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 1년 전 쯤인가...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글을 올렸던 전직 기자입니다.
하하...전직이라니 굉장히 기분이 묘하네요.
6개월을 치열하게 고민했고 사직서를 내기까지 또다시 2개월을 끙끙 앓았는데...결국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네, 저 백조 됐습니다.
총선때 바쁠 걸 알기에, 거기다 올해에는 몇 달 뒤 대선까지 정신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 내버렸습니다. 사.직.서.
총선도 지방선거도 대선도 몇차례 치렀으니 이번 선거까지 하고 그만둘까 생각했었지만, 곧 접었습니다. 마음이 떠난 마당에 부질없다 느껴졌어요.
일하는 가장 큰 기쁨, 사람. 그 기쁨의 색이 희미해지고 기자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물음이 내내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꿈과 현실은 참 달랐고...어린아이가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기엔 이 직업의 무게가, 의미가 묵직했습니다. 남이 하면 기사감일진데, 내가 하니 관행이 되는 것들도 싫었고, 점점 더 시야가 좁아지는 걸 순간마다 체감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개를 무는 걸 찾고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비판과 비난을 읽어내려 하고...가끔은 불난 집 옆에서 부채질하고 싸우라고 부추기는 못된 시누이같다는 자괴감이랄까...그런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덧붙여 상사와의 트러블까지 겹쳐 견디기 괴로웠습니다. 새로 오신 상사분은 좀...예민한 부분이 있으셨는데 지쳐있던 절 패닉으로 몰고가셨지요. 덕분에 그만둘 당시 자존감 바닥 자신감은 개뿔 투지는 개나줘였습니다. 어찌나 절 끔찍히 생각하시는지 야근에 현장취재에 지방 출장까지 차곡차곡 몰아주셔서 과로에 위염에 시력이상에 기타등등 다채로운 병들이 제 품에 안겼습니다. 병원에서 제명대로 살려면 일 좀 쉬라고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곧 있음 10년인데 참자참자참자...참을인을 수만번 썼는데 일 지키다 나를 못 지킬 판이라 질렀습니다. 과감하게 사직서를요.
후회? 합니다. 고민? 마빡 터지게 합니다. 하지만 모처럼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배우고 되묻습니다.
사직서를 내고 처음 몇주일은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주말에 일 안하는 것도 밤에 일 안하는 것도 빨간날에 노는 것도 모두 다.
정말 꿈꿔오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여행도 가고 처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지냈습니다. 재밌는 드라마 챙겨보고 인터넷 게시판 보면서 낄낄 거리고 주말에는 부모님 모시고 자식노릇도 하고 남들 다 하는 일 잊고 살았는데 몇 년만에 하려니 신기한 기분도 들더군요.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건...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더군요. 억울한 사연도 가지가지, 분통터지는 민원도 구구절절 발에 채이는 게 아이템이더군요. 기자라면서, 세상사 돌아가는 일에 빠삭하다면서 그렇게 생각했건만...전 헛똑똑이였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보지 못했던 진짜 세상,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을 다시 배웁니다. 사회 초년생같은 기분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쪽일을 하다보면 실제 생활에 어두운 경우를 종종 봤는데, 제가 그랬네요.
다시 기자를 하겠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아직 잘 모르겠네요. 실은 제 패스워드와 아이디를 삭제하지 않은 채 제게 시간을 줄테니 좀 쉬고 돌아오라던 윗분들의 권유가 있었는데...막상 그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삭제된 날은 가슴이 쿵 내려앉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어보려고요.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좀더 세상을 겪어보고 느껴본 뒤에 결정해볼까 합니다. 눈과 귀를 맑게 닦고 이것도 저것도 내려놓고 산 다음에 가슴이 끌리는 길대로 가려고요.
기자를 안 하면 죽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아직 직업병을 버리지 못해서 누군가와 통화하다가 습관적으로 메모하고 부당한 게 있으면 관계기관에 내용 파악부터 하지만 차차 나아지겠죠? 굉장히 홀가분하고 좋은데 다만...일을 그만두고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다면...기자들에게 노트북이나 뷰파인더 너머가 아닌 보통의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런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그 수혜를 더 많은 기자들이 받도록 만드는 일에 내가 보탬이 되도록 노력을 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정도.
기자를 꿈꾸시거나 현직에 계신 분들! 지치지 마시길...더 넓고 더 미세하게 관찰해주시길... 큰 정의는 결국 작은 정의가 모일 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주제넘지만 전직 기자가 몇자 끄적입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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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너무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그 안에서 본 것들은 너무 싫었던 혹은 욕했던 것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자들, 참 빡시게 일하는데 욕만 먹는 거 같아 서글프기도 하고요. 미디어빅뱅이라고 하지만 아직 기자라는 직종은 이 흐름에 부흥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기자란 무엇인지. 현 시대에 맞는 기자란 어떤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아 멋지세요!
안 멋있어요~ 아아 시간은 남는데 애인은 없고 날은 덥고 잔고는 줄어가고..ㅋㅋ 그래도 마음은 편하네요
기자 따위!ㅎㅎ
기자씩이나!라고 해주세요 ㅋㅋ아직 기자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콧날이 시큰하답니다. 너무 사랑했던가 봅니다. 다시 기자를 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뛰고 열정적인 시절이었노라고 기억될 것 같거든요.
음 왠지모를 공감이요... 앞으로 1년 계획하신대로 보내시길요.
감사합니다 현직에 계시는 분들은 한번씩 혹은 종종 이런 마음 드실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덥고 정신없는 날 나만 빠져나온 거 같아 좀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사표를 던지는 것도..아직 젊은시절이니 거름이 되는 경험이 되겠죠..
거름이 되라고 빌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최근 몇년 간 영화관에서 제대로 영화 본 적도 없었는데 일 그만두고서야 영화관을 찾았네요. 이런 것들도 쌓이면 피와 살이 되겠죠?
공감합니다. 기자들은 연수나 안식년을 통해 리프레쉬해야할 필요가 있어요.
일안하고 쉬다보면 안 보이던게 잘 보이고, 쓰고 싶은 소재가 막 눈에 보이죠. ㅎ
다른 일 하시더라도 잘 하실거에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몸이 근질거립니다. 세상엔 참...부조리하고 어이없는 절차와 일들이 많더군요. 그럴 때마다 후배나 동기에게 막 카톡 날린다는 거~ 일 그만둔지 언젠데 큰일이예요.^^:
토닥토닥...
가장 필요한 거네요. 감사해요...
혹시 블로그 있으면 놀러가고 싶은데.. 있으세요?
안타깝습니다만..전 블로그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 관리하기 어려워서 싸이도 닫은 상태...그런 거 잘하시는 분들이 부럼습니다. 전 엄두가 안나거든요. 시간이 나는 요즘엔 페북이나 트위터를 해볼까 그런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잼나요 ㅋㅋ
그런가요? 트위터가 재밌어 보이긴 하는데 너무 개방적이라 좀...^^: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제 공간에 들어오는 게 좋진 않습니다. 너무 폐쇄적인가요? ^^ 혹시 언론인이신가요?
일반인 입니다 ㅋ
부럽습니다. ㅜㅜ 언론계쪽에서 일하다 보면 트위터도 일의 연장선상이 되어버리거든요. ㅎㅎ 그래서인가, SNS에 대한 불편함+안좋은 기억이 있네요. 암튼.. 날두 더운데 냉방병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고 좋은 오후 되시길!
건승하세요^^ㅎㅎ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는지 좀 더 써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니면 쪽지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이제야 확인해서...쪽지 한번 주세요. 뭐가 궁금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오오오오랜만에 아랑 들어왔는데... 진짜 제가 느끼는 거랑 똑같네요 ㅠ 저도 기자 초년생.. 님과 같은 방황하는 인생... 하지만 님과 다르게 아직 결정을 못내린...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이네요. 머리 굴리지 않고 세상을 보면 더 많은게보일텐데. 기자가 된 후 머리만 굴리는 못된 버릇만 늘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