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섬이 그리워졌다. 겨울 하늘에 서늘하게 핀 별을 보고 돌아온 밤, 마음에 들어와버린 섬 하나를 물리치지 못하고 파도처럼 뒤척였다. 저녁 후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밤이 깊도록 생각은 별처럼 또록또록해지고 있었다. 마음 속에 섬 하나 뜨면 이상하게 통제가 되지 않는 증세가 내게 있었다. 흔적을 찾아보니 매년 이맘때쯤마다 홀로 어딘가로 떠돌았고, 그곳들이 모두 섬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불쑥불쑥 찾아드는 마음의 중독일까. 외로이 닿았던 제주도가 그랬고 지금도 온통 그리운 소매물도가 그랬다. 고향으로 가고 싶던 내 마음들은 모두 섬에서 닻을 내렸다.
떠나고 싶던 섬들 중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이름에 '욕지도'가 있었다. 고향의 아랫집에 살던 할머니에게서도 들었고, 무시로 넘겨 듣던 엄마의 말에서도 욕지도가 살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엔 고향 어느 바다에 떠있는 섬인 줄 알았다. 어떠한 계산도 없이 욕지도는 그저 귓전에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 섬으로 가자고 마음이 움직이니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늦은 밤 나의 계획은 홀로이 섬 몇 개를 간직하자는 것이었지만, 아침이 되자 역시나 마음이 바뀌었다. 전날 밤 나와 함께 별을 보았던 사람들에게 섬 여행을 타전해 보자는 것으로. 섬 출신이 아닌 내륙의 사람들이 섬을 사랑하겠냐는 안일함도 있었고, 여럿이 함께할 때 오는 즐거운 주말을 강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밤의 낭만에서 아침의 현실로 옮겨올 때까지 욕지도, 아니 이 세상의 모든 한가롭고도 바쁜 섬들은 내 안의 애인이었다. 육지 끝에 딸린 식솔처럼 조랑조랑 매달린 바다의 아이들. 이번 섬은 그 중에서도 맏이 무리에 드는 섬이라 할 것이다.
여기 붙어라 해서 딸린 내 식솔들은 문협 식구들과 또 그의 마님들로 구성된, 다소 생뚱맞은 7인의 조합이었다. 글자에 발이 생겨 문어발이 된 결과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졌고, 낯선 조합은 새로운 섬 하나 발견한 셈 치면 되었다. 제법 많아진 가족들이 모이면 마음이 또 바빠져, 무언가를 찾는 버릇.
거기다 우연의 음식들이 더하여지면 기분이 또 좋아진다. 전날 포항 언니에게서 과메기가 택배로 도착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미역을 사오시고, 나는 그것을 열심히 치대서 바닷물을 헹군다. 김이랑 쪽파랑 배추 잎을 다듬어 각각의 반찬통에 담고 초장과 커피 보온병, 혹시 몰라 보온 도시락 두 개를 마련하니 배낭이 한 가득이다. 밥 싸기 귀찮으면 충무김밥을 준비하면 된다고 알림을 주고서, 정작 나의 배낭은 식구들 먹여살릴 것들로 식탁이 차려지는 것이다.
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아침 8시 집결하자 하고 10여 분 전에 나갔더니 아무도 없고 소나무만 덩그러니 서 있다. 나 도착했단 문자를 남기니, 순수님이 이 소리를 알람 삼아 '이제 일어났다'고 알려 온다. 늦잠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지만, 내 상상이 부족해서라고 치고, 오늘 이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므로 반드시 모시고 가야 한다.
통영 삼덕항까지 1시간이 30분 걸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간신히 앞당겨 잡은 시간이었는데, 늦잠을 자다니. 하긴, 나도 그런 적 있었다. 오줌싸개마냥, 일어나야 할 무렵에 적나라하게 싸고 식구들께 면박 당하는 신세가 잠의 세계였으니, 나 그 마음 잘 알았다.
멀리 산행가기로 하여 새벽에 일어나야 하던 어느 날, 그게 신경이 쓰였는지 도무지 잠이 안오다 새벽녘에야 간신히 눈을 붙이게 되었다. 내 알람은 못듣고 날카롭게 뚫고 들어오는 전화소리에 소스라치게 눈 떴을 때 몰려오는 신천지. 그 아찔함에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몸,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죄인이 되는 기분. 누구나 한번쯤은 있었을 잠꼬대 같은 이야기다.
돌발이 발생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정확한 사람들이니 나는 이들이 8시 1~2분 전에 올 것이라는 것까지 계산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이나 한 듯이 8시 언저리에 딱딱 모여 든다. 내 정확한 예상에 걸려드는 이들이 싱거운 건지 내 예측이 돗자리 깔 만큼 진척된 건지, 에라, 나도 모르겠다.
초간단 챙겨 나온 순수님 덕분에 그래도 늦지 않고 통영으로 향한다. 평소 만만하게 굴던 선배들이 부인들을 모시고 드라이브를 가는 듯 모여드니, 순수님은 내 곁에 꼭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초대를 한 사람으로서 뻘쭘해지면 안된다. 하필 순수가 늦잠을 자서 스릴이 있었지만, 이 날은 반드시 모시고 가야 할, 내게 그녀는 너무나도 필요한 동지이자 동무였다.
욕지도는 통영의 수많은 섬 중에서 욕지면이 거느린 39개 섬 중에서도 가장 큰 면소재지 섬이었다. 이 섬의 옛이름은 '녹도'였단다. 욕지도를 안내한 자료에 따르면 가시덤불 우거진 사이로 진귀한 약초가 많았는데, 그 골짜기마다 사슴들이 뛰놀았다는 개척기의 전설이 남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욕지항 안에 또 하나의 작은 섬이 목욕을 하는 듯하여 욕지가 되었다고도 하고, 유배를 왔던 선비들이 너무 욕을 보아 욕지라고도 했다 하는데, 정작 그 어느 것도 진정한 욕지도로 정확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떠도는 이야기가 정착하지 못한 상태로 욕지는 욕지도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출생의 비밀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 알고자 하는 바를 일러 '욕지라 함이 나을 것 같다.
알고자 하는 섬 욕지는 삼덕항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큰 섬 주위로 흩어진 작은 섬들에는 갈도, 연화도, 우도, 상노대, 하노대 등 불러줄만한 이름씨들이 제법 있었다. 사실 욕지도에 가면 찾고싶은 마을들이 많았다. 천연기념물 모밀잣밤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는 마을도 가보고 싶고, 위암 말기의 딸을 데리고 수십 년째 손수 천국의 흙집을 지으신다는 최숙자 할머니도 만나보고 싶었다. 고양이마을이라 불리는 목과마을에 가서는 사람보다 많다는 고양이들을 살피며 잠시나마 동화적 상상으로 머물다 오고 싶었다.
실제로 이 섬은 섬으로서 빛나는 가치를 지닌 듯 보인다. 여행을 하기에도, 잠시 머물며 삶이라는 것을 한 바퀴 돌아보기에도 섬은 어떤 구심점처럼 나를 끌어들였다. 섬사람들의 생명력에 섬이 주는 낭만이 자생적으로 결합하여 잃어버린 과거가 보고싶을 때 먼 구원의 상징처럼 떠오르던 섬. 욕지도는 절벽 단애가 그림 같은 섬이면서도 붉은 황토를 일구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욕지 고구마를 생산해내는 알짜배기 섬이다.
배에서 내려 안내지도를 살피니 어느새 섬 일주 순환버스가 서있다. 배 시간에 맞춰 다니는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 좋았다. 산행 들머리인 야포까지 차로 이동하고 마침내 11시 20분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부터 그저 오르기만을 하다보니 어느새 일출봉이란다. 둥글게 서로를 끌어안은 오밀조밀한 풍경이 다정하다. 이곳에서는 바다가 내륙이고 항구의 배들은 식탁에 차려진 수저처럼 가지런히 음식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섬들이라 뭍이 그리울 틈도 없을 것 같았다.
맞은 편 정상이 이 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이고, 우리는 저 봉오리까지 가야 한다고 남강님이 알려주신다. 사실 이 산을 소개해 준 거나 다름없는 분이 남강님이시다. 한 달 전 우연히 띄운 소식을 보고 그때부터 욕지도 생각을 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사실 한 달 새에 왔던 곳을 다시 찾기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우리를 위해 길라잡이를 자처하신 경우이니.
그러나 더 고마운 건 의령에 모인 아우들을 위해 진주에서 의령까지 대절한 택시처럼 실으러 오고 실어다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더 대단한 것이 있었으니, 평소 세월이 가거나 말거나 시속 80km를 대체로 넘지 않던 분이 이 속도를 가뿐히 제압, 120km의 쾌속질주로 우리와의 약속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라는 그간의 철학을 승화, 스스로도 장할 만큼 대견해 했단 것이다.
욕지도의 걷기 구간은 다양한 길이 입맛대로 나타나는 재미가 있었다. 산으로 든 길도 바다를 버리지 않는가 하면, 구불구불 신작로를 섞어가며 걷도록 길들이 다채롭다. 망대봉에서 출렁다리를 가는 길. 휘어진 도로 너머에 출렁다리 구간이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다리가 어디에 숨었다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길이 좋다고,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처럼, 아니 바람에 살랑 들어올려지는 낙엽처럼…
내 발이 살짝 뜨겠다네.
실은 진짜 낙엽 뒤채듯 아주 가볍게 들었지만, 팔에 날개가 돋아난 것인지, 생각보다 신이 많이 난 아이 같다.
볼수록 … 흥겹네.
아래로 길을 내려가면 어느 지점에는 출렁다리가 있다는 것이지만, 다리가 어디와 어디 구간에 가로 놓였다는 것인지 자꾸만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걸 다리 앞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다. 성큼성큼 걸어가도 한 스무 발짝 될까 말까 한 초미니 다리. 겨우 이 나룻배만한 다리 하나가 바다로 내려와 목 좀 축이고 가라고 우리를 이끌었단 건가. 그러나 그 초미니 다리 사이에 욕지도 최고의 비경이 숨겨져 있었으니…
이 평범한 다리에 숨겨두기에 너무나 아까운 협곡과 푸른 물빛. 작고 좁은 것들끼리 공간을 탐내지 않으려듯 서로 공손히 비켜 선 모습이다. 가슴도 튀어나오지 않게 뱃살도 튀어나오지 않게 완전히 심호흡한 부동의 차렷 자세.
출렁출렁 바짓자락을 흔드는 아기마냥 다리를 흔들며…. 무엇보다 이 짧은 다리는 협곡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기 위해 최적의 관람석으로 기능하였던 것이다.
어차피 다리란 두 세계를 이해하는 이음줄이었으니, 한 쪽이 예의껏 공손했다면 한 쪽은 태평해도 무방할 것이다.
겨울 바다 참 고요하다. 파도가 바위에 닿아도 짙푸른 바다는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바위들은 따뜻한 겨울 동안 발가락만 간지러웠겠다.
이왕 봄마중 하는 섬, 얼마나 재주가 좋은지도 보여준다고, 개나리 길 가로 마중오셨다.
복분자 꽃들은 이곳에선 아주 흔했다.
진달래는 봄보다 더 순결한 분홍빛이었다.
출렁다리에서 돌아나와 아늑한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밥도 있고 반찬도 있는데 젓가락이 모자란다. 각자 도시락을 챙기지 않았기에 젓가락도 당연 없었던 것이다.
내가 전달했던 내용은 개인 도시락을 지참하지 못할 경우, 충무김밥을 사면 된다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도시락 준비를 안할 줄 몰랐던 것이다. (내가 아직도 너무 믿는 걸까?) 결국 나만 뭐라도 조금씩은 싸오겠지, 하는 거였고, 그들은 여행이니 간단하게 가야 한다는 해석의 차이를 낳고 말았다.
이왕 이린 된 것, 가게에서 젓가락을 사야 했지만, 그땐 또 생각없이 있다가 산행 들머리에 오르고 나서야 슬슬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다행 나는 1회용 손장갑을 가져 갔고 누군가에게서는 휴대용 물티슈도 나오니, 그런대로 다행이다. 밥은 이 일회용 장갑에 손으로 주물러서 '인도식'으로 먹고, 과메기도 차곡차곡 쌈 싸 먹으니, '좀 없어 보이는 거 빼곤' 문제 될 게 없다. 모두 성자가 된 듯 밥 한 끼 경건하게 싹싹 비우니, 젓가락 없이 먹어서 맛이 배가 된 느낌까지 든다.
밥자리에서는 그날의 하일라이트 부부의 모습이 연출없이 펼쳐졌다. 들꽃님의 마님이 가장 먼저 양반 다리로 좌정하시니, 그게 무슨 대수로운 거라고 되냐는 듯 식탁보를 ? 펼치는 사람. 들꽃님이다. 지금까지 함께 산행도 여러 차례 했건만, 식탁을 마련하는 저런 포대기가 있었나 할 정도로 처음 보는 물건에 저 생소함이라니, 아 낯설다. 심지어 저 날리는 자세에서 우러나오는 '약한 자의 흔한 미소'는 도대체 무어라 말할까.
내 남자가 허술하게 말하다 끙, 소리 나게 면박 당하는 건 어색하지 않겠는데, 그가 마님 앞에서 찍 소리도 못하는 건 적응이 안된다. 누가 뭐래도 그는 존재감 캡인 들꽃 아닌가. 짐짓 평소처럼 말하려 애쓰는 저 모습도 어색하기만 하다. 술 들어간 입에서 뱉는 말일수록 청산유수, 거기에 말려들면 백전백승 왕고집인, 그는 우리들의 들꽃.. 이었는데...
처음엔 상처 받을까봐 말을 아끼고자 했지만, 순수님과 남강님이 들꽃에 농락당한 표정과 느낌 숨기지 않으니 참을 게 뭐 있겠나. 우리는 히히덕거리는 재미가 들려서 낯선 들꽃이 친절과 비굴을 구분하지 못할 때마다 속에서 배멀미 증세가 우웩, 올라옴을 느낀다.
남강님은 이참에 동지 만났다 싶었는지, 목소리에서 반가움이 철철 넘친다. 겉으론 "니 그리 사는 줄 몰랐다" 하시지만, 그 말인즉슨 "어이, 우리 같은 과끼리 잘해보자"는 말로 동시번역되어 들린다. 겨우 내세우는 게 "나는 그래도 저렇게까지는 안한다."는 근거없는 증언.
나와 순수는 못볼 것을 본 것처럼 둘이서 숙덕숙덕, 그에 대한 이미지 확 깬 듯 굴었지만, 이게 대한민국 현명한 남자들의 선택인 것도 안다. 그가 만약 비범한 천을 휘날리며 밥상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어찌 웃으면서 숙덕거릴 수 있었겠나. 그렇게 욕 먹을 각오하고 밖으로 나오는 남자 없을 것이고, 이렇게 남자를 부려먹듯 행동하는 여자는 그 너머를 아는 현명함으로 그런 것이니, 대한민국 남자들은 모두 여자의 깊은 속뜻을 알고 마땅히 즐거움을 주기 위해 나날이 현명함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 나무가 무어냐고 기다리고 서 있길래, 아직도 잘 구분 못하는 둘 중의 하나. 쥐똥나무 같다고 살짝 자신없이 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쥐똥나무와 흡사한 광나무라 하신다. 겨울에도 초록 잎이 저리 무성하면 광나무, 잎이 다 떨어지면 쥐똥나무. 저 초록 잎은 유난히 두껍고 짙었으니, 짙은 것은 광나무, 연둣빛이면 쥐똥나무...
대기봉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섬에서의 남은 시간 1시간 30분. 산행에 단련되지 못한 마님들이 산행에 단련된 남편들의 발목을 붙잡아 경치 보라고 꼬드기는지, 두 부부들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아있는 하산길을 얼추 짐작해도 다 못갈 것임이 그려진다. 산길 두려운 순수가 있어 제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아니 오고, 제아무리 기다려도 아니와서 아예 포기하고 대기봉에서 대기한다.
남강님은 먼저 천황봉에서 우리를 기다린단다. 대기봉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틀면 천황봉이니 우리는 뒤에 처진 부부들이 오면 급한 티를 내며 천황봉으로 가야만 한다. 산길 걷지 못할수록 마님은 공주님 되고, 잘 걷는 나는 어딘가 시녀 같아진다. 좀 약하게 걷고도 싶다만, 그걸 알았을 즈음에는 시간이 없다. 이때 내 곁에 순수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올해 병신년 우리들의 해라고, 의기투합 병신들 육갑 잔치를 해보자고 또 히히덕ㅋㅋㅋ.
천황봉은 이 산의 가장 높은 봉으로 392m. 언덕 위 바위를 일러 천제에 바치는 이름까지 하사한 그 기상이 군인정신일까. 군사시설을 갖추어서 오르지 못할 곳인 줄 알았지만, 철계단까지 갖추고 올라오란다. 생각보다 허울만 좋은 곳 같다.
이 철계단에 남강님이 아까부터 무료하게 앉아 계신다. 우리도 놀 시간이 많았지만, 놀기가 지나쳐 무료해질 시간까지 갔을 것이다. 그래도 불평 하나 없이 태연히 이 바다 정취를 즐긴 눈치다. 서두를 것 없는 모습은 홀로 이 봉의 주인처럼 시간을 사용했다는 저 한가로운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다.
봉우리는 일단 올랐다 오는 것이 산에 온 자들의 당연함이므로, 이 안심 길목에 마님들을 남겨두고 남편들은 각자 천황봉으로 오른다. 마님들 없으니 놀려먹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요즘 유행하는 교훈이 타이밍이 중요하단 것 아니던가. 타이밍이 제 발로 찾아왔으니 가뿐히 놀려먹고, 남아있는 구간도 싹둑 잘라먹기로 한다.
하산길은 천황봉 아래에 태곳적부터 천황을 모셨다는 듯 태고암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어느 사찰의 해우소 만한 풍경에 놀라 사찰을 따로 찾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고 딱 저만이 태고암이라고 우기니, 그러려니 해야 한다. 저 곳이 락원이라고 절간 소개를 한 스님은 어디 양지바른 데로 숨었을까, 암자엔 적막만이 감돈다. 나뭇가지로 삐뚤빼뚤 정겨운 하산 이정표를 그려 놓은 걸 보면, 뭘 좀 아는 개구진 스님일 것도 같고, 귀찮은 심정도 알 것도 같다. 지나가는 우리들은 양철통에 쓰레기를 태우는 주위의 잔해들에서 사람의 흔적을 겨우 느낄 뿐,
산모롱이 돌아서면 봄이라도 오는 듯 빨간 흙이 구릉을 이룬 욕지도 마을로 내려간다. 그 마을에서 어떤 잃어버린 추억을 만날지, 그때만 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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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람풍경 원문보기 글쓴이: 키스