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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토요일에 드리는 묵주기도와 신비 묵상 환희의 신비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
해산을 기다리고 있던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가 온 인류를 대표하여 최초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찬미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이후 세세대대 수많은 사람들이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찬양해왔다.
그러나 그것을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초세기 교회는 '마리아는 과연 하느님의 어머니인가?'라는 문제로 심한 논쟁을 겪었고 이단이 생겼다.
그러나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함으로써 그것은 우리 교회의
중요한 신앙교리로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믿는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것에 대한 참된 이해와 수용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 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2마카7,22-23)라는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의 고백을 보자.
아들들에게 순교를 권한 이 성스러운 어머니는 그 일곱 생명을 만든 이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바로
창조주 하느님이었다는 것을 그렇게도 잘 이해했다.
그런데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그분꼐서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그 아기도 만드셨다는 것,
즉 창조주 하느님께서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 안에서 인성과 신성 둘 다를 지닌 한 인격체를 만드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인간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여!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과 "그 여인" 사이에 이런 관계를 맺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마리아의 모든 품위와 위엄과 영광은 바로 이 사실로부터 나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과 인간 사이에도 이런 친밀한 관계를 맺길 원하신 것이다.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었다.
성경에서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의 모자 관계를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가. 만약 에수님께서 성장한 어른으로, 어디에서나 기적을 일으키는 그런 사람으로 오셨다면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쉽지 않았겠는가?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로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것은 그분을 의심하게 하는 큰 원인의 하나였다. 그러면 하느님은 왜 그런 방법을, 즉 동정녀의 태중에서 한 생명체로 시작하여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아홉 달 동안 차츰 성장하는 그런 방법을 통하여 오시기로 하였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와 자식 관계의 탁월하고도 놀라운 품위를 강조한 것이 아니겠는가! 결혼으로 두 사람이 거룩한 일치를 이룰 때 사람은 또한 하느님과 가장 친밀한 방법으로 일치하게 되는데 그때야말로 사람이 창조를 이루는 때이며, 새로운 한 인간이 그를 영원히 살게하는 한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 때이고, 하느님과 영원한 일치를 이루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역사를 묵상할 때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거스르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지금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낙태에 대한 죄책감을 애써 외면한 채 태중에 있는 아기를 살해하고 있다. 게다가 낙태와 똑같은 무게의 죄인 피임에 대해서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나는 생명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막아 버리는 것인데도 말이다. 둘 다 생명을 거스러는 죄이며 강생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서 탁월한 방법으로 하신 부모 자식 간의 품위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성경은,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음성이 들려온 바로 그 순간에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도 역시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전한다. 그 장면을 묵상해보자. 강생한 말씀이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 아기를 미리 성화시킨 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다시 한번 외치게 된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부모와 자식 간의 품위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러므로 이 품위를 거슬러 범한 모든 죄에 대해서 아픔을 느껴야 한다. 우리 시대에 벌어지는 부모와 자식 관계의 타락을 한탄해야 한다.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 아래서 처음으로 고동치셨던 예수님의 성심을 생각해 볼 때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이런 죄보다 예수 마리아의 성심을 더 아프게 해드리는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를 기도할 때 하느님의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고, 이어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그때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아기가 성화되는 것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각각의 성모송들은 얼마나 뜻 깊은 찬미의 기도가 되겠는가?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다섯 번의 첫토요일마다 고해성사, 영성체, 묵주기도, 그리고 그 신비를 묵상하라고 명하신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당신 어머니의 거룩한 모성의 품위를 거스른 죄 때문이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첫토요일에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죄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또는 자녀와의 사이에 이 품위를 거스른 모든 죄들도 통회하고 고해성사를 받도록 하자. 또한 다시는 결코 이 품위를 거스르는 죄는 짓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자. 이 결심을 굳게 하면서 첫토요일에 영성체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 속에 깊이 잠기게 할 수 있다. 그리되면 나 자신이 바로 주님의 감실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첫토요일을 지켜야 하는가?/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