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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카의 핵심 간부 중 한 명으로 올라선 파우코이는 다른 ‘7월의 육인방’에 비해 마흔이 다 된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고참이었기에 위험한 현장 활동을 그만둘 채비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현장 활동은 위험천만한 것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바로 독일의 괴뢰국으로 새로이 탄생하여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된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이었습니다.
한때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사회민주당(SDKPiL)과 유대인 노동총연맹, 즉 분트의 근거지로써 러시아와 독일의 한가운데에서 사회주의의 본거지 역할을 하며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오 요기헤스], 체카 위원장 펠릭스 제르진스키, 소비에트 러시아의 외무부위원 카를 라데크와 같은 저명한 혁명가들을 배출한 폴란드의 반제국주의 혁명 세력은 이 시점에서는 급속히 우경화된 상태였습니다.
이들의 지도자인 사회주의자였지만 민족주의자로 전향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평에 따르면, 사회주의라는 열차에 올라탔으나 민족주의라는 역에서 내린 셈이었죠. 피우수트스키가 한때 레닌의 형인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의 ‘인민의 의지’라는 인민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테러리스트 단체의 회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묘한 일이었습니다.
독일 제국은 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왕위 요구가 가능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우라흐 공작 빌헬름 카를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으로 옹립할 절차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빌헬름 카를이 모계로 폴란드 국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이었던 카지미에시 4세의 후손이라는 이유였죠.
그러나 유럽 사회주의-국제주의의 태생지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향한 파우코이의 마음은 곧 차갑게 식었습니다. 폴란드 사회주의 세력은 피우수트스키를 추종하는 민족주의 변절자들로 이뤄진 폴란드 사회당 우파, 반유대주의적인 민족노동자연맹, 룩셈부르크와 요기헤스의 독일 활동으로 껍데기만 남은 사회민주당, 피우수트스키에게 반대해 나왔지만 지지세는 미미한 폴란드 사회당 좌파, 페트로그라드와 연락이 끊어지며 제 갈 길을 가게 되어버린 분트 등 온갖 세력이 이합집산하는 상태였습니다.
최소한 바르샤바에서만이라도 통일된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은 파우코이는 유대인 사회주의자로 위장하여 [모시예크 엘하난]이라는 유대인 지도자에게 접근했습니다. 콧수염을 기르고 비싼 토라를 사비로 장만한 파우코이는 유대교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정보를 수집하였죠.
현지 정보 수집 자체야 ‘지금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독일인 왕이야 그렇다 쳐도 결국 이름 바뀐 의회왕국의 부활 아니냐?’라는 불평불만을 듣는 수준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파우코이는 ‘러시아는 독립된 사회주의 폴란드를 지지한다’라는 정보를 흘리며 바르샤바의 좌익세력 연결에 힘썼고, 유대인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바르샤바 사회주의 전선’을 결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대인 이외의 구성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남은 숙제였지만, 사회민주당의 유명무실화 이후에도 러시아와 연락을 지속할 좌익조직이 재건되었다는 것은 큰 의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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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의 심복 표트로프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과 함께 종군하며 그들을 감시하는 정치위원의 역할을 맡은 바 있었습니다. 감시라는 정치위원의 본래 의도보다는 약간 벗어나, 체코 군단에 동지애를 심어줘야겠다고 쉽게 판단한 표트로프는 한가롭게 사회주의 선전을 하는 대신 현장에서 뛰었습니다. 한 손에는 미제 윈체스터 소총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카자크인들로부터 뺏은 사브르를 든 표트로프는 다른 이들이 정치혁명과 사상에 목숨을 거는 동안 전쟁영화를 찍었습니다.
여포에 비견될 법한 표트로프의 활약은 공산당에 의해 더욱 부풀려져 ‘사회주의적 긍정적 영웅상’으로 선전되었습니다. 표트로프를 신뢰하지만, 영웅주의 따위 믿지 않는 트로츠키는 시큰둥했으나, 문맹에 농민 출신인 표트로프의 활약 자체는 분명 급진적인 사회주의를 퍼뜨리는 효과는 있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마침내 자캅카스로 떠나면서, ‘저런 인간 흉기를 옆에 배치한 악랄한 볼셰비키와 척질 수는 없었다’라는 기상천외한 발언을 남겼다는 헛소문…으로 추정되는 소문 또한 퍼졌지만요.
“표트르 동무, 한가지만 조언하겠소. 제르진스키 위원장이 동무에게 시키는 일이 항상 마음에 들지는 않을 거요. 정치공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보였던 동무의 표정을 보건대, 동지는 제르진스키가 원하는 ‘도살자’가 절대 될 수 없소. 반려하는 게 어떻겠소?”
표트로프는 뛰어난 무력을 인정받아 체카 휘하에 신설될 특수부대의 사령관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고향 예카테리노다르의 지역 소비에트 위원장 자리 또한 제안되었죠. 한참을 고민하던 표트로프에게 바르샤바에서 고생 끝에 돌아온 파우코이는 우물쭈물하는 표트로프의 반응을 보고 그가 예카테리노다르로 향하도록 유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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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럽 러시아의 안정화를 두고 기뻐하던 소비에트 러시아 지도부는 곧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918년 6월 30일 체카 의장보좌관이자 사회혁명당 좌파의 간부 중 한 명이었던 [그리고리 작스]가 페트로그라드에서 총격당해 암살당한 것이었습니다. 범인인 [레오니트 칸네기서]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지만, 전직 제국군 장교의 테러로만 추측되던 사건은 칸네기서가 사망한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의 정파인 트루도비키 소속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영수 케렌스키의 죽음 이후 트루도비키와 노동인민사회당은 함께 손잡고 [보리스 사빈코프]라는 구 인민주의 테러리스트의 휘하에서 활동한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지금까지는 없었죠.
스워지니치니의 손에 죽은 지 1년이 넘은 케렌스키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며 지도부 인사들의 일부는 ‘케렌스키의 죽음도 수상하다’와 같은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왼쪽에는 적이 없다며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을 전부 풀어준 케렌스키가 죽어버림으로써 통일전선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었던 노동인민사회당과 트루도비키를 비롯한 우경 개량주의자들이 백군에 가담하게 되었단 것이었죠.
케렌스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수준이 아니라 살해를 명령한 당사자였던 스워지니치니는 이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애초에 케렌스키의 죽음을 어영부영 묻은 것은 레닌의 의도였으니까요. 문제는 자기 말을 바꾸는 것 정도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던 레닌이 이를 다시 꺼내 스워지니치니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택에서 나오지도 않은 채 두문불출하는 스워지니치니를 열심히 공격하는 레닌의 모습은 마치 멘셰비키-볼셰비키 분당 당시의 모습을 보는 듯했죠.
한때의 동지들이자 같은 인민주의자였던 트루도비키들이 자신들을 대상으로 테러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에 격분한 사회혁명당이 좌·우파와 최대주의파를 아우른 통합대회를 열고 당대회를 빙자한 상호 비방대회를 여는 사이, 체카는 주요 요인들의 경호 인력을 늘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호 인력을 늘리기가 무색하게, 사건은 1918년 8월 30일에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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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이나 암살 시도가 없으면서 요인들에 대한 경호는 느슨해졌습니다. 한때라도 인민주의자들이었던 이들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명목으로 재통합된 사회혁명당이 ‘공산당 중앙위원 중 한 명을 노리고 있다’라는 섬뜩한 정보를 전했음에도, 자신들이 귀족처럼 대접받는 것에 그리 내키지 않았던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도부 구성원들로서는 경호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닌은 오히려 이를 틈 타 스워지니치니를 신나게 욕하는 것을 멈추고, 매일 현지 지도를 나갈 때마다 중견 간부와 동행하는 일종의 당 기강 잡기를 진행했습니다. 사회혁명당 내부의 대혼란이 공산당 내에서도 일어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죠.
1918년 8월 30일, ‘낫과 망치 공장’으로 개명된 모스크바의 구 미헬손 무기공장에서 레닌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옆에는 핀란드 공작을 성공리에 마친 우스트랼로프가 있었죠. 레닌은 내전에서 노동계급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우스트랼로프에게 ‘노동계급 독재’라는 개념을 좀 더 학습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사회혁명당 소속이었던 혁명가이자 테러리스트 [파니 카플란]과 [리디아 코노플레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본래 시각장애인이었던 카플란은 역사의 이상한 장난일지는 모르게 크림반도에서 요양하다 그곳의 의사이자 레닌의 동생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에게 치료받고 시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였고, 사빈코프에게 포섭되어 레닌과 우스트랼로프를 저격하기 위해 대비 중이었습니다.
두 명은 식량 부족에 관해 불평하는 척하며 연설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려는 레닌과 우스트랼로프에게 접근했습니다. 경호원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막으려는 순간 세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우스트랼로프는 얼굴을 감싸 쥔 채 레닌을 보호하기 위해 밀어 넘어뜨린 상태였고, 레닌이 얼마나 다쳤는지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레닌의 비서 [블라디미르 본치브루예비치]는 황급히 두 명을 관용차에 태우고 크렘린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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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남아 있던 지도부 인원들은 노농적군이 경비하는 크렘린 상원 청사에 황급히 모였습니다. 시베리아 전선에 파견되어 있던 일부 인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유력자가 모인 자리였죠.
파우코이는 사람들이 서로를 탓하며 난장판이 되어가는 회의장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레닌과 우스트랼로프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고, 체카가 사건의 진위에 대해 조사 중이다’라고만 짤막하게 밝혔습니다.
기본적으로 지도부 요인 대부분이 경호를 강화하려는 체카에 불만을 품고 마음대로 나다닌 전적이 있었기에 체카를 비난하는 여론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비난의 화살은 사회혁명당으로 향했습니다.
카튜셰프는 ‘관련자들을 전부 뿌리 뽑아야 한다’라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연립정당에 대한 비판 분위기는 체포된 카플란과 코노플레바가 ‘제헌의회 선거가 연기된 것에 불만을 품었다’라고 밝히며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많은 인사들은 ‘그러면 콜차크 제독의 정부는 민주적이냐?’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의 동기에 반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죠.
상황이 격화된 것은 몇 달 동안 두문불출하던 스워지니치니의 등장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아직 충성하는 아나키스트-최대주의자 병사들을 무장시켜 크렘린에 난입한 스워지니치니는 ‘사회혁명당을 즉각 해산시키고 당원을 전원 체포하며, 지도부를 전부 고문해야 한다’, ‘내란을 꾀했는데도 재고 있는 현 지도부는 유약하기 그지없다’라는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급격히 표정이 굳은 국방위원 트로츠키가 크렘린 바깥으로 몰래 밀서를 보내는 사이, 스워지니치니의 발언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 소속 병력으로 사회혁명당을 쓸어버리겠다’를 통해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크렘린에 모인 위원들에게는 마치 7월 혁명을 떠올리는 듯한 발언이었죠. 문제는 그 혁명의 대상이 자신들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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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워지니치니의 행동 원칙이 상당히 일관적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의 행적에서 스워지니치니가 자신이 최고지도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었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고, 혁명적인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이 이러한 형태로 폭발한 것은 당시 소비에트 러시아의 많은 이들이, 심지어는 스워지니치니를 비판하던 레닌조차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죠.
스워지니치니에게 충성하는 친위병력은 공포를 쏘고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쿠데타는 아니지만, 쿠데타에 준하는 행동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체카 본부에 난입해 카플란의 신병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고, 사회혁명당 요인들을 체포하려 시도했습니다. 볼쇼이 극장에 별도로 모여 있던 사회혁명당원들은 경악해 인간 스크럼을 짜고 친위병력을 막으려 시도했으나 돌아온 것은 몽둥이찜질이었죠.
그러나 사회혁명당원들을 전부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한 기세로 볼쇼이 극장에 난입한 스워지니치니를 기다리는 것은 다름 아닌 레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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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목 외에는 크게 다치지 않은 자신의 신변을 미끼로 삼았습니다. 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도부를 향한 공격 대부분이 구 사회혁명당원들로부터 자행되고 있었으니, 한때의 동지들인 현 사회혁명당원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테러범들을 잘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첫 번째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라면 멀리 두어도 되지만, 적이라면 가까이 두고 감시해야 하는 법, 사회혁명당이 혹시라도 동요하지 않게 직접 감시하겠다는 게 두 번째였죠.
얼굴 한쪽을 미라처럼 칭칭 싸매놓은 우스트랼로프가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 레닌은 목이 간지럽다는 듯 붕대를 긁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를 경호하던 [야코프 블룸킨]이 자리를 비켜주는 가운데, 레닌은 ‘그리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스워지니치니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레닌의 품속에 트로츠키가 보낸 밀서가 있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레닌은 스워지니치니의 급진적인 행동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밀서를 받고 나서도 한동안 자신을 상대로 한 암살 시도와 연계된 공작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죠. 그러나 스워지니치니가 자신의 친위병력을 이끌고 난입한 지금, 레닌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지금 카플란을 심문실로 원상복구 시키고, 체포한 인사들을 전부 석방하시오.”
“그년은 동지를 암살하려 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소. 지금 복구 조처하면 동지의 월권행위는 불문에 부치도록 하겠소.”
정확히 이 시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목격자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차량을 대절해 황급히 볼쇼이 극장으로 온 ‘나머지 7월의 육인방’을 포함한 지도부는 사건의 시발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통된 견해를 제시합니다. 트로츠키의 심복이자 경호원이었던 표트로프가 이 대화 직후 스워지니치니를 무장 해제하려 했다는 것이죠.
후일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식 사서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고 두 가지 견해를 전부 실었습니다. 하나는 스워지니치니가 자신의 친위병력에 사격 명령을 내리려 했고, 이를 눈치챈 표트로프가 스워지니치니를 제압하려다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트로츠키의 비밀스러운 지시를 받은 표트로프가 스워지니치니를 먼저 제압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사건이 터졌단 것이었죠.
비공식적인 세 번째 견해의 경우 좀 더 믿기 어려운 음모론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암살 시도 직전 레프 카메네프와 함께 핀란드에서의 경험을 살려 노농적군의 보급실태를 점검하던 우스트랼로프가 러시아 제국 시대에 개발된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비롯한 신무기를 재발견하고 이를 체카와 친정부 민병대에 지급하고, 자신의 경호원들에게도 지급해 놓았다는 것에서 나온 견해였습니다.
볼쇼이 극장에 모여 있던 사람 중 일부는 ‘기관총인지 기관단총인지 구별이 안 되는 연속된 총성’에 대해서 증언하긴 하였습니다. 세 번째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조직력은 낮을지언정 사기가 높았던 스워지니치니의 친위병력이 손쉽게 제압된 것에 대해 우스트랼로프가 미리 곳곳에 배치해 놓았던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특수요원들이 표트로프가 스워지니치니에게 손을 뻗자마자 사격을 개시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정부와 당에 의해서 철저히 부정되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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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된 총성이 울리고 난 뒤, 소비에트 러시아는 최고의 군재를 지녔던 이반 스워지니치니가 총격당해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표트로프가 스워지니치니를 제압하려는 시도가 스워지니치니의 친위병력과 레닌의 경호 인력 간의 총격전을 유발하였고, 스워지니치니는 이 총격전에 휘말린 것으로 추정되었죠.
지도부는 재빨리 ‘사회혁명당 내의 극우 테러 조직을 일소하기 위해 스워지니치니가 친위병력과 함께 행차했지만, 그 자신조차도 테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라며 애도 기간을 선포하였습니다.
레닌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어버린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지만,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트로츠키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기로 하였고, 멘셰비키 국제파라는 다른 당파 소속이었다는 트로츠키의 약점은 이에 따라 서서히 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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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암살 시도 부분은 뜯어고쳤습니다. 소설판 내용은 너무 과도했다는 느낌이 들었을뿐더러, 본래 약속했던 대로 ‘원작(RPG)의 짤린 부분을 살린다’는 이쪽이니까요.
이 연대기 버전은 ‘그때 정말로 게임이 터졌다면(...)’ 루트로 가는 셈입니다.
첫댓글 ...내가 죽어...?
변곡점이 그것이었군요. 아니 분명 이 사건은 날라갔었던건데 싶었는데 마지막 주석 보고 아하 했습니다 ㅋㅋ...
그대로 옮기면 애써 연대기버전 만드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ㅎㅎ
유럽에서 가장 많은 왕위요구가 가능한 사람… 아쉽게도 중세에 태어나지 않았네요(?)
사실 지금 rpg랑 안겹치게 하려다, 실제로 리투아니아 왕국 국왕으로 즉위한 저사람이 튀어나오더라고요.. 의도는 이상했지만 결과가 좋았습니다(?)
+찾아보니 뷔르템베르크 승계순위 에도 들어갔고, 본인작위인 우라흐 공작, 모나코 공, 알바니아 국왕, 독일제국이 만들려했던 엘자스로트링겐 대공, 리투아니아 국왕 자리에 클레임이 있었네요 ㅋㅋ
게임 터짐 루트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표트르도 주연급입니다(?)
@렌지파일 진짜 은퇴 루트가 어떻게 꼬일지 ㄷㄷㄷ
솔제니친.... X.
다음편은 쓸만 큼 썼는데, 소설과 겹치는게 많아서 내용을 좀 더 늘려서 올리느라 늦어지네요.. 오늘(18일) 저녁 중으로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