 선하고 성스럽다. 때문에 박테리아에서부터 바다 속의 어족들, 공중을 나는 새들, 들판을 뛰노는 짐승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가 이 지구상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땅의 덕성, 선善은 마음씨가 착하다는 윤리적 의미의 선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수용해서 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 대지의 덕성을 일컫는 것이다. 뱀도 있고, 송어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물방개도 있는 큰 연못, 택국澤國을 생각하면 선善의 덕성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中界主神은 其號曰太一이시니 主治化하사 有最高無上之德量하시며 無言而化하사 使萬物로 各保其精하시니 是爲美能大之體也시니라. 인간은 ‘아름다움과 지혜로 지극히 큰 본체(美能大之體)이다.
인간은 아름다움(美)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먼저 천지의 덕성인 참眞과 선善을 체득하고 생활화 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천지의 꿈을 이루는 태일太一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천지의 광명과 신성, 지혜를 체득하여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역사의 주인공’인 태일太一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천지를 알아야 하고 천지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인간을 아름다움의 창조자요, 지혜의 주인으로 일컫는 미능대지체(美能大之體) 이 한마디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극치의 표현이자 진리에 대한 최종 정의라 할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항구불변의 가치인 진선미(眞善美)도 다름 아닌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천지와 하나가 될 때, 우리 몸에서 진선미(眞善美)가 발현될 수 있다. 인간 삶의 제1의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의 소자출所自出까지 밝혀주는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진정으로 한민족과 인류의 태고 역사를 기록한 역사경전일 뿐만 아니라 동서 종교와 철학에서 탐구해 온 여러 진리 주제에 대한 명쾌한 깨달음을 열어주는 철학 경전이요, 문화경전인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인간이 하늘과 땅의 참됨과 선함을 체득하여 마침내 아름다움을 실현한다’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진선미眞善美 사상이다.
11세 ‘도해 단군(BC1891~BC1835)’의 염표문念標文은 당시의 국민교육 헌장이었다. 염표念標, 항상 마음으로 헤아리고 그 가르침을 언제 어디서나 내서 쓸 수 있고 실천해야 되는 하늘의 글이란 말이다.
<하늘,땅,사람의 창조 정신과 목적>
其念標之文에 曰,
天은 以玄默爲大하니 其道也普圓이오 其事也眞一이니라
地는 以蓄藏爲大하니 其道也效圓이오 其事也勤一이니라
人은 以知能爲大하니 其道也擇圓이오 其事也協一이니라
故로 一神降衷하사 性通光明하니 在世理化하야 弘益人間하라“ 하고 仍刻之于石하니라.
천天은 이현묵위대以玄默爲大하니...”. 천天은, 하늘은 말할 수 없는 고요함으로 장대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수행을 통해 고요히 침묵을 해야 자연의 도와 합일이 되는 것이다. 동정動靜 법칙이니까, 정靜이라고 해서 죽어있는 고요함이 아니고 온 우주가 하나 되어 가지고 살아있다는 말이다.
“천天은 이현묵위대以玄默爲大하니 기도야보원其道也普圓이라” 하늘의 도라는 것은 보원(普圓)이다. 넓고 원만하다는 것이다. 하늘은 모든 만물을 포용하고 다 담고 있다. “기도야보원其道也普圓이요 기사야진일其事也眞一이니라.” 하늘이 하는 일이란 “其事也眞一기사야진일”, 참됨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참 되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늘의 정신과 하나가 되지를 않는다. 수행을 해도 광명이 열리지 않는다. 개안開眼이 안 되는 것이다.
거짓행위를 하고, 마음이 분열돼 있으면, 앉아 있어야 다리만 아프지 수행이 안 된다는 말이다. “기도야진일其事也眞一이다.” 참 진眞자 한 일一자라는 게 해석이 무궁무궁한 것이다. 거기에 태일太一사상도 있는 것이고, 바로 우주의 본성자리 속에 들어가는 비밀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天은 以玄默爲大하니 其道也普圓이오 其事也眞一이니라
하늘(天)은 아득하고 고요함(玄默)으로 광대하니, 하늘의 도(天道)는 두루 미치어 원만(원융무애)하며, 그 하는 일은 참됨으로 만물을 하나 되게 함(眞一)이니라.
地는 以蓄藏爲大하니 其道也效圓이오 其事也勤一이니라.
땅(地)은 하늘의 기운을 모아서(蓄藏) 성대하니, 땅의 도(地道)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쉼 없이 길러 만물을 하나 되게 함(勤一)이니라.
人은 以知能爲大하니 其道也擇圓이오 其事也協一이니라.
사람(人)은 지혜와 능력이 있어(知能) 위대하니, 사람의 도(人道)는 천지의 도를 선택하여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서로 협력하여 태일太一의 세계(協一)를 만드는 데 있느니라.
故로 一神降衷하사 性通光明하니 在世理化하야 弘益人間하라“
그러므로 삼신(三神)께서 참마음을 내려주셔서(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삼신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수행을 통해 삼신의 천지광명을 회복하여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하라.
사실 모든 과학자들이 ‘이 우주의 꿈이 무엇인가? 우주의 뜻과 목적이 뭔가?’ 이것을 알고 싶어한다.『신과 천문학』을 쓴 과학자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한평생 망원경을 가지고 우주를 더듬어 보니, 깊은 밤에 이런 의문이 들더란다. ‘야, 우주는 왜 이렇게 광활하냐? 이 우주는 왜 수많은 별들을 자꾸 지어내느냐?’ 하고 말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우주의 목적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신학자나, 천문학자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왜 그런가? 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살아 있는 대도의 답을 전해주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밖에 없다.
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일심(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민족 고유의 수행법인 태을주와 시천주주 수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난다. 잡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잡념을 버리기는커녕 엄마 젖 먹을 때 생각까지 다 나는 것이다.
선정화 빛꽃수행 : 몸의 5장 6부 치유 : 과거 동학군과 동학(東學)인들 수 십만이 했던 시천주주(侍天主呪) 수행
https://www.youtube.com/watch?v=PwoTf8v8u7w&t=19s
평상시에는 다 잊어버렸던 게 정신이 아주 말쑥해져서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이다. 열 배 스무 배 더 난다. 그러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없어진다. 그게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물 한 동이 떠다가 하루고 이틀이고 놔두면 물 찌꺼기는 가라앉고 아주 맑은 물만 남는 거와 같다. 그것과 같이, 수도할 때는 세속적인 혼탁한 생각이 다 가라앉아야 한다.
화식火食, 불로 익힌 밥을 먹고 세상 사물을 접하면서 여러 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신이 혼탁해지는데, 물 찌꺼기 가라앉듯이 잡념이 없어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수도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망형망재’가 된다. 나의 형상도 잊어버리고 나의 존재도 잊어버린다.
망형망재가 되면 ‘물아物我가 구망俱忘’이다. 사물도, 나라는 것도 함께 다 잊어버린다. 아무 것도 없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훤하게 다 보인다.
광명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1년 중 가장 밝을 때가 가을인데, 말쑥한 가을하늘처럼 환하다. 다시 얘기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수도를 하다 보면, 기혈 순환하는 데 따라서 신체의 온도가 40도 이상이 되기도 한다. 그 때 손으로 살을 대면 껍데기가 벗겨져 버린다. “그러면 생리학상으로 큰일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렇게 해서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고, 그런 경계를 넘어서면 수행공부가 금방 된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공부하다가 잘못되는 사람이 숱하게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올바른 공부를 하려면,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사수師首가 있어야 한다. 수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첫째 심법이 발라야 된다. 간혹 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喎斜 같은 병도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수도라는 걸 잘못하면 귀신한테 홀려서.”살살 꾀어내면 그냥 넘어가 사도邪道, 곁길로 빠지는 사람도 그렇게 많다. 한 백 명 공부하면 90% 이상은 곁길로 빠져 버린다. 그게 왜 그러느냐? 세간에 사람 뚜겁을 쓰고 나온 사람 쳐놓고 원억을 맺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원한 맺힌 신명들이 원한을 풀지못해서, 무슨 코만 있으면 달려붙어 삐꾸럭길로 끌고 가는 것이다.
하나 예를 들어 과거에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를 하는데 한 닷새쯤 되어서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지쳐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그게 문 닫고 여는 것이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이유야 어떻든지 그의 큰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니 철창엘 갔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박선경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그런 크고 작은 척신들이 달려붙어서 보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서, 인간세상에서는 다시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미인이, 옥 같은 것으로 만든 좋은 술상을 차려놓고, 빵긋빵긋 웃으면서 한 잔 대접한다고 했다고, 그런 좋은 걸 봤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게 보이냐 하면, 그가 본래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 자세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그가 신명에게 코를 내준 것이다. 사람이나 속지 신명은 속지않는다.
신명神明은 인간의 정신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신명이 보니까 고놈 정신이 꼭 그렇게 되어져 있더란 말이다. 하니까 그런 여자 신명이 달려붙어서 자기가 뜻하는 행위를 하려고 한 것이다.
신명神明은 육신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행위를 못 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이 동조해야만 행위를 할 수 있다.
요새 무슨 잡신 같은 것에 붙잡힌 선무당들을 보면, 귀신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가라면 가고, 자라면 자고, 그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 그렇잖으면 아파서 못 배긴다. 그러다 앓아 눕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잡신한테 생포당해 가지고, 무슨 산신에 붙잡혔네, 무슨 동자신에게 붙잡혀서 점을 하네 하는데, 그런 게 세상에도 수두룩하다.
또 명도明圖에 붙잡혔다는 사람도 있다. 마마 걸려 죽은 여자 아이 귀신을 명도라고 한다. 이 명도에 붙잡힌 무당은 으레 꽃송이 같은 걸로 신단을 차려 놓는데, 점을 하려면 거기서 획 하고 휘파람 부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게 명도가 들락날락하는 소리다. 그래 점을 치면 명도가 금세 현장에 가서 조사해 가지고 와서 점괘를 알려준다. 그런 걸 보면 ‘참 신명이 저런 것이다.’ 하는 것을 누구도 다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명도라고 이름 붙인 여자 아이 신이 그저 대여섯 살 내지 열 살 전후해서 죽은 아이인데, 그애들이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인간세상에서 살았던 날이 얼마 안 되는데. 그래서 점괘가 혹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수도修道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첫째 심법이 발라야 된다. 수도 공부하려고 앉은 사람이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내가 수도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 하는 그런 나쁜 생각을 가지려면 숫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간혹 수도 修道하는 사람들 중엔 수도修道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 같은 병도 걸리고, 병신 되는 사람이 있다.
또 수도라는 걸 잘못하면 귀신한테 홀려서 상제님도 배반하고, 자기가 신앙하는 길도 배척해 버릴 수 있다. 어떤 신이 달려붙어서 “야, 네가 잘 하면 하나님도 될 수 있고, 천자도 될 수 있다.” 하고 살살 꾀어내면 그냥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전에 당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자기 혼자 수도하다가 “자신이 하나님 딸이라는 것이다. 그거 참 기막힐 노릇이다. 그러다 신앙을 배반하다 못해 갖은 모욕을 다 한다. 그래서 그 가정이 다 망해 버렸다. 그러면 신앙 않고, 수도 공부 안 한 턱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신명 좀 보는 것보다는 열심히 수도해서 태을주 기운을 몸에 간직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근자에 와서는 개안시키는 데에 힘을 쓰지 않고 있다.
개안(開眼)하는 방법을 참고로 얘기하면 앉아서 태을주 주문 읽고 수도하는데 어떻게 해야 개안도 하고 수도공부가 빨리 되느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그냥 오래 앉아서 태을주를 많이 읽어야 된다. 그러다 무아경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없는 경지다. 망형망재다. 형상도 잊어버리고 나의 존재도 잊어버린다.’ 하는 것도 전부 그런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 경지에 도달하면 무엇인가 보인다. 그런데 그냥 뵈는 게 아니고, 각자 수도한 근기根氣에 따라서 환한 불이 보이는 사람도 있고, 저 개똥벌레 불처럼 새파란 게 반짝하고 보이기도 한다. 그게 나무 이파리만큼 보이기도 하고, 더 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개안이 돼서 떡 하니 밝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일 년 중에 가장 밝은 때가 가을인데, 아주 참 호호晧晧하게 밝은 가을날처럼 아주 환하게 광명이 열린다. 세상에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전기 여러 백 촉 켜놓은 것만큼 밝다. 그렇게 밝아지면 예를 들어, 저 건너 보이는 산, 여기서 거리로 따지면 약 4킬로미터쯤 되는 보문산인데 위에 소나무에 송충이가 앉아서 솔잎 파먹는 것까지 보인다. 눈 떡 감고 앉아서 그걸 보면 송충이에 껄이 있는데 그 껄까지도 환하게 볼 수 있다. 광명이라는 게 거기까지 몰고 간다.
과거에 한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을 시켜보면, 어지간하면 사흘이면 다 개안開眼이 됐다. 열 개開 자 눈 안眼 자, 개안은 신명神明세계를 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그걸 ‘개안開眼’이라고 했다.
개안이 되면 신명을 본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유체이탈을 하여 어느 누구의 가정도 찾아갈 수 있다. 개안이라 하는 것이 도통하는 첫 관문이다.
그런데 개안시키는 게 원 목적은 아니다. 잘못 개안시켜 놓으면 게중에는 틀림없이 허튼 사람이 나온다. 개안이 되면 신神의 세계를 보니 참 요지경 속이다.
학을 타고 천상 구경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마음 약한 사람들은 잡신한테 걸려든다. 사람이 어디 좋은 사람만 있는가? 젊은애들은 연애도 걸고 싶고, 그걸 표현 못해서 그렇지, 그러면 그런 신명이 달려붙어 버린다.
또 나만 잘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역신逆神이 붙는다. “네가 잘하면 하나님이 된다. 네가 교주도 하고, 네 방식대로 하면 구제중생도 할 수 있다. 판 하나 차려라.” 하고 홀리기도 하고, 별스런 일이 다 생긴다.
개안시켜 놓으면 관리하기도 어렵고, 그러다 잘못되면 사람을 버린다. 그런데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신명을 보기 때문에 ‘야, 정신세계라는 게 이렇구나. 이건 참 절대적이다.’ 해서, 삐꾸러지지만 않으면 새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데, 신계神界에 다녀와서 옛날 고고학을 줄줄 내리꿰는 사람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자기 성명도 못 쓰는 사람이 주역, 시전, 서전을 다 읽는다. 그게 사람마다 천태만상으로 나타나지만, 예를 들면 인간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모도 잘 생기고 인자하고 위대해 보이는 분을 접촉하게 되는 수도 있고, 또는 자기 조상님들을 만나기도 한다.
잡념이 없고 바른 기운을 갖고 사는 사람은,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에는 그 기운이 보여지기도 한다. 미래상황을 볼 수도 있고, 또 어느 경지까지 가면 자기의 전생도 볼 수 있다.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면 못 쓴다. 그러다 잘못 되면 삐뚤어진다. 또 거짓말로 보여지는 것도 있다. 그런 데에 속아넘어가면 안 된다. 수도는 천지신명과 더불어 하는 것이다. 무형인 정신은 그렇게 되는데, 체질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첫째로 사람 인체 구조라 하는 것은 수화水火로 되어져 있다. 사람은 물기운과 불기운, 두 가지 기운을 가지고 산다. 사람의 콩팥이 양쪽으로 하나씩 붙어 있는데 콩팥 하나는 물(水)을 맡고 있고, 하나는 불(火)을 맡고 있다.
그런데 본래 물水은 밑으로 내려가려 하고 불火기운은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다. 수화水火의 성질이 그렇다. 그렇건만 시간적으로 앉아서 수도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된다.
수화水火 기운이 뒤집어져서 물기운은 올라오고 불기운은 내려가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수승화강이 더 잘된다. 제대로 하자면 물기운은 올라오고, 불기운은 아주 착 가라앉아서 다 꺼져야만 된다. 그래야 체질변화가 완전히 된 것이다. 며칠 수련해서는 그렇게까지 될 수 없다. 그건 시간이 필요하다.
수승화강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수기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수기水氣가 순환循環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가 올라오면서 기혈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몸의 수분은 기氣가 끌고 다닌다. 기氣가 생동해서 수분을 끌고 와 수기水氣가 상승하는데,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또 백회 부분을 정문頂門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서 아주 맑은 기운이 뻗쳐오른다. 정문은 또 삼리三離라고도 하고, 이궁離宮이라고도 한다.
이궁離宮은 남쪽을 뜻한다. 턱 아래쪽이 북쪽이고, 위쪽이 남쪽이다. 기운은 정문頂門을 통해 내려온다. 그래서 정문을 쥐구멍이라고도 하는데, 수련을 하면 이 쥐구멍으로 기운이 오르고 내리는 걸 느낀다. 심령으로 통을 하고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수도되는 과정을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질·량·시·리·변質量時理變,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질質은 바탕 질質 자, 양量 자는 헤아릴 량量 자다. 또 때 시時 자, 이치 리理 자, 변할 변變 자, 이렇게 다섯 단계가 있다. 질質이라는 것은 바탕이다, 예를 들어 십리밖에 있는 물주전자라고 하면, 그 물주전자가 실물 그대로 보이는 게 질質의 단계이다. 또 량量의 단계라고 하면 물주전자가 어느 때時, 어떻게理 변變하게 되느냐 까지를 알 수 있는 그런 다섯 단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도통이다. 그렇게 되면 미래도 알 수 있다.
묶어서 자연섭리하고 내 정신이 합치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섭리를 통투할 수 있다. 그걸 문자로 “상투천계上透天界하고”, 위로는 하늘 경계를 뚫어볼 수 있고, 또 “하철지부下徹地府”, 땅 밑바닥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경지를 간다. 그래서 사람이 불학이능문장不學而能文章하고, 배우지 않고도 문장이 되고, 부점이지길흉不占而知吉凶하고, 점치지 않아도 좋고 그른 것을 안다. 도통은 신통神通이다. 인간이 신통을 하게 되면, 인간과 신명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식이 부족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큰 공덕을 쌓으면, 그 공덕에 걸맞는 대신명이 응기하여 신통이 열리기 때문에, 사람이 그 대신명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경우에 따라 대문호도 될 수 있는 것이다(神人合一).
『요한계시록7:1~4 』에서 말하는 인(印)이란 무엇인가?
『 요한계시록 7:9~1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요한계시록7:1~4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동방으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하더라.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지파충에서 "인 맞은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마태복음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 1754∼1825) 선생의 춘산채지가(春山採芝歌)에서 말하는 인(印)이란?
定(정)한날이 어김없이 별안간에 닥쳐오니 닦고닦은 그사람은 解寃門(해원문)을 열어놓고 六腑八元(육부팔원) 上中下才(상중하재) 器局(기국)대로 될것이요
飛將勇將(비장용장) 上中下才(상중하재) 기국대로 되는구나 壯(장)할시구 壯(장)할시구 六腑八元(육부팔원) 壯(장)할시구 奇壯(기장)하다 奇壯(기장)하다 이내사람 기장하다
飛天上天(비천상천) 하올적에 縮天縮地(축천축지) 하는구나 風雲造化(풍운조화) 품에품고 海印造化(해인조화) 손에 들고 渡海移山(도산이산) 하올적에 太平洋(태평양)이 平地(평지)로다.
무수장삼(無袖長衫) 떨쳐입고 운무중에 비껴서서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은 좌수(左手)에 높이들고 고선승(考先繩) 놋줄일레 우수(右手)에 높이들고 만국문명(萬國文明) 열어놀제 예의문무(禮儀文武) 겸전(兼全)이라
우수(右手)에 놋줄던져 죽는백성 살려주고 좌수(左手)에 용천검(龍泉劍)은 불의자(不義者)를 항복받아 천동(天動)같이 호령하니 강산(江山)이 무너지고 인의예지(仁義禮智) 베푼곳에 만좌춘풍(滿座春風) 화기(和氣)로다 장할시구 장할시구 부귀도 장할시구 부귀도 장하지만 도통(道通)인들 오죽할까.
※ 조선 중기의 천문관 格菴 남사고(南師古, 1509~1571)선생의 격암유록(格菴遺錄)에서 말하는 인(印)
倒山移海海印用事(도산이해해인용사) 任意用之往來(임의용지왕래)하며 無爲理化自然(무위이화자연)으로 白髮老軀無用者(백발노구무용자)가 仙風道骨更少年(선풍도골갱소년)에 不老不衰永春化(불노불쇄영춘화) 病人骨髓不具者(병인골수불구자) 死者回春更生(사자회춘갱생)하니 不可思議海印(불가사의해인)일세
산을 뒤엎고 바다를 옮기는 해인印의 힘으로 마음대로 해인印을 써 왕래 하면서 무위이화의 자연스런 이법으로 백발의 늙은 몸을 가진 쓸모없 는 자가 신선의 풍모를 지닌 소년이 되며 늙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니 병을 골수에 가지고 있던 불구자도 그리고 죽었던 자도 다시 생명을 얻어 소생하니 과연 불가사의한 해인印이로구나.
※ 구원의 사자들은 동양에서 온다.『모든세기』Michel Nostradamus[1503~1566]
L'Oriental sortira de son sie'ge, Passer les monts Apennins voir la Gaule : Transpercera le ciel, les eaux et neige, Et un chacun frappera de sa gaule. (2:29)
동양인이 자기 고향을 떠나리라. 아페닌 산맥을 넘어 골(La Gaule)에 이르리라. 하늘과 물과 눈을 넘어 누구나 그의 장대로 맞으리라.『모든세기』(2:29)
※ 『모든세기』(2:29)에서는 인(印)을 장대로 말하고 있다.
"Le grand >Dieu eternel viendra parachever la revolution
위대하시고 영원한 하느님은 변혁(revolution)을 완수하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아들 세자르에게 보내는 편지』
요한 계시록과 춘산채지가, 그리고 격암유록에서 말하고 있는 인(印)이란 무엇인가?
인간세상의 통치자인 임금이, 자기 나라 영역권 내에서 어떻게 치정治政을 하면 백성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생각을 갈고 닦고 해서 내린 결론이 바로 암행어사제다. 어두울 암暗 자 다닐 행行 자, 암행이란 가만히 다니는 것, 남 모르게 숨어서 비밀로 다니는 걸 말한다. 암행어사御使, 어거할 어御 자는 상강님 어御 자다. 어사는 상감님이 부리는 상감님의 사자란 말이다. 그러니까 상감님의 대행자다. 그걸 어사라고 한다. 그런데 암행어사한테 그 징표로 마패馬牌라는 걸 주었다.
마패는 구리, 신주 같은 쇠판에다 말을 새겨 넣은 것이다. 말을 한 마리 새긴 것, 두 마리 새긴 것, 세마리 새긴 것이 있는데, 그 말 새긴 것에 따라 권한이 다르다. 한 도를 통치할 수도 있고, 두 도를 통치할 수도 있고, 삼도 사도를 통치할 수도 있다. 말을 그려 넣었다 해서, 말마자를 붙여 마패馬牌라고 한다. 말패란 말이다.
암행어사가 출두함과 동시에 "어명이다!"하면, 상감님의 형제라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반항심 가지고 쳐다만 봐도 역률로 몰린다. 그러면 자기 본족 처족 외족, 삼족이 멸한다. 영의정이라도 어사가 출두하는 경우에는 꼼짝 못 한다. 그 자리에서 삭탈관직 당하고, 그 시간으로 전부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암행어사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그런데 의통(해인)이 암행어사의 마패와 똑같은 것이다.
사람은 대개 부명賦命에 죽는데, 사람이 죽을 때는 저승사자가 와서 더불어 간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A를 데리러 왔다가 B를 데리고 가는 수가 있다. 사자도 실수를 한다. 재수 없으면 거기에 걸린다. 대개 그런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 사람들 애기를 들어보면 보통 이틀 사흘 만에 살아났다고 한다. 그와 같이, 개벽하는 때에도 하루 전에 죽은 사람, 한 시간 전에 죽은 사람, 별 사람 다 있을 것 아닌가?
그런때 의통구호대가 "어명이야!"하면서 죽은 사람 인당에 해인海印을 쳐 가지고 혼을 도로 갖다 붙이는 것이다. 이 천지에는 인류역사를 통해 왔다간 수많은 원신怨神들이 가득 차 있다. 몇 조나 되는 원신들이! 천지에 가득히 찬 원신들이 우주의 가을이 되면 전부 다 발동을 한다. 신명은 아무 때나 발동하는 게 아니다. 가을에만 발동한다.
인류역사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다갔는가? 그 몇 조나 되는 허구한 신명들이 다 발동한다는 말이다. 이번엔 그 신명들이 총동원해서 사람들을 다 잡아가 버린다. 잡아간 혼을 끌어오기 위한 어명御命이 해인海印인 것이다. 그렇게 상제님 명령으로, 해인으로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다. 해인海印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도장이기 때문에 도장찍듯이 찍어야 하는데 어디에다 찍어야 하는가?
사람 체상體相 중에 인당印堂이라는 데가 있다. 여러 천 년 전부터 사람 체상을 두고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면 이건 팔이라고 하고, 걸어다니는 건 다리라 하고, 수족手足이라고 하고, 또 머리, 눈, 귀, 코라고 하듯이 , 상리학상相理學上으로 이름이 다 있다. 자子 오午 묘卯 유酉, 음양오행으로 애기하면 동서남북으로 돼가지고 머리 위쪽이 남쪽, 오방午方이다.
이 오방 끝, 이마 위쪽부터 체상 이름이 천주天中 천정天庭 사공司空 중정中正 인당印堂 산근山根 연상年上 수상壽上 준두準頭 인중人中 수성水星 승장承漿 지각地閣 등으로 이름이 쭉 붙여져 있다. 그런데 여기 양 눈섭 가운데 위를 인당이라고 한다. 어지간히 무식한 사람도, "저 사람은 인당이 쑥 들어갔다", "저 사람은 인당에 흉이 있다", 또 "저 사람은 인당에 빛이 난다."는 등 인당 소리를 한다. 이 인당印堂이라는 이름은 여러 천 년 전부터 불러온 이름이다. 그러면 왜 하필 도장 인印 자, 집 당堂 자, 도장맞는 집, 인당印堂이라고 이름 붙였는가?
인당海印은 바로 다 죽는 개벽 때 해인(海印) 맞고 사는 자리다. 인당은 그 때 딱 한번 써 먹는 자리다. 상제님 명령을 집행하는 암행어사로서, "어명御命이야!!" 하고 죽은 사람 인당에 도장을 친다.
어명은 무엇인가? 상감님, 상제님의 명령이다. 또 그 도장밥은 경면주사(鏡面朱砂)다. 알기 쉽게, 경면주사로 도장밥[印朱]을 만들고, 해인에 경면주사를 묻혀 인당에 치면서 "어명이야!"하면서 죽은 사람 인당에 해인을 쳐 가지고 혼을 도로 갖다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해인海印을 주어도 육임六任이 없으면 행위를 할 수가 없다. 해인을 가지고 사람 살리는 데, 받드시 여섯 사람이 수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은지 사나흘, 혹은 닷새가 됐다 해도 신체가 썩어서 사람 노릇 할 수 없는게 아니라면, 해인으로 다 살릴 수 있다. 물론 신체가 썩으면 안 된다. 아니 창자도 썩고 육체가 썩어버렸는데 영혼을 갖다 붙이면 뭘 하는가?
그런데 죽어서 물체가 된 채 이틀이 지나면, 수분도 그 만큼 고갈된다. 그래서 혼을 갖다 붙여준다 하더라도 생리적으로 물이 필요할 테니, 물가지고 다니면서 떠 넣어 줄 사람도 있어야 할 게다. 또 주문 읽어 주는 사람도 있어야 되고 그렇게 해서 수종드는 사람이 꼭 여섯 사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곱 사람이 한 조다. 한 조가 짜여져야 해인 가지고 사람 살리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출처: 춘생추살)-
의통醫統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1.호부의통戶符醫統 - 집 문밖에 모셔두는 의통이다.
2.호신의통護身醫統 - 마패와 같이 몸에다 모시고 다니는 호신의통護身醫統이 있다.
3.해인海印 - 죽은 사람을 살리는 도장이다. 해인海印 만큼은 육임조(六任組)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만유의 생명체가 다 천지의 이법에 의해서 왔다가는 것이다. 대우주 만유의 생명체가 가을철에는 봄여름철에 기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서 열매를 맺는다. 초목도 가을철이 되면 다 열매를 맺는다. 저 조그마한 풀도 다 씨를 맺는다. 그게 자기가 맺고 싶어서 맺는 것도 아니다. 천지에서 결실을 해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지에서 사람농사 지은 것도 이번에 열매를 맺는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짓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각자에게는 처음 조상할아버지가 있다. 그 조상할아버지가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이렇게 대대전손(代代傳孫), 계계승승(繼繼承承) 해서 김지, 이지, 박지, 최지가 지금 있는 것이다.내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다 조상의 혈통을 이어받아서 지금 이 시간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란 말이다.
사람은 5천 년, 6천 년 전에 처음 시조 할아버지가 다음 할아버지 또 그 다음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이렇게 해서 처음 조상 할아버지의 유전인자가 내게 와 있는 것이다. 이 씨종자라 하는 것은 절대로 바꿀 수가 없다. 저런 초목도, 풀씨도 억만 년이 내려왔건만 조금도 변함이 없는 바로 그 풀씨다. 잔디 하나도 그렇다. 씨종자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만유라는 것이 초목도 그렇고 날아다니는 새, 기어다니는 짐승, 미물곤충도 그렇고, 그 유전인자는 절대로 못 바꾸는 것이다. 진달래꽃도 천 년 전의 진달래꽃이고, 할미꽃 도라지꽃도 천 년 전, 만 년 전의 그 할미꽃, 그 도라지꽃이다.
유전인자라 하는 것은, 처음 한 번 그렇게 되어지면 절대로 바꾸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5천 년이 됐든 만 년이 됐든, 처음 시조 할아버지의 유전인자가 계계승승繼繼承承해서 잇고 또 잇고, 전하고 받고, 이렇게 해서 내 몸까지 이어내려 온 것이다. 내가 그 유전인자에 의해 혈통을 이어받아 이렇게 생겨났단 말이다.
조상들이 10대손 200대손 흘러 내려왔지만, 그 자손이 하나라도 살아남아야 그 조상신들도 산다. 마치 천 년 고목나무에 수냉이(순) 하나만 있으면 그것이 숨구멍이 되어 고목이 살 수 있다,
그것이 떨어지면 고목나무도 죽고 만다. 그렇듯이 눈 먼 안팎 곱추라도 하나 자손이 살면 그 조상이 살고, 자손이 죽으면 그 조상도 다 죽고 만다.
"자기 조상들이 세상살이를 착하게 살다 간 자손들은 역사적인 신명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을 수가 있고, 조상들이 세상살이를 불량하게 살다 간 자손들은 역사적인 뭇 신명들의 보복을 받아서 살아남기가 어렵게 된다. "우리가 선천 봄여름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이 세상이 둥글어가는 하늘땅의 이치를 몰라도 잘 살 수가 있지만 이번에는 선천 여름에서" 후천 가을로 바꿔지는 개벽을 하는 때가 되어서 천지이법을 모르면 살 수가 없다.
"조상도, 자손이 끊어지니 헛 세상을 왔다 간 것이고, 자손도 혈통이 끊어지니 여러 천 년 조상들까지 자멸(自滅)되고 마는 것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반도 끝에는 영일만을 이루면서 돌출해 있는 호미곶이 있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선생은『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하였다. 그래서 호랑이의 꼬리라는 뜻의 호미곶(虎尾串)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해가뜨는 곳 울산 간절곶(艮絶串)이다.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은 호미곶(虎尾串)과 함께 동해안 최고의 일출 여행지로 꼽히는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에 ‘간절곶(艮絶串)’이 있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 바로 간절곶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간절곳 명칭의 유래는 어부들이 먼 바다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대나무로 된 긴 장대)처럼 보여 간절끝(艮絶)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절곶의 한자를 그저 간절하다 할때의 간절인줄 안다.
그런데 실제 간절하다 할때의 한자는 간절(懇切)이지 간절곶의 간절(艮絶)이 아니다. 간절곶을 알려주는 교통 표지판에는 한자가 정확하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간절곶의 실제 유래는 더 심오하다.
그러면 간절곶艮絶串의 실제뜻은 무엇일까?
간절곶의 간(艮)은 간방(艮方)을 뜻한다.『주역』「계사전」을 보면 간(艮)은 東北之卦也니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이니 故로 曰成言乎艮이라, 간艮은 동북방을 가리키는 괘이니, 만물의 끝과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성인의 말씀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이 바로 동북東北 간방(艮方)이다.
간절곶(艮絶串)이란, 간艮이 끊어지는 곳, 여기가 간방艮方의 끝이라는 뜻이다. 옛날 신인들이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다. 간(艮)은 日과 氐(근본 저)의 합성어로 일출지근(日出之根, 해가 뜨는 근원 자리)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하는 한(恨)이라는 글자를 보면 간방(艮)의 마음(心)이라는 뜻이다.
간(艮)이라는 글자의 형상을 아기가 자궁에서 자라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지난 해 여문 열매가 봄이 되어 새싹을 내는 것과 같다. 간괘(艮卦)는 이렇게 마침과 시작, 열매, 새싹을 상징한다. 자연과 인간, 문명의 근본을 깨닫는 것은 팔괘의 이치에 있다. 음양의 법칙을 알아야 된다는 말씀이다. 나무 한그루의 생명 운동을 알면 자연의 춤사위, 팔괘가 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나무 전체를 보면 뿌리와 줄기가 있다. 뿌리와 줄기는 음양 한 짝이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땅 밑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손(巽)괘’이고 뿌리에서 쭉 뻗어 올라오는 ‘줄기’는 ‘진(震)괘’다. ‘진震’은 봄기운이다. 양 기운으로 쭉 뻗쳐 올라온다. 진震의 성질이 그렇다. ☳ 진괘를 보면 두 효는 음이고 제일 아래에 양효가 있다. 음이 꽉 누르고 있어 반발을 하며 뻗는 양의 힘이 가장 강한 것이다. 그게 목(木) 기운이다. 그걸 뇌성벽력으로도 얘기하고, 제우스 신화에서는 번개로도 얘기했다.
사람으로는 진괘를 장남, 손괘를 장녀로 비유한다. 그 다음에 이파리가 있고 꽃이 핀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꽃과 열매가 음양 짝이 된다. ‘꽃’은 ‘태(兌)괘’, 꽃이 피고 나면 맺는 ‘열매’가 ‘간(艮)괘’다. 간艮은 열매다.
형상으로 말하면 자연계의 산(山)도 간艮이다. 간艮은 음 기운이 딱 멎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 아래에 음효가 두 개 있고, 위에 간상련(艮上連)으로 양 기운이 음에 묶여 있다.
가장 정적이면서 무언가 거대한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것이 산이다. 그리고 ☱ 태(兌)가 꽃인데, 간태(艮兌)가 합덕하여 간艮은 막내아들(小男), 태兌는 막내딸(小女)이다.
뿌리에서 줄기가 뻗어 올라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나아가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생성의 전 과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양의 두 요소가 있다. 즉, 나무의 모든 변화를 이끄는 근원, 나무를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본이 있다.
바로 ‘물’과 ‘불’이다. 불은 태양에서 온다. 그 태양 불이 ‘이(☲離)괘’다. 그 다음에 땅속에 있는 물 기운은 ‘감(☵坎)괘’다. 이 물과 불이 생명의 중추 작용을 한다.
사람으로는 중남(中男),중녀(中女), 차남 차녀다. ‘감(坎)’은 물인데, 하늘에서는 달(月)이다. 그리고 불[離]은 태양(日)이 근원이다. 감리일월(坎離日月) 나무의 뿌리와 줄기, 꽃과 열매는 일월(日月)의 물과 불 기운을 받아 생성된다. 물과 불을 받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해서 여섯 괘다. 이 여섯 괘를 사람으로 말하면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 있는 3남 3녀다.
이 모든 생명은 하늘과 땅에서 태어나 하늘과 땅의 변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를 뜻하는 ‘건곤(乾坤)괘’가 있다. 뿌리와 줄기 ‘진손(震巽)’, 꽃과 열매 ‘간태(艮兌)’, 그리고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물과 불 ‘감리(坎離)’, 천체로 말하면 일월(日月), 이 여섯은 건곤(乾坤), 천지부모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부 팔괘다. 이처럼 나무 한그루에서 팔괘의 이치를 쉽게 배울 수 있다.
만유의 생명체란 알기 쉽게 말하면 다 군신좌사(君臣佐使)로 조직되어 있다.
꽃으로 말하면 꽃 이파리가 열 개고, 스무 개고 있지만 그게 다 꽃 속, 꽃 중심에 있는 화심(花心)을 위해서 붙어 있는 것이다.
‘탐화봉접(貪花蜂蝶)이라고, 꽃을 탐하는 벌과 나비를 보면 꽃 속 가운데 있는 화심(花心)에만 가서 앉아서 기다란 침을 꽂고서 꿀을 빨아먹는다. 그 중심, 핵核, 그게 화심이다.
지구가 한 송이 꽃이라면 우리나라가 바로 꽃 속 화심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처럼 24절후가 똑바른 데가 없다. 춘하추동 사시가 똑바르고, 기후도 삼한사온으로 고르고, 물맛도 지구상에서 가장 좋다.
지구상에 이렇게 생긴데가 없다. 풀도 우리나라 땅에서 자란 것이 약효가 가장 좋다. 우선 인삼 하나를 예로 들어봐도, 우리나라 인삼 한 뿌리면 중국 인삼 다섯 뿌리의 약성에 해당한다. 중국 인삼 다섯근을 먹어도 우리나라 인삼 한 근 턱도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도 또한 그렇다. 민족성이 비뚤어졌든 어떻든 두뇌가 가장 영특하다. 우리나라가 바로 지구의 혈자리, 지구의 핵이다.
우리나라 주변의 지리를 보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길게 감싸주고 있는 형상인데 그 형상을 내청룡(內靑龍)이라고 한다. 쉽게 얘기하면 일본이 혈穴인 우리나라의 담장이고 성곽인 셈이다.
일본의 구주 같은 데는 부산 태종대에서 날씨 좋은 때 보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있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外靑龍)이고, 중국 대륙에서부터 싱가포르까지가 내백호(內白虎)다. 중국을 보면 아주 첩첩이 에워싼 만첩백호(萬疊白虎)다. 그것이 다 내백호다. 아프리카 대륙은 외백호(外白虎)다.
청룡은 비상飛上하고 즉 청룡은 나는 것 같이 보이고, 백호는 순복順服하고, 순하게 엎드려 있는 것 같아야 지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주 뉴기니아 앞쪽은 우리나라의 안산(案山)이다. 기운이 빠지는 곳, 즉 물이 빠지는 파(破)는 대만해협이다. 언뜻 보면 구주에서 부터 대만까지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륙되어 있다. 다만 높은 데는 물로 드러나고 얕은 곳은 몇 백 미터씩 물밑에 잠겨 있을 뿐, 사실은 대만까지가 전부 다 붙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점점이 이어진 섬을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 한다.
만주에서 부터 요하, 난하, 황하, 양자강 물이 전부 황해로 쏟아져 나와 대만해협을 통해 빠져나간다. 그런데 그 기운이 설기(洩氣)되는 것이 아쉬운데, 대만해협에 금문도(金門島)와 조종도(祖宗島) 라는 섬이 있어서 물 빠지는 입구를 아주 협소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동해와 서해는 내 명당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지구의 기운을 우리나라에 다 몰아놓은 것이다.
알고보면 구부러지고 틀어진 지구의 산천이 전부 혈穴자리를 옹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가 전부 지구의 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곤륜산에서 부터 지맥이 뻗어 나와 우리나라 요동 칠 백 리 만주 땅에 결인(結咽)을 하고(결인이란 지리학상의 술어로 맺을 결(結)자, 목구멍 인(咽)자다), 백두산을 일으켜 들어왔는데, 백두산에서부터 금강산으로 해서 뻗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사람으로 말하면 24척추와 같다.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백두산에서 비롯되는 산줄기 체계와 바다로 빠져나가는 강줄기 체계를 보게되면. 특이하게도 오직 금강錦江 줄기만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거의 절반을 역(逆)하면서 흐른다. 이렇게 크게 역(逆)을 하여 생기를 모으는 지세는 전세계를 통틀어 오직 태전(大田)을 에워싸고 있는 금강 수계 뿐이다. 사람에게도 앞뒤가 있듯, 산에도 앞뒤가 있다. 곤륜산 중에서 우리나라 쪽은 산 앞이고 곤륜산의 뒤, 구라파 쪽은 산 뒤다. 산 뒤는 덤으로 있는 것이어서 뒤쪽은 따질 것도 없다.
본래 지리학은 한(漢)나라 때 청오(靑烏)라고 하는 분이 처음 제창했다. 그 후 여러 사람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전해졌으나 다만 국지적(局地的)으로만 얘기한 것이다.
과거에는 ‘산지조종(山之祖宗)은 곤륜산(崑崙山)이요,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황하수(黃河水)라’고 했었다. 지구의 축(軸)이 곤륜산(崑崙山)이라는 말이다. 알기 쉽게 이 지구의 뿌리가 곤륜산이라는 말이다. 수레바퀴가 둥글어 갈 때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구에서 수레바퀴의 축에 해당하는 곳이 히말라야에 있는 곤륜산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의 산줄기가 전부 곤륜산에서 비롯되어 다 뻗어 내려갔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봐도 동,서양의 산이 곤륜산을 모태로 해서 갈려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맥이 구부러지고 틀어진 것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지리를 모르면, 산천(山川)이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틀어지고 길쭉하고 모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리(地理)를 알고 보면 글자 쓰는 것과 같다. 하늘 천(天)자를 쓸 때,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글자를 쓰듯, 지리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 산(山)의 줄기 하나 내려간 것도 조금도 어긋남 없이 글자 쓰듯이 나타난다.
들판이 생기려고 해도 들판이 형성되어 나온 주산(主山) 마디가 있다. 한 마디가 10 미터 되는 것도 있고, 100 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마디가 있으면 반드시 들판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용절(龍絶)이라고 하는데 용절을 재어 보면, 어디쯤에서 들판이 생긴다는 그런 법칙이 나온다. 곤륜산에서 뻗은 여러 산줄기 중 하나가 우리나라로 뻗어 들어와 백두산을 일으켰는데, 그 중간에 큰 들판이 있다. 그것을 만주 요동 칠백 리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 보면, 워낙 들판이 넓어 하루종일 가도 갈대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지리는 워낙 호호탕탕하고 틀이 커서 오히려 천문(天文)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라서 옛날 사람들이 ‘난지자(難知者)는 지리(地理)라’ 알기 어려운 것이 지리라고 했다. 지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다.
서울의 지리형세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되는데 지리만은 역(逆)해야 된다.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逆)하여 흐르다 중랑천에서 합쳐져 한강 본류로 빠져 나간다.
북악산의 오른쪽에 친 인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사직터널에서 부터 산줄기가 내려와 서대문, 서소문이 생기고 남대문까지 와서 그 줄기가 남산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쪽 물은 청계천으로 빠지고 반대쪽 인왕산줄기 서쪽 물은 용산쪽으로 빠져나간다.
인왕산 줄기 안쪽 물과, 북악산과 남산 골탱이의 서울 장안의 안쪽 물은 전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거꾸로 치올라가 중랑천으로 빠져나간다. 청계천 물이 흐르는 방향은 한강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과 정반대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김포와 강화도 쪽으로 흐르지만, 청계천 물은 묘하게도 서에서 동으로 역(逆)하며 거꾸로 흐른다. 그러니까 서울에 도읍터 하나 만들기 위해 청계천 물이 그렇게 역(逆)을 했다는 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물이 양수리에서 합해져 서쪽으로 빠지는데,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남산 안쪽 물만 거꾸로 치올라간다. 지리는 이렇게 역(逆)을 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집터도, 묘자리도 다 그렇다. 그렇게 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역(逆)을 하지 않으면 절대 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4대문 안쪽 물은 모두 청계천에 모여들어 불과 몇km를 역(逆)하면서 흐르다 중랑천으로 빠져 나간다. 청계천이 역수(逆水)하는 거리가 얼마 안되지만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오늘날까지 600년이 넘게 도읍터의 생기를 발하고 있다. 청계천이 역(逆)하면서 흐르는 거리는 몇 키로 될 뿐이다. 서대문 남산 경복궁, 그게 얼마 안 된다. 그렇게 좁아터진 데다. 그래도 그 기운 가지고 조선왕조 500년을 끌고왔다.
그리고 노량진에서 제일한강교를 넘다보면 가운데 중지도라고 있다.
이런게 왜 생겼느냐 하면 한강물이 빠지는데, 중간에 중지도가 있어서 서울의 땅 기운이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밤섬이 있다.
홍수가 밀려오면 잘잘한 밤섬같은 것은 그냥 쓸려가 버리고 말 것 같은데, 여러 천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또 그런가하면 그 밑에 여의도가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난지도가 있고, 강화도에 가면 ‘손돌목’이라는 곳이 있어서 강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있다. 그것이 다 설기(洩氣)되는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왜 손돌목이라고 이름을 붙쳤나?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당시 천도(遷都)를 할 시에 도읍지를 계룡산 신도안으로 하느냐, 한양으로 하느냐, 공론이 분분했다. 신도안에 가보면 그때 나라의 사령탑을 짓는다고 깎아 놓은 주춧돌이 지금도 남아 있다. 터 닦던 데를 파 보면 볏짚 한 켜 깔고 다시 황토를 한 켜 깔고, 그렇게 정토(淨土)를 해 놓았다. 이성계가 거기를 내던지고 서울로 천도를 하고 나서 그 터에다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이 정토사(淨土寺)다. 그런데 높은 벼슬아치들이 거기를 버리고 한양으로 갈 때, 강경에서 배를 타고서 갔다.
배가 김포 손돌목을 접어들어 가는데, 거기가 기역자로 구부러져 버렸다. 서해안은 하루에도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간만의 차가 있어서 배가 썰물을 따라서 쏜살같이 앞으로 올라가는데, 배에 탄 높은 벼슬아치들이 보니까 배가 지나갈 틈이 없다. 그냥 가다가는 절벽에 탁 부딪혀서 배도 깨지고 몰사하게 생겼다.
그래서“저놈 죽여라. 저놈이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한다”며 뱃사공을 죽이라고 했다.
그 뱃사공이 장가도 못 간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그 뱃사공은 바가지를 물에다 띄워 주면서“이 바가지 가는 대로만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하고서 죽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배를 돌이킬 수도 없다. 너무 좁아서 배 하나 간신히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는 수 없이 뱃사공이 말한대로 들물에 떠밀려서 올라가 보니, 기역자라고나 할까 니은자라고나 할까 그렇게 각이 졌다.
그때 죽은 사공이 밀양 손(孫)가다. 장가도 못 간 손도령이 죽은 곳이라 해서 손돌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또 그 사공이 죽은 날이 음력 시월 스무날인데, 조선 5백 년 동안 이날만 되면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그것을‘손돌이 추위‘라고 한다. 그래서 손돌이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도 해야 되고, 이엉을 엮어서 지붕 해 이는 것도 그 안에 다 해야 했다. 손돌이는 손도령이라는 말이다. 장가도 못 들고서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그 원한 때문에 그렇게 날이 춥다는 것이다. 물이 빠지는 곳을 학술용어로 파(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파(破)는 손돌목처럼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는 물 빠지는 파(破)가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이다. 그게 땅 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높은데는 필리핀과 같은 섬나라도 있고 깊은 데는 물속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구슬을 꿴 것 같다고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도 했고, 노끈 모양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다고 해서 충승도(沖繩島)라고도 했다. 금문도(金門島)니, 조종도(祖宗島)가 있는 곳, 아주 협소狹小한 데다.
왜破 파는 그렇게 협소하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그 안에 있는 광활한 생기(生氣)가 빠져나가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알아듣기 쉽게 남자의 양물, 자지 구멍은 오줌을 눌 때나 조금 벌어지고 늘 붙어 있다. 또 분문(糞門)이라고, 똥 분 자, 문이라는 문 자, 똥 나오는 구멍 문이 있다. 그것도 항상 닫혀 있다.
또 여자한테는 구슬 옥 자를 붙여서 옥문(玉門)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아기를 잉태해서 기르는 궁전, 자궁(子宮)이 있다. 이 자궁도 필요에 의해서만 벌어지고 항상 딱 붙어 있다. 거기는 샐 설(泄) 자 기운 기(氣) 자, 설기(泄氣)가 되면 안 된다. 생물이라면 100%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파(破)를 설명하느라고 하는 말이다.
다시 좀 더 설명을 하면, 강원도 금강산의 중심이 비로봉이다. 거기서부터 비롯한 물이 한강으로 다 흘러내려 온다. 충청북도 속리산 남쪽 물은 금강으로 내려오고 속리산 서북쪽 물은 남한강으로 내려간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물과 합류를 하기 때문에 양수리(兩水里)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대전(大田)의 형국
서울과 비교할 때 대전의 형국은 진안, 무주에서부터 추풍령, 속리산 물이 전부 거꾸로 치오른다. 우리 나라 대세가 전부 위에서 아래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가는데, 이쪽 물은 거꾸로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오른다. 추풍령, 무주, 진안, 장수가 다 남쪽이다.
금강이 공주에 고마나루까지 물이 거꾸로 올라가서, 거기서 부터는 부여쪽으로 구부러져서 장항 군산쪽으로 순(順)하게 내려간다. 지구에서 자리가 이렇게 된 곳이 없다. 서울의 터는 대전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것이다.
대전이 서울터의 몇 백배에 해당한다. 속리산쪽에서 부터 장수, 진안, 무주로 해서 공주까기, 우리 나라 중심부 절반을 역(逆)을 한 곳이다. 지리학상으로 볼 때 지구의 혈이 바로 남북한을 통털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중에서도 오직 대전이 자리한 중부지방 이곳만이 지구의 혈이다. 본래 천지가 형성 될때 혈자리가 정해진 곳이다.
계룡산(鷄龍山)
충청남도 공주시(계룡면, 반포면), 계룡시(신도안면),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45m 이다.
≪정북창비기 鄭北窓祕記≫는 조선 말기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찾아야 된다는 내용과 남북이 분열되어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한다는 것, 그리고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운기귀책 運奇龜策≫은 조선시대 말엽부터 계룡산으로 도읍이 확정될 때까지 일어날 중요 사건들을 연도별로 예시한 기록이다.
≪동세기 東世記≫는 이성계의 28대 후에 조선이 망한다는 것과 일본의 침략이 있다는 것, 남북 분단으로 민족의 비극이 생기며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계룡산에 도읍할 때까지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연대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삼한산림비기 三韓山林祕記≫는 대한민국 산천의 생김새와 산맥의 분포 등을 설명하고, 산천의 정기와 성정(星精)이 서로 조화되어 도읍지가 정해지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조선 500년의 수도가 되나 북악과 남악의 겁기(劫氣)로 전란과 재난이 끊일 사이가 없게 됨을 밝히고, 계룡산의 빼어난 지세로 계룡산 800년 도읍이 보장된 곳이라고 하였다.
지구촌의 앞날을 예고한 분들은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고운 최치원 선생등의 기록이 있고, 신라말 고려 초의 왕사인 도선국사가 남긴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 북창 정렴, 격암 남사고, 토정 이지함, 서산대사, 퇴계 이황, 율곡 이이, 겸암 류운룡, 서계 이득윤, 고산 윤선도, 반계 류형원, 강산 이서구 선생... 등, "열거한 분들은, 당대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승이거나 대학자들이다.
"정감록(鄭鑑錄)에는 조선왕조 다음에, 정도령(正道令)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며,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지가 된다고 하였다. “격암유록에는 "先天秘訣 篤信마소 鄭僉只는 虛僉只라" 선천비결에 나오는 정도령은, 정씨(鄭氏) 성(姓)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씨(鄭氏) 성(姓)을 쫓지 말라는 것이다.
신라말기 도선국사는 그의 저서 『도선비기(道詵秘記)』에서 개성은 5백년 도읍지이고, 한양은 4백년 도읍지이며, 계룡산의 신도안은 8백년의 도읍지라고 하였다. ≪도선비기道詵祕記≫는 도선과 일행선사(一行禪師)가 우리나라 산천의 길흉에 대해 나눈 문답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말기의 혼란 끝에 조선이 망하고 결국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게 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계룡산을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으로 상봉인 천황봉이 형제봉·중두봉(中頭峯)·종봉(終峯)을 이루어 이것을 제자봉(帝字峯)이라 한다. 즉 황제가 앉을 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새 도읍지로 결론을 내리고 궁궐 축조 공사를 시작했다.
삼국사기에는 계룡산을 토함산, 지리산, 태백산과 함께 오악 중의 하나로 꼽으면서 계룡산은 하늘을 향하는 용의 모양이고
'산태극', '수태극', '회룡고조' 등의 하늘의 이치를 가진 신비의 땅으로 언젠가는 이곳이 수도가 되어 천하 36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홍만종(洪萬宗,1643~1725)이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계룡산을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으로 상봉인 천황봉이 형제봉·중두봉(中頭峯)·종봉(終峯)을 이루어 이것을 제자봉(帝字峯)이라 한다. 즉 황제가 앉을 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새 도읍지로 결론을 내리고 궁궐 축조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엄포한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1736~ 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실려 있다. 1393년 음력 3월부터 계룡산 신도안에 천도(遷都) 사업이 한창이던 1393년 말, 문신 하륜(河崙)의 주장에 의해 결국 계룡산 천도 계획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서애(西涯)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鷄龍石白 草浦舟行 大小中華偕矣 漢陽李氏三百年之地, 在於天數 若有小遺則四百年 以後至七甲子以後申年可知也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는 시기는 계룡산의 돌이 하얗게 되고, 무넘이고개로 물이 넘어가 초포(草浦, 현 노성현 하류)에 배가 드나들 때 알 수 있다고 했는데, 1990년 금강 하구뚝 제방공사가 완공되자 강물이 불어 초포(草浦)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계룡산의 바위 또한 과거에는 검고 짙었던 바위가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로 인해 백화현상을 보이고 있다.『기말록(其末錄)』에서는 國都連山 黎民得所 鷄龍石白 艸浦行舟 平沙三十里 南門復開 草浦西津 舟客萬里 沙岸南洞 國步千載
연산(連山)을 나라에 도읍으로 정하면 일반 백성들이 살 곳을 얻으리라. 계룡산의 돌이 흰빛이 되고, 초포(草浦)에 배가 다니고 모래벌 30리에 남문(南門)이 다시 열리고 초포 서쪽 나루는 배 탄 손님이 만리 정도 되고, 모래 언덕 남쪽 골은 나라의 운명이 천년의 세월이로다.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이 예언한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이 예언한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
임진왜란의 중심에서 조정공론을 이끌었던 영의정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은 일찍이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을 예언했다.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은 4개의 정부 부처가 계룡산 근방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계룡 4부설의 첫 번째가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두 번째가 서유군부(西有軍府), 세 번째가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네 번째가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이다.
그런데 류운룡 선생의 말대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서면서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라는 말이 들어맞았고, 서쪽에는 육해공 3군사령부인 계룡대가 옮겨오면서 서유군부(西有軍府)라는 말이 들어맞았다. 또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서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라는 말이 적중되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가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로 앞으로 중앙에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불교계의 학승(學僧)으로 유명한 탄허스님,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탄허 기념박물관의 주인공 탄허(呑虛) 스님께서는 앞으로 다가올 후천세계에서는 계룡산을 주축으로 하여 새세상의 운세가 돌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풍수지리학의 원리로 신도안은 3백리 역룡진처(逆龍盡處)의 회룡고조맥(回龍顧祖脈)아래 산·수태극(山·水太極)에 자리한 명당 중의 으뜸은 제자봉(帝字峰) 아래에 있는 자미원국(紫微垣局)으로 전 세계를 다스릴 황제 정궁(正宮)으로 알려진 터다.
류운룡(柳雲龍)의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서유군부(西有軍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섰다.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유군부(西有軍府),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남쪽에는 계룡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 앞으로 중앙에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150년 전, 이땅에 다녀가신 증산 상제님께서는 계룡산 아래 충청도 연산(連山)에서 앞으로 지구촌을 통솔할 중심 센터, 상생월드센터가 들어설 자리를 150년 전에 미리 예비한 공사가 있다. 상제님께서 계룡산 아래 충청도 연산(連山)에서 앞으로 지구촌을 통솔할 상생월드센터를 건설할 자리를 보신 공사이다.
道典 3:298) 충청도 계룡산 아래 연산에서 보신 도성덕립(道成德立) 공사
봄에 충청도 연산(連山)에 가시어 머무르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도복을 입으시고 홍포선(紅布扇)을 드신 채 일산을 받치게 하시어 백마를 타고 나서시니 그 모양이 마치 새신랑 같더라. 호연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상제님의 눈썹을 보고... 호연이 “왜 그러고 나선대? 어디로 장가가요?” 하니 상제님께서 “저어리!” 하시며 일러 주지 않으시니라.
道典 5:306) 이곳이 제왕지지(帝王之地)니라
상제님께서 얼마를 더 가시다가 문득 한 자리에 멈추어 서시더니 오른발로 땅을 힘껏 세 번을 구르시며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이곳이 제왕지지(帝王之地)니라! 여기서 왕이 나온다! 장차 여기에서 전무지후무지법(前無知後無知法)이 나오리라. 태전을 집을 삼고 인신합덕(人神合德)을 하리니 태전이 새 서울이 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이 아니라 오로봉전태전이니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만국을 살려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피고
도술 문명의 대운은 우주 저 끝까지 통하리라.
道典 5:362) 후천대개벽의 여명
하루는 김병선(金炳善)에게 글 한 장을 써 주시니 이러하니라.
日入酉配 亥子難分
일입유배 해자난분
日出寅卯辰 事不知
일출인묘진 사부지
日正巳午未 開明
일정사오미 개명
日中爲市交易退 帝出震
일중위시교역퇴 제출진
해는 유시에 들어가는데
해시와 자시의 변별하기 어려움에 필적하고
해가 인시, 묘시, 진시에 나오는데 아직 세상일을 알지 못하며
해가 사시, 오시, 미시에 남중하는 때
나의 도(道)와 세상일이 환히 드러나느니라.
해가 정중하여 문명의 장이 서고 교역이 끝나 장이 파하면
태조가 진방에서 나오시느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닭이 울면 새벽이요 개가 짖으면 사람이 다니게 되느니라.
금년 운수가 명년 4월까지 가느니라.” 하시고
“진사(辰巳)에 성인출(聖人出)하고 오미(午未)에 낙당당(樂堂堂)이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명장 나는 날엔 일체 개심(開心)하느니라.” 하시니라.
“진사(辰巳)에 성인출(聖人出)하고: 갑진(甲辰) 2024년과 을사(乙巳) 2025년을 말한다.
오미(午未)에 낙당당(樂堂堂)이라.”: 병오(丙午) 2026년과 정미(丁未) 2027년을 말한다.
道典 7:60) 천지대세 사오미 개명 도수
하루는 안내성(安乃成)이 “대개벽의 때는 언제 오나이까?” 하고 여쭈거늘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가 새끼손가락을 펴 여섯을 세어 보이시며 “이것이 조화봉(造化棒)이다. 새끼손가락이 조화 낸다.” 하시고 시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나도 가네 나도 가네
임을 따라서 나도 가네
저 임을 따라서 나도 가네
십리사장(十里沙場) 너른 들에
오색포장(五色布帳) 둘러치고
일이삼사오륙(一二三四五六) 중에
고장(鼓杖) 소리만 둥둥 난다
인묘진(寅卯辰) 사부지(事不知)
사오미(巳午未) 개명(開明).
이에 내성이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다시 노래를 부르시니 이러하니라.
난(難)이라 난이라 사난(四難)이로구나
저 건너 갈미봉에 비 몰아온다
우장을 허리에 두르고 논에 지심이나 매러 가자
어렵다 어렵다 네 가지가 어렵구나
부자 걸뱅이 되는 것 똑똑한 놈 병신 되는 것
유식한 놈 무식 되는 것 양반 상놈 되는 것.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가 새끼손가락을 펴 여섯을 세어 보이시며 “이것이 조화봉(造化棒)이다. 새끼손가락이 조화 낸다.” 하시고: 人事의 대권자가 출세하는 때.
道典 6:128) 도통자가 나온다
1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과거에는 도통이 나지 않았으므로 해를 끼치면 해를 받았지만
2 이 뒤에 도통한 사람이 나오면 해를 끼치다가는 제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3 이 뒤에 도통자가 나오면 조심조심하라.” 하시니라.
종통맥이 사는 맥
4 사람은 그 사람이 있고, 도는 그 도(道)가 있고, 땅은 그 땅이 있느니라.
5 시속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연원(淵源)을 잘 바루라.
6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道典 6:74) 도운의 매듭 공사, 도통판의 진주 도수
1 상제님께서 평소 성도들과 노실 적에 종종 ‘가구(假九) 진주(眞主)치기 노름’을 하시니라.
2 하루는 상제님께서 “다 터라.” 하시고 투전을 들고 탁 치시며 “○씨가 판을 쳤다!” 하시고 다 거두어들이시며
3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다 죽는다. 잘못하다가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니라. 알겠느냐?
4 도로 본자리에 떨어진단 말이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 봉사 잔치란 말이다.
5 아는 사람은 알지만 누가 가르쳐 주랴. 제가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6 또 말씀하시기를 “끝판에 ○씨가 있는 줄 몰랐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끝판에 ○씨가 나오니 그만이로구나.
7 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라.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하시니라.
8 경학이 여쭈어 말하기를 “도통판은 어디 있습니까?” 하니
9 말씀하시기를 “가르쳐 주어도 모르리라. 똑똑히 들어 봐라.
10 전라도 백운산으로 지리산으로 장수 팔공산으로 진안 운장산으로 광주 무등산으로 제주 한라산으로 강원도 금강산으로, 이처럼 가르쳐 주니 알겠느냐?
11 알기 쉽고 알기 어렵고 두 가지라. 장차 자연히 알게 되리라. 내가 가르치니 알게 된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붉은 닭 소리치고. 정유(丁酉)생 김호연의 증언으로 임신(壬申: 道紀 122 , 1992)년에 『도전』이 출간되어 상제님 도법의 전체 틀을 볼 수 있는 문명이 열리고, 이로써 도통판이 나와 진법 도운이 매듭 단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道典 6:71) 후천대개벽의 추수운, 갑자꼬리 도수
1 구릿골에 계실 때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과 같으니라.
2 상씨름 딸 사람은 술이나 먹고 잠이나 자면서 누워서 시치렁코 있다가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들을 칠 때, 그제야 일어나서 판 안에 들어온다.
3 다리를 둥둥 걷고 징검징검 들어가니 판 안의 씨름꾼들 여기저기 쑤군쑤군.
4 들은 체도 아니하고 샅바 잡고 한 번 돌더니, ‘상씨름 구경하라. 끝내기 여기 있다.
5 갑을청룡(甲乙靑龍) 뉘 아닌가. 갑자(甲子)꼬리 여기 있다.
6 두 활개 쭉 펴면서 누런 장닭 두 홰 운다. 상씨름꾼 들어오라.’ 벽력같이 고래장 치니 어느 누가 당적할까?
7 허허, 헛참봉이로고. 소 딸 놈은 거기 있었건만 밤새도록 헛춤만 추었구나.
8 육각(六角) 소리 높이 뜨니 상씨름이 끝이 났다.” 하시니라.
상씨름꾼 들어오라: 상씨름꾼은 추수 일꾼이다. 이는 제3변 도운의 추수운 개척 시대의 대세몰이를 말씀하신 것이다.
갑을청룡(甲乙靑龍) 뉘 아닌가. 갑자(甲子)꼬리 여기 있다.: 갑자년은 상제님께서 동학의 교조 최수운 선생에게 내리셨던 천명과 신교를 거두시고 친히 인간 역사에 등장하신 해이다. 황현(黃玹, 1855~1910)의『오하기문(梧下記聞)』에 “마조패(馬弔牌)라는 놀이가 있어 (중략) 놀이꾼은 아홉을 얻으면 큰 소리로 ‘갑오갑자미(甲午甲子尾)’라고 외쳤다.(중략) 이는 갑오가 갑자의 꼬리가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허허, 헛참봉이로고. 소 딸 놈은 거기 있었건만 밤새도록 헛춤만 추었구나. 헛참봉, 헛춤: 난법판에 묵은 기운을 가진 자, 기회주의자, 자기중심주의자, 속물의식을 가진 자들의 말로를 경계하신 것이다.
상씨름이 넘어가는 상황
9 하루는 상제님께서 옛 시 한 수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10 胡來不覺潼關隘요 龍起猶聞晉水淸이라
호래불각동관애 용기유문진수청
오랑캐는 동관의 험함을 모른 채 쳐들어오고
용이 일어나자 진수(晉水)는 오히려 맑아졌다 하네.
인류의 꿈은 간도수(艮度數)에 담겨있다. 간도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간艮은 열매다. 간艮은 초목의 열매요, 인간의 열매요, 문명의 열매이며 역사의 열매다. 방위로 말할 때는, 문왕팔괘에서 동북방이 간방(艮方)이라고 했다. 동북방에서 변화가 끝나고 새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동북방에서 열매를 맺는다. 동북방에서 변화의 한 주기가 끝난다. 그래서 동북방을 간방艮方이라고 한다.
인류문명도 뿌리문화에서 줄기문화를 거쳐 열매문화로 완성된다. 인간도 문명도 가을철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면 헛일이다. 간도수란 바로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추수정신’을 상징한다. 이걸 느껴야 한다. 열매는 ‘씨종자’다. 열매 속에 뿌리, 줄기, 이파리, 꽃 등 변화의 모든 과정이 다 들어있다. 열매에는 종終과 시始가 함께 존재[終於艮 始於艮]한다.
‘종만물시만물자(終萬物始萬物者)는 막성호간(莫盛乎艮)이라, 간艮은 만물의 변화를 끝매듭 짓고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곳으로, 간방艮方보다 더 번성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이 간艮보다 더 번성한 게 없다. 간艮보다 그 변화가 더 강력한 것이 없다. 간방보다 변화의 모습들이 더 강렬하고 구체적인 데가 없다. 간방艮方 한반도는 분단이 된 채 이념의 극한 대결이 아직도 안 끝났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최후의 분단국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한민족은 역사의 진실이 왜곡 날조되어 혼을 완전히 상실했다. 동방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는 길이 무엇인가? 내가 한국인이 되는,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도가 어디 있는가? 시원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혼을 되찾아야 한다.
세계사 속에서 사라진 한국 고대사
실제로 서양 여러 나라의 역사 교과서에는 고대 한민족의 실체가 단 한 줄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한반도의 북부는 한사군을 통해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터무니없는 역사가 마치 진실인 양 그대로 유포되고 있다. 캐나다의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쉬 콜럼비아 대학의 한국학과 학장 베이커는 ‘한국역사는 한사군 이후부터 기록에 있으므로 진정한 한국사는 고려부터이다. 그 이전은 하나의 통합된 나라가 아니었고 단지 고구려인, 신라인, 백제인들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북미에서 가르치고 있는 ‘한국 고대사의 실상’이다. 이미 동북공정은 캐나다인들의 의식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지금 이 순간 일본과 중국은 동서고금을 통해 지구촌의 어떤 나라도 저지른 적이 없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우리의 상고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너무도 오랫동안 왜곡과 말살의 질곡에 갇힌 채 신음해 왔다. 역사의 맥이 단절되어 천애의 고아 아닌 고아가 된 동방의 한민족, 선천 인류사에서 강대국들이 저질러 온 온갖 불의가 ‘동북아의 고대사’에 압축되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망언, 벼랑 끝에 서 있는 한민족의 미래, 동북아의 시원역사, 그 진실을 바로잡지 못한 채 오늘날 한민족은 혼 빠진 역사의 주인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어의 코리아(korea)가 고려에서 온 것이다. 고려의 창업시조 왕건이 나라 이름을 정할 때 북방의 고구려 유민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고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는 북쪽의 대조영(大祚榮)의 아버지 대중상(大仲象 : 대진국 열황제)이 세운 대진국(大震國 : CE 668~926)과 남쪽의 소위 통일신라라고 하는 후신라의 남북국 시대가 있었다.
또 그 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가 있었고, 그보다 앞서서는 열국시대가 있었다. 즉 북부여를 중심으로 백제의 전신인 마한, 가야 땅의 번한, 신라의 전신인 진한, 평양 쪽의 최숭(崔崇)이 세운 낙랑국(樂浪國 : BCE 195~CE 37), 동부여, 동옥저, 동예 등의 여러 나라 시대가 있었다.
낙랑국은 서기전 195년 12월, 연나라의 인구 증가로 인해 압박이 가해오자 준왕(準王, BCE194~ BCE 108)이 다스리던 번조선에 살던 최숭이 백성들을 이끌고 대동강 유역(지금의 평양)으로 이주하여 낙랑국을 세웠다. 흔히 알고 있는 중국의 한 무제가 설치했다고 하는 한사군의 낙랑군과 최숭의 낙랑국은 전혀 다르다.
옛 고조선(단군조선)은 과연 한나라에게 망했나?
전국을 통일한 진(秦 : BCE 221 전국통일 ~ BCE 207 멸망)나라가 15년 만에 망하고 난 후, 한 고조 유방(劉邦)과 초패왕 항우(項羽)가 6년 동안 아주 피가 터지도록 싸운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 : 전한 BCE 206~CE 8)제국을 열게 되는데, 그 7대 임금이 무제(武帝 : BCE 141~ BCE 87)다. 오늘의 사가들은 북쪽의 흉노를 굴복시킨 한 무제가 자신감을 얻어 동북방의 고조선을 쳐들어왔다, 그리하여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자리에 식민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番朝鮮)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또한 진조선(辰朝鮮)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화란 속에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시대가 마감(BCE 238년)된 것은, 찬적 위만(衛滿)이 번조선을 점거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BCE 194년) 4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BCE 722~ BCE 403,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겠는가!
역사학계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위만조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위만(재위 BCE 194-BCE 180)은 본래 중국 한족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의 부하이다. 중원을 평정한 한 고조는 여태후와 더불어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이 때 연나라 왕 노관은 흉노로 달아나고, 위만은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 천 명과 함께 왕검성에 와서 번조선의 준왕에게 거짓 투항을 했다. 이에 준왕은 덕으로써 그를 받아 주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로 임명까지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족 망명 집단을 이끌고 몰래 세력을 기른 위만은 이듬 해 준왕을 배반하고 왕검성을 쳤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그대로 둔 채 스스로 왕이 되었다(BCE 194).『삼국유사』에서 말한 위만조선은 바로 우리 민족의 서쪽 영토였던 번조선의 한모퉁이를 잠깐 강탈하여 지배했던 위만정권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 역사학계에서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준왕을 잡아먹은 위만 같은 배은망덕한 자가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사마천의『사기』에도 분명히 위만을 연나라 사람[蒸人]이라고 기록했을 뿐 아니라, 안정복의『동사강목』에서는 ‘위만은 나라를찬탈한도적’이라했고,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은 ‘위만은 한 명의 강도에 불과하다[尺一强盜]’고 하였다. 이처럼 위만은 중국 한족의 인물로서,한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떠돌이 도적인 것이다. 위만정권은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러 밖으로는 한무제의 침입과 안으로는 지도층의 분열로 인해 결국 망하게 된다(BCE 194-BCE 108)
단군조선(고조선)의 역사를 부활시킨 동명성왕, 고두막한
한 무제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온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高于婁) 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다.
고두막한은 기원전 108년, 졸본(卒本)에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東明 : 동명부여, 또는 졸본부여)’이라 바꾸고 동명왕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기원전 87년에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조선 역사 부활의 푯대를 다시 세우니,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이 때 본래 북부여 4대 단군의 승계자인 해부루(解夫婁)가 동쪽으로 가서 가섭원(迦葉原) 땅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동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동부여(東夫餘)라 했다. 해부루는 북부여 4대 단군의 동생이다. 그리하여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고두막 단군이 되는데, 그때부터 북부여의 후기시대[後北夫餘]라고 한다.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으로부터 6대 만인 고무서(高無胥) 단군 때에 막을 내린다. 6대 고무서 단군은 딸만 셋이었다. 그 둘째딸이 소서노(召西弩)인데, 고주몽과 혼인을 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토록 한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었으며, 그 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변경하여 고구려 700년 역사의 창업 시조가 된 것이다. 이것이 고조선(단군조선)이 멸망한 후 열국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인들은 부여사를 말살했을까?
북부여가 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역사에서는 북부여 역사라는 게 완전 말살됐다. 그 역사의 원형이「삼성기三聖記」상, 하 두 편과 「단군세기檀君世紀」에 나온다. 「단군세기」에는 47대 단군 역사가 나오고「북부여기北夫餘紀」상, 하에는 북부여의 역사가 나온다.「북부여기」상에 해모수 단군서부터 역대 단군들이 나오는데, 5대 단군 고두막한이 바로 동명성왕이다. 고두막한은 중국 한족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놓인 우리 동방 조선의 역사를 부활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중국 한 무제가 고두막한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가 참패를 당했다.
한 무제가 패퇴한 대사건,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였다.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당태종이 안시성에 와서 양만춘 장군한테 화살을 맞아 눈 빠진 것보다 더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가들과 국내 사대주의자들이 이 북부여 역사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민족 역사의 맥, 사통의 허리가 잘려버렸다. 그래서 국통 맥이 연결이 안 된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부여의 역사를 중국의 사료에 맞추어 꿰매고 있다. 그러니 너덜너덜하다. 이렇게 꿰매면 이런 작품이 나오고, 저렇게 꿰매면 저런 작품이 나오고, 전부 애꾸눈이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예전에 방영했던 주몽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는 고주몽이 해모수의 아들로 나온다. 그게 다 중국 측 사료를 보고 만들어서 그렇다. 해모수와 주몽은 무려 120여년 이상 차이가 난다. 해모수는 북부여의 초대 단군이고 주몽은 6대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인데, 어떻게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란 말인가!
북부여는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열국시대의 역사의 맥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부여사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 한민족을 제대로 알려면,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알려면 부여사를 알아야 한다.
한편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망명길에 오른 준왕은, 황해를 건너 지금의 금강 하구지역으로 피신을 왔다. 군산으로 왔다고도 하고 익산으로 왔다고도 하는데, 이후 준왕은 오늘의 청주 한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로써 대륙을 호령하던 북삼한의 시대가 끝나고, 한반도의 한강 이남 지역의 남삼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간도수(艮度數)가 뿌리내리는 과정인 것이다.
선천, 봄여름우주 상극의 이법 속에서 역사가 발전하는 상(象)을 나타내는 문왕팔괘의 진방(震方, 帝出乎震)에서 문명의 씨앗을 뿌린 제(帝,상제)께서 후천 가을우주 결실문화, 상생의 이법을 나타내는 정역팔괘의 간방(艮方, 成言乎艮)에서 출세하는가를 공자께서 말씀한 진변이간(震變爲艮)의 뜻에서 알수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통맥을 보면, 고조선(단군조선)은 나라를 삼한(三韓)으로 다스렸다. 이것을 보는 것이 우리 한민족 역사의 뿌리와 진리의 근원, 깨달음의 근원, 우주론의 근본 문제다. 동방은 조물주를 삼신(三神)이라고 한다. 조물주의 창조의 덕성인 조화신造化神(父: 만물을 내시고), 교화신敎化神(師: 以神設敎), 치화신治化神(君: 다스리시고)의 창조의 본성을 가지고 삼신(三神)이라 하는 것이다. 삼신(三神)의 본성은 첫째, 만물을 창조하는 조화신의 역할이 있고, 둘째, 깨달음을 열어주는, 가르쳐서 변화시켜주는 교화신의 역할, 셋째는 다스리는, 통치하는 치화신의 역할이 있다.
동방의 이 삼신三神 의 문명을 열어서 제도화 시키는 과정이 바로 한민족의 뿌리 역사인 환국-배달-단군조선의 역사다. 즉 우리 민족의 시원 국가인 환국, 배달, 고조선은 삼신(三神)의 삼수三數 법칙으로, 삼신의 세 가지 창조 덕성을 생활 문화로 뿌리내린 것이다. 조물주 삼신 상제의 첫 번째 본성인 조화신(造化神)의 특성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 조화시대 환국(桓國)이다. 그 때는 모든 백성이 광명(white shaman)으로 살았다. 밝아서 아주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았다.
그 다음, 교화신(敎化神)의 기운으로 문명을 열어 나간 나라가 배달국이다. 문자를 만들고 농경문화를 열고, 시장문화를 열어 교역을 하고, 약재를 만들어 병을 고치는 등 실제로 문명을 열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세 번째 치화신(治化神)의 시대가 고조선(단군조선)이다. 고조선(단군조선)을 창업한 단군성조는 훨씬 더 지존하신 분이다. 이분은 삼신 상제의 정신을 인간의 역사 통치 질서에 뿌리를 내려 나라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다시 말해서 뿌리 문화를 종합하여 삼신 상제의 가르침을 통치 역사로 제도화시켰다. 이것이 중요하다.
교화시대인 배달국을 연 거발환 환웅이 백두산 신시(神市)에 나라를 처음 건설할 때 환국으로부터 받아내린 가르침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 광명이세(光明以世)다. 백성들을 다스려 진정한 하늘 백성으로 만드는 통치 이념을 배달국 환웅천황께서 처음으로 열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삼신의 질서, 삼신 상제의 창조 코드인 삼수(三數)를 통치원리로 하여 나라를 삼한三韓으로 나눠 다스린 것이 고조선, 정확히 말해서 단군조선이다. 이 단군조선을 후대의 한양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조선, 고조선이라고 한다.
우리 역사의 국통을 아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게 아니다. 우리 민족이 섬겨 왔던, 조물주의 창조 섭리,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삶의 과정과 역사의 깊은 섭리를 아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간도수(艮度數) 실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단군조선이 건국된 지 1,048년이 지나,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22대 색불루 단군에 이르러 도읍지를 백악산 아사달(현재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를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병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부단군이 다시리던 번한(番韓)과 마한(莫韓)에 병권을 일부 나누어 줌으로써 삼한 체제의 동요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삼한관경(三韓觀境)의 체제는 무너지고 대신 두 분조의 독립된 병권이 인정되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삼조선 체제(分權管境)로 개편되었다.
그 후 43대 물리 단군의 재위 말기인 기원전 426년에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켜 아사달이 점령되고 물리 단군이 피난길에 붕어하고 만다. 이 때 구물 장군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토벌하고 44대 단군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개칭하고 백악산에서 장당경(요령성 개원)으로 천도하였다.
나라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서 다시 살려보려고 몸부림쳤으나 이미 진조선(진한)의 중앙정부 권력은 크게 약화되고 번조선(번한)과 마조선(마한)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중앙정부인 진조선의 권한이 축소되고, ‘좌우의 두 조선’이 형식적으로 진조선을 받드는 형국이 되자 장군들의 반역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고조선은 점점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238년, 47세 고열가 단군에 이르러 마침내 고조선은 2,096년의 장구한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고조선(단군조선)이 망하면서 역사의 무대는 북삼한에서 한강 이남의 남삼한으로, 대륙에서 반도로 옮겨오게 되었다. 즉, 동방 문명의 원 핵 자리요 숨구멍인 동북 간방(艮方)으로 조여들어 온 것이다. 이로써 한민족은 본격적인 간(艮)도수 실현의 역사 시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구변지도(九變之道)’끝에 이루어지는 ‘대한(大韓)’
고조선(단군조선)이 어떻게 망하느냐,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느냐는 것을 예언한 사람이 있다. 9천년 역사를 이어 온 우리 한민족의 국운을 예언한 위대한 인물, 그가 바로 고조선 6대 달문 단군 때의 신지(神誌) 발리(發理)이다.
그는 대우주의 조화옹 삼신 상제을 예찬하고 한민족사의 뿌리 되는 역대 열성조의 성덕과 치적을 칭송하면서, 단군조의 앞날과 한민족의 국운에 관한 예언을 남겼다. 그것이『신지비사(神誌秘詞)』이다.
여기서 그는 단군조선은 삼신 상제의 섭리로 수도 셋을 두고 세 임금이 다스리는 삼경의 균형이 무너지면 고조선이 망한다고 했다. 이 땅 동국의 역사는 아홉 번 바뀐다[구변지도(九變之道)]’고 했다. 나라 이름이 크게 아홉 번 바뀐 뒤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신지(神誌) 발리(發理)의 예언처럼 실제로 우리나라는 ①환국 ②배달 ③조선 ④북부여(열국시대) ⑤고구려(4국시대) ⑥대진국(발해)·신라 ⑦고려 ⑧조선 ⑨대한민국으로 아홉 번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신지(神誌) 발리(發理) 가 한민족 통사의 대강을 논하면서 전하고자 한 진정한 뜻은 과연 무엇일까?
아홉 번 변한다는 것은 열 번째로 나라이름이 바뀌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분열의 극단을 뜻하는 ‘9’수의 천지 상수 원리에 의해 나라이름이 아홉 번 변하면서 한민족이 선천 분열시대를 종결짓는다는 것이며, 나아가 10무극의 통일시대인 후천세상을 열고 완전한 통일국가로 거듭 태어나리라는 의미인 것이다. 아홉 번은 3×3=9로, 생장성(生長成)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를 의미한다.
삼신 상제의 섭리에 의해 1단계 환국-배달-조선의 뿌리국가 시대, 2단계 북부여를 중심으로 하는 열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대진국(발해)과 후신라의 남북국시대, 3단계 단일왕조 시대인 고려-조선을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이 열렸는데 이 나라가 또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다. 이처럼 세 번 변화를 거쳐 온 한민족의 분열과 통일의 역사 과정은 장차 지구의 중심 땅이 될 간방艮方의 남조선에서 실현되는 인류문명 대통일 도수, 즉 간(艮) 도수에 의해 그 종지부를 찍는다.
인생사를 대국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여는 지름길이 바로 역사를 아는 데에 달려 있다. 역사란 다름 아닌 인간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지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문명 진화의 총체이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 역사가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모르면 현재를 진단할 수도 없고,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 지구촌의 정세를 훤히 꿰뚫어보는 국제정치의 대가라 해도, 인류의 원형 문화와 시원 역사를 모르고서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문명, 인류의 미래 문명을 알 수도 준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왜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는가‘를 알 수 없다. 인생의 희망찬 미래를 열기 위한 진리의 눈을 뜰 수가 없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마치 자식을 낳아 놓고서 성(姓)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지금 한국인은 제 나라 역사도 모르는 정신적 미아로 살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진정한 한국인으로 살려면,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 그 중에서도 한민족의 창세역사와 원형문화를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뿌리 역사는 왜곡되어 잃어버리고 꼬리역사만 배우고 있다. 우리의 뿌리 역사와 한(韓) 문화의 원형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은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 모두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의 시원 역사를 단절시키고 파괴한 여러 손길이 있었다. 그 가운데 첫째가, 중국에 의한 역사 왜곡과 그 왜곡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우리 유학자들의 존주사대尊周事大 사상’이다.
공자가 주창한 유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요, 그 밖의 민족은 중국에 예속된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제창한다.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은 고려와 조선의 존화(尊華) 사대주의자들은 이 중화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역사에 끼친 해악은 너무나 심각하다. 고려의 유학자들은 한민족의 국통(國統) 맥이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 남삼한, 신라로 연결되는 것으로 왜곡하였다. 그에 앞장 선 인물이 고려 중기 때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묘청의 북벌운동을 진압하고 우리민족의 고유사상, 낭가사상(郎家思想)을 말살한 경력을 가진 삼국사기의 저자로 신라의 독자적인 연호사용을 사대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하고 우리민족을 침략한 당나라 이세민을 우리 당태종(我唐太宗)”이라고 칭하였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비아(非我)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으로 우리 역사를 편찬할 때 발해사(渤海史)를 논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국을 지극 정성 섬기며 삼국사기 서술 주체가 중국이고, 객체가 한국이다.
그의 열렬한 모화(慕華,중국의 사상을 숭상하여 섬김)정신은 망국멸족(亡國滅族, 나라와 민족을 함께 망하게 함)의 사대사관의 전통이 되어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위징 등이 쓴『수서(隋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구려(高句麗)가 교오불공(驕傲不恭)해서 제장토지(帝將討之)라.” 고구려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공손하지 않아서 수양제가 장차 토벌을 하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고구려를 아(我)로 바꿔놓고는 "아(我)가 교오불공(驕傲不恭)해서, 제장帝將, 이걸 상장토지(上將討之)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쓰면서, 우리가 교만하고 오만해서 중국의 임금이 치려고 했다… 는 식으로 쓸 수가 있을까? 참으로 황당한 내용인 것이다. 이처럼 "김부식은 비아(非我)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신라 650년 진덕여왕 4년에 당나라 고종의 ‘영휘’라는 연호를 처음 쓴 부분에 대해서도 주석을 달기를, “옛날에 법흥왕이 연호를 스스로 썼는데, 아, 편방(偏邦,중국의 변두리)의 소국으로서 왜 연호를 쓰나?
당 태종이 꾸지람을 했는데도 연호를 고치지 않다가, 650년에 고종의 연호를 갖다 쓰니, 허물을 능히 잘 고쳤다고 할 수 있도다” 이런 식이다. 이것이 국보로 보존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나오는 구절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정이 이러하니 중국의 입장에서 쓰여진 사대주의 책이라고 비판받아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통해서 중국을 흠모하고 존중하는, 존화사대주의 사상을 정립한 것이다. 그가 지은 삼국사기는 그 이후의 모든 역사왜곡의 기본 원전이 되었다.
한국을 점령한 일본제국주의자들도 바로 이 책을 얼씨구나 하고 악용하여 소위 반도사관, 식민사관, 왜식사관을 날조해 낸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러한 사관에 따라 학교에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삼국사기를 저술하면서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발해)의 역사는 완전히 지워버린 반면, 같은 시대 신라 역사는 망하는 날까지 세세히 기술하였다. 그러면서도 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은 사대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묘청, 정지상 등이 고토 회복을 위한 발판으로 벌인 서경천도 운동을 벌였을 때, 김부식을 대표로 하는 집권층 유학자들이 이것을 권력 장악을 위한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유교를 국교로 신봉하는 조선은 개국 초 춘추(공자)와 자치통감 강목(주자)만 사필(史筆)로 여기고, 한민족 정통사서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압수 소각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철학,종교,문화의 중요한 자료들이 말살되었다. 주체적인 사관을 주장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이였다. 그래서 우리역사가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서 철저히 왜곡되고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모든 역사가 왜곡이 되었다.
태종은 서운관(書雲觀)에 보관되어 있던 고유사서들을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하여 소각하였으며,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전국 관찰사에게 사서 수거령을 내렸다. 이렇게 우리의 정통 사서들이 소실된 것은, 오늘날 우리 역사의 올바른 인식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한민족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국측 사료와 이 땅의 사대주의 사서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 청 태조 누루하치가 보낸 국서를 보면 조선의 사대 근성이 적나라하게 고발되어 있다. “요동은 본시 조선의 국토다. 지금 명나라 사람들이 그 땅을 빼앗았는데, 너희는 명나라가 원수인 것도 모르고 도리어 신복하고 있다”고 조선을 꾸짖고 있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조선 유학자들이 보였던 중국의 사상을 숭상하여 섬기는 모화정신(慕華精神)이다. 이것은 진실로 한국사의 뿌리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망국멸족(亡國滅族)의 표본이다.
세종 때 최만리는 훈민정음 제정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조종(祖宗)” 이래 지성으로 중국을 사사(師事)하고 모두가 중국 제도를 본받아 왔는데 만약 훈민정음이 중국에 전해지는 날에는 사대모화에 부끄러운 일이라“하였다. 조선의 학자들은 명(明)을 ‘본조(本朝)’,즉 ‘내 나라의 조정’이라 부르며,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단군시대는 아득한 태고시대라 증명할 수 없고, 기자(箕子)가 봉해지고 나서야 겨우 문자를 통했으며, 삼국시대 이전은 별로 논할 만한 것이 없다“고 폄하하였다(대동야승(大東野乘) 기묘록별집(己卯錄別集)
또한 명나라 군주를 ‘우리의 황상(皇上)이라 하고, 명나라 조정을 ’천조(天朝), 또는 ‘성조(聖朝)로 불렀다(본국청개종계주본(本國請改宗系奏本) 기자께서 동쪽으로 오셔서 가르침을 베풀었으니 오랑캐가 바뀌어 중국인[夏]이 되었고 드디어 동쪽의 주(周)나라가 되었습니다['숙종실록(肅宗實錄)' 7, 9]”라고 하였다. 옛날 유학자들의 의식이 다 이렇게 되어 있다. 유가문화의 썩어빠진 역사의식으로 인해 나라가 망해 버렸다. 伏草 최인(崔仁)은 이 같은 행태를 두고 ‘조선은 한일합병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에 한중합병으로 망하였다’라고 일갈하였다.
조상의 비문 첫 머리에 유명조선(有明朝鮮:명나라에 속한 조선)을 내세우고, 조선 백성을 명(明)의 신민(臣民)이라 하고, 한문은 진서(眞書)로 존중하면서 한글은 언서(諺書)로 무시하였으니, 분명히 한중합병이라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혼 빠진 민족이 아니고 무엇인가!! 단재 신채호는 외래종교, 외래사상에 물들어 역사와 문화를 다 잃어버린 가련한 한민족에 대해 이렇게 통탄하였다.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함으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불교의 스님,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조선조에서 석유환국(昔有桓國)의 환국을 자신이 주석을 달면서 ‘위제석야(謂帝釋也)’라 하여 환인천제의 환국을 불교의 제석환국으로 바꾸고, 또한 환웅천황이 내려오신 태백산(백두산)을 지금의 묘향산이라 하고 단군 왕검의 도읍지인 아사달(阿斯達)을 지금의 평양이라고 하는 등 배달국, 고조선의 광활한 영역을 반도 안으로 축소하였다.
고려 때 송(宋)나라 사신이 기자묘(箕子墓)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자 그 때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고 하자, 고려 숙종 7년(1102) 예부상서 정문(鄭文)이 무주고총(無主古塚)을 하나 찾아 임금께 청하여 서경(평양)에 가짜 기자묘(箕子墓)와 기자 사당을 만들었다. 또한 서경의 반듯한 도로 흔적들을 기자(箕子)가 만들었다는 정전제(井田制)의 증거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 기자 정전터와 평양 을밀대 북쪽에 있던 기자묘를 조사하면서 그 허구가 밝혀졌다. 기자 정전터는 고구려시대 도시 구획 흔적이었고 기자묘에서는 사기 파편과 벽돌조각만 나왔다.
기자에 관한 진실을 말하자면, 그는 무왕에 의해 풀려난 후 상나라 유민을 이끌고 당시 고조선(번조선)의 국경지역인 산서성 태원(太原)으로 이주하였다. 망명지 조선 땅에서 6년 정도 살다가 고향 서화(지금의 하남성 서화현)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였다.(산동성 조현에서 서남쪽으로 약 15km 왕성두촌이라는 작은 마을의 들판에 작고 초라한 모습의 기자묘가 있다.) 당나라 때 사마정의 '사기색은(史記索隱)'은 “기자의 묘가 하남성 몽현[蒙縣: 현재의 상구현(商邱縣)]에 있다”고 썼다. 최남선도 “평양의 기자묘는 고려 중기 이후 견강부회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기자조선설은 “중국인이 이민족을 동화하는 정책의 산물”이라고 했다.
중국에 의해 왜곡 조작된 기자조선의 실체
‘원래 은나라에 기자, 비자, 미자라는 세 분의 어진 현인이 있었는데, 은나라가 망하자 그 중 한 사람인 기자가 동방으로 가서 조선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기史記』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서 “봉기자어조선封箕子於朝鮮”이라고 하여, 주나라를 연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임명했다고 했다. 하지만 본래 기자는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紂의 이복형제로서 ‘기’라는 땅의 제후였다. 그는 은나라가 망한 뒤 벼슬을 않겠다 하고서 옛 고국으로 내려간 사람이다. 그런 그가 무슨 왕이 되었단 말인가. 사마천이 붓대를 갖고 그렇게 조작을 한 것이다.
‘단군조선’이란 말은 전혀 없고, 약 3,100년 전에 기자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그런 거짓말 역사를 쓰고 있다. 이는 이 땅의 역사가 중국의 제후국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매도하기 위한 것이다. 1963년 6월28일 주은래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과 조선,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 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고 또한 이 지방에 가서 현장조사하고, 비문과 출토문물을 찾고, 역사흔적을 연구하는 것은 또한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들을 돕도록 하겠다. 이렇게 긴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문자로 기록된 역사자료도 연구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려면 중국과 조선 두나라 동지들이 반드시 하나의 공통된 관점을 세워야 한다.
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당신들을 침략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 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이하 생략
俄們常常把 東方的人稱爲東夷 而夷字和人字是通用的仁字和人字也是出於一源 那魔漢語中 ‘人’的稱謂 支於還有出於東方的可能…. 假若夷人先成文化的先進 夷人先用了‘人’字作爲全人類的名類 西方候起的部族 可能再爲借用的(中國文化論集(2), 中韓關係論略).
대만학자 노간(勞幹)은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2), 中韓關係論略)에서 “우리들은 동방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후대에 와서 서방사람들이 이를 빌어 쓴 것이다.”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러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량지(徐亮之) 교수는《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 10월 초판) 에서 이렇게 썼다.
“4,000 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曆法)은 사실 동이(東夷)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 선생이 미국 공군지휘 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중국학자 서량지(徐亮之)교수가 한 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중국 역사학자인 왕동령(王棟齡)은《중국사(中國史)》에서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苗族(東夷)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 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句麗)는 구려(九黎),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黎東夷國名也 九黎君號蚩尤是也 蚩尤古天子 三苗在江淮荊州 (史記, 五帝本紀).
“4천년 전 (…) 현재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등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는《중국사》에서 "주전 3,000년경 동이족(東夷族)은 이미 황하 양자강(揚子江)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東夷族)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고 하였다.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칭(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고 한다. 이때 장 총통은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장 총통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동지적 입장에서 이런 역사인식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구 주석은 충격과 함께 자괴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뒷날 술회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제가 중국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김구 주석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고 한다.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揚子江) 남쪽 절강성(浙江省)이므로 옛 백제는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량지나 임혜상 같은 양심있는 중국사학자들은 중국역사의 상고사는 한민족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가시마 노보루같은 일인학자는 한(漢)족은 기껏해야 한(韓)을 흉내내어 이름붙인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식자층은 양자강 유역이 전통적으로 동이 9족의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장개석은 이 사실을 너무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해 임시 정부의 이시영 부통령에게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하시는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에는 어느 한구석에도 이런 기록이 없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왜곡되었음을 반증해 주는 하나의 예증에 불과하다. 고대역사를 다룬 사서 삼국사기,삼국유사 두 책은 중국이나 일제는 굳이 수거하지 않아도 될만큼 주체성을 상실한 책이었기에 이 두 책만은 남겼다.
일제에 의해 왜곡 조작된 한사군의 실상
조선의 역사가 중국의 식민지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일제가 조작한, 역사말살의 학설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한사군漢四郡 대동강설’이다. 한나라 무제가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에 낙랑, 임둔, 진번, 현도라는 네 개의 식민 구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어떠한가?
BCE 108년, 한 무제가 위만의 손자 우거를 멸하려고 국경을 넘어 쳐들어왔다. 전쟁 초기에는 우거왕의 일방적인 승리가 이어졌지만, 장기전으로 가면서 내부의 반란에 의해 결국 왕검성은 무너지게 된다. 우거의 정권은 조선의 왕위를 찬탈해서 만든 한족 정권이기 때문에, 니계尼谿에서 상相이라는 벼슬을 하던 참參이 주동이 되어 우거를 죽여 버렸다. 그러고서 조선의 유민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한나라 군에 대항하여 피 터지는 조선족의 독립전쟁을 한 것이다. 당시 조선족의 독립운동이 워낙 강력하게 일어나서 그곳에 자기네들의 사군四郡을 세울 수도 없었다.
이 전쟁의 결과에 대한『사기』의 내용을 보면 한 무제는 고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좌장군 순체와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에게 5만7000명의 대군을 주었다. 두 장군은 1년이 넘는 전쟁 기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귀국했다. 그러자 한 무제는 좌장군 순체는 사형시킨 후 시신을 조리돌리는 기시(棄市)형(棄市刑, 목을 자르고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형)을 내렸고, 누선장군 양복도 사형선고를 내렸다가 막대한 속전(贖錢)을 바치자 목숨은 살려주되 귀족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등시켰다.
위산(衛山)은 고조선과 강화협상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이미 사형 당했으며, 제남(濟南)태수 공손수(公孫遂)도 마음대로 군사형태를 바꾸었다는 이유로 사형 당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마천의 이 기록을 보더라도, 결코 한나라가 승리한 전쟁이 아닌 패전인 것이다.
사마천(BCE 135년~ BCE 90년)은 이 전쟁의 목격자였음에도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정벌하고 사군(四郡)으로 삼았다”라고만 적고 사군의 개별적 이름도 적지 않았다. 한사군을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확고하게 각인시킨 세력은 일제 식민사학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사 교과서에서는 한반도 내에 낙랑, 임둔, 진번, 현도의 한사군이 있었다고, 일제에 의해 조작된 역사를 그대로 가르쳤고, 한국인은 이것을 어린 시절부터 외우고 다녔다.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해 우리의 시원역사가 뿌리째 뽑혀버렸다.
‘석유환국(昔有桓國)’의 글자 한자를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국(國)을 인(因)으로 바꿔서 7천 년 역사를 싹 제거해 버렸다. ‘너희들 역사는 다 신화의 역사다. 환인, 환웅, 단군은 다 신화의 인물이다’라는 것이다. 이 식민사관의 ‘왜독倭毒’에서 우리는 아직도 전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 1922년 조선 총독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 시책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 등을 들춰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 부조(父祖;아버지와 조상)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이후에, 1910년 11월에 조선총독부 산하에 ‘취조국’을 두고서, 1911년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조선총독부 관보(官報)를 근거로 보면, ‘51종 20여 만 권 정도를 가져갔다’ 일본인들은 서적 약탈뿐 아니라 1922년 12월 달에 ‘조선사편수회’ 즉,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서 1938년까지 본문만 35권이 되는『조선사(朝鮮史)』를 일본인들이 만든다.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 이병도는 今西龍(이마니시류)의 수서관보로 들어가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는 데 일등 공로자가 된다.
이병도의 화려한 약력
192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을 지냈고, 34년 진단학회(震 檀學會) 창립에 참여,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52년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5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듬해 국사편찬위원, 56년 진단학회 이 사장, 60년 교육부장관 역임 등. 역사 날조에 앞장섰던 사람이 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 교육부장관까지 했으니 우리 역사가 해방 후에도 바로잡힐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밑에서 역사를 배운 후학들은 도대체 어떤 역사를 배웠겠는가? 또 강단 주류학파로 일컬어지는 그들이 지금도 사학계를 주도하고 있다.
서양의 실증주의 사학에 의한 ‘양독洋毒’
이 과학주의, 실증주의 사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유물로 증명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2,700년이므로, 우리의 역사는 고작 2,700년 밖에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가령 3백년 전에 살았던 10대 조상의 무덤을 파보면 특수한 경우를 빼놓고는 그 무덤 속에서 유골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그 무덤에서 유골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족보의 기록을 믿을 수 없으니 10대조 할아버지가 실존한 인물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
이렇듯 중국에 의한 역사 왜곡인 ‘중독’, 일제 식민사관의 ‘왜독’, 서양 실증주의에 의한 ‘양독’의 폐해로 우리의 역사는 그 상처가 너무도 깊다. 『단군 조선은 신화다』, 이것이 그들이 펴낸 책제목이다. 하지만 역사의 실상은 어떠한가?
중국에서 최근 80년 동안 만리장성의 북쪽 너머에 있는 요하와 대능하 지역을 발굴했다. 거기서 5,500년에서 최고 9,000년 된 유물들이 나왔다. 황제문화의 상징인 용龍 조각물과 헤아릴 수 없는 옥기玉器들이 발굴되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 요하문명이 만리장성 안에 있는 황하문명보다도 몇 천 년이나 앞선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뿌리 문화, 동북아의 원형 문화가 드러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의 학계와 정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요동, 요서, 만주 지역은 본래 자기네의 활동무대가 아니라, 동방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東夷족의 중심무대였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은 동북아의 창세문화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즉각적으로(2002년), 저 유명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착수하였다. 그동안 중국인들은 만리장성 밖은 오랑캐들만 사는 곳이라고 하더니, 만리장성 밖 내몽고 적봉지역에서 7,000년~8,000년 전의 토기와 문화유적들이 쏟아져 나오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여기가 바로 중국 한(漢)족의 발원지라는 것이다.
대만의 사학자 서량지(徐亮之)교수는 그의 저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은나라, 주나라 무렵의 동이족(東夷族)의 활동범위는 중국 산동반도, 하북성(북경 등지), 발해연안, 하남성, 강소성(상해 등지), 안휘성, 호북성, 요동반도, 조선반도 등이며 그 활동 중심지는 산동반도였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중국학자 이제(李濟)는 물론 부사년(傅斯年)도 단군 조선족(東夷)의 문화라고 인정한 용산문화(흑도문화)가 감숙성 옆의 섬서성 지역까지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충분히 입증되어지는 사실이다.
「정북창(鄭北窓,1506~1549)」선생의 『궁을가(弓乙歌)』
※「정북창(鄭北窓,1506~1549)」선생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 충청도 온양 사람으로 『궁을가(弓乙歌)』는 북창 선생이 미래사의 전개과정을 가사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한 것이다.
1.조국을 떠나지 마라
애고애고 저 백성아, 간단 말이 어인 말고. 고국본토 다 버리고 어느 강산 가려는가. 가고 가는 저 백성아 일가 친척 어이할꼬.
부모 처자 다 버리고 길지(吉地) 찾는 저 백성아, 자고(自古) 창생 피난하여 기만명이 살았던가 … 일편수신(一片修身) 아니하고 가고 가면 살아날까.
2. 인류 구원의 도통 군자가 나온다.
“조선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난다. 사명당(四明堂)이 갱생하니 승평시대(昇平時代) 불원이라 창생도탄 없어진다. 포덕포화(布德布化)하는 때라 … 대성지화(大聖之化) 돌아오니 궁을(弓乙)노래 불러 보자.
조선 말기에 미륵부처님 오신다고 말한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의 설총결
설총(薛聰)은 신라 경덕왕때의 대학자로서, 그의 아버지는 원효대사(617-686)다. 원효와 설총 두 부자(父子)는 한민족의 정신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들이다. 신라 10현 중 한 사람으로 향찰을 집대성한 설총은 신라 경덕왕 때의 대학자이다. 강수,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문장으로 꼽힌다. 그의 어머니는 요석공주다. 일찍부터 총명함을 인정받은 그는 말년에『설총결(薛聰訣)』을 남겼다.
① 미륵부처님은 조선 말기에 오신다.
漢陽之運過去除에 龍華世尊末代來라. 金剛山上大石立하니 一龍萬處次弟應이라. 一萬二千文明化에 瑞氣靈峰運氣新이라.
한양의 운수가 끝날 무렵 용화세존이 말대에 오시리라. 금강산에 새 기운이 서려 있으니, 상서로운 청룡 백호가 굽이굽이 응해 있도다. 일만 이천 도통 군자를 출현시킬 새 문명의 꽃이여, 서기 넘치는 영봉에 그 운기 새롭구나.
百年後事百年前하니 先聞牛聲道不通이라.
백 년 후의 일을 백년 전에 와서 집행하시니 먼저 믿는 자들이 소울음소리는 들었으나 도는 통하지 못하리라.
前步至急後步綏하니 時劃方寸綏步何오.
먼저 믿는 자들의 걸음걸이는 지극히 급하였건만 늦게 믿는 자들의 걸음은 어이 그리 더딘고. 남은 개벽의 시간 방촌에 불과하건만 게으른 신앙의 발걸음은 어찌할 것인고
背恩忘德無義兮여 君師之道何處歸오. 無禮無義人道絶하니 可憐蒼生自盡滅이라.
배은망덕하고 의리 없음이여, 군사의 도는 다 어디로 갔는고. 예절도 의리도 없이 인륜의 도가 다 끊어졌도다. 아, 가련토다, 창생들이여! 모두 제 죄로 멸망당하는구나!
주장춘(朱長春)은 명나라 신종때 절강성 오흥현의 오정사람. 자는 대복.만력(1573~1620)때 진사(進士)에 올라 형부주사에까지 이르렀던 분이다.
『진인도통연계(眞人道通聯系)』"는 유,불,선 3대 성자의 도맥을 지도(地道)의 원리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관자각]이 있으며, 그의 이름이 실린 책으로는 [명인소전(明人小傳)]3권과 [명시종(明時綜)]54권 [열조시집소전(列朝時集小傳)]정((丁)하(下)가 있다.
곤륜산제사지맥 입우동해 생백두산
崑崙山第四枝脈이 入于東海하여 生白頭山하고
백두산 생금강산 기맥일만이천봉
白頭山이 生金剛山하여 起脈一萬二千峯하니
생증산 천지문호모악산하 도출어오야
生甑山하여 天地門戶母嶽山下에 道出於熬也라.
고 일만이천명도통야
故로 一萬二千名道通也라.
곤륜산의 제4지맥이 동해로 뻗어 백두산을 맺히고 그 맥이 다시 남으로 뻗어 금강산을 수놓아 1만 2천 봉하니 이 기운을 타고 증산(甑山)께서 천지의 문호인 모악산 아래에서 ‘모든 진리를 완성(熬道: 볶을 熬)’시키는 道가 나리라. 고로 1만 2천 명의 도통군자가 출세하리라.
※ 나운몽장로의『동방의 한나라』
"일본 히로시마의 선통사 기다노 대승정은 『우주인과의 대화』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기다노 대승정은 1975년 7월 22일 밤, 선통사라는 절에서 인류의 미래에 관한 충격적인 소식을 신인(神人)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다.
“일본의 이웃 국가인 한국(韓國)은 앞으로 지구상의 여러나라 중에서 최고의 종주국(宗主國)이 될 것이며, 절대적인 핵심국가가 될 것이다.
장차 한국에서는 성현군자(聖賢君子)가 부지기수로 출세할 것이며, 한국은 사해만방(四海萬方)을 지배할 것이다. “이 지구에는 큰 변동 이 있을 터인데, 지각과 지축이 신축(伸縮)과 정립(正立)하는 현상으로서 해저(海底)였던 곳이 해면(海面)위에 돌출하기도 하고, 해면 위로 드러나 있던 섬이 물 속으로 침몰되어 없어지기도 하여, 지금의 세계지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약 20만명 정도 살아남을 것이며, 한국은 영광스럽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숫자인 약 425만 명이 구원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 불원(不遠)한 장래에 친구가 살고 있는 지구(地球)가 지상 낙원(樂園)화될 것이니, 그 때에 다시 만나자! 친구여 안녕! 『동방의 한나라』
신선 자하(紫霞)선생의 『신교총화(神敎叢話)』
『신교총화』란, 이름 그대로 인류 문명의 모체인 제1의 종교인 신교神敎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중요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자하선인과 팔공진인 이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나와 있다.
스승인 자하는 이름이 이고(李?), 자는 덕화(德和)이며 자하(紫霞)는 그의 호로서 광동(廣東)인이다. 태백산 구화동(九花洞)에서 살았고 『신교총화』 저작 당시인 계사(1893)이다.
神敎之爲衆敎之爲祖, 爲母之理… 人情多私 忘本源 … 不究神市敎之本源如何也, 亦自失其源
신교는 뭇 종교의 조상이며 모체가 되는 뿌리진리이다. 말세가 되면 인정이 사욕으로 들끓어 본원을 망각하리라. 장차 신시(배달) 시대의 가르침(神市敎)인 신교의 본원을 연구하지도 않으리니 어쩌리요. 제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상실하리라.
從今以後, 世路尤險, 千私萬魔, 以亂天理矣
종금 이후로 세로(世路)가 험난하여 천사만마(千私萬魔)가 천리를 어지럽히리라.
人皆滔滔, 自欺欺人, 天地光明失矣
사람이 모두 도도해지고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며 하늘과 땅이 광명을 상실하리라.
人不知其祖先之道, 而只從他, 便是風麻漢
사람들이 자기 선조의 도를 알지 못한 채 다만 다른 것에 매달려 있으리라.
後世人心多邪曲, 故逕入邪道, 不知眞爲, 奈何! 三鮮九壬後, 人多鬼魔所使而如狂也
사람의 마음이 삿(邪)된 것에 구부러져서(曲) 사도(邪道)에 잘 빠져들고 진실과 허위를구분하지 못하리니 어찌하리요! 또 귀신과 마귀에 홀려서 미친 것 같으리라.
[神市]眞理將明於天下, 長男運更壯, 而小女從之理 自然的?
(동방신시(배달)의 신교 진리가 장차 천하에 밝혀지리라. 동방 장남[震長男]의 운이 다시 용솟음치게 되며, 미국[兌小女]이 이를 순종하게 되는 이치는 우주 자연의 변화원리이다.)
後天井有萬二千道, 有萬二千人 人能日行萬里, 飛揚天地如鳶飛, 處處生不夜城, 然後眞正大敎主出矣.
후천 벽두에 1만 2천 명의 도인이 출세한다. 이 때에는 사람마다 하루에 만리를 가는데 천지를 날아다니는 것이 솔개가 하늘을 나는 모양 같다. 곳곳에 사람 사는 모습은 밤이 없는 성[不夜城]과 같다. 이러한 대문명이 열린 후에 참되고 올바른[眞正] 세계통일의 대교주(大敎主)가 출세하리라. (신교총화』 44쪽)

첫댓글 앞으로 3~ 5년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만들었던 영화 "일본침몰"처럼 되는 현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이 침몰할 때 태백산맥 전까지 동해안 쪽은 해일로 당하게 됩니다. 부산,울산까지 영향이 가는 것으로 압니다.
지구촌 전체가 올해부터 4,5년 과정에서 극한상태로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때입니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덮고, 내년보다는 내후년이 더 지글지글하고, 지구촌이 지진도 점점 더 잦아지고, 화산도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리는 데 있습니다.
시간의 대주기에서는 우리가 살고있는 지금 이시대가 우주의 여름 말末에서 가을우주 지구 1년 360일의 정역(正易)시간대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입니다.
@한아름 과학자들은 빙하의 영향으로 지구촌 전체가 기후변화가 심해져
앞으로 채소뿐만 아니라 식량문제도 심각해지리라는 우려를 합니다.
@한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